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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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그 소문 들었어요?”

“무슨 소문이요?”

“마이어 남작님이 이번에 노예를 들이셨대요.”

“노예를요? 뭘 하려는 걸까요?”

짐짓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자 처음에 말을 꺼낸 영애가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늘어놓았다.

“보나 마나 뻔하죠. 음흉한 짓을 하려는 게 틀림없어요. 마이어 남작님은 그런 쪽으로 유명하잖아요?”

“그런 쪽이요?”

영애들은 낮은 목소리로 비밀스러운 대화를 즐겼다. 그리고 아델은 그 옆에서 그 대화를 들으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제국은 노예 제도가 금지 아니던가요?”

근본적인 의문에 이야기를 나누던 영애들의 시선이 아델에게로 향했다.

“노예 제도는 금지긴 하죠. 하지만 금지라고 해서 사람들이 아예 안 하겠어요? 물밑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어요.”

바로 앞에 황실의 사람이 있는데도 영애들은 입을 멈추는 법이 없었다. 그 말은 이 모든 걸 아만다가 허용하고 있단 소리였다.

‘이런 식으로 정보를 수집하나.’

아델은 새삼 아만다를 다시 보았다. 루카스를 좋아하는 황녀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상 더 큰 걸 목표로 하는 모양이었다.

티파티는 약간의 수확을 남기고 끝났다.

‘제법 괜찮았어.’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영애들과 함께 돌아가려는데 시녀 한 명이 아델에게 다가왔다.

“아만다 님께서 따로 뵙기를 원하십니다.”

“저만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후 시녀는 아델을 다른 장소로 안내했다. 황녀가 머무는 궁의 접대실이었다.

방도 밝고 유독 큰 창문 너머로 정원이 보이는 탓에 불안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 말은 몰래 이야기를 나눌 공간 같지 않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델 양.”

조금 지나서 나타난 아만다는 부드러운 얼굴로 이야기를 꺼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남으라고 했어요, 아델 양. 이번 영지전을 거치면서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나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걸까요?”

“과거 패트릭 공작가를 무너트렸던 이들이 너무 쉽게 무너졌던 일이요.”

확실히 그렇긴 했다. 과거에 패트릭 공작가를 무너트렸던 것치곤 세 가문은 쉽게 무너져 내렸다.

‘황제 때문이지, 뭐.’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황제의 도움이 있었는가와 없었는가다. 그걸 알고 있기에 아델은 태연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아델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만다는 주변을 조심스럽게 둘러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폐하가 있어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긴 하지만, 그걸 아만다가 직접 말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델은 몸을 좀 더 기울이며 아만다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걸 저에게 이야기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일의 원흉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말해 주는 것 말인가요?”

“네.”

“그야 뻔하지 않겠어요? 당신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지요.”

“왜냐하면 그게 황녀님께도 이득이 되니까요?”

“맞아요.”

아만다는 몸을 바로 세웠다.

“폐하께서는 나를 다른 나라로 보내려 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유학이 아니에요. 저보다 나이 많은 왕의 아내로 가야 하는 거죠. 아직 이야기가 많이 진척되고 있진 않지만, 이대로 두면 제 인생은 뻔해지겠죠.”

거기서 아만다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저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 건가요?”

“알아요, 내가 어떻게 보일지는.”

아만다는 루카스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아델이 눈엣가시일 터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니. 그만큼 절박하단 소리였다.

아만다는 씁슬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내 마음이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흔들리더라고요.”

아만다는 아직도 루카스에게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포기하기로 했다. 황제를 끌어내리는 데 필요한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 아델이었으니까.

‘늙은 왕의 두 번째 아내가 되느니, 사랑을 포기하고 권력이라도 잡겠어.’

그게 아만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적어도 상대가 무난하기만 해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이번 일에서 황제인 셀렉시온의 악의를 느꼈다.

그래도 같은 배를 타고 태어난 남매였는데, 셀렉시온은 그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내내 괴롭혀 오지 않았을 터였다.

“우리 서로를 돕기로 해요.”

아만다의 말은 제법 매력적이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가진 세력은 너무나도 작았다. 그런 그녀를 도와서 황제의 자리에 올릴 수 있을까? 아델은 조금 회의적이었다.

“저에게는 폐하가 지금까지 저질러 온 일들에 대한 정보가 있어요. 노예 제도를 어기고 물밑으로 노예를 거래하는 것도, 전부 폐하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패트릭 공작가가 무너지는 데도 황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외에 다른 가문에도 황제의 손길은 닿아 있었다.

