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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37화 (37/111)

37. 그들이 그녀에게 집착하는 이유 (1)

다행히도 크리스나 가문이 부유했기에, 가문의 마차는 넓었다.

그리하여 아테니아와 칼스이턴 대부인은 서로 마주 앉았으나 무릎이 맞닿는 일은 없었다.

“잘 지냈니?”

칼스이턴 대부인은 그들이 평범한 사이라도 되는 거처럼, 안부부터 물었다.

이전 같았으면 그래도 그녀가 어른이니, 아테니아는 예의를 차려 대답했을 것이다.

“칼스이턴 대부인, 앞으로는 갑자기 이렇게 저를 찾아오거나 붙잡지 말아 주세요.”

그러나 지금의 아테니아는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클라이브와 레이시아를 겪으면서 그녀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인간이 보이는 최소한의 예의도 때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례한 자들에게 예의 있게 굴면, 그들은 상대가 무른 줄 알고 더욱 무례하게 구니까.

“아테니아…!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니. 그래도 우리가 같이 산 세월이 있는데.”

칼스이턴 대부인이 손수건을 빼 들어 눈가를 찍었다.

물론,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러니까 그냥 연극이란 소리였다.

아테니아는 어쩐지 이 순간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칼스이턴 대부인의 행실이 어쩐지 제게 사랑을 연기하던 클라이브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게요. 제가 대부인과 같이 산 세월이 얼마인데… 생각해 보니 제가 클라이브한테 감금당할 때 아는 척도 안 하셨더라고요.”

“그건…!”

아테니아의 차분한 시선이 칼스이턴 대부인을 질타했다.

얼굴이 벌겋게 변한 대부인이 황급히 변명을 덧붙였다.

“그건, 너희의 이혼을 막으려고 한 거란다.”

조악하기 그지없는 변명이었다.

“아테니아, 내가 악의가 있어서 그랬겠니. 나도 그 아이가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단다. 방에만 있는 너를 보며 내 마음도 아팠어.”

그에 아테니아의 표정이 조금의 변화도 없자, 칼스이턴 대부인은 정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나도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란다. 여자가 이혼하고 혼자 살면 무슨 소리를 듣겠니. 아무리 원수 같은 남편이어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단다.”

칼스이턴 부인은 진짜로 자신이 아테니아를 위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열심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랬다.

보통, 널 생각해서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대체로 그러니 결국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네 탓이라고 하기 위한 것이라고.

“너도 겪어 봐서 알겠지만, 온갖 소문이 돌기 마련이야.”

솔직히, 칼스이턴 대부인이 나서서 소문을 내기 전에 아테니아에게 이런 말을 했더라면 그녀도 조금은 넘어갔을지도 몰랐다.

클라이브가 아무리 엉망인 남편이었어도, 어쨌든 아테니아는 신혼 기간 동안 시어머니인 칼스이턴 대부인과 제법 사이좋게 지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고부 갈등이 없는 관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침에 무리하게 일어나라고 한다든가, 식성은 무조건 클라이브에게 맞춘다든가, 그런 식으로 아테니아가 칼스이턴 일가의 대부분을 일방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지만 말이다.

“내가 널 신경 쓰지 않았으면, 이렇게 널 찾아와서 조언해 주려고 했겠니. 남자 바람피우는 것도 다 한때의 일이고, 이미 지나간 일이잖니.”

아테니아는 이제 칼스이턴 대부인의 말 대부분을 귀에서 귀로 흘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 칼스이턴 대부인을 제지할 방법이 아테니아에게는 없었다.

칼스이턴 대부인은 아테니아보다 지위도 높았고, 나이도 많았으며, 이곳은 사람도 많은 호수 공원이었다.

칼스이턴 대부인이 지위로 아테니아를 억누르려 들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어도 나이 많은 귀부인을 아테니아 같은 젊은 영애가 매정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이면 사교계에 두고두고 씹히게 될 게 뻔했다.

그러니 아테니아는 차라리 대부인이 혼자 떠들도록 두었다.

대화도 말이 통하는 상대에게 시도하는 거라고 하지 않던가.

어차피 아테니아가 칼스이턴 대부인에게 무슨 말을 하든, 대부인은 자신의 논리에 빠져 나오지 않을 것이 뻔했다.

때문에 아테니아는 굳이 제 기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여자가 사소한 것에 날카롭게 굴면, 남자는 마음만 더 떠날 뿐이란다.”

그러나 마차의 창밖으로 저 멀리 발레리안의 모습이 보이자, 아테니아는 이만 이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를 끝내기로 했다.

“남자들은 평생 어린애라고 하지 않니. 그러니까 네가 조금만 더 품어 주면….”

“우선, 칼스이턴 대부인.”

그래서 아테니아는 칼스이턴 대부인의 말을 끊어 버렸다.

어차피, 발레리안이 지금 이 모습을 발견하면 대신 상황을 정리해 주려 들 터였다.

그럴 바에는 아테니아가 정리하는 게 나았다.

칼스이턴 대부인도 발레리안이 도착한 것을 보면, 어차피 도망가듯 물러날 테니까.

“칼스이턴 후작님이 아직 어린애라면, 대부인께서 품에 두고 좀 더 키우셔야 하지 않겠어요?”

“뭐…?”

