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혼해, 이 개자식아 (6)
제국의 법상, 이혼 소송 서류에는 대리인을 맡은 변호사의 이름이 기재되게 되어 있었다.
빈켄티우스 대공가의 변호사는 당연히 그 이름도 유명했다.
그러니 아테니아가 발레리안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조금만 알아봐도, 금세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클라이브가 날뛰는 것이, 그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우리 이혼해. 클라이브 칼스이턴, 이 개자식아.”
그렇게 클라이브와의 실랑이 끝에 그 말을 내뱉었을 때, 아테니아는 마침내 해방감을 느꼈다.
“하! 내가 뭘 잘못해서 이혼당해야 하는데…!”
클라이브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 뻔뻔함에 아테니아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그녀가 황당함을 담아 빈정거렸다.
“잘못이 당신한테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하구나?”
클라이브는 그 와중에도 실수했다.
그가 만약 정말로 찔리는 게 전혀 없었다면, 딱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잘 지내던 부인이 갑자기 이혼하자는데 무슨 이유가 있냐고 물을 것이었다.
저런 식으로 발끈하여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올 게 아니라, 제대로 대화를 시도할 거란 말이었다.
“내… 내가 뭘!”
아테니아의 말에 움찔한 클라이브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몰아붙였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정도가 있지, 당신이 어제 어디서 뭘 하다가 왔는지 내가 진짜로 모를 거 같아?”
아테니아는 반대로 더 이상 소리를 지르기도 싫었다.
저런 놈을 상대로 품위를 잃고 같이 왁왁하는 거 자체가 스스로에 대한 모욕 같았다.
“역시, 너…! 빈켄티우스 대공과 짜고 일을 벌였던 거지!!!”
클라이브도 영 바보는 아닌지 아테니아가 한 말이 무엇인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테니아의 말에 자신의 죄가 들켰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날뛰며 그녀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런데 감쪽같이 날 속이고 아닌 척을 해?! 감히…!”
“감히…?”
그 모습에 아테니아가 순간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두 눈이 순간 클라이브의 머리채라도 잡을까 번뜩이며 그를 쏘아봤다.
아테니아는 클라이브로 인해 제 안의 새로운 폭력성을 깨달았고 그것을 잠재우느라 부단히 애를 썼다.
‘나는 상식인이다… 저 자식이랑은 본질부터 다른 인간이다….’
이혼 시에 폭력을 행사한 배우자에게도 유책이 생긴다.
아테니아는 그것을 떠올리며 몇 번이고 심호흡했다.
“그래! 나 잠시 한눈팔았다! 남자가 사회 생활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걸 가지고 너는 감히 여자가 어딜 맞바람을 피워!”
그러나 이어지는 클라이브의 말에 아테니아는 지성인이길 포기했다.
자고로 인간 같지 않은 놈을 인간 같게 대우하려는 것부터가 문제였던 것이다!
“야!!!!!!!!!!!!!”
순간, 숨을 크게 들이쉰 아테니아가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전에 없던 그녀의 행동에 클라이브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작작 너, 너 거려! 나도 당신한테 야야거리기 전에!”
아테니아의 나이가 몇인데 너, 너 소리 따위나 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저딴 호칭으로 들을 짓 따위 한 적이 없었다!
클라이브가 놀라 입을 다물자, 아테니아는 때를 놓치지 않고 쏘아 댔다.
“그리고 나나 대공 전하가 당신들이랑 같은 줄 알아? 더럽게 아무나랑 붙어먹게!”
게다가 맞바람이라니.
아테니아가 발레리안과 얽히며 혹시라도 그렇게 보일까 봐 얼마나 조심조심하고, 발레리안 또한 그런 그녀를 얼마나 배려했는데 그딴 오명을 뒤집어씌운단 말인가!
“그, 그렇지만 너… 아니, 당신이 빈켄티우스 대공이랑 작당한 건 사실….”
어디서 뭘 배워 온 건지 또 습관적으로 너, 너거리려던 클라이브가 다급하게 호칭을 바꿨다.
아테니아의 두 눈이 그만큼이나 형형했기 때문이다.
“작당 같은 소리 하네! 지 살 깎아 먹는 건 줄도 모르고 바람난 여자랑 자기 아내 씹으며 낄낄거리던 놈이 뭐?!”
아테니아는 아직도 클라이브와 레이시아가 저를 두고 하던 말들이 생생했다.
‘어차피 아테니아는 몰라. 눈치챌 여자였으면 우리가 만나는 1년 동안 알아차려도 진즉에 알아챘겠지.’
‘하여간 그 여자도 멍청하다니까? 아무리 너랑 내가 파트너라지만, 우리가 그렇게 붙어 있는데도 나한테 널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는 꼴이라니!’
아테니아는 그저 사랑하는 자신의 남편을 믿었을 뿐이었다.
그랬을 뿐인데, 왜 인간의 도리도 잊어먹고 아랫도리 접붙이느라 바쁜 것들에게 그딴 모욕이나 당해야 한단 말인가!
“뭐? 멍청한 여자? 넌 그런 멍청한 부인을 둔 남자가 되고 싶니?”
아테니아는 드디어 속이 시원해졌다.
진짜 멍청한 게 누군데, 감히 그녀더러 멍청하다고 하는지.
진즉에 따지고 들고 싶었더란다.
