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5화 (5/111)

05. 이혼해, 이 개자식아 (1)

파열음에 놀란 클라이브가 아테니아에게로 다가왔다.

“티아…! 괜찮아?”

아테니아의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남편의 머리를 깨 버리는 대신, 화병을 내던지는 것을 택했다.

비록 화병이 무거웠던 탓에 던지는 게 아니라 떨어트리는 게 되어 버렸지만.

“…괜, 찮아.”

분노로 인해 아테니아의 숨소리가 급하게 씨근덕거렸다.

다행히도 출장을 빙자한 내연녀와의 여행에 눈이 돌아간 클라이브는 그녀의 행동을 정확히 못 본 모양이었다.

물이 담겨 있던 화병은 무거워서, 화병이 장식대에 부딪히며 깨지는 바람에 파편이 그녀의 손을 찢고 떨어졌다.

씨근덕거리는 숨소리는 그로 인한 것처럼 보였으니 어쩌면 다행인 일이었다.

“티아, 일단 치료부터 하….”

클라이브가 뒤늦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테니아에게 손을 뻗었다.

탁.

닿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쳐서, 아테니아는 그 손을 쳐 내 버렸지만.

“더… 아, 그, 미안해. 아파서.”

아테니아가 황급히 말을 돌렸다.

하마터면 더럽다고 말할 뻔했다.

욱신거리는 손의 통증이 아니었더라면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터였다.

통증이 머릿속을 차갑게 식혔다.

화병이 무겁지만 않았더라면, 아테니아는 정말로 그것으로 클라이브의 머리를 내리쳤을지도 몰랐다.

이가 아득바득 갈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클라이브와 레이시아의 밀회를 발견했을 때는 도망치느라 분출하지 못했던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감히 나한테 지 내연녀랑 여행 갈 짐을 싸라고?!’

클라이브의 말을 생각할수록, 아테니아의 안에서 불길이 일었다.

클라이브는 점점 더 뻔뻔하고 막 나가고 있었다.

사람이 분노가 도를 넘어서면 이성이 휘발된다는 게 사실이었다.

아테니아는 정말이지 저답지 않게, 화병으로 제 남편의 대가리를 깨 버릴 뻔했으니까.

“라이, 의원 좀 불러 줘.”

더는 클라이브를 보며 표정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아테니아가 굳이 고용인들이 아닌 그의 등을 직접 멀쩡한 손으로 떠밀었다.

“알았어, 빨리 다녀올게.”

다행히도 클라이브는 의심하지 않고 의원을 부르러 가 주었다.

그런 그의 뒤를 노려보는 아테니아의 눈빛이 맹렬했다.

‘…이러다가 내 손으로 저 자식을 죽여 버릴지도 모르겠어.’

아테니아가 이를 꽉 악물었다.

그녀 생에 처음 느껴 본 살의는 대단히 강렬했다.

‘저딴 놈 때문에 내 인생을 망칠 수는 없지.’

피가 흐르는 손을 꽉 쥐자, 아테니아의 이성이 번쩍 돌아왔다.

그래서 그녀는 마침내 결심했다.

무슨 수단을 써서든, 하루빨리 클라이브와 이혼해야겠다고.

***

아테니아가 후작 부인으로서 사교계에 나서기는 했어도, 그녀는 기본적으로 어두운 방면과 얽힐 일이 없는 일반인이었다.

그러니 레이시아와 여행을 떠난 클라이브에게 미행을 붙이려고 해도, 아테니아가 당장 들키지 않고 일을 해낼 수 있을 만한 실력자를 완벽히 구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상단이야 정보가 생명이니, 크리스나 상단을 통했다면 쉬웠겠지만 그녀의 집안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결국 아테니아가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던 셈이었다.

‘시간은 오늘 밤뿐이야.’

아테니아에게는 망설일 시간 따위 없었다.

유부남과 미혼의 여자가 함께 간 단둘만의 여행.

그보다 확실한 불륜의 증거가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그리하여 아테니아는 끝내 발레리안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냥 다시 돌아갈까?’

그러나 정작 발레리안이 머무는 대공가의 타운 하우스 앞에 도착한 이후, 아테니아는 망설이며 오래도록 마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그에게 도움을 구하려면 사정을 설명해야만 한다.

그 사실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어차피 이 마차에 내가 타고 있는지도 모를 테니, 지금 돌아가면 발레리안은 모르는 일이 될 텐데.’

아테니아는 칼스이턴 후작 부인이 빈켄티우스 대공과 얽혔다는 이야기를 피하고자 가문의 문양이 새겨지지 않은 대여 마차를 타고 온 참이었다.

일부러 마차 대여소에 웃돈까지 얹어 주고 제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빈켄티우스 대공의 능력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지나치게 파고들지만 않는다면 아테니아를 제외한 누구도 그녀가 이곳에 다녀갔음을 모를 터였다.

그러나 그런 아테니아의 생각은 금방 깨져 버렸다.

똑똑똑

“아가씨, 대공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공가 타운하우스의 집사가 아테니아가 타고 있는 마차의 문을 두들겨 왔기 때문이었다.

***

발레리안은 이미 제 정체를 외부에 들키지 않고 싶은 아테니아의 속내를 알고 있는 듯 집사를 시켜 그녀를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통로로 안내했다.

