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그대 발끝조차 닿지 않을 음지가 되리 (5)
방금까지 술을 마셔서인지, 오늘따라 더욱 젖어 있는 아테니아의 입술과 발레리안의 입술이 맞닿았다.
몰캉한 두 곳이 맞닿아 문질러지자, 마치 모든 촉각이 그리로 쏠린 것처럼 지나치게 감각이 선연했다.
그녀는 일반적인 귀족 영애였고 그는 건장한 기사였다.
분명, 저항하려고 하면 발레리안은 얼마든지 아테니아를 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눈앞의 붉은 열매를 어린 날의 소년이 얼마나 갈망했던지 몰랐다.
재회한 이후에는 더더욱 닿을 수조차 없던 금단의 과실과 같았다.
성서에서, 뱀이 이브를 홀려 내는 말을 속닥거리지 않았어도 이브는 언젠가 선악과를 베어 먹고야 말았을 것이다.
발레리안은 아테니아를 거부할 수 없었다.
“흡…!”
아테니아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발레리안의 한 손이 그녀의 머리칼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뒤통수를 받치고, 그의 다른 손이 아테니아의 등을 끌어안았다.
발레리안은 더 절실하게, 더 깊이, 어쩔 줄을 모르며 더욱더 그녀를 끌어안았다.
코끝에서 맴도는 알싸한 알콜 냄새조차, 아테니아의 체향과 뒤섞여 그를 사로잡았다.
발레리안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가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녀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그의 두껍고 단단한 팔인데도, 오히려 아테니아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발레리안이었다.
말캉한 입술의 감촉에 발레리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각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반묶음이 되어 있던 그녀의 고운 머리칼이 그의 손에 의해 마구잡이로 흐트러졌다.
발레리안이 고개를 기울이자, 아테니아가 그대로 밀려 그녀의 등이 벽에 닿았다.
그가 엄지로 지그시 아테니아의 아랫입술을 내리눌렀다.
그녀의 입술이 반사적으로 열리자, 술을 마셔 달아오른 입 안의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니, 실은 이 열기가 아테니아의 것인지, 제 것인지 발레리안은 구분할 수 없었다.
발레리안의 손가락 끝에, 말캉하고 축축한 감각이 닿았다.
그 순간, 그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모든 사고회로가 정지되었다.
발레리안의 혀가 본능적으로 제 손가락 끝에 닿은 붉은 살덩이에 얽혀 들었다.
두 사람의 체격 차 때문에, 아테니아의 고개가 더욱 뒤로 젖혀졌다.
이제 완전히 발레리안이 그녀의 입안을 일방적으로 탐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아테니아의 숨결 한 자락까지 탐이 났다.
분명 술을 마셔 쓸 게 분명한 타액에서 다디단 맛이 났다.
너무 단것을 먹으면 머리가 띵해진다고 했던가?
발레리안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질척거리며 서로 얽혀 드는 것이 오직 그 순간 그가 가진 전부 같았다.
발레리안은 마치 아테니아에게서 떨어지면 숨이 끊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에게 들러붙었다.
어느덧 먼저 그의 옷깃을 잡아 끌어당겼던 그녀의 손은 발레리안에게 매달리듯이, 그의 제복을 구겨 잡고 있었다.
“흐읍….”
아테니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숨이 부족한 탓에 그녀가 호흡을 헐떡였다.
반사적으로 그를 밀어낸 아테니아의 손에 발레리안의 손이 손가락 사이사이 얽혀 들었다.
그녀의 가슴이 밭은 숨으로 들썩였다.
그러다 못해 아테니아의 숨이 옅어질 즈음에야, 퍼뜩 정신을 차린 발레리안이 마법에서 깨어난 것처럼 빠르게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흐으… 하아… 하….”
아테니아가 숨을 몰아쉬었다.
발레리안이 하도 괴롭힌 그녀의 입술은 짙게 화장이라도 한 것처럼 핏기가 몰려 붉게 변해 있었다.
부은 입술이 발레리안의 타액일 것이 분명한 것으로 젖어 있는 모습이 또다시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쿵.
“윽…!”
발렐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또 달려들까 봐 뒤로 물러나다가 테이블에 부딪치고는 짧게 신음했다.
그 고통에 그제야 열기에 마냥 잠식당했던 머릿속이 개었다.
아, 그제야 아테니아가 취해 있다는 게 인지되었다.
“…제가, 무슨 짓을.”
발레리안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술에 취한 아테니아는 분명 실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정신이었다.
그녀가 실수한다고 할지라도, 발레리안이 말렸어야 했다.
그러나 멀쩡한 정신으로 발레리안은 아테니아를 놓기는커녕 제게 옭아맸다.
그녀의 입술을, 숨결을, 모든 것을 탐하고자 했다.
술에 취해 이성이 없는 아테니아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리안.”
아테니아의 목소리에 발레리안이 움찔했다.
그는 순간, 곧바로 그녀에게 무릎 꿇으려 했다.
“…나 졸려요.”
아테니아가 호흡이 진정되자마자, 돌연 눈을 감으며 발레리안의 쪽으로 몸을 기울이지만 않았어도 그랬을 터였다.
“……테나?”
발레리안이 당황한 사이, 아테니아는 그 잠깐에 완전히 잠들어 버렸다.
