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자업자득 (2)
클라이브는 그날 결국, 영애들을 마구잡이로 밀쳐 버리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러나 그를 더 크게 기함하게 만드는 일이 다음 날 펼쳐졌다.
바로, 크리스나 상단에서 향수 제조법의 특허를 따낸 것이다!
그것도 크리스나 상단에서 새로 만든 배합법이 아니라, 클라이브와 황태자가 처음 훔쳐 내었던 그 배합법으로!
클라이브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일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알아야만 했다.
그리하여 그는 아테니아의 저택으로 쫓아갔다.
분명, 클라이브의 시종이 전하기를 크리스나 백작에게 자신의 편지를 건넬 때만 해도 백작은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클라이브의 시종이 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속내를 감추지 못할 만큼 크리스나 백작이 상당히 그 상황에 당황했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당시, 백작에게 어떠한 대책이 없었음을 의미할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역풍을 맞은 것은 클라이브였다.
그는 그 계책이 아테니아에게서 나왔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렇게 그녀의 저택으로 갔지만, 클라이브는 아테니아가 자신을 쉽게 들여보내 주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클라이브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그는 제 방문을 알린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저택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때부터 불길함이 클라이브의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응접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불길함은 현실이 되었다.
왜냐하면, 마치 클라이브가 오리라 이미 알고 기다렸던 것처럼 그곳의 소파에 아테니아와 발레리안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와, 클라이브 칼스이턴.”
아테니아는 태연히 차를 마시며 클라이브를 반겨 주었다.
그를 쫓아내고 그에게 소리를 쳐도 모자랄 판에, 클라이브를 마주한 그녀의 반응은 너무나 평이했다.
아테니아의 그 반응이 이번 일에서 당한 것은 크리스나가 아니라, 클라이브임을 증명해 주었다.
“아테니아, 너…!”
칼스이턴 저택에는 아침부터 클라이브에게 피해 보상을 청구하는 편지들이 와 있었다.
그러나 그와 상반되게, 아테니아는 너무나 아무 일도 없어 보였다.
그것을 보며 울컥한 클라이브가 소리쳤다.
“나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렇게 말하니까 꼭, 내가 진짜로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 거 같네.”
아테니아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녀가 서늘한 시선으로 클라이브를 쳐다봤다.
“너는 항상 그런 식으로 네가 일을 벌인 주제에, 네가 피해자인 척을 하지.”
아테니아가 진절머리 난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냐고?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건 너 자신이야, 클라이브 칼스이턴.”
“그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야. 이상하게 말 돌리지 말고 말해.”
“나는 믿었거든. 향수의 배합을 바꾸면, 너와 황태자 전하가 또 그걸 훔쳐 가리라는 걸.”
클라이브는 답답해 죽을 듯한 얼굴이었다.
그제야 아테니아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일부러 향수의 배합을 바꿨지. 문제가 생길 만한 것으로.”
아테니아가 크리스나의 장부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녀는 그것을 기억해 뒀다가 따로 기록해 놨었다.
당시 아테니아는 어떤 항목에 얼마만큼의 대금을 치렀는지까지 되도록 상세하게 옮겨 적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기록을 보며, 이번 향수 사업에 들인 재료들의 목록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테니아는 그것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하나의 향수에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그 재료의 종류가 많다는 걸.
그렇다면, 사용된 재료 외에 나머지 재료가 뜻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바로, 향수를 만들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재료의 목록이 될 터였다.
아테니안은 그 길로 크리스나 저택으로 달려가, 향수 개발 실험 시 실패한 기록들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제가 이 사태를 해결해 드릴게요. 단, 나중에 제가 원하는 것 하나만 들어준다고 약속하시면요.’
크리스나 백작으로서는 아테니아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절대 클라이브와 재혼할 생각이 없었고, 그리하여 백작에게는 현 사태를 해결할 방도가 없었으니까.
그리하여 아테니아와 발레리안은 밤새도록 향수 개발 실험 일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하여 발견한 것이다.
향수 재료의 잘못된 배합 중에, 설산의 베이시아 꽃과 하얀 로즈아 꽃이 만나면 두드러기나 붉은 반점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크리스나 상단에서 개발한 향수는 그간 세간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특이한 재료들을 이용했다.
설산의 베이시아 꽃과 하얀 로즈아 꽃도 마찬가지였다.
설산의 동굴에 깊숙한 곳에서 채취할 수 있는 베이시아 꽃은 그 가격이 말 그대로 금값이었다.
사막의 오아시스 주변에만 피는 하얀 로즈아 꽃도 구하기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두 꽃 모두 접근성이 지나치게 낮았다.
크리스나 백작도 이번에 무리하여서라도 사업을 확장하고자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금값과 같은 꽃들로 실험을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서 아테니아는 확신했다.