순간, 칼스이턴 대부인은 뇌가 정지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테니아는 말을 이었다.

“그렇잖아요. 애라서 도덕적인 옳고 그름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애라서 큰일을 쳐 놓고도 그게 큰일인지 모르고 사소하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아테니아의 입에서 줄줄이 독설이 쏟아져 나왔다.

본래, 조금 더 혈기 어렸던 아카데미 시절의 그녀는 욕 없이도 욕 같은 말을 잘하기로 유명했다.

“애가 그럴 수 있다지만… 부모님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럼 교육을 하셔야죠. 좀… 그렇잖아요?”

아테니아가 괜스레 곤란한 척, 제 손톱을 고르며 말을 덧붙였다.

“저 같으면, 어디 가서 실수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서 어쩔 줄 모를 거 같거든요.”

단어는 걱정이었지만, 결국은 어디 내놓기 부끄럽다는 소리였다.

곧, 그것을 알아들은 칼스이턴 대부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너…! 너! 지금, 시어미 앞에서 그걸, 뚫린 입이라고! 윽!”

칼스이턴 대부인이 화가 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부인은 키가 큰 편이었던 데다가, 아무리 크리스나가의 마차가 고급 마차라지만 마차의 특성상 세로로 긴 편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대로 마차의 천장에 머리를 박은 칼스이턴 대부인이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무래도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머리장식과 함께 부딪혀서 더욱 아픈 모양이었다.

“딱히 죄송하진 않지만… 하나는 정정해 드려야 할 거 같네요.”

아테니아가 마차의 문을 열며 말했다.

저 정도로 흥분한 걸 보니, 대부인이 뭔 짓을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을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화가 나면 튀어나오는 클라이브의 폭력성이 어디에서 왔을지, 뻔한 일이었다.

“칼스이턴 대부인은 더 이상 제 시어머니가 아니세요. 제가 대부인의 어린 아들을 대부인의 품으로 돌려드렸잖아요.”

그 순간, 어쩌면 아테니아의 예상대로 열 받은 칼스이턴 대부인의 손이 그녀에게로 휙 뻗어졌다.

아테니아가 그대로 마차 밖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하여 그녀의 머리채를 잡으려던 칼스이턴 대부인의 손은 허공을 가르게 되었다.

“그럼, 저는 이야기가 이만 끝난 걸로 알고 가 보겠습니다. 제 연인이 온 거 같거든요.”

아테니아가 다가오는 발레리안 쪽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그러자 당장에라도 다시 아테니아에게 달려들려던 칼스이턴 대부인의 동작이 멈추었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게, 약한 자에게는 강하게.

칼스이턴 일가는 정말이지 딱 그 말의 표본이었다.

“…네가 그러니까.”

발레리안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아테니아에게 손을 쓰지 못한 것이 분한지 온몸을 파들파들 떨던 칼스이턴 대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거다.”

칼스이턴 대부인이 짓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발레리안에게로 가려던 아테니아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빈켄티우스 대공이라고 다를 것 같니? 너 같이 드세고 예의 없는 애한테는 어떤 남자라도 질려 버릴 텐데!”

아테니아는 발레리안이 그럴 리 없다고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쩐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테니아는 자신에 대한 발레리안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첫사랑에 대한 미련과 동정심으로 그녀와 이렇게 지내는 건지, 아니면 아직도… 제게 마음이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사실, 발레리안의 설명에 모두 납득하는 척했지만 아테니아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황제 때문에 결혼을 더더욱 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변명에 가깝다는 것을.

크리스나 가문의 장부만 봐도, 크리스나 상단이 얼마나 부유하며 얼마나 이 나라의 경제에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빈켄티우스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상단 중, 넷을 합쳐도 이기지 못할 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빈켄티우스에서 밀어붙인다면, 황제가 과연 막을 수 있을까?

그것도 빈켄티우스와 크리스나가 합쳐지면 이 제국의 경제권을 손에 쥐는 셈인데?

객관적으로, 발레리안이 밀어붙이면 아테니아와 이루어지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녀가 감히 빈켄티우스의 안주인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발레리안의 마음이 과거에도 지금도 조금의 무리를 해서라도 이루어지고 싶을 만큼 깊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그건 조금 우울했다.

“넌 어차피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다, 아테니아!”

칼스이턴 대부인이 저주처럼 말을 퍼부었다.

방금까지 아테니아는 대부인에게 아주 당당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테니아는 클라이브와의 관계에서 잘못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말에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사람의 상처는 커다란 관성을 띠고 있어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어떤 한순간에 그 사람을 상처 입은 자리로 되돌려 놓고는 했다.

레이시아가 클라이브는 아테니아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했을 때, 사실 아테니아가 가장 충격받았던 것은 거짓된 시작이 아니었다.

무려 3년을 연애하고 1년을 신혼으로 지냈다.

그 시간은 절대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보통 없던 애정도 생길 만하지 않던가?

그러나 거짓된 시작의 끝은 결국 배신이었다.

클라이브가 아테니아에게 애정이 없었다는 증거였다.

아테니아는 그를 열렬히 사랑했던 시간 동안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방금, 칼스이턴 대부인의 말이 아테니아가 깊숙이 묻어 두었던 그 생각을 끌어 올렸다.

그러나 그 생각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끊어 놓았다.

“아테니아.”

발레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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