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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72화 (72/111)

72. 강수 (2)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결혼이요?”

발레리안과 아테니아 모두 선선대 대공의 폭탄 같은 발언에 놀라 굳어 버렸다.

당연했다.

두 사람의 결혼을 가장 반대해야 할 사람이 지금 그들에게 혼인하라고 말한 것이다.

“젊은것들이 벌써 가는귀가 먹었느냐? 결혼하라고 했다.”

선선대 대공이 아테니아와 발레리안을 타박하며 재차 말했다.

“노망나셨습니까?”

그에 대한 발레리안의 대답은 절대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는 선선대 대공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우선 의심부터 했다.

“그럼 네놈이 나이가 몇인데 언제까지 연애만 하려고 했더냐!”

그러자 선선대 대공이 확 미간을 찌푸리며 불손한 제 손자를 꾸중했다.

얼핏 들어 보면, 발레리안이 하도 결혼하질 않으니 선선대 대공이 누구라도 손자에게 붙여 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발레리안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테니아는 절대 안 된다며, 루이앙스 공작가를 들이밀었던 선선대 대공이 아니던가.

그토록 고집이 센 노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자신의 뜻을 바꿨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저와 테나가 결혼하는 것을 찬성하시겠다는 겁니까? 지금 저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요?”

발레리안이 제 불신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조손간에는 그것을 감출 만큼 최소한의 신뢰도 없었다.

“크리스나 영애도 설마 저놈처럼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주의는 아니겠지.”

발레리안에게 제 말이 통하지 않자 선선대 대공은 대상을 아테니아로 바꾼 듯, 그녀를 홱 돌아봤다.

아테니아는 순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선선대 대공의 말이 너무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녀와 발레리안을 두고 자꾸만 일이 벌어져서 종종 잊게 됐지만, 두 사람은 아직 공식적으로 연애를 하기로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가 절대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아테니아도 그의 의견에 동의한 바였다.

그런데 인제 와서 불쑥 결혼 이야기가 나오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보면 알겠지만, 빈켄티우스는 손이 귀한 집안이야. 게다가 발레리안은 독자지. 그러면서 결혼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건 너무한 일이 아닌가?”

선선대 대공이 이때다 싶었는지 아테니아를 몰아붙였다.

그러자 발레리안이 선선대 대공을 막아섰다.

“선선대께서 저희가 결혼하든 말든 신경 쓰실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발레리안도 당황한 탓인지, 아테니아의 앞이라고 그래도 꼬박 할아버님이라고 부르던 호칭도 잊어버리고 원래의 호칭으로 돌아와 있었다.

“……맞아요. 저희의 일을 왜 빈켄티우스 경께서 결정하시나요?”

발레리안이 말하는 동안,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테니아가 말을 덧붙였다.

“귀족 간의 결혼이 어떻게 너희 둘의 일이냐.”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선선대 대공도 할 말이 많은지,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너희 두 사람이 귀족인 이상, 너희들의 결혼은 가문의 중대사다. 그런데 그걸 너희 멋대로 하니 안 하니 정하겠다고?”

아테니아는 지금,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선선대 대공이 그들을 당황스럽게 하려고 일부러 이렇게 불쑥 말을 꺼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당황한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게다가 선선대 대공의 앞에서 결혼을 어떻게 할지 아테니아와 발레리안이 상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너희가 교제를 계속하겠다면, 크리스나 가문으로 혼담을 넣을 것이다.”

“선선대께서 왜 그걸 멋대로 정하십니까!”

기어코 발레리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가 가문의 어른으로서 그 역할을 하겠다는데, 네놈이 날 막을 테냐?”

하지만, 선선대 대공은 원래 제 손자의 말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위인이었다.

“게다가 네가 좋아하는 여인과 혼인하게 해 주겠다는데, 뭐가 불만이야!”

선선대 대공이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 순간, 발레리안이 이를 악물었다.

발레리안은 선선대 대공이 일부러 이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선대 대공은 발레리안이 빈켄티우스를 얼마나 끔찍하게 여기는지 가장 잘 아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에 아테니아를 자꾸만 들여놓으라고 한다.

그것은 발레리안에게 하는 협박이었다.

네가 아테니아를 놓지 않는다면, 그녀는 빈켄티우스라는 늪에 빠져 불행해지리라고.

아테니아는 아테니아대로 난감해졌다.

아버지와 절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녀였다.

그런데 크리스나 가문으로 혼담을 보내겠다니.

그러면 결국 아버지를 마주 봐야 할 게 아닌가.

곤란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선대 대공에게 자신은 사실 아버지와 절연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내밀한 집안 사정까지 외부에 까발리고 싶지는 않았다.

“내 특별히 마음먹고 결혼 전제하에 너희들의 교제를 허락하는 것이다.”

아테니아와 발레리안의 입이 다물릴수록, 선선대 대공의 턱은 점점 치켜들어졌다.