덕분에 아테니아는 대공가의 고용인들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응접실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아테니아.”

그리고 아테니아가 들어서자마자, 발레리안은 오래도록 그녀를 기다려 온 사람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아테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했다가, 무릎을 굽히며 인사했다.

“아테니아 칼스이턴이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여기까지 온 주제에 우습겠지만, 구태여 발레리안과의 선을 긋기 위함이었다.

아테니아 칼스이턴.

그도 알고 있을 이름을 굳이 언급하는 것은 그녀의 이름이 아니라 칼스이턴 부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러 달라는 표시였다.

그리고 그런 의도를 곧바로 알아들은 듯 발레리안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앉으세요.”

발레리안이 고개를 돌려 아테니아를 외면하며 자리를 권했다.

아무래도 그녀를 칼스이턴 부인이라고 부를 생각은 추호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테니아는 자리에 앉지 않고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그녀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칼스, 이턴 부인.”

결국 그 침묵 속 싸움에서 진 것은 발레리안이었다.

그의 표정이 조금 전과 상반되게 확연히 굳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그러나 아테니아는 그 사실을 모른 척하며 자리에 앉았다.

아니 그녀는 도리어 안도했다.

발레리안이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면 아쉬운 입장에 있는 아테니아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 안도했음을 깨닫자마자, 그녀는 자신이 싫어졌다.

그래서 아테니아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저는 대공 전하를 이용하러 왔어요.”

이런다고 아테니아가 일방적으로 발레리안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그녀는 말해야만 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아무것도 모른 척 그가 주는 도움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기만이 아니던가.

그러니 아테니아는 최소한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발레리안에게 제 입으로 고해야만 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어요. 그런데… 크리스나에서조차 절 돕지 않아요.”

방금까지는 선을 그어 놓고 순식간에 뒤바뀐 태도가 남들이 보기에는 우스울지도 몰랐다.

그러나 변명하자면, 아테니아를 둘러싼 모든 것이 너무 급격하게 변해 버렸다.

그녀는 그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동시에 본래의 자신을 지키고 싶었다.

어쩌면 욕심이 과한 탓이었다.

“제 가문은 제가 참고 넘어가길 바라요. 칼스이턴과 얽힌 사업, 그리고 남동생의 혼삿길을 위해서요.”

아테니아는 자신이 내뱉는 말들이 발레리안에게 최대한 담담하게 느껴지도록 부단히 애를 썼다.

그래서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일부러 되새기지 않고 저 멀리 밀어 두었다.

그 생각들이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자리 잡는 순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전….”

“알겠습니다.”

발레리안이 문득 아테니아의 말을 끊었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세요. 약속했으니까요.”

발레리안은 마치 아테니아가 더는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소년 시절부터 과묵했던 그로서는 매우 이상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제 앞으로 손수건이 내밀어진 순간, 아테니아는 발레리안이 자꾸만 말을 더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의 노력은 모두 부질없었다.

목이 메지 않기 위하여 자꾸만 침을 삼키는 아테니아를… 발레리안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얼마나 울고 싶은지, 얼마나 무슨 말이라도 내뱉고 싶었는지,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렸는지 같은 것들을, 모조리.

아테니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툭,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 순간 구멍 난 댐은 무너져 내렸다.

아테니아는 무너졌다.

“도와줘요, 발레리안.”

아테니아는 울며 빌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거절한 오랜 날의 첫사랑에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으므로.

***

아테니아와 발레리안은 함께 마차에 올라 있었다.

“…괜찮겠습니까?”

마차에 오른 이후 내내 침묵을 지키던 발레리안이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동안 아테니아는 눈물을 펑펑 쏟아 잔뜩 부은 눈을 얼음으로 겨우 진정시킨 터였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을 때, 가장 좋은 증거가 뭔지 아세요?”

그리고 한바탕 울고 난 아테니아는 아까보다 훨씬 침착해져 있었다.

그녀의 이성은 날카롭고 서늘한 칼날이 되어 누군가를 찌를 준비를 완벽히 마친 뒤였다.

“현장을 잡는 거예요.”

아테니아는 이혼을 결심한 순간부터, 어떻게 해야 가장 유리하게 이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조사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현행법상 사진을 찍더라도 애매하게 같이 붙어 있는 정도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적어도 제 남편과 레이시아의 은밀한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다면 같이 출장을 갔을 뿐이라는 핑계로 쉬이 빠져나갈지도 몰랐다.

아테니아는 이혼 소송을 단번에 끝내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공인 발레리안은 완벽한 증인이 되어 줄 터였다.

그녀 혼자만의 증언이라면 우길 수 있어도, 무려 대공의 증언에 대고 그게 거짓이라 몰아갈 수는 없을 테니까.

발레리안은 더 이상의 말 없이 아테니아를 그저 바라봤다.

그녀는 그 시선을 외면한 채, 마차가 클라이브와 레이시아가 함께 있을 별장에 서자마자 곧바로 내려 버렸다.

‘…준비는 다 끝났어.’

아테니아가 느릿하게 심호흡을 했다.

심장이 불쾌하게 두근거렸다.

이미 이 지역의 치안대에게는 연락해 둔 터였다.

사진기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 멀리, 치안대가 희미한 불빛으로 밤을 밝히며 다가오는 것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아테니아는 입술을 질끈 감고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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