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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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루카스는 자신이 말한 바를 지켰다. 파티에서 아델에게 청혼하겠다는 이야기 말이다.

‘뭐가 이리 급한 건지.’

아델은 걱정을 하면서도 가끔 실실 웃음을 흘렸다. 루카스가 이러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럼 이날은 무슨 옷을 입고 가야 하지?’

뒤늦게 든 생각에 아델은 종종걸음으로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 * *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손가락을 까닥거리던 셀렉시온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여성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말해 보거라.”

“네, 최근 아만다 님이 티파티를 여셨는데, 거기에 도미니크가의 사람이 왔습니다.”

“도미니크가의 사람이라면 아델, 그녀를 말하는 거겠군.”

“그렇습니다. 다른 영애들은 티파티가 끝난 다음에 돌아갔으나, 그녀만은 남아서 황녀님과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야기 내용은 알고?”

“거기까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성, 아만다의 시녀는 다급히 잘못을 빌었다.

“요즘 경계가 심해지셔서 원래 데리고 있던 시녀가 아니면 곁에 두지 않으려 하십니다.”

“그래, 그렇겠지.”

셀렉시온은 피식 웃었다. 아만다가 생각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만다가 많이 대담해졌구나. 그렇지 않나?”

셀렉시온의 말에도 뒤에 서 있던 호위 기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황제를 모시고 있다고 하나 상대도 황녀였기에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재미없긴. 황족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래도 저는 함부로 말을 얹을 수 없습니다.”

“어차피 너는 나의 호위 기사잖아?”

“그렇기에 더더욱 폐하의 명성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래. 고지식한 녀석.”

둘이서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시녀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일단 너는 돌아가고.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가지고 와라.”

“네, 감사합니다!”

시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났다.

“자, 그럼 아켄 경.”

“네.”

“아만다가 반역을 일으킬까?”

어린 시절의 아만다는 소심하고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였다. 그랬기에 셀렉시온도 그녀를 살려 둔 채 심심풀이로 괴롭히기만 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성장해서 귀찮은 벌레가 되었다.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거슬리게 하는 게 딱 벌레였다.

“어때?”

셀렉시온의 물음에도 아켄은 침묵을 지켰다.

잘못 대답했다가는 아만다는 이대로 반역자가 돼 버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나라의 왕과 결혼할 아만다에게 그건 너무 잔혹한 일이 아닐까?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는군.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셀렉시온은 투덜거리며 말했다.

“좋아. 그럼 동전으로 결정하는 건 어떨까?”

“동전 말입니까?”

아켄은 순간 들려온 셀렉시온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 이런 중요한 일을 어린아이 장난 같은 동전 뒤집기로 해결하겠다고?

“그래, 동전.”

셀렉시온은 히죽거리며 시녀를 시켜 금화를 가져오라 일렀다.

“앞은 반역, 뒤는 그대로.”

어느 쪽이건 아만다에게는 좋지 못한 것이었다.

“폐하, 중요한 일을 그런 걸로 결정하셔서는 안 됩니다.”

“내가 황제인데 안 될 게 있나?”

그리 말한 셀렉시온은 그대로 금화를 던져 올렸다.

* * *

차갑게 불어온 바람이 아델의 드러난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때문인지 몸에 소름이 돋았다.

“숄이라도 걸치고 올 걸 그랬나.”

아니면 마차의 문을 닫아 놓든가 할 걸 그랬다. 오늘따라 유독 바람이 차다.

아델은 어깨를 문지르며 마차에서 내려섰다. 그러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루카스가 그녀를 보며 웃었다.

“그대에겐 하늘색도 잘 어울리는 것 같군.”

오늘을 위해 아델은 평소에 자주 입던 색이 아닌 다른 색의 드레스를 골라 보았다.

처음에는 하얀색으로 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아서 좀 더 짙은 색을 골랐다. 짙다고 해도 맑은 하늘과도 같은 색이었지만, 의외로 제법 괜찮았다.

‘루카스도 많이 뻔뻔해졌어.’

이제는 찬사가 쉽게 나오는 모양이었다. 아델은 루카스에게 칭찬 몇 마디를 더 듣고 파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파티의 주인이 이렇게 에스코트하고 있어도 돼요?”

“주인 노릇을 하는 것보단 에스코트하는 쪽이 훨씬 좋은걸?”

루카스는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조심스럽게 아델을 이끌었다. 프레데릭가는 여전히 놀랄 만큼 커다란 저택을 자랑했다.

입구에 서자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둘의 이름을 불렀다.

“루카스 드 프레데릭 님과 아델 드 도미니크 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우렁찬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몰렸다. 바야흐로 파티의 시작이었다.

