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70화 (70/111)

70. 자업자득 (3)

“…뭐?”

클라이브가 멍청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는 아테니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자신을 미워한다면서, 왜 제게 정신을 차리라고 저런 말을 해 주는가.

클라이브가 아무리 그래도 그녀가 제게 하는 말이 나쁜 의도를 담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자신이 아테니아에게 여태껏 악의를 담고 굴었기 때문에 더더욱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클라이브는 좀처럼 아테니아가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멍청하게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며, 그녀가 대꾸했다.

“널 미워하느라 낭비할 내 삶은 없어.”

아테니아의 표정에는 확고한 마음이 드러나 있었다.

“나는 더 행복해질 거야. 아끼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거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아름다운 것들만 눈에 담을 거야.”

아테니아도 클라이브가 미웠다.

어떻게 밉지 않겠는가, 그녀도 인간인데.

지금도 종종 울컥울컥 그에 대한 미움으로 가슴이 턱턱 막히는 날들이 있었다.

자신이 클라이브에게 당한 일들을 생각하면 열이 뻗치기도 했다.

그래서 분명, 아테니아의 가슴 한편에는 그가 장렬하게 망해 버리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그녀가 깨닫는 게 있었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클라이브와 얽히는 삶은 그가 완전히 망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터였다.

아테니아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눈에 클라이브가 들어오지 않길 바랐고, 더는 이혼 전의 삶으로 고통받지 않길 원했다.

그건 그를 용서했다거나 그를 미워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아테니아는 성인 군자가 아니었고, 그래서 그녀는 클라이브를 용서할 생각 따위 전혀 없었다.

다만, 더는 제 미래에 클라이브가 얽혀 들지 못하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더는 내 삶에 널 끼워 넣지 말고 빠져 줘, 클라이브 칼스이턴.”

아테니아는 행복해질 거니까.

“……나는.”

클라이브가 주춤주춤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않던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아테니아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남자들 다 한 번씩은 피우는 바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녀가 유난을 떨어 이혼을 당했다고 여겼다.

클라이브의 삶은 아테니아와 이혼한 이후 완전히 틀어졌다.

그러니까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그녀의 잘못이고, 그러므로 아테니아는 불행해져야 한다.

그게 클라이브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야 자신의 생각에 의문이 들었다.

정말로, 그게 아테니아의 탓이던가?

그녀의 삶에는 클라이브가 없었다.

아테니아는 이미 오래전에, 제 삶에서 그를 쫓아냈다.

그런데 그녀가 어떻게 클라이브를 불행하게 만든단 말인가.

“…아니야, 내가 이렇게 된 건 네 탓이야.”

클라이브가 갑자기 자신의 안에 떠오른 의문을 거부하듯이 중얼거렸다.

아테니아가 푹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너는 계속 불행할걸.”

아테니아는 이제 이 소모전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하고 싶어 한 번 해 본 말이었지만, 어차피 클라이브가 제 말을 들어 먹지 않을 거라면 그와 더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귀찮다고 여겨졌다.

“네가 불행하든 말든,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만 네 불행에 나까지 끌어들이지는 마.”

아테니아가 단호히 이야기했다.

그녀의 얼굴에 빈틈이라고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클라이브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나, 나는… 가야겠어.”

클라이브가 갑자기 뒤로 홱 돌아섰다.

그는 왜인지 모르겠으나 이제 아테니아를 마주하고 있기가 힘들었다.

결국, 클라이브는 도망치듯이 급하게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그녀는 그런 그를 붙잡지 않았다.

아테니아는 어쩐지 오늘이 클라이브와 마주하는 마지막이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게 클라이브가 떠나고, 아테니아는 1층의 또 다른 응접실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크리스나 백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셨겠지만, 클라이브는 이제 갔어요. 더는 크리스나 상단을 괴롭힐 일도 없을 거예요.”

아테니아가 크리스나 백작에게 일의 끝을 알렸다.

백작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딸의 태도가 생소하게 느껴졌다.

일을 해결해 주겠다며 크리스나 저택에 찾아왔을 때도 그랬지만, 바로 얼마 전과 달리 아테니아는 백작과 마주해도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크리스나 백작은 제 딸의 행동에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제가 일을 해결하면, 제가 원하는 걸 들어달라고 말씀드렸었죠.”

“……그래, 그랬었지.”

그래서 크리스나 백작은 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어떤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테니아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이어 갔다.

진실로, 그녀는 이제 제 아버지가 어떤 말을 하든 상관이 없었으니까.

“저는 크리스나로서 제가 지금까지 해야 할 역할을 다했어요.”

이번 일은 아테니아가 아니었으면 크리스나 상단에 큰 피해를 불러왔을 터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당당했고, 크리스나 백작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아테니아는 크게 숨을 들이켠 뒤, 말을 이었다.

