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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36화 (36/111)

36. 위장 스캔들 (15)

“황제 폐하는 어떻게든 저를 폐하께서 주무르기 쉬운 가문의 영애와 결혼시키려 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테나가 제 연인으로 있는 이상, 쉽게 그런 행동은 못 하시겠죠.”

발레리안이 호소하듯이 아테니아에게 말했다.

아직은, 이 관계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저를 도와주십시오, 테나.”

아테니아는 어쩐지 발레리안의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어서, 그의 눈을 피해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루이앙스 공작 영애가 그러더라고요. 자신은 혼인하고 싶지 않으니, 되도록 대공 전하와 길게 연애해 달라고요.”

아테니아는 이런 속내를 들킬까 봐 빠르게 답을 내놓았다.

“루이앙스 영애가 마음에 들어서, 제가 실수로 대공 전하와 상의도 하지 않고 그러겠다고 약속해 버려서 죄송했는데… 제가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네요.”

“네, 정말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계속 옆에 있어 주세요.”

발레리안이 자신도 모르게 진심을 툭 내뱉었다.

그는 진심으로, 아테니아와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오래가기를 바랐다.

***

“오늘은 나가지 말고 집에 있거라.”

크리스나의 아침은 왜 이렇게 하루도 편하게 식사할 수 없는 걸까.

크리스나 백작이 제게 명령하는 순간, 아테니아는 생각했다.

“왜 그러시는데요?”

그 생각을 꾹 참고, 아테니아는 물었다.

어쩌면 제 생각이 꼬인 걸지도 몰랐다.

아버지와 한번 틀어지니 모든 게 못마땅한 모양이다.

“오늘 손님이 찾아오기로 했다.”

“누가요?”

“보면 알아.”

그러나 아버지와 대화를 하면서, 아테니아는 제가 꼬인 게 아님을 깨달았다.

이제 참을 수 없어진 거였다.

저렇게 제 할 말만 툭툭 던지는 아버지를 더는 견디기 힘들었다.

“저 약속 있어요.”

아테니아가 단호히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크리스나 백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분명 내가 방금 나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절 통제하려 하지 마세요. 제가 어린아이였어도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통제할 권한은 없으세요.”

“난 네 부모야!”

“부모니까 더더욱, 자식한테 이러시면 안 되죠.”

“내 집에서는 내 말이 법이야. 따르지 않을 거라면….”

“지금이라도 나갈까요?”

“아테니아!!!”

설전이 오갔다.

그리고 아테니아는 단 한마디도 아버지에게 지지 않았다.

말싸움에서 완전히 밀린 크리스나 백작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꿋꿋하게 샐러드를 씹어 삼키고서야 대꾸했다.

“아버지, 불리해지시면 소리 지르는 그 버릇 좀 고치세요.”

“너 이 녀석…!”

아테니아의 지적에 크리스나 백작은 이제 아예 거의 뒷목을 잡고 넘어갈 기세였다.

그러자 아테니아가 크리스나 저택에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백작 부인이 말을 건넸다.

“테나, 그만하렴.”

물론, 그게 아테니아의 마음에 드는 말은 아니었다.

“꼭 아침 식사 자리에서마다 소란을 피워야겠니? 제발 평화롭게, 가족답게 밥 한번 먹자꾸나.”

백작 부인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마치 문제아를 달래는 듯한 기색이었다.

아테니아의 입이 꾹 다물렸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약한 편이었다.

늘 기 센 아버지에게 눌려 사시는 유약한 어머니가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한참 치기 어렸던 어린 날에는 아테니아도 강압적인 아버지의 태도에 반항하고 싶었던 적이 왜 없었겠는가.

그저 그때마다 백작 부인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아테니아를 말렸기 때문에, 참았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꼭 저만 문제인 거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러나 오늘의 아테니아는 참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알았다.

제가 참으면, 지금 당장의 상황이 넘어갈 뿐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쭉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앞뒤 정황도 없이, 아침부터 대뜸 명령부터 받은 건 저인데 말이에요.”

“테나, 아버지는 가주시잖니. 그러니까 존중을 해 드려야지.”

“제가 아버지의 가신이던가요? 명령받게.”

크리스나 부인의 두 눈이 크게 홉 떠졌다.

그녀의 두 눈이 당황으로 떨렸다.

딸아이가 제 말에 이렇게 꼬박꼬박 반박하는 것을 처음 본 탓이었다.

“아테니아! 네 어머니께 무슨 버릇이냐.”

유약한 성정의 어머니가 그것만으로도 충격받은 듯 보이자, 크리스나 백작이 아테니아를 나무랐다.

아테니아는 보란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말문 막히시면 버릇없다는 말로 제 입을 다물게 하려고 하지도 마시고요.”

“너… 너… 이….”

모든 말과 행동을 막힌 크리스나 백작이 아테니아를 삿대질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사이에 아테니아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맞이는 알아서 하세요. 다음부터 제가 필요하시면 이렇게 당일에 통보하실 게 아니라, 사전에 미리 말씀해 주시고요.”

그 순간, 백작 부인이 희미하게 외쳤다.

“테나, 너…! 자꾸, 엄마를… 이렇게, 실망하게 할 거니?”

아테니아의 걸음이 뚝 멎었다.

반사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늘, 제 부모님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은 장녀였으니까.

“테나, 지금이라도 아버지에게 사과드리고….”

