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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40화 (40/111)

40. 그들이 그녀에게 집착하는 이유 (4)

아테니아는 힐끔, 발레리안을 쳐다보았다.

순간 울컥하여 웨일러스 후작의 말에 대꾸하기는 했으나, 그에게서 그녀가 더는 후작을 상대하지 않길 바라는 기색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시절, 빈켄티우스의 원로들이 자신을 찾아온 일을 그가 막았다고 했다.

오늘 웨일러스 후작의 태도를 보니, 발레리안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로들은 작게는 각자의 가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크게는 빈켄티우스의 가신이었다.

아테니아는 제 가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저런 태도를 보이고 다닌다면,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날 것 같았다.

솔직히, 그녀라고 해서 제 아버지나 남편이 그런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발레리안에게 들키고 싶었겠는가.

아버지나 남편보다야 덜하겠지만, 빈켄티우스의 원로들은 발레리안에게 그런 의미였으리라.

어찌 되었든 가문의 원로들 또한, 가족처럼 강제로 떼어 낼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으므로.

아테니아가 클라이브의 바람으로 일련의 일들을 겪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처럼 생각하지는 못했을 터였다.

지금까지 그녀의 주변에는 단 한 번도 숨기고 싶은 누군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셀레니아가 집안을 뛰쳐나가 현자의 탑에 들어갔을 때도 아테니아는 제 동생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와 굳이 마찰을 일으켜 불호령을 듣는 동생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도리어 그 어렵다는 현자의 탑에 입성한 셀레니아를 마음 한구석에 자랑스레 여겼던 게 아테니아였다.

그러니 이전이었다면 왜 발레리안이 자신을 원로들과 못 만나게 했는지, 그만큼 자신이 미덥지 않았는지 서운해했을 터였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누구에게나 보이지 않고 싶은 부분은 있는 법이었다.

그녀는 발레리안이 감추고 싶어 하는 어떤 진실을 굳이 들추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요, 그 초대에는 응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호전적으로 굴던 아테니아가 한발 물러나자, 웨일러스 후작은 의외라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나 후작보다 놀란 것은 발레리안이었다.

그녀의 성격상, 이런 식으로 찜찜함을 남겨 두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금 무슨 말을 하는지 제게 물은 건 크리스나 영애가 아닙니까? 인제 와서 의사가 달라지기라도 하셨습니까?”

웨일러스 후작의 말은 명백히 도발하는 어조였다.

그는 먼저 말을 꺼낸 주제에 뒤늦게 꼬리를 마냐는 듯 아테니아를 떠보았다.

“예, 달라졌네요.”

그러거나 말거나, 솔직히 아테니아에게 웨일러스 후작의 생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후작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던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자각이 없었지만, 이 점은 아카데미 시절과 달라지지 않아서 아테니아는 제 선 밖의 인간에게는 밤톨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그저 그녀가 웨일러스 후작과 말을 섞었던 것은 그 생각을 뜯어고쳐 주려던 게 아니라, 그가 자신을 대놓고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아테니아는 이미 후작에게 한 방 먹여 주었으니, 무시당한 것을 갚아 준 셈이었다.

거기서 그녀의 짧은 관심도 끝이었다.

아테니아가 후작에게 원로끼리 자신을 두고 무슨 말을 하냐고 굳이 물은 것 또한, 어디 할 수 있다면 제 앞에서도 해 보라고 한 말에 불과했으니까.

결과적으로 웨일러스 후작은 그러지 못했다.

앞에서 대놓고 말하지 못할 이야기라면, 뒤에서 무슨 말을 할지 뻔한 게 아닌가.

아테니아가 그것을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기분이 상하든 말든, 뒤에서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이었다.

거기에 기분이 나빠져 봤자, 그네들만 더 신날 것이었다.

아테니아는 그 장단에 맞춰 줄 생각 따위 전혀 없었다.

“저녁은 리안과 단둘이서 오붓하게 먹고 싶거든요.”

그러나 동시에, 발레리안에게 자신은 원로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녀는 원래 저녁 식사 전에 헤어지기로 했던 것과 달리, 그와 더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함으로써 표현했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이어진 지 얼마 안 되는 연인이어서요. 방해받고 싶지 않네요.”

웨일러스 후작이 더는 파고들 것도 없는 명백한 거절이었다.

그 깔끔한 거절에, 후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어떤 계획을 세웠던 간에 모두 허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내 연인이 그렇다는데… 이만 돌아가지, 웨일러스 원로.”

아테니아가 다르게 구는 이유가 궁금하면서도, 발레리안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이 이상 원로들과 얽히지 않을 수 있다니, 그로서는 반길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대공 전하, …크리스나 영애.”

물론, 웨일러스 후작의 입장에서는 아테니아를 두 번 보고 싶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앞서 이미 예법으로 그녀에게 한 방 먹었던지라, 후작은 두 번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았다.

