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61화 (61/111)

61. 잔여물 (3)

아테니아는 클라이브의 말을 무시하고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늘어놓는 말들은 여지없이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갑자기 우리 영지의 세율이 말도 안 되게 올라갔다고!”

클라이브가 억울한 듯 소리쳤다.

잠시 멈칫했던 아테니아는 결국 뒤돌아섰다.

그를 동정해서가 아니었다.

클라이브가 하필 그녀의 집 앞에서 황제에 대해 떠들도록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황실의 권위가 이전만 못 한다고 해도, 어쨌든 황실 모독죄는 여전히 성문법상 성립하고 있었으니까.

“…메르테스 경, 설명은 아무래도 나중에 들어야 할 것 같군요.”

아테니아가 차오르는 한숨을 삼키며 용병들에게 명령했다.

“그 인간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요. 들을 말이 있으니까.”

***

클라이브는 단언컨대 아테니아의 손님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차를 내오라든가의 명령은 하지 않았다.

“아까 하던 말, 무슨 말인지 빨리 설명하고 꺼져.”

아테니아는 오히려 들을 말만 듣고 클라이브를 빨리 쫓아내고 싶었다.

소피아와 용병들이 저를 둘러싸고 있자, 그에 겁을 먹은 클라이브가 주춤주춤 말문을 열었다.

“그게… 그러니까, 칼스이턴과 크리스나의 소송이 끝나고 얼마 가지 않아서 갑자기 우리 영지의 세율이 본래의 50%가 더 올라갔어.”

영지의 세율은 늘 유동적으로 조정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농업이 주인 영지에서 해당 년도에 풍년이 들었다면 황실에서는 세금을 작년보다 더 많이 걷었다.

그것은 상업 도시도 마찬가지여서, 이전보다 교역량이 증가했다면 상업 도시의 세금 또한 올라가고는 했다.

그러나 아테니아가 알기로 칼스이턴의 수확량은 작년과 올해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이미 추수가 끝나도 한참 지난 계절이었다.

인제 와서 세금을 인상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였다.

무엇보다, 세율을 50%나 올리다니.

단언컨대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칼스이턴에서 황실에 이의 제기를 했을 거 아냐?”

“그… 건, 그럴 수가 없었어.”

클라이브가 주저했다.

마치, 무언가 떳떳하지 못한 모양새였다.

“…하, 황실에서 조사가 나오면 안 될 만한 무슨 짓이라도 했어?”

아테니아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물었다.

갑작스레 올라간 세금에 대하여 칼스이턴이 이의를 제기했다면, 황실에서 그에 걸맞은 조사를 하러 칼스이턴 영지로 사람을 보냈을 터였다.

그런데 이의 제기를 할 수 없었다는 건, 황실의 사람이 영지에 오면 안 될 무슨 이유가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런 게 있어. 넌 이제 칼스이턴이 아니잖아, 말해 줄 수 없는 게 있다고.”

클라이브가 말을 돌렸다.

그러자 아테니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언제는 되지도 않는 여보 소리 할 때는 언제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브는 뻔뻔했다.

아테니아는 순간 차오르는 한숨을 참지 않았다.

“하아, 그래, 그러면 세율이 올라서 힘들다고 치자. 근데 칼스이턴이 크리스나랑 하던 것 외에도 하던 사업들이 있잖아. 거기서 수입이 나왔을 거 아냐?”

“…함께 투자하던 것들이 죄다 발을 뺐어. 그래서 우리도 사업을 지속할 수 없었고.”

아테니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칼스이턴이 벌이던 사업이 한두 개가 아닌데, 그 동업자들이 모조리 발을 뺐다니.

이건 누가 외압을 가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세율이 갑작스럽게 그렇게 높아진 것을 생각하면, 그 귀족들에게 힘을 쓴 권력자가 누구일지는 뻔했다.

아테니아는 황제가 대운하 사업의 이윤을 나눠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분풀이를 칼스이턴에 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자금이 전부 다 막히다 보니, 부유한 생활을 하던 클라이브가 견디지 못하고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도박에까지 손을 댄 것일 터였다.

그리고 그 순간, 동시에 그녀는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클라이브 칼스이턴, 이 미친 자식아.”

클라이브가 여기까지 찾아온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너 돌았니? 인간이 최소한의 염치라는 게 없어?”

아테니아의 입에서 절로 험한 말이 흘러나왔다.

클라이브가 발끈한 얼굴로 대꾸했다.

“왜 갑자기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아테니아가 클라이브의 시꺼먼 속내를 가감 없이 까발렸다.

“너 지금, 황제 폐하가 그러니까 나를 통해 대공 전하한테 도움을 요청해 달라고 말하러 온 거잖아!”

그러자, 마침내 클라이브의 입이 다물렸다.

그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전형적으로 속내를 들킨 자의 반응이었다.

아테니아는 미쳤다, 미쳤다 했더니 클라이브 칼스이턴이 진짜로 미쳐 돌아 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너,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황제 폐하가 칼스이턴에 무슨 짓을 하든, 너 알아서 하라고!”