“내가 언제?”
그러나 클라이브는 이번에도 아테니아의 예상보다 더 멍청하고 몰염치했다.
“하…!”
아테니아가 할 말을 잃고 클라이브를 쳐다봤다.
이래서 때린 놈은 기억 못 해도 맞은 사람은 기억한다고, 그는 진짜로 자신이 레이시아와 그런 대화를 했던 기억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언제? 언제긴 언제야! 내가 헬레나의 저택에서 자고 오기로 했던 그 날이지!”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고?”
클라이브의 두 눈이 재차 커졌다.
그러나 곧, 그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런데 음흉하게 지금까지 말도 하지 않고 있었던 거야? 네 남편이 다른 여자랑 붙어먹는데?”
“뭐…?”
순간 아테니아는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사이, 클라이브는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도 되는 것처럼 외쳤다.
“네가 이렇게 사람을 질리게 만드니까 내가 레아를 만난 거잖아!”
클라이브는 지나치게 당당했다.
마치 그의 말에 어떤 대단한 당위성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보통 여자라면 울고불고해야 정상 아니야? 이건 뭐, 내가 너 무서워서 같이 살 수 있겠냐고!”
분명히 그것들은 헛소리였다.
헛소리였는데, 어쩐지 아테니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클라이브에게 했던 말들이 마치 허상처럼 흩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아테니아가 말이 없자, 더더욱 그녀를 탓했다.
“네가 침대 위에서 목석처럼 굴지 않고 레아의 반의반만이라도 교태 있게 굴었으면, 내가….”
쫘악.
그 순간, 클라이브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테니아의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다리를 휘청이며 겨우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아 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그런 말을….”
클라이브의 뺨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아테니아의 손바닥도 욱신거렸다.
그녀는 폭력을 싫어했다.
난생처음 사람을 때린 감각이 끔찍했다.
클라이브는 기어코, 아테니아가 최악의 밑바닥을 보게 만들었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지금, 날 때렸어…?!”
그러나 클라이브의 눈에는 그런 아테니아 따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맞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눈이 돌아간 그가 아테니아의 어깨를 콱 부여잡아 밀어붙였다.
“남편 알기를 얼마나 우습게 알면…! 하긴, 잘나신 빈켄티우스 대공이랑 붙어먹었을 테니 나 같은 게 눈에 차기나 하겠어?! 우스워 보이겠지!”
클라이브의 두 눈이 열등감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계속해서 아테니아의 어깨를 잡은 채 밀어붙였고, 그녀의 몸은 주춤주춤 점차 뒤로 밀리게 되었다.
“왜, 이래…! 이거 놔!”
아테니아가 클라이브의 두 손을 떼어 내려고 발버둥 쳤으나, 이번만큼은 좀 전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너는 전부터 그랬어!”
뒤로, 뒤로 발이 자꾸만 옮겨졌다.
턱.
그리고 어느 순간 아테니아의 다리에 침대가 걸렸다.
그 순간, 클라이브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깨달은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계집 따위가 아카데미의 수석을 차지했다고 콧대가 높아져서는…”
그리고 클라이브의 힘에 의해 몸이 뒤로 넘어가려는 찰나, 아테니아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아아악!!!”
아테니아는 최선을 다해 클라이브의 팔뚝을 물어뜯었다.
이전이었다면 몰라도, 클라이브가 어떤 놈인지 알게 된 이상 그에게 이 이상의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놔! 놓으라고!”
클라이브가 아테니아의 머리채를 쥐고 그녀를 떼어 내려 머리칼을 억세게 잡아당겼다.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 없이 곱게 단장되어 있던 그녀의 고운 은발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헝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니아는 마치 팔을 놓으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억세게 그의 팔을 물고 놓지 않았다.
“이익!!!”
철썩!!!
아까 아테니아가 클라이브를 때렸을 때와는 백팔십도 다른 커다란 마찰음이 울렸다.
그의 커다란 손이 아테니아의 머리와 뺨 사이 어디쯤을 두서없이 내리친 까닭이었다.
풀썩.
그녀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클라이브의 팔뚝에서 피가 비치고, 아테니아의 입가에 붉은색이 묻어났다.
그것에 열 받은 그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윽!”
클라이브가 순간 경악성을 내며 뒤로 훌쩍 물러섰다.
아테니아가 클라이브의 손마저 물어뜯을 듯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관자놀이를 잘못 맞은 모양인지 골이 울리고 시야가 어지러웠으나,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 그에게 지면 안 된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랬다가는 꼼짝없이 절대 원하지 않는 짓을 당하게 될 테니까.
“미친년…!”
클라이브가 치를 떨며 소리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번에는 쉽게 아테니아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바닥에 엉망이 된 몰골로 주저앉은 채로도, 눈을 형형하게 올려 치켜뜬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달리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서울 지경이었다.
“하! 네가 이러니까 다른 여자한테 남편이나 빼앗기는 거야!”
아테니아에게 겁을 먹었다는 사실이 클라이브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가 홱 소리치며 등을 돌려 방을 나섰다.
쾅!
자신이 성질났음을 피력하듯 클라이브에 의해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흐… 우윽….”
클라이브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아테니아는 신음을 흘리며 그 자리에 무너졌다.
제 꼴이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방금의 충격을 어찌하기도 전에, 또 다른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방문이 밖에서 잠기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