선선대 대공이 오만한 어투로 말을 덧붙였다.

“크리스나 영애가 가진 흠까지도 내가 덮어 주고 허락하려는데, 너희는 빠르게 결혼하라는 이 말 하나 못 듣겠느냐?”

아테니아가 움찔했다.

흠.

그건 그녀의 이혼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요즘 세상에 재혼이 뭐 그리 흠이냐고 말하고 싶은데, 아테니아는 어쩐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분했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가.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가.

그 생각들에 아테니아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저와 함께 타운하우스로 돌아가십시오.”

발레리안이 표정을 굳힌 채 선선대 대공을 강제로 이끌었다.

그러자 선선대 대공이 탁, 발레리안의 손을 쳐 냈다.

“내 발로 갈 것이다.”

선선대 대공은 기어코 말을 덧붙였다.

“내 양보는 여기까지다. 너희도 조만간 내게 답을 내놓아야 할 거야.”

아테니아는 선선대 대공의 말들이 자신을 묵직하게 눌러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레리안이 억지로 선선대 대공의 팔을 다시 잡아챘다.

발레리안은 선선대 대공을 응접실 문 밖으로 내보낸 후, 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

그 후 아테니아에게로 다가온 발레리안이 그녀의 꼭 쥔 두 손을 펴게 했다.

아테니아의 손바닥에 선명하게 손톱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테나, 오늘은 내가 저 사람을 그대의 집에서 치우는 게 먼저일 것 같군요. 지금 일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발레리안이 조곤조곤하게 아테니아를 달랬다.

그녀가 혼란한 정신을 애써 가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리안.”

소나기는 어느덧 그치었고, 쨍쨍한 햇빛이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창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마치 그 우중충한 비가 아테니아의 마음속으로 옮겨 온 것처럼, 그녀의 속은 편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 제 할아버님이 하신 말씀은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까요.”

아테니아가 애써 시선을 들어 발레리안을 쳐다봤다.

그가 알아서 하겠다는 데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심하게 불편했다.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

“리안, 가문에서 결혼에 대한 재촉을 심하게 하는 편인가요?”

아테니아는 제가 물어 놓고, 대답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발레리안은 그 뻔한 대답을 부정했다.

“아니요, 할아버님만 저토록 심각하신 겁니다. 그리고 제가 결혼 생각이 없다는 걸 아시면서 저러시는 거예요. 그러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결혼을 하냐 마냐는 테나로 인해 결정되는 게 아니니까요.”

발레리안의 부정에 아테니아의 입매가 굳게 다물렸다.

그럴 리가.

웨일러스 후작만 해도, 발레리안의 결혼에 대하여 얼마나 민감하게 굴었던가.

선선대 대공까지 이러는 것을 보니, 분명 빈켄티우스 가문의 분위기 자체가 저럴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발레리안이 아니라는데, 선선대 대공이 문밖에서 기다리는 이 시점에 사실대로 이야기해 달라고 발레리안을 조를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아테니아는 치미는 답답함을 참고 말했다.

“…알겠어요. 당신 말대로 나중에 이야기해요, 리안.”

그러나 그렇게 발레리안과 선선대 대공이 돌아간 이후에도, 아테니아의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고 불편한 것은 나아지지 않았다.

***

“미치셨습니까? 거기서 테나에게 결혼 이야기는 왜 꺼내십니까!”

빈켄티우스의 타운하우스에 돌아오자마자, 발레리안은 비명처럼 선선대 대공을 향해 소리쳤다.

단둘만 남자, 선선대 대공은 그제야 본색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내가 진즉에 크리스나 영애를 정리하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런데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건, 네가 그 영애를 기어코 우리 가문에 끌어들이겠다는 게 아니고 무어더냐.”

선선대 대공이 잔뜩 비꼬며 말을 이었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네가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우리 가문에 끌어들이려는 걸 보아하니, 네 사랑도 알 만하구나. 이기적인 놈 같으니.”

발레리안의 입이 꽉 다물렸다.

자신은 이 끔찍한 가문의 발레리안 빈켄티우스였고, 대공이자 가주였다.

그런 제가 아테니아 같은 사람과 함께하려고 했다는 게 이기적이란 건 사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모른 척하고 싶었건만, 선선대 대공이 그것을 정확히 지적하니 도저히 대꾸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더냐. 빈켄티우스는 끔찍한 곳이라고. 그러니 네가 먼저 크리스나 영애를 놔라.”

그게 쉬웠다면, 발레리안은 애초에 아테니아와 다시 가까워지지조차 않았을 터였다.

그는 인간이 숨을 쉬듯이 당연하게 그녀에게로 이끌렸다.

그리고 숨을 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이 있지.”

발레리안이 대답하지 못하자, 돌연 선선대 대공이 다른 말을 꺼냈다.

“네 아버지가 재혼하게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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