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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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해독제를 먹고, 누워 있는 동안 아델은 루카스에게서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듣기론 그전에도 내내 머물렀다고 했는데, 그래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곧 아만다가 황제 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 그녀를 도왔던 가문들도 바빠질 수밖에 없을 텐데.

[일은 괜찮아요?]

아델은 루카스의 손을 끌어다 그 위에 글씨를 썼다. 해독하긴 했지만, 당시에 기도가 상했기에 당분간 말하는 건 자제하라 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급한 일은 키슈가 여기까지 가져다주고 있거든.”

그 말에 아델의 눈이 동그래졌다. 프레데릭가의 일을 도미니크가에 와서 해결하면 안 되지 않은가!

[그런데 일하는 건 본 적 없는데요.]

“그대가 잠든 사이에 하고 있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지 마!

쏟아지는 사랑에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루카스는 그 정도로 자신을 좋아하는 걸까.

아델은 반대로 루카스가 쓰러질 때 자신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아, 별로 다르지 않을지도.’

자신도 똑같이 굴 것 같았다. 그러니 루카스가 간호하는 걸 얌전히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 결심을 한 지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아델은 후회하게 되었다.

‘땅에 발이 닿질 않아!’

말 그대로였다. 이제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루카스에게 저지당했다.

“어디 가려고?”

[그냥 잠시 방을 걸어 보려고요.]

“아직 아프잖아. 걷는 건 위험해.”

루카스는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는 아델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창가로 데려가 바깥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부끄럽긴 하지만 방 안에서의 일이었고, 보는 사람이라곤 대기하고 있던 의원의 제자 한 명뿐이었으니까.

거기서 뭔가 더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원에서 산책하고 싶어요.]

방에서 걸어 보려 했지만, 루카스가 방해했다. 하지만 그도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인 만큼 정원에서까지 안아 들고 걸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내질러 보았다.

“그래, 그럼 잠시만.”

그러고는 루카스는 아델을 안아 든 채 방 밖으로 나갔다.

‘이게 아닌데?’

당황하여 도로 들어가자고 하지도 못했다. 루카스는 저택의 사람들이 바라보는데도 당당하게 밖으로 나가 아델을 안은 채 정원을 돌았다.

‘산책은 자기 발로 걷는 거예요!’

아델은 두 손으로 빨개진 얼굴을 가리고 속으로 외쳤다.

“힘들어?”

루카스는 정원에 있는 벤치에 아델을 앉혀 주었다.

‘힘들긴 뭐가 힘들어!’

내내 안겨 다녔는데 피곤할 리가 있나. 아니, 정신적으로는 좀 피곤한 것도 같았다.

아델은 벤치에 앉아 잘 꾸며진 저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래도 바깥바람을 쐬는 건 나쁘지 않은 듯했다.

어느새 슬그머니 옆에 앉은 루카스가 손을 잡아 왔지만, 그도 괜찮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 남자 너무나도 귀엽게 보인다.

아델은 루카스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상태로 잠시 바람을 쐬다가 다시 루카스에게 안겼다.

그런 후 정원 구석구석을 누볐는데, 그 와중에 아버지인 레이긴과 마주치기도 했다.

“아델?”

레이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델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론슈카에게 들키진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들켰다가는 루카스를 태우겠다고 난리 칠지도 모르는 일이었…….

“엄마?”

세상은 아델을 돕지 않았다. 중간에 론슈카도 만나 버리고 만 것이다.

아델은 론슈카가 웨더필드가에 수업하러 가는 날이라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엄마가 걱정된 아이는 수업을 쉬었다!

론슈카의 사나운 시선이 루카스를 훑었다. 그렇지만 어쩐 일인지 아이는 평소처럼 날카로운 말을 내뱉지 않았다.

“떨어트리지 않게 조심해요.”

“물론이다.”

그러고는 아델과 루카스를 따라다니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내가 쓰러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쩐지 둘의 사이가 더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정원 산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몸은 괜찮은데 정신적으로 지쳤다.

‘역시 침대가 최고야!’

그래도 몸 상태만 더 나아지면 루카스도 안고 다니는 걸 그만두겠지. 지금은 쓰러졌을 때의 불안과 겹쳐 그러는 것뿐이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그렇게 생각해 보려고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아만다의 황제 즉위식 날이 되었다.

이쯤 되니 아델도 혼자서 걸을 수도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의원은 회복이 빠르다고 놀랐지만, 거기에는 루카스와 레이긴의 노력도 들어가 있었다. 몸에 좋은 거라면 뭐든 공수해 와서 음식에 넣었으니 말이다.

