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이혼해, 이 개자식아 (5)
곧이어 어머니가 경악성을 내질렀다.
“여보!!!”
크리스나 백작이 내려친 아테니아의 뺨이 매우 붉었다.
누가 봐도 맞은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지금… 지금 감히! 뭐?! 딸을 팔아먹어?!! 그게 딸이 아버지한테 할 말이냐!”
그러나 그 꼴을 보고도 아버지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었다.
크리스나 백작의 어깨가 들썩들썩였다.
그는 분노로 인해 숨을 씩씩 내쉬었다.
아테니아는 그것이 두렵다기보다, 다소 멍해진 기분으로 제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단언컨대, 그녀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맞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절… 때리신 거예요?”
욱신거리는 뺨이 제 말을 증명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테니아는 묻고 말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여자와 남자의 역할 구분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아테니아가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하고도 최종적으로 가문을 잘 꾸리는 것에 목표를 두게 된 이유에는 아버지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물론, 제국 자체가 아직도 여전히 귀부인들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한 게 가장 컸으나 평생 보고 자라 온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그렇기에 크리스나 백작은 제 딸들을 엄하게 꾸짖지도, 힘든 일을 시키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단언컨대 이런 식으로 맞아 본 적 따위 없다는 의미였다.
“…그럼!”
그래서 아테니아는 울컥했다.
머릿속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제가 대체 무엇을 잘못했다고 손찌검을 한단 말인가!
“딸의 남편이 바람피우다가 걸렸는데도 부모가 되어서 화를 내진 못할망정 편들어 주는 게, 딸을 팔아먹기 위해서가 아니면 뭔데요!”
아테니아가 악을 내질렀다.
평소와 달리 하도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따끔거렸다.
그러나 이성을 차릴 여유 따위 없었다.
어쩌면, 아테니아는 자신의 부모가 클라이브와의 이혼을 반대하는 그 순간에도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부모니까.
겨우 그런 게 뭐라고.
“이 자식이 그래도…!”
“여보!!!”
크리스나 백작이 재차 버럭 목소리를 높이며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것을 어머니가 아버지의 팔에 매달려 막아섰다.
“여보, 폭력은 안 돼요…!”
“이거 놔! 저 자식이…!”
어머니가 힘들게 아버지를 막고, 시끄러운 소리가 고래고래 오가는 와중에서 아테니아는 그것을 황망하게 쳐다봤다.
기대가 꺾이는 순간은 언제나 처참한 법이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더 이상 어머니와 아버지의 의견 따위 신경 쓰지 않겠어요.”
아테니아가 눈을 부릅뜨며 단호하게 선언했다.
아, 처음부터 이랬어야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같은 시간으로 돌아가도… 결국 부모이기에, 그녀는 그러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클라이브와 이혼할 거예요. 어떤 방식으로든!”
“아테니아!”
바늘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 없는 굳건한 딸의 모습에 크리스나 백작 부인은 경악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제 딸에게 마음을 바꾸라 시선과 표정으로 종용했다.
“너…! 이혼하기만 해 봐! 자식 하나 없다는 셈 치고 살 테니까!”
크리스나 백작이 길길이 날뛰었다.
그는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절대 참지 않았다.
그래서 백작은 아테니아가 부모의 의견 따위 필요 없다고 한 말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네가 이혼하는 순간, 호적에서도 파 버릴 테니까!!!”
크리스나 백작은 딸을 상대로 질 수 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테니아가 이혼하게 되면, 그녀의 호적은 다시 크리스나 백작 아래로 옮겨진다.
그런데 백작의 말대로 크리스나 가문의 아래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게 된다면 아테니아는 더 이상 귀족이 아니게 되는 셈이었다.
아테니아가 순간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막지 못했다.
평민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귀족이었던 평민의 삶이 훨씬 고달팠다.
그런데도 그녀가 잘못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가해자가 확실한 상황에서 하는 이혼임에도 크리스나 백작은 저런 말이나 운운하고 있는 것이었다.
질끈, 드레스 자락을 부여잡은 아테니아의 가는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렇게 하세요.”
결국, 아테니아의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뭘 잘했다고 울길 울…!”
아테니아는 더 이상 크리스나 백작의 말을 듣지 않고 홱 돌아섰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울기 싫었는데….’
아테니아가 거칠게 제 뺨을 적신 눈물을 닦아 냈다.
남들하고는 싸울수록 냉정해지고 싸늘하게 식는 그녀도, 부모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울컥울컥 치미는 감정을 더는 아테니아도 막을 수 없었다.
억울하고, 화가 나고, 또 서러웠다.
너무 서러워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아, 앞이 너무 까마득했다.
크리스나 백작가는 당연하게도 귀족들의 저택이 즐비한 거리에 있었다.
이런 거리에서 울며 헤매다가는 구설에 오르기에 십상이었다.
그래서 아테니아는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려고 했다.
“아테니아…!”
갑자기 웬 문양조차 없는 마차가 나타나고, 그 안에서 저 대신 무너질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발레리안이 내리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아테니아는 발레리안으로 인해 이번에도 칼스이턴 저택에 곧바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그녀의 기분은 저번에 그를 찾아갔을 때보다 더욱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발레리안은 울고 있는 아테니아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클라이브가 유치장에서 풀려난 경위를 알게 되고 난 후, 혹시나 싶어 크리스나 백작저로 달려온 터였다.
