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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식이 끝나고 가벼운 파티가 열렸다. 말이 가볍지, 가문의 규모만큼 화려하고 컸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문제는 손님들이 대부분 돌아간 이후였다.

아델은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였다. 이제 곧 그 시간이 온다. 결혼한 부부가 맞이하는 첫날밤 말이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손이 차갑다. 그런 와중에 루카스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델.”

가까이 다가온 루카스는 서슴없이 아델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워.”

“긴장해서 그래요.”

그 말에 루카스가 가볍게 웃었다.

“뭐예요. 루카스는 긴장되지 않아요?”

“나도 긴장되지.”

루카스는 아델의 손을 들어 심장 부근에 올려놓았다. 차분하지 못하게 쿵쿵 뛰는 심장이 지금 그의 심정을 말해 주고 있었다.

‘루카스도 나랑 똑같구나.’

그러자 긴장이 풀리며 조금씩 체온이 돌아왔다.

“긴장되지만 그만큼 기쁘기도 해. 이제 우리는 완벽한 부부니까. 주제넘게 탐내는 인간들은 줄어들겠지.”

“아예 사라질걸요?”

“설마, 그러기엔 아델, 그대는 너무 매력적인걸.”

“그건 루카스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작게 웃는 아델의 눈가에 루카스가 입 맞췄다. 미지근한 온기가 여린 살을 통해 전해지자 다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이어 루카스는 코에, 뺨에, 입술에 경건하게 입을 맞췄다.

“언제까지나 아껴 주겠다.”

“저야말로요.”

둘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이마를 맞댔다. 이제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방의 불이 꺼지고,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육이 많아 그런지 높은 체온을 가진 루카스는 아델의 몸을 덥혀 주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져 가기만 했다.

루카스는 오랜만에 아침 훈련을 빼먹었다. 아델이 쓰러져서 간호할 때 이후론 처음이었다.

살짝 열린 창가로 스민 바람에 가벼운 커튼이 팔랑거렸다. 혹시라도 그 바람에 아델이 깨어날까, 품속 깊이 끌어안자 아델이 천천히 눈을 떴다.

“잘 잤어요?”

“잘 잤지.”

“저도 평소보다 푹 잔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워, 루카스는 아델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점심은 어떻게 할까?”

“아침은 건너뛰는 건가요?”

“이미 늦은 것 같아서.”

“하긴 그렇죠.”

시답잖은 대화를 하는데도 즐겁다.

앞으로 산재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었지만, 그는 천천히 같이 해결해 나가면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만은 행복을 즐기기로 했다.

둘은 실컷 침대에서 뒹굴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샐러드에 수프, 빵, 잼과 버터, 홍차뿐인 가벼운 식단이었다. 그래도 그걸 먹으니 제법 힘이 솟았다.

그 상태로 다시 침대에 누워 뒹굴었다. 먹자마자 눕는 셈이었지만, 오늘 정도는 자신에게 관대해지기로 했다.

그러다 지치면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 이야기는 루카스의 어린 시절일 때도 있었고, 아델의 과거일 때도 있었다. 또는 론슈카에 대한 이야기나 레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무슨 이야기든 둘이 같이 있으니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되어서야 둘은 방에서 빠져나왔다.

계속 뒹굴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중간중간 식사를 잘 챙겨 먹은 탓인지 얼굴이 반지르르했다.

“엄마아!”

강제로 3일간 떨어져야 했던 론슈카는 아델이 나오자마자 그녀에게 답삭 매달렸다. 반면 레온은 의젓한 표정으로 론슈카의 뒤에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럼 이제 론슈카의 성은 프레데릭인가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건네 온 질문에 아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론슈카도 나도 여전히 도미니크란다.”

보통은 혼인 후에 남편의 성을 따르곤 했으나,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으니. 그건 양쪽 다 한 가문의 가주일 경우였다.

아델도 이제 도미니크가의 정식 후계자였으니, 성은 따르지 않기로 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론슈카가 몰래 루카스에게 혀를 내밀어 보였다.

제법 귀여운 행동이라 화를 낼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도 네가 내 아들인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아빠라고 불러도 좋아.”

그 말에 론슈카가 상한 음식을 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엄마인 아델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못마땅한 듯 단어를 내뱉었다.

“아버지.”

고작 말 한마디에 불과했으나, 론슈카로서는 대단한 발전이었다. 그렇기에 아델은 그런 론슈카를 꼭 끌어안고 이마에 입 맞춰 주었다.

그러자 론슈카는 볼을 발그레하게 붉히곤 몇 번인가 더 루카스를 아버지라 불렀다.

“난 아빠라고 부르는 쪽이 좋다만.”

