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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13화 (13/111)

13. 넌 내 거야 (3)

클라이브가 셀레니아를 믿고 아테니아를 크리스나 저택에 보내기로 한 데에는, 크리스나 백작 내외가 바람피운 사위를 위하여 탄원서를 써 준 것이 큰 몫을 했다.

어차피 크리스나 백작의 지원도 못 받을 아테니아가 이혼을 하고 싶다 한들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없는 칼스이턴 저택보다, 크리스나 백작이 아테니아를 더 잘 제어해 주리라 믿었다.

물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까 봐 자신의 기사들을 셀레니아와 아테니아가 탄 마차를 감시하도록 함께 보내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아테니아와 셀레니아는 마차를 타고 크리스나 백작저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아악!”

“억!”

마차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 것은 대략 칼스이턴 저택과 크리스나 저택 사이 즈음에서였다.

셀레니아의 명령으로 마부는 수도의 외곽 숲길로 마차를 몰았다.

괜한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겠다는 핑계를 댄지라, 기사들은 약간은 미심쩍어하면서도 넘어간 터였다.

그랬기에 기사들이 단말마를 내질러도 쫓아오는 이 하나 없었다.

그리고 곧 사위가 조용해지고 마차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두 분, 괜찮으십니까?”

예상대로, 문을 연 사람은 발레리안이었다.

그때까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던 아테니아의 자세가 무너졌다.

“아테니아…!”

순간 발레리안이 놀라 아테니아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긴장이 급작스럽게 풀린 탓에, 그녀가 자신을 지탱해 주는 그의 팔을 잡으며 겨우 상체를 세운 채 발레리안을 올려다봤다.

“괜찮… 괜찮아요.”

아테니아가 말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아, 그제야 숨을 쉬는 것만 같았다.

“우선 치안대로 가서 감금되었던 사실을 신고해야 해요. 칼스이턴 후작이 없을 때 기사들이 들이닥쳐야, 그 저택 고용인들도 당황해서 누군가는 사실대로 불 테니까요.”

정신없는 아테니아를 대신하여 셀레니아가 말을 꺼냈다.

발레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는 길에 이미 칼스이턴 후작이 저택을 나섬과 동시에 치안대 기사들이 들이닥치도록 조치를 해 두었습니다.”

“…제, 증언이 필요하지 않나요?”

아테니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방에 감금되었던 순간부터 사실상 그녀는 제대로 쉬지 못했으니, 피로가 극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니아는 이 이혼을 빠르게 끝내고 싶었다.

정말이지, 클라이브와 부부로 묶여 있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하고 또 끔찍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할 판사의 사무관이 직접 찾아오기로 했습니다. 무리하지 말아요.”

발레리안의 목소리는 아테니아를 달래듯이 부드러웠다.

“아테니아, 그대가 싫지 않다면 이 일의 나머지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래서 아테니아는 순간 칼날같이 날 선 발레리안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를 보던 것과 달리, 잠시 허공을 향했던 그의 두 눈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순간, 그 눈빛을 발견한 셀레니아가 그 ‘처리’가 어떤 것인지 두려워질 만큼.

그러나 아테니아를 바라보는 발레리안의 두 눈은 한없이 다정하기만 했으므로, 아테니아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미안해요, 그렇지만… 부탁드립니다, 대공 전하.”

그리고 아테니아는 무엇보다 많이 지쳐 있었다.

이제 더는 발레리안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칼스이턴 저택에서의 이틀은 아테니아가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딱, 오늘까지만 안면몰수하기로 했다.

더는 체면을 차릴 여력이 없었다.

클라이브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또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는 그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언니는 좀 쉬어.”

셀레니아 또한 이런 아테니아의 모습은 처음 봤기에 상당히 놀란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여동생은 어느덧 어른이 되어 아테니아를 보듬어 주었다.

“…두 사람 다, 고마워요.”

아테니아가 애써 웃으며 인사한 후 마차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피로가 몰려들었다.

수마가 아테니아의 눈꺼풀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비로소 기절이 아닌 잠이 드리웠다.

***

아테니아가 푹 자고 일어났을 때는 낯선 곳이었다.

그러나 눈을 뜨자마자, 곁에 발레리안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일어났군요. 크리스나 영애는 옆 방에서 자고 있습니다.”

아테니아의 인기척을 느낀 발레리안이 깨어난 그녀에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잠들었다 깨어나서 아무도 옆에 없으면 그대가 놀랄까 봐 옆을 지키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불쾌하다면 미안합니다.”

발레리안은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갇혀 있던 것은 아테니아에게 상당한 트라우마가 되었을 터였다.

그것을 걱정하여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렸으나, 한밤중에 건장한 남자가 잠든 자신 옆에 있었다는 사실이 아테니아를 더 두렵게 할까 봐 그 또한 염려되었다.

사실 지금이 모두가 잠들어야 하는 새벽이어서 셀레니아가 잠들지만 않았더라면, 발레리안도 이런 무례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렇지만 학자에 여자인 셀레니아보다는 기사인 발레리안이 밤을 지새우기 훨씬 쉬웠다.

그래서 그는 아테니아의 곁에 남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모두 변명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결국 아테니아가 걱정되어 그 곁을 지키고 싶었던 건 발레리안의 욕심이었으니까.

“…괜찮아요.”