그녀에게 사죄하려던 그는 멍하니 곤히 잠든 아테니아를 내려다봤다.
발레리안은 어쩔 줄 모르고 잠든 그녀를 받쳐 주고 있었다.
“테나, 테나.”
발레리안이 아테니아를 몇 번 더 깨워 봤다.
그러나 그녀가 깨는 법은 결코 없었다.
***
“으으윽….”
다음 날, 아테니아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지난밤 그녀는 맥주와 증류주를 섞어 먹었고- 단언컨대 그 숙취는 최악이었다.
“물, 물….”
아테니아가 두통에 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로 침대 옆의 협탁을 더듬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녀의 손에 차가운 물컵을 쥐여 주었다.
“천천히 드세요, 아가씨.”
여자의 부드러운 음성이 아테니아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러나 그 순간, 가물가물했던 아테니아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들려온 목소리가 그녀의 전속 하녀인 제미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놀라지 마세요, 아가씨. 여기는 빈켄티우스 대공 전하의 타운하우스랍니다.”
아테니아와 시선이 마주친 시녀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시녀의 설명에 아테니아가 홱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지끈거리는 머리에 이마를 부여잡았다.
갑자기 몸을 움직인 탓에 속이 울렁거렸다.
“우윽….”
아테니아가 헛구역질을 하자, 시녀가 얼른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던 물컵을 입가에 대 주었다.
“꿀물이에요. 우선 이거부터 드시고, 맑은 수프를 가져다드릴게요.”
아테니아가 시녀의 말에 따라 꿀물을 한 번에 모조리 마신 것은 거의 살고자 하는 본능이었다.
“잘하셨어요. 속은 좀 괜찮으신가요?”
시녀의 태도는 한없이 정중하고 친절했다.
아테니아가 조금은 가라앉은 속에 찌푸렸던 미간을 풀며 물었다.
“…제가, 왜, 여기 있죠?”
하녀들은 주로 평민이었지만, 시녀들은 주로 귀족 영애들이 맡는 역할이었다.
시녀를 두는 것은 대체로 공작가 이상의 가문이었고, 여기는 빈켄티우스 대공가였다.
그러니 따라서 눈앞의 시녀는 최대, 백작 영애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게 아테니아가 시녀에게 말을 높인 까닭이었다.
“말씀 낮추세요, 아가씨. 대공 전하의 손님께서 제게 말씀을 높이시면 시녀장님께 제가 혼이 난답니다.”
그러나 눈앞의 시녀는 대번에 그런 아테니아의 태도를 고쳐 주었다.
대공가의 법도가 그렇다는데, 제가 우길 수도 없어 아테니아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지난밤, 아가씨께서 많이 취하셔서… 어쩔 수 없이 대공 전하께서 타운하우스로 아가씨를 데려오셨어요.”
크리스나 백작의 고지식한 성격상, 여자인 아테니아가 밖에서 술에 취해 돌아왔다고 하면 집안이 난리가 날 터였다.
그렇다고 아테니아가 사 둔 저택으로도 갈 수가 없는 게, 그녀가 크리스나 저택으로 들어가면서 그곳에는 저택을 관리할 관리인 하나만 존재하게 되었다.
술에 취한 아테니아를 돌봐 줄 고용인도 없는데 그녀를 거기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래, 그랬구나.”
시녀의 말을 들은 아테니아는 제 머리를 깨고 싶은 심정이었다.
단언컨대 그녀는 어디 가서 취해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아테니아의 자존심에, 누군가에게 취한 모습을 보이는 걸 싫어했기 때문이다.
어제는 정말 단 한 번도 없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녀로서도 매우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대공 전하께서는….”
아테니아가 민망함을 애써 감추며 발레리안의 소재를 물었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건대, 아무래도 그녀는 빈켄티우스의 타운하우스에서 늦잠까지 자 버린 듯했다.
“우선 아가씨께서 아침부터 드시고 나면, 그 후에 불러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테니아의 식사를 챙기면서, 동시에 민망해할 그녀를 생각하여 식사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수프를 가져다드릴까요?”
설명을 마친 시녀가 물었다.
아테니아는 여전히 차오르는 민망함을 애써 가라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발레리안의 배려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결국 그녀는 수프로 쓰린 속을 달랜 뒤에야 그를 마주하게 되었다.
수프는 지난밤, 술을 잔뜩 먹은 아테니아를 위하여 발레리안이 미리 명령해 둔 듯 시녀의 말대로 맑고 따뜻했다.
***
수프를 먹으면서 민망함을 달랬다고 생각했는데, 아테니아는 발레리안을 보자마자 다시 민망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흠… 흠… 그… 어제는, 감사했어요, 대공 전하.”
그리하여 아테니아는 발레리안을 제대로 마주 보지도 못한 채로 말을 꺼냈다.
“그런데 어제는 어떻게 그 주점에 오셨던 거예요?”
“……제가 원래, 에스텔라 주점의 주인과 친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테니아와 제대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은 발레리안도 마찬가지였다.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제가 사과를 드려야 하는 것을요.”
발레리안은 죄책감 어린 얼굴이었다.
그러나 아테니아의 반응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네? 대공 전하께서 왜요?”
아테니아는 정말로 당황스럽고 의아한 얼굴이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순간, 발레리안이 멈칫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테나, 혹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십니까?”
발레리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아테니아는 더더욱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어제,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