웨일러스 후작은 그렇게 물러갔다.

그 뒤에, 발레리안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원로들을 아테니아에게 보일 생각이 없었던 그였다.

그래서 발레리안은 원로들이 함부로 수도에 오지 못하도록,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일부러 잔뜩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도 갑자기 웨일러스 후작이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은 발레리안조차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아마도, 빈켄티우스 내에 감히 대공이 아닌 원로들의 말을 따르는 자가 있으리라 짐작했다.

북부의 상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빈켄티우스뿐만 아니라 그 아래의 귀족들도 상당히 재산을 불렸다.

배가 지나치게 부르니 그로 인해 슬슬 제멋대로 구는 자들이 나오고 있는 터였다.

발레리안은 빈켄티우스의 본가로 돌아가면, 북부를 한 번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북부의 귀족들에게는 다행히도, 아테니아가 그의 생각이 더 살벌해지기 전에 그것을 끊어 주었다.

“대공 전하, 좀 걸을까요?”

왜냐하면, 발레리안의 생각이 다른 쪽으로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아까는 리안이라고 잘만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발레리안이 자신도 모르게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서로 애칭을 다시 허용한 뒤에도 아테니아가 내내 대공 전하라고 부르는 것이 그는 불만이었다.

차마 그것을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어서, 참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녀와 그는 서로를 꼭 애칭으로 불러야 할 필요는 없는 사이였으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남들 앞에서는 잘만 애칭으로 불러 주다가, 둘만 남자 도로 호칭이 돌아오는 아테니아의 행동에 발레리안은 일순 서운함을 참지 못했다.

“…그걸 신경 쓰고 계셨어요?”

순간, 아테니아가 멈칫했다.

아카데미 시절에는, 결혼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발레리안과 가까워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의 관계가 끝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좀처럼 발레리안의 애칭을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아테니아는 그가 이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방금 발레리안이 내뱉은 말은, 사실 그가 엄청나게 호칭에 관하여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나타냈다.

“…그게.”

아까와 달리 발레리안은 또 다른 의미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이, 제가 했다기에 놀라우리만큼 유치했던 탓이다.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주변인으로부터 아이답지 않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스스로도, 자신이 이런 유치한 말을 내뱉으리라 생각해 본 적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발레리안은 한참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그러나 아테니아가 그를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이런 발레리안은 처음이었다.

아테니아가 기억하기에도 그는 아카데미 시절에조차 어린아이처럼 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기함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발레리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로 인해 끝내 그가 아테니아의 시선을 못 견디겠다는 듯이 제 얼굴을 한 손으로 가려 버렸다.

그 모습을 볼수록, 아테니아는 마음속 어딘가가 간지러운 것을 느꼈다.

그녀의 시선에 발레리안의 목덜미와 귓불이 붉어진 것이 들어왔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왠지 아테니아는 제 얼굴에도 열이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의 침묵 끝에, 그가 대답을 내놓았다.

“…예, 신경 쓰였습니다. 아주 많이요.”

아테니아의 질문에, 차마 그녀에게 거짓말 따위 할 수 없었던 발레리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로 인해 그녀도 얼굴이 확 달아오른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그… 그만, 갈까요?”

아테니아는 붉어진 자신의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하여 그보다 앞서 걸었다.

발레리안 또한 자신의 목과 귀가 달아오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차마 그녀를 마주할 수 없어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며 아테니아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만이 모르겠지만, 그들은 남들이 보기에 이제 막 시작하여 서로에 대한 설렘으로 어쩔 줄 모르는 풋풋한 연인이었다.

***

아테니아는 그날, 기분 좋게 저녁 식사를 하고 크리스나 저택으로 돌아왔다.

‘리안.’

저녁 내내 아테니아가 일부러 불렀던 그 애칭이 혀끝에 맴돌았다.

발레리안의 의외의 모습은 그녀를 아직 어리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그리하여 묘하게 짓궂게 구는 아테니아로 인해 저녁 내내 그는 절절매야만 했다.

물론, 발레리안이 그렇게 구는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지만.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다가 오는 거냐.”

그리고 이렇게 기분 좋은 아테니아의 상태를 망칠 사람이 가족이라는 건, 그녀에게 대단히 애석한 일이었다.

아테니아가 크리스나 저택에 돌아오자마자, 크리스나 백작이 그녀를 안으로 재빠르게 끌고 들어갔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

“내가 오늘 오실 손님이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러면 일이 있어서 나갔어도 저녁 전에는 돌아왔어야지.”

크리스나 백작이 응접실로 가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아파요! 이것 좀 놓으세요!”

자신을 끌고 가는 아버지의 악력에 아테니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어디서 집안에서 소리를 높이는 거니?”

그러자 돌연, 혀를 끌끌 차는 귀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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