그렇지만 발레리안이 더 말을 잇기 전에, 아테니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발레리안은 더한 사과라도 할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잘못한 게 없었다.

“감사해요, 곁에 있어 주셔서. 솔직히… 낯선 곳에서 혼자 깨어났다면… 무서웠을 거예요.”

아테니아는 이불을 손에 꽉 쥔 채 고개를 숙였다.

만약 혼자 깨어났다면, 혹시라도 다시 클라이브에게 끌려간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을 집어먹었을지도 몰랐다.

그 사실이 대단히 자존심 상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칼스이턴 저택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깨어났을 때도 그러지 않았던가.

마치 방이 자신에게 달려들 듯한 기분이 들어, 좀처럼 방이 편안하지 않았다.

아테니아는 부유한 백작의 딸로 부족함 없이 자라 왔고,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누군가 그녀를 강제한 것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무관하게 자신을 감금하고 억압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은 아테니아에게 끔찍한 무력감을 선사했다.

평소에 아테니아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의사 표현이 확실했다.

그렇기에 그 무력감이 만들어 낸 충격은 아테니아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발레리안이 깨어날 때 옆에 있었던 게 그녀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죄송해요, 대공 전하. 계속 더는 도움을 받지 않겠노라고 말해 놓고서는… 이렇게 자꾸만 폐를 끼쳐서요.”

아테니아는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야,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아까 마차에서는 정신이 없어서 염치도 없이 굴었다.

지쳤던 몸이 나아지니, 뒤늦게 그녀에게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매번 말로만 이렇게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조차도 창피할 지경이었다.

“…아테니아, 저는.”

발레리안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해도 될 법한 말을 찾지 못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가장 아테니아를 돕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것이 그녀에게 부담이 되리란 걸 알았다.

“아테니아, 그대 꼬박 3일을 자고 일어났어요. 당신의 이혼 소송은 오늘 오후에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발레리안은 차라리 말을 돌리기로 했다.

“…벌써요?”

아테니아가 놀라 두 눈이 커졌다.

3일을 내리 잤다는 것에 놀라야 할지, 아니면 이혼이 이렇게 쉽게 끝나 버렸다는 것에 놀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혼 소송은 그것을 맡는 판사에 따라 다르지만, 길게는 몇 달이 걸리기도 했다.

그런데 고작 3일 만에 아테니아와 클라이브의 이혼이 결정된 것이다.

“바람이라는 유책 사유가 명백하게 칼스이턴 후작 쪽에 있는 데다가, 변호사가 그대를 가뒀던 칼스이턴 후작을 그대와 한 공간에 둘 수는 없다고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졌습니다.”

물론, 이렇게 아테니아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판결이 난 것은 발레리안이 힘을 쓴 덕이었다.

그러나 그는 굳이 그거까지 말에 덧붙여 그녀에게 부담을 더 씌울 생각 따위 없었다.

“다만, 재판부에서는 칼스이턴 후작의 행동이 감금이 아니라 외출 금지를 강권한 것 정도로 여겨서….”

설명을 늘어놓던 발레리안이 순간 이를 악물었다.

감금을 말만 순화시킨다고 하여 그 본질이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그런데 클라이브가 아테니아를 감금한 것에 대해서 겨우 벌금형으로 끝나다니.

발레리안의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일단은 벌금형에 그쳤지만, 항소할 생각입니다. 제 변호사가….”

발레리안의 변호사는 이 제국에서 가장 유능한 자였다.

그의 변호사가 항소한다면 클라이브는 단순한 벌금형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터였다.

“아니요, 대공 전하. 그러지 마세요.”

그러나 아테니아가 그런 발레리안을 말렸다.

애초에, 발레리안이 나서 주지 않았다면 클라이브가 그녀를 감금한 일 따위 부부간의 일이라며 재판부에서 쉬쉬했을지도 몰랐다.

클라이브가 바람을 피웠다는 명백한 증거를 잡을 수 있었던 것부터, 재판부에서 약소하게나마 클라이브의 죄를 인정한 것도 모두 발레리안의 덕임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무렴 발레리안이 함구한다고 해서 모르겠는가.

“대공 전하께 해가 갈 거예요.”

클라이브가 저렇게 보여도 후작이었다.

불공평하지만, 고위 귀족인 그는 대체로 무슨 죄를 짓든 면책받았다.

그런 클라이브가 나라에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개인사로 큰 처벌을 받는다면, 사람들은 분명 그 과정에 누가 개입했는지 궁금해할 터였다.

지금이야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혼 소송에 불과했다.

그러니 남들 보기에는 대단한 일도 아니고 굳이 누가 뒤에서 돕고 말고 할 게 없었다.

그렇지만 항소까지 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발레리안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아테니아는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칼스이턴 후작 부인의 이혼에 미혼인 빈켄티우스 대공이 왜 끼어들었는지, 둘이 무슨 사이인지 분명 다들 입방아를 찧어 댈 것이다.

그런 식으로 발레리안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렇지만, 아테니아. 이대로 항소를 포기하면 칼스이턴 후작이 그대를 괴롭힌 것에 대한 죗값은 받지 않게 됩니다.”

그렇지만 발레리안은 아테니아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제 명예 따위보다 그녀의 억울함을 푸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깟 벌금형이 클라이브에게 얼마나 대단한 효과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어지는 아테니아의 말이 발레리안의 입을 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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