그녀의 성격상 곧바로 사건의 전모를 짐작하면 곧바로 제 부모를 찾아갈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발레리안의 예상대로 정확히 들어맞아서, 그는 아테니아를 홀로 울게 두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발레리안이 안아서 달래 주거나 할 수도 없었으니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채 안타까워하며 어쩔 줄 모를 뿐이었다.
그런 그를 생각해서라도 울음을 멈춰야 할 텐데, 아테니아는 그럴 수 없었다.
소리조차 없는 울음이 마차 안을 가득 채웠다.
너무 서럽고 서러워서, 너무 비참해서, 그녀는 고요 속에 눈물만을 흘렸다.
“미안합니다, 제가 늦어서….”
그러자 발레리안이 돌연 아테니아에게 사과했다.
그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탓에 아테니아가 울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클라이브 칼스이턴이 풀려나게 두는 것이 아니었는데….”
아니다.
발레리안은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아테니아도 알았다.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사위가 제 딸을 두고 바람을 피웠는데 그 부모가 사위의 편을 들 것이라고.
“왜… 당신이, 사과해요.”
아테니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다물고 있는데, 아테니아를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만이 사과하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대의 일에 제가 너무 안일하게 굴어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으니까요.”
발레리안의 얼굴 위에 후회가 가득했다.
그의 시선이 붉어진 아테니아의 뺨에 콕 박혀 있었다.
발레리안의 두 눈은 말없이도 그가 얼마나 그녀가 당한 일들을 안타깝게 여기는지 표현했다.
아, 정말이지… 아테니아는 다른 의미로 울고 싶어졌다.
왜 5년이 지난 지금도 당신은 이토록 다정한지 묻고 싶었다.
그것도 5년 전, 발레리안을 사랑한다고 했던 그녀의 고백을 거절한 그가.
그러나 그것을 묻고 따지기에는 아테니아는 이미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절, 도와주실 수 있나요?”
결국 아테니아는 안면 몰수하고 또다시 발레리안에게 도움을 바랐다.
지난번, 클라이브가 기사들에 의해 연행되던 날 그녀는 이미 그에게 안녕을 고했다.
그래 놓고서 인제 와 또 태도를 달리하다니.
수치심으로 인해 아테니아의 귓가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드레스 자락을 꼭 쥔 두 손이 긴장으로 움찔거렸다.
“…저야말로.”
발레리안의 손이 움찔했다.
꼼지락거리며 불안해하는 아테니아의 손을 잡아 주고 싶었으나, 그에게는 그럴 자격 또한 없었다.
그래서 발레리안은 대신 그녀의 가족과 남편에게 분노했다.
인간은 누구나 최소한의 품위를 잃지 않는 삶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권리가 있다.
인간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살아남기 위하여 어떤 최악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일은 의미가 없었다.
아테니아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몇 번이고 발레리안에게 선을 그었다가 그것을 반복하는 게 얼마나 힘들 것인가.
발레리안은 아테니아가 언제나 그녀답길 바랐다.
“제가 도와주게 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일을 끝내겠습니다.”
아테니아는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발레리안은 마치 이 일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이라도 있는 양 굴었으나, 그것은 전적으로 그녀가 마음 편해지라고 하는 소리에 불과했다.
변명이겠지만 그래도 아테니아는 어쩔 수 없었다.
“…부탁드려요, 대공 전하.”
왜냐하면 이제 아테니아에게 남은 방법은 이혼 소송을 통해 이기는 것뿐이었으니까.
아테니아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크리스나 백작가에 연락을 했다는 것은, 클라이브가 그녀와 이혼할 생각이 없음을 의미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크리스나와 칼스이턴 두 집안은 서로 함께함으로써 보는 이득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테니아가 고용할 수 있는 변호사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심지어 칼스이턴 후작가에는 이미 대대로 후작가를 모셔 오며 법조계에서 명망을 쌓은 법조인 가문의 변호사가 있었다.
아테니아 혼자서는 그런 변호사를 둔 클라이브를 절대 이기지 못할 터였다.
그렇지만 빈켄티우스 대공가의 전담 변호사라면, 얼마든지 클라이브를 이길 수 있었다.
그래서 아테니아는 한 번 더 비겁해지기로 했다.
그녀는 정말이지, 이렇게 살 수 없었으므로.
***
클라이브가 손쉽게 유치장에서 나온 후, 발레리안이 늦은 이유가 있었다.
발레리안은 언제든지 아테니아가 쉽게 접수할 수 있도록 이미 준비를 마친 터였다.
그는 자신의 변호사를 시켜 이혼 소송 서류 그리고 클라이브의 유책 사유와 그 증거가 담긴 자료들을 함께 준비해 두었다.
덕분에 아테니아는 쉽게 법원에 그것들을 제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칼스이턴 저택에 돌아왔다.
발레리안이 괜찮겠냐고 걱정했으나, 적어도 지금껏 자신을 예뻐해 준 시부모님에게만큼은 아무 인사도 없이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 바른대로 말해. 발레리안 빈켄티우스와 무슨 사이야…!”
그러나 아테니아는 제 방에 들어오자마자, 그녀의 방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클라이브와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