“제가 크리스나로서 역할을 하는 건 여기까지일 거예요.”

클라이브에게 말했듯이, 아테니아는 행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아테니아의 아버지는 그녀의 행복에 그 어떤 역할도 해 줄 수 없었다.

“이 이상, 아버지와 연락을 이어 가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아테니아는 선언했다.

“…지금 그 말은, 그러니까… 크리스나 가문을 나가겠다는 말이냐?”

크리스나 백작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늘 굳건해 보이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이제 아테니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안타까워하던 딸을 내친 것은, 크리스나 백작이었으니까.

“귀족이 아닌 삶은 귀족인 삶보다 당연히 힘들겠죠. 그렇지만… 크리스나 가문의 일에 더는 연관되지 않기 위해 성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게요.”

아테니아도 본래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귀족으로서의 특권을 내리 누리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크리스나의 성이 없으면 아테니아는 평민과 같았다.

그리고 귀족의 특권이 없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 그녀는 몰랐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었다.

이제 더는 아테니아가 제 아버지를 조금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크리스나라는 성을 달고 있다는 이유로 백작에게 휘둘려야 한다면, 차라리 완벽히 크리스나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어떻게 감히 지금 아비 앞에서 그런 말을 해!”

크리스나 백작의 두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오늘 일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너도 다시 생각해!”

그러나 아테니아는 크리스나 백작이 제 말을 외면하고 나가지 못하도록 응접실의 문 앞을 막아섰다.

“아니요, 아버지. 저는 다시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아테니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재차 말했다.

“저는 아버지와 앞으로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아요.”

크리스나 백작은 제 딸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딸이… 진심으로 그와 연을 끊고 싶어 하는 것이다.

백작이 자신도 모르게 휘청거렸다.

그러나 아테니아는 연을 끊겠다는 제 말을 지키듯이, 그런 크리스나 백작을 부축하지도 걱정하지도 않았다.

“…너는, 너는… 아무리 그래도 크리스나다.”

크리스나 백작이 말을 더듬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테니아는 흔들림이 없었다.

“계속해서 크리스나 성을 사용할 수 있다면 감사하겠죠. 그렇지만, 그래도 저는 더는 아버지께 어떤 연락도 하지 않을 거예요.”

“…네 멋대로 해!”

결국, 크리스나 백작이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승낙 아닌 승낙이 떨어지고 나서야, 아테니아가 문 앞에서 비켜섰다.

백작은 그저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문을 열고 응접실을 나섰다.

그의 등 뒤로 아테니아가 말했다.

“…잘 지내세요, 아버지.”

마지막으로 아테니아가 크리스나 백작에게 건네는 말은 정말로 작별 인사였다.

그녀는 그것으로, 제 인생에서 한때 가장 중요했던 두 남자를 오늘 떠나보냈다.

***

아테니아의 결정을 어머니와 발레리안은 묵묵히 지지해 주었다.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에게 있어 어쩔 수 없이 삶의 큰 일부분 중 하나였다.

그런 존재를 잘라 낸 그녀의 마음도 당연히 씁쓸하고 좋지 않았다.

그러나 아테니아는 백작이 지금 당장 그녀가 크리스나 상단에 도움이 됐기 때문에, 곧바로는 아니어도 언젠가는 또다시 자신의 재혼 문제를 거론하리라 생각했다.

크리스나 백작은 이미 아테니아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한 전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제 삶이 또 휘말려 들어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아테니아의 주변을 시끄럽게 만들던 이들이 정리된 덕에 그녀는 제법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채 일주일을 지속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돌연 빈켄티우스의 선선대 대공이 어느 날 연락도 없이 아테니아의 저택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아테니아는 곤혹스러움에 우선 소피아를 찾았다.

그녀는 소피아를 제 곁에 두기로 했다.

다만, 유사시의 상황이 아니고서는 발레리안에게 제 상황을 함부로 전하지 않는 것이 조건이었다.

그 대상이 누구일지라도, 감시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 후 소피아는 아테니아의 조건을 받아들였고, 지금껏 그녀를 지켜 주고 있었다.

물론, 소피아 외에 아테니아를 함께 보호해 주고 있던 엠마도 마찬가지였다.

“소피아, 리안에게 빈켄티우스 경이 찾아왔다는 말을 전해 줘요.”

그리하여 어느덧 아테니아는 소피아와 엠마의 이름을 편하게 부르고 있었다.

“예, 아가씨.”

소피아가 아테니아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저택을 나섰다.

쏴아아-

그 순간, 밖에 소나기가 퍼부어졌다.

아테니아가 미간을 찡그렸다.

선선대 대공은 여전히 저택의 대문 밖에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결국 한숨을 쉬며 제미니를 불렀다.

“제미니, 빈켄티우스 경을 응접실로 안내해 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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