순간, 아테니아는 머리 위로 열이 확 뻗치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벌떡 일어나 문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신이야 클라이브가 저런 놈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하고 엮인 죄가 있어 이런 말을 듣는다 칠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발레리안까지 끌어들이려고 하다니!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테니아! 테나! 여보! 우리 좀 살려 줘, 어? 이렇게 부탁할게!”

클라이브가 마찬가지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숫제 아테니아의 소맷자락이라도 붙들고 늘어질 기세였다.

그런 클라이브를 가장 빠르게 저지한 것은 소피아였다.

“물러서십시오. 이 이상 크리스나 영애에게 다가가시면 위협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높낮이 없는 소피아의 음성에 클라이브가 자신도 모르게 주춤했다.

조금 전, 인정사정없이 바닥으로 내쳐졌던 사실을 기억하는 탓이었다.

하여간에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그 습성은 여전해서 아테니아는 그것조차 꼴 보기 싫다고 생각했다.

“제발, 응? 빈켄티우스 가문이라면 황실이라도 한 수 접고 들어가잖아…!”

클라이브는 자신이 발레리안에게 어떻게 했는지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열등감으로 발레리안에게 덤벼들 때는 언제고,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넌 정말… 내 인생의 가장 큰 오점이야!”

아테니아가 제 머리를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클라이브의 꼬라지를 봐서는 여기서 쫓아낸다고 한들, 그대로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저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무리 지금 당장 클라이브가 저런 행색을 하고 있더라도, 그는 어쨌든 후작이었다.

신분이 깡패라고, 그나마 현재 가문의 비호도 받을 수 없는 아테니아가 단독으로 그를 처리할 수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럴 때마다 지독한 답답함을 느꼈다.

“영지의 세율 문제는 해결해 주지.”

그리고 그때, 아테니아가 가장 들리지 않길 바랐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발레리안이었다.

“…리안,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아테니아가 소피아와 발레리안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무래도 그녀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 소피아 혼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소피아가 여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말을 전달한 이가 있는 것 같았으니까.

“테나, 이건 그대의 일이기도 하지만 제 일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대의 일에 저 때문에 황실이 끼어들어서 생긴 일이니까요.”

발레리안이 아테니아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는 눈치 빠르게도, 갑작스레 찾아온 클라이브의 행동에 자신을 끌어들이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저, 정말이십니까?”

클라이브가 재빠르게 발레리안에게로 돌아서며 물었다.

클라이브의 태도는 자신이 일전에 발레리안에게 언제 무례하게 굴었냐는 듯, 더없이 정중하다 못해 비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클라이브는 이제 체면 따위 상관없었다.

영지의 세율 문제만 해결되어도, 자신의 도박 빚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올해는 궁핍하게 지내야겠지만, 당장 사업을 재개하지는 못하더라도 내년이 되면 이만큼 쪼들리지는 않을 터였다.

클라이브에게는 발레리안의 말이 구세주와 다름없었다.

“대신, 앞으로 테나에게 두 번 다시 연관되지 않고, 앞에 나타나지도 않는다고 계약서를 작성….”

“리안!”

그러나 두 남자의 대화를 아테니아가 끊어 놨다.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발레리안을 쳐다보다가 홱 클라이브를 돌아보며 말했다.

“클라이브 칼스이턴. 너, 지금 당장 돌아가.”

“뭐, 무슨…!”

클라이브가 반발했다.

일이 이제야 해결되게 생겼는데, 아테니아의 말을 그가 들으려고 할 턱이 없었다.

“너, 불법 도박으로 내가 지금 당장 신고해 버릴까?!”

클라이브는 분명 제 입으로 100배가 넘는 돈도 딸 수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제국에서 그 정도로 돈을 걸고 하는 모든 것은 불법이었다.

아테니아에게 그가 불법 도박을 했다는 증거를 샅샅이 파낼 재주는 당연히 없었다.

그러니 클라이브를 그녀가 당장 신고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거나 벌금형에 그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클라이브는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생각보다 많은 귀족이 불법 도박을 즐겼기에 치안대는 도박장을 속속들이 조사하진 않았다.

아테니아가 이것을 그의 약점으로 삼지 않은 점도 그 때문이었다.

그를 계속해서 제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그러나 지금의 클라이브에게는 벌금형조차도 문제가 될 터였다.

그러니까 그녀는 클라이브가 완전히 꺼지게 하는 것은 아니어도, 일보 후퇴하게 만드는 데에는 제 협박이 부족함이 없으리라 판단했다.

왜냐하면, 발레리안이 말을 꺼낸 이상 후에라도 클라이브가 그를 찾아가면 그만이었으니까.

물론, 아테니아가 그렇게 둘 생각 따위 전혀 없었지만.

“그… 그럼, 오늘 하신 말 잊으시면 안 됩니다, 대공 전하.”

클라이브는 말을 덧붙이면서도, 아테니아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부리나케 응접실을 나가 버렸다.

지금까지 그녀의 행동으로 보건대, 진짜로 자신을 신고할 수도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클라이브가 도망가듯이 돌아간 뒤에야, 아테니아가 다시 발레리안에게로 돌아섰다.

“대공 전하는 저랑 이야기 좀 해요.”

아테니아의 표정이 상당히 매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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