루카스는 몰리는 사람을 물리치고 처음 말했던 대로 아델과 춤을 추었다. 그리고 한 곡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미리 준비해 둔 로델리 꽃을 아델에게 내밀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드디어 청혼하시는 건가요?”

“어머, 진짜로요? 파혼하지 않으셨던가요?”

“그건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그리하신 모양이에요.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진 거죠.”

파혼할 당시만 해도 아델은 평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아델은 도미니크가의 어엿한 후계자가 되었다.

“그 말은 공작가에 들어가기에 충분한 작위를 가지게 되었단 소리죠.”

그 말에 다른 귀부인들은 이해가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남성들도 별다르지 않았다.

“아아, 이렇게 좋은 혼처 하나가 날아가는 거군.”

“뭐야, 자네 설마 도미니크가를 노리고 있었나?”

“조건이 제법 좋잖아.”

“그야 그렇지만. 아이가 있지 않은가.”

“그걸 고려하고도 좋아. 게다가 보다 보면 그녀도 제법 예쁘거든.”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은 연신 떠들어 댔지만, 그 소리는 아델에게 닿지 않았다. 아델의 신경은 모조리 바로 앞에 있는 루카스에게로 향해 있었다.

“아델, 저의 청혼을 받아 주십시오. 로델리 꽃에 맹세코 당신을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울컥 눈물이 터져 나올 뻔했다. 아델은 눈가를 꾹 눌러 눈물을 참고는 앞으로 손을 내밀어 로델리 꽃을 받아 들었다.

그저 하얀 꽃 한 송이. 그러나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청혼을 받아들이겠어요.”

그 말과 동시에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와, 저 친구 드디어 결혼하는군.”

박수의 시작은 아스펜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염되듯 퍼져 나갔고, 나중에는 체면을 중요히 여기는 이들마저 손뼉을 쳤다. 누가 봐도 완벽한 청혼의 순간이었다.

이후 아델은 다시 한번 루카스와 춤을 추었고, 발코니에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날만은 다른 사람들도 루카스를 찾지 않았다. 원래 청혼한 날은 각별한 법이니 말이다.

“이제 더는 다른 사람이 그대를 노리지 못하겠군.”

“노리는 사람도 별로 없었거든요?”

“청혼서가 그렇게 많은데?”

“그건 다 제 재산을 보고 그러는 거고요. 진심이 담기지 않았으므로 세지 않을래요.”

“뭐, 이제는 상관없나. 그대는 나와 결혼할 거니까.”

루카스는 아델의 손을 들어 올려 손등에 입 맞췄다.

“손등에만요?”

“그럴 리가 있나.”

루카스는 아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델은 숨을 몰아쉬며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끈덕진 키스에 숨은 부족해졌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이후엔 미리 준비된 샴페인을 마시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소소한 이야기로 시작되었으나, 나중에는 결혼식 준비에 관한 이야기로 번져 나갔다.

행복한 밤이었다.

* * *

“아만다 님! 아만다 님! 일어나세요!”

“으음, 왜 그래?”

아만다는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앞에 선 시녀의 얼굴을 보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마치 유령을 보기라도 한 사람처럼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폐하, 폐하께서 기사단을 보냈어요!”

“기사단을? 왜?”

잽싸게 가운을 걸친 아만다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녀의 궁 앞에는 황제의 기사단이 서 있었다.

황녀 궁을 지키는 이들이 막고 있긴 했지만, 그도 곧 뚫릴 것 같았다. 타오르는 횃불에서 불길함이 느껴졌다.

“황녀 아만다는 들어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역을 일으킨 죄인으로서 당장 나와서 폐하의 명을 받들어라!”

그 목소리는 아만다를 반역자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반역자? 내가?’

물론 오라버니인 셀렉시온을 끌어내릴 생각을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한 것이라고는 아델과 만나 의견을 교환한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철저한 준비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내부에 고발자가 있구나.’

그를 대비해서 원래 데리고 있던 시녀 외의 사람은 멀리했는데, 소용없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원래 아만다를 모시던 시녀 중 하나가 배반한 걸지도 모른다.

그때 문이 덜컥 열렸다. 그리고 리사가 뛰어 들어왔다.

리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아만다에게 시녀복을 건네고, 기다란 로브를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드레스 룸에서 가져온 듯한 드레스를 자신이 입었다.

“도망치세요, 아만다 님. 지금 잡혀서 죽기라도 하면 모든 게 끝나요.”

“리사!”

지금 리사는 아만다를 위해 희생하려는 것이다.

“안 돼, 리사도 같이 도망쳐!”

“누군가 시선을 끌 사람이 필요해요. 마침 저희는 머리 색도 같으니 제가 시선을 끌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만다 님, 이성적으로 생각하세요.”

리사는 냉정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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