루카스는 거기서 조금 더 욕심을 냈으나, 론슈카는 거기까지는 용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호칭은 아버지로 고정되었다. 세 사람은 이제 완벽한 가족이 된 것이다.

레온은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그걸 바라보며 허전함을 느꼈다. 가족이 된 셋 사이에 자신도 끼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누나가 있는걸.’

하나뿐인 가족이 이미 있었다. 그러니 더한 걸 욕심내면 하늘에게 벌을 받을지도 몰랐다.

레온은 과거부터 가지고 있던 소망은 곱게 접어 두기로 했다.

* * *

각 가문의 가주이기의 한 명이 다른 쪽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주말 부부가 된 셈이었다.

“그래도 저택 간의 거리는 멀지 않은 편이잖아요.”

“그래도. 나는 아델을 더 오래 보고 싶은데.”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럼 아예 한 달 동안 저택을 따로 하나 더 사서 거기서 머무르는 건 어떨까?”

“일은요?”

“시켜서 나르면 되지. 나르기 힘든 중요한 안건은 잠시 미뤄 두고.”

이 시기에 그래도 될까?

잠시 고민해 보았지만, 아델이 루카스에게 넘어가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도 루카스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 이유로 둘은 도미니크가와 프레데릭가 사이에 있는 저택을 하나 사들였다. 일종의 러브하우스였다.

그리고 그 소문은 빠르게 사교계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소식 아세요? 루카스 경이 아내를 위해 저택을 하나 더 사들였대요.”

“아, 그 장미 정원이 예쁜 저택 말이죠?”

“제법 가격이 나갔을 텐데 역시 프레데릭가네요. 그런 저택을 금방 사들이다니요.”

“아델 님이 부럽네요!”

귀부인들은 둘의 사랑을 가지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부정적이던 둘의 관계가 이제는 찬양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는 속도란 알 수 없었다.

그쯤 아델과 루카스는 처음으로 장미 정원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미 사전 청소를 하고 살 수 있는 준비를 해 둔 상태로 둘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여기 있는 동안은 일 생각은 오래 하지 말기.”

“노력해 볼게요.”

둘은 정원의 입구에서부터 저택까지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한 달 동안 론슈카와 레온은 레이긴이 봐 주기로 했다.

“사실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정세가 좀 더 안정된 뒤여야 해요. 두 가문의 중요 인물이 한 번에 빠져선 안 되잖아요?”

“그게 안타까운 일이지.”

“나중에 괜찮아지면, 그때는 여행을 가도록 해요.”

아델은 안타까워하는 루카스에게 말했다.

“가고 싶은 곳이 있나?”

“눈.”

“눈?”

“눈이 내리는 곳에 가 보고 싶네요.”

제국의 겨울은 눈이 내릴 정도로 춥지 않았다. 그렇기에 눈이 내린 건 기나긴 세월 동안 손꼽을 정도로 횟수가 적었다.

“그리고?”

“바다를 보고 싶어요. 요즘엔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도 유행이라고 하던걸요?”

“그도 나쁘지 않지.”

루카스는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아델을 안아 들었다.

“놀랐잖아요!”

“여기서부턴 이렇게 들어가고 싶어서.”

루카스와 아델이 활짝 열린 저택에 들어서자, 양쪽에 서 있던 시녀가 꽃잎을 뿌렸다.

“축하드립니다!”

“행복하세요!”

축하의 분위기 속에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아델이 루카스에게 물었다.

“이거 루카스가 준비했어요?”

“아니, 키슈와 마들렌이 뭔가 하겠다고 하는 소리는 들었는데.”

아무래도 키슈와 마들렌의 모의인 듯했다. 주인을 향한 충성심도 좋지만 이번엔 좀 과했다.

아델은 끊임없는 축하의 말을 들으며 루카스에게 안겨 2층으로 올라갔다.

“여기가 우리 방.”

“루카스의 방이 아니고요?”

“아니, 우리 방이지.”

원래라면 중간에 벽이 가로막고 있어야 할 부분이 휑하다. 아무래도 치워 버린 모양이었다.

“이래도 괜찮겠어요? 개인 시간이 사라질 텐데요.”

“그거야말로 원하던 바지.”

“제가 벗은 몸을 훔쳐보면 어쩌려고요?”

“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보도록 해.”

루카스는 태연하게 말하며 옷깃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대로라면 지금 당장 옷을 벗고 침대에 뛰어들 분위기인지라 아델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오자마자 침대에 눕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일단 차부터 마시자.

할 일은 그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으리라. 저기서 늑대같이 눈을 빛내는 남자와 함께 말이다.

아델은 찻잔을 집어 들며 몸을 쭉 뻗었다.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남은 것은 행복뿐일 것이다.

그 사실이 눈물겹도록 기뻤다.

『내 아이는 악역입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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