몇 가지는 정말 괴상한 것이라 먹기 괴로웠다. 거부해 보려고 했지만, 거부는 거부당했다.

루카스는 어미 새처럼 음식을 퍼서 아델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입술을 벌리지 않고 버텨 보았지만, 루카스는 이미 아델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옆구리를 살짝 찌르면 간지러워 입을 연다는 것을 알자 식사 내내 아델의 허리에 손을 얹고 있었다.

결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보양식을 해치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즉위식에선 그럴 수 없겠지.’

거기는 엄연한 사교의 장이다. 잘못 행동했다가는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었다. 루카스도 그건 아니까 과한 행동은 하지 못할 것이다.

“아델, 준비는 끝났나?”

“네, 준비를 끝내셨습니다.”

아직 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아델을 위해 시녀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루카스가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와 아델을 곱게 안아 들었다.

“혼자서 걸을게요.”

아델은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루카스가 반발했지만, 아델은 눈빛으로 애원했다.

‘제발, 제발 이번엔 걸어서 갑시다.’

눈빛이 통했는지 루카스는 아델의 의견을 들어주었다.

에스코트하긴 했지만, 정원을 산책할 때처럼 덥석 안아 들지는 않았다. 즉위식 만세였다!

얼마 만에 제 발로 걸어 보는 것이던가. 아델은 마음껏 자유를 만끽했다.

‘자, 그럼 가 볼까?’

즉위식은 황궁 내에 위치한 작은 궁에서 신관을 초대하여 이루어진다. 그 탓에 작위가 낮은 이들은 안에 전부 들어가지 못해 바깥에서 소리만 들어야 했다.

‘그냥 큰 곳에서 하면 해결되는 것을.’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선을 가르고 있었다. 이것도 고치려면 고칠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는 손댈 생각이 없었다.

마차가 황궁에 다다르자, 아델은 루카스의 도움을 받아 우아하게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제법 긴 길을 걸어 작은 궁에 도착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루카스는 내내 아델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봤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잘 걷는 걸 봤으니 이제 쉽게 안아 들지는 못할 것이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오르는데, 그만 발을 삐끗하고 말았다. 몸이 뒤로 무너지는 것을 루카스가 얼른 잡아 주었다.

“역시 아직 무리인 것 맞잖아.”

루카스가 그리 말하고는 익숙하게 아델을 안아 들었다. 안기지 않으려고 반항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이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도 부끄럽다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릴 수는 없었다.

아델은 최대한 뻔뻔한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이 루카스에게 안겨서 들어갔다. 루카스는 아델을 의자에 앉히고 나서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발목을 살폈다.

사교계에 소문나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이러는 걸 뭐라고 생각할까.’

아마 뒤쪽에서는 제법 후끈한 말이 오갈지도 몰랐다. 어쩐지 울고 싶어졌다.

“어머, 저길 보세요.”

“세상에. 루카스 님이 지금 저분을 안아 들고 들어오시는 거예요?”

“몸이 좋지 않다고는 들었는데, 그 때문인가 봐요.”

“아유, 보통은 몸이 좋지 않다고 해도 저 정도는 하지 않아요. 수치심도 없으신가 봐요.”

“그러게요. 그런데 저리 당당하신 걸 보니 나쁘진 않아 보이네요. 제 남편은 저렇게 안 해 주려나.”

귀부인들은 둘을 보며 소리 낮춰 대화를 나누었다.

“그보다 그거 알아요?”

“뭘요?”

“루카스 님이 아델 님을 간호하겠다고 이 주 넘게 도미니크가에 머무는 거요.”

“세상에. 정말 푹 빠지셨네요.”

“부럽네요.”

대화를 나누는 건 귀부인뿐만이 아니었다.

“설마 루카스 경이 저렇게까지 변할 줄이야.”

“사랑이란 무섭군요.”

“그러게.”

남자들도 여자 못지않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은 아만다의 즉위식 날이었으나, 루카스의 행동으로 인해 시선이 그리로 쏠려 버렸다.

그때, 커다란 종소리가 열두 번 울렸다.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낸 아만다는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뎌 안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가장 높은 단 위에 서 있는 대신관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앞에 도착한 아만다는 짧은 절차를 거친 뒤에 옆에 선 다른 신관이 건네주는 홀과 왕관을 받아 들었다.

“오늘 신의 도움으로 새로운 황제가 탄생했습니다.”

그 부분에서 아만다의 입술이 미묘하게 기울었지만, 그를 본 사람은 아델밖에 없었다.

“모두 축복해 주십시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박수가 쏟아져 내렸다.

이때만은 귀족들도 체면을 벗어던지고 최대한 큰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소리의 크기가 황제에 대한 지지를 표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만다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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