“폐하가 망가트린 건 패트릭가가 전부는 아니지요.”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어느 가문이건 서슴없이 망가트렸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과정에서 죽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만다가 용케도 빼돌려 둔 사람이었다.

“그러니 손을 잡아요.”

아만다는 끈덕지게 아델을 설득했다.

“고려해 보도록 할게요.”

당장 아델이 할 수 있는 답은 그게 전부였다. 이건 다른 사람들과도 의논해 봐야 하는 일이었다. 아만다도 그건 알고 있는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최대한 빨리 생각해 보고 알려 주세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요.”

그걸 끝으로 아델은 황녀 궁을 나서서 바로 앞에 있던 마차에 올랐다.

‘뜻밖의 소득이네.’

아만다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도움을 받는다면 황제를 끌어내리는 게 더 쉬워지리라. 조만간 다른 이들과 만나서 이에 관해 이야기해야만 할 것 같았다.

* * *

론슈카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부를 빨갛게 물들였던 화상 자국이 사라지고 매끈한 피부가 되었다. 그러고 나니 한결 편해졌다.

더는 그 부분이 당기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게다가 더 귀여워진 느낌도 들었다.

‘엄마가 좋아했지.’

아델은 도미니크가로 돌아오자마자 론슈카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그러고는 매끄러워진 부분을 쓰다듬으며 다행이라 하였다.

‘엄마가 좋으면 나도 좋아.’

그렇기에 론슈카는 사라진 상처가 기꺼웠다.

‘그나저나 정령왕을 부르면 이런 일까지 할 수 있구나.’

아이카는 수많은 제물을 이용하여 정령왕을 불렀다. 제물이 아니었으면 아이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걸 아는데도 정령왕을 한번 만나자 욕심이 일었다.

“나도 부르고 싶어.”

많은 제물을 들여 일시적으로 부르고 싶은 게 아니다. 언제나 원할 때 정령왕을 부를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그러자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곳은 웨더필드가였다.

“그래도 거긴 엄마가 싫어하는데.”

론슈카는 고민에 잠겼다.

엄마가 싫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더 강해지고 싶다. 정령사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진 곳은 그곳뿐이었다.

한참 고민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론슈카.”

엄마였다. 론슈카는 거울을 보던 걸 그만두고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오늘은 뭐 하고 지냈니?”

“오전에는 공부를 했어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공부였지만, 필요한 걸 알기에 얌전히 따랐다.

“그럼 오후에는?”

“엄마를 만났죠!”

론슈카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렇네. 그럼 같이 저녁 먹을까?”

“좋아요!”

론슈카는 아델의 손을 잡았다.

저녁 식사는 언제나처럼 훌륭했다. 예전에는 감자 한 조각 먹기 힘들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그런데 론슈카, 엄마한테 할 말이라도 있니?”

최대한 감춘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힐끔거린 모양이었다.

론슈카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엄마가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은 전부 하라고 했으니까. 괜찮을지도 모른다.

“웨더필드가에 가끔 가도 될까요?”

그 말에 아델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웨더필드가에?”

“딱히 헤이른을 만나고 싶은 건 아니고요.”

“헤이른 님이라고 해야지.”

“네, 정령술을 더 깊게 배우고 싶어요.”

론슈카는 하고 싶었던 말을 하였다.

“그렇니?”

“네! 정령왕을 불러 보고 싶어요!”

“정령왕을? 그럼 어쩔 수 없겠네. 엄마가 웨더필드가에는 말해 둘 테니, 배우러 가렴.”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사실 아델로서는 조금 난처한 부탁이긴 했지만, 론슈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과거에 아이에게 해 주지 못했던 것을 다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웨더필드가와는 완전히 연이 끊길 줄 알았는데.’

로잘린과는 가끔 만나겠지만, 헤이른은 다시 볼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만 론슈카가 정령술을 배운다면, 인사 정도는 해 둬야 하리라.

아델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웨더필드가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주에 두 번, 론슈카를 웨더필드가로 보내.」

헤이른은 놀랍도록 흔쾌하게 론슈카를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다. 거기에는 어떤 조건도 걸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아이의 일이 해결되자, 아델은 곧바로 아버지인 레이긴에게 아만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네,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손을 잡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황녀님은 한 입으로 두말하는 분은 아니시지.”

아만다에 대한 평가는 아델보다 레이긴이 더 확실히 내릴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아델은 레이긴의 말을 믿기로 했다.

이제 레이나와 루카스에게 관련 사항을 전달할 순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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