어머니는 그런 아테니아의 태도에서 희망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테니아는 곧 그것을 단칼에 잘라 냈다.

“어머니.”

부모의 실망은 부모의 것이다.

아테니아가 그것을 감당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 그녀는 그 점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어머니와 아버지께 실망한 건 저예요.”

그리고 아테니아는 마침내 제 부모님에게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늘 백작 내외를 부모님으로서 존경하고 존중하던 그녀였다.

그런 맏딸이 저들에게 한 말에, 순간 크리스나 백작과 백작 부인의 입이 모두 다물렸다.

그사이에 아테니아는 식당을 빠져나왔다.

***

발레리안은 황제가 제 경고를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 외출하려던 찰나, 그의 수하가 해 온 보고는 발레리안의 낯을 싸늘히 굳게 만들었다.

”대공 전하, 황제가 칼스이턴 후작을 만났다고 합니다.“클라이브가 황실의 관리이기는 했지만, 그는 정치 쪽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었다.

즉, 황제가 굳이 클라이브를 찾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발레리안은 근래에 클라이브가 크리스나 저택을 찾았다고 보고받았던 것을 떠올렸다.

크리스나 백작이 빈켄티우스와 칼스이턴 사이에서 저울질하리란 건, 제 딸을 바람피운 놈팡이와 계속 살게 하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백작은 제 딸의 결혼 생활조차 계산에 넣을 만큼 뼛속까지 상인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의 저택에 클라이브를 들여보내 주었을 리 없었다.

빈켄티우스와 연이 닿을 기회가 아쉬워서라도, 클라이브를 돌려보냈어야 옳았다.

발레리안을 두고도 크리스나 백작의 귀가 칼스이턴 쪽으로 쫑긋거릴 무언가.

발레리안은 클라이브가 크리스나 백작에게 그런 조건을 내걸었으리라 확신했다.

“…혹시 칼스이턴 후작이 황제를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던가?”

그리고 어쩐지, 그런 클라이브의 행동에 황제가 관여되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물었으나, 수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전까지는 포착된 게 없습니다.”

발레리안의 눈매가 가늘게 늘어졌다.

황제가 클라이브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지 않고 지시를 전달할 방법은 차고 넘쳤다.

문제는, 그 방법이 너무 많아 증거를 잡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칼스이턴 후작과 대부인, 그리고 그 주변 이들까지 빠짐없이 감시해.”

결국, 발레리안은 우선 클라이브에 대한 감시의 눈을 늘리기로 했다.

황제 쪽이야 실력 있는 기사도 많고, 황제가 의심도 많아서 간자를 심기 까다롭다지만 칼스이턴 후작가쯤이야 발레리안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 대공 전하.”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에 수하는 금세 대답하고 사라졌다.

수하가 자리를 뜨자, 발레리안은 준비를 서둘렀다.

그와 아테니아는 서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연인을 연기하기 위해 오늘도 만나기로 했다.

그녀를 기다리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의 행동이 어느덧 조급해졌다.

***

아테니아는 크리스나 저택에 있기 싫어 일부러 집을 일찍 나섰다.

그녀는 틈틈이 크리스나 백작의 장부와 클라이브의 장부를 비교하는 척하면서, 크리스나 상단의 장부를 기억해 뒀다가 기록하는 중이었다.

아테니아는 그것만 끝나면 크리스나 저택을 나와 진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과하게 일찍 출발한 덕에 그녀는 발레리안과 만나기로 한 호수 공원에 지나치게 일찍 도착해 버렸다.

마차에서 내리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코끝에 맴도는 물 내음이 아테니아를 반겼다.

아침 일로 가라앉았던 기분이 환기되는 것 같았다.

“아테니아.”

그러나 그 순간, 누군가 아테니아의 팔목을 낚아챘다.

조금의 조심성도 없는 행동에 그녀가 표정을 굳히며 상대를 홱 돌아봤다.

“…칼스이턴 대부인.”

그곳에는 클라이브의 어머니이자, 아테니아의 전 시어머니가 서 있었다.

“아가, 칼스이턴 대부인이 뭐니. 서운하구나.”

칼스이턴 대부인은 정말로 서운한 듯이 시무룩한 목소리였다.

아테니아는 순간 기가 막혔다.

아테니아와 클라이브가 이혼한 것은 둘째 치고, 칼스이턴 대부인은 분명 좋지 않은 의도로 아테니아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지 않았던가.

그래 놓고 이전에 사이좋았던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일 때처럼 구니 뭐라고 해야 할지 어안이 벙벙했다.

“아테니아, 시간 좀 있니? 네가 우리 저택에서 그렇게 가 버린 이후로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아서, 너와 오랜만에 대화 좀 하고 싶구나. 잘 지냈는지도 궁금하고.”

도대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지적해야 할지 모를 것 같은 말이었다.

그렇게 가 버리다니.

아테니아는 칼스이턴 저택에서 도망쳤다!

그런데 칼스이턴 대부인의 말투는 마치 아테니아가 잘못한 것만 같았다.

게다가 아무리 나쁘지 않았다고는 하나, 이혼한 전 남편의 어머니에게 연락을 왜 한단 말인가!

아테니아는 작은 가방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곧, 발레리안이 도착할 때였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칼스이턴 대부인은 이대로 얌전히 물러나 줄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아테니아가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시간은 없지만…. 잠깐 제 마차에서 이야기하는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칼스이턴 대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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