이 두 꽃의 조합이 일으키는 부작용에 대하여 클라이브와 황태자가 절대 모르리라고.
그리고 그녀의 생각은 딱 들어맞았다.
클라이브와 황태자는 급한 마음에, 그 향수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확인도 해 보지 않고 특허 신청을 낸 것이다.
물론, 특허 신청도 문제 있는 제품의 경우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테니아는 거기서 걸리리라고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황태자가 제 권력을 이용해 향수에 관한 것들을 제대로 입증도 하지 않고 특허를 통과시킬 테니까.
“그 조합이 아주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니야. 클라이브, 너 때문에 다른 이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되니까.”
향수를 뿌린 영애들은 아마 몇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두드러기와 반점이 가라앉았을 터였다.
그게 그나마 지난날 향수를 뿌린 영애들의 부작용 수치나 칼스이턴 저택에 도착한 피해 보상 청구가 적은 이유였다.
“그렇지만 이미 한 번 그런 부작용을 남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다수의 영애가 겪었으니, 아리에타 상단과 네 신뢰도는 바닥을 쳤겠지.”
상업은 결국 사람 간의 신뢰를 걸고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향수는 사치품이다.
사치품의 경우 더더욱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 구매가 결정되기 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클라이브와 황태자는 완벽히 실패한 것이다.
“너와 황태자 전하가 크리스나의 것을 다시 훔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때, 크리스나에서는 기존의 향수를 특허 신청했어.”
그리고 발레리안이 특허를 빠르게 통과시켜 주었고 이 사실이 소문나지 않도록 손을 써 주기까지 했다.
황태자가 한 일을 발레리안이 못할 이유가 없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 궁금증은 다 해소되었니?”
아테니아가 완벽한 승자의 얼굴을 한 채로 물었다.
실상은 물음이 아니라, 클라이브에게 네가 패배했다는 선언이었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 아테니아!!!!!”
아테니아의 설명들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진 클라이브가 한참을 침묵하다가, 돌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광기 어린 목소리로 아테니아의 이름을 외쳤다.
물론,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넌 대체 어디까지 내 인생을 망쳐야 만족할 거야! 응???”
클라이브가 또다시 아테니아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경멸로 물들었다.
대뜸, 자리에서 일어난 아테니아가 클라이브에게로 다가갔다.
“테나.”
그것을 발레리안이 제지했다.
아무래도 클라이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가, 그가 아테니아에게 무슨 짓을 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아테니아가 자신을 믿으라는 듯 발레리안을 쳐다봤다.
잠시 멈칫했던 그가 그녀를 놓아주었다.
아테니아를 믿었으니까.
다만, 혹시라도 클라이브가 무슨 짓을 하면 곧바로 그녀와 떼어 놓을 수 있도록 발레리안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다 너 때문이야, 다 너 때문이라고…! 젠장, 너 같은 여자랑 얽히는 게 아니었는…!”
클라이브는 계속해서 모든 것이 아테니아의 탓이라며 발작적으로 외쳤다.
철썩!
그리고 그 순간, 그의 고개가 인정사정없이 돌아갔다.
그녀의 손이 사정없이 클라이브의 뺨을 내리친 것이다.
분노해서는 아니었다.
현재 아테니아의 두 눈은 철저하게 이성적이었으니까.
“이제 정신 좀 차려, 클라이브 칼스이턴.”
아테니아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음성에는 힘이 있어 또렷하게 들려왔다.
“너, 어디까지 망가질래?”
이건 아테니아의 진심이었다.
바닥의 바닥의 바닥.
클라이브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더욱 밑바닥을 찍었다.
그래도 한때, 그는 촉망받던 관리였고 아카데미 시절에도 제법 똑똑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추락한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클라이브를 말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지금 그를 말리는 것은 아테니아가 그래도 한때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사람에게 해 주는 마지막 동정심이었다.
“애초에 남의 것을 훔치면서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이루길 바랐는데? 네가 그러니까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야.”
아테니아도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클라이브가 갱생하길 바란다든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이건 그냥 순전히 그녀가 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었다.
그래야만 자신의 마음이 덜 불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제나 황태자나 네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아. 당연한 거 아냐? 본인 인생은 본인밖에 책임 못 져.”
그래서 아테니아는 자신이 하고 싶던 말을 모조리 쏟아 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있는 것들 정리해서 빚 청산하고 다시 살아. 욕심 내지 않으면 할 수 있잖아.”
아테니아에게 얻어맞은 클라이브는 어쩐지 고개가 돌아간 채로 더 이상의 발악도 하지 않았다.
웬일인지 한참을 그녀의 말만 듣고 있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원위치시켜 아테니아를 쳐다봤다.
“……넌 왜 나한테 그런 말들을 하는데? 넌 날 죽일 듯이 미워해야 정상 아니야?”
클라이브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아테니아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네가 미워. 근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