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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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두 번째 만남 또한 웨더필드가에서 이루어졌다. 이번에도 명목상으론 아이들의 모임이었기에 론슈카와 동행했다.

“먼저 이걸 받아.”

헤이른은 아델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무언가 하고 받아 보니 광산과 땅의 권리서였다.

“이건 뭔가요?”

뭔지 알 수 없어 물어보니 태연한 답이 돌아왔다.

“론슈카에게 물려줄 재산.”

“이래도 론슈카는 웨더필드가에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그건 알고 있어. 그냥 아버지로서 주고 싶은 거야.”

그 말에 숨이 턱 하니 막혀 왔다. 헤이른은 과거 자신의 잘못을 보상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델은 뭐라고 한마디 해 주려다가 헤이른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헤이른은 후회가 서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냥 밉기만 한 사람이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앙금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물론 앙금이 풀리는 것과 그가 건네주는 재산을 받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이건 받을 수 없어요.”

“혹시 웨더필드가와 얽힐 걸 걱정하는 거라면 괜찮아. 모두 내 개인 재산이다. 받아 가도 뭐라 할 사람은 없어.”

헤이른의 말에도 아델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물건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세요.”

“행동?”

“론슈카에게 직접 말해 주세요. 그동안 미안했다고, 후회한다고.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그걸 원해요.”

아델의 말에 헤이른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랬군. 당신의 말이 맞아. 론슈카에게 사과를 할 생각을 못 했네.”

“지금이라도 하면 되죠.”

“그렇지.”

헤이른은 답을 하며 다시 서류를 밀어 주었다.

“사과와는 별개로 이것도 받아 둬. 도움이 될 거야.”

아델은 끝끝내 거절하려고 했지만, 헤이른의 고집은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두 번째 만남은 끝났다.

세 번째 만남 전. 아델은 루카스와 데이트 약속을 하였다.

위치는 상점가. 모처럼 화사하게 차려입은 아델은 루카스와 함께 그 길을 거닐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헤이른이 론슈카와 단둘이 만나는 날이라고 했지?”

“네.”

“불안하지 않아?”

“불안하죠.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판단했어요.”

헤이른을 위해서가 아니라 론슈카를 위해서 말이다.

론슈카는 어려서부터 많은 고생을 하며 자라 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헤이른에게도 있었다. 아델은 둘을 만나게 함으로써 론슈카가 좀 더 편해지길 바라고 있었다.

“카이가 지켜보겠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원래라면 저도 지켜보고 싶었지만, 헤이른이 부탁했어요. 둘만 있게 해 달라고.”

“속셈이 있는 건 아니고?”

“아닐 거예요.”

아델은 그리 말하며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제가 변했듯이 그도 변해 가고 있으니까요.”

“그렇군. 그러면 믿고 기다리자.”

“네.”

“그나저나 제법 걸었으니, 잠시 카페에서 쉬다 갈까?”

“저는 좋아요.”

그렇게 둘은 카페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그 시각, 헤이른은 론슈카와 마주하고 있었다.

만난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둘 사이에서는 어떠한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

론슈카는 굳이 입을 열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손가락으로 정령을 가지고 놀았다. 헤이른은 그런 론슈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재능이 뛰어나.’

론슈카는 역대 가주 중에서도 재능이 뛰어나기로 손꼽히는 헤이른보다 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만큼 탐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내 핏줄이지.’

만약 그때 아델에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지금 상황은 달라져 있었을까.

‘달랐겠지.’

제 옆에는 아델이 서 있었을 테고, 론슈카는 자신을 아빠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게 안타까웠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델은 이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마지막 남은 미련마저도 털어 낸 모양이었다.

론슈카는 헤이른을 아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론슈카.”

이름을 부르자 론슈카가 고개를 들었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뭔데? 론슈카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굳이 입을 열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헤이른은 그런 론슈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론슈카는 헤이른이 다가오는 만큼 뒤로 물러났다.

“해치지 않아.”

“알아요. 그리고 설사 해치려 든다고 해도 쉽게 당하지는 않아요.”

론슈카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럼 뒤로 물러나는 건 단순히 헤이른과 가까이하기 싫어서란 소리가 된다.

“그래, 그럼 떨어져서 이야기하마. 론슈카, 그동안 미안했다.”

“뭐가요?”

“너와 네 엄마를 버린 일 말이다. 그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지.”

헤이른의 말에 론슈카가 답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왜?”

“싫어하는 사람에게 사과받고 싶진 않으니까요.”

똑 부러지게 말하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괴롭다.

“이런다고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그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사과를 해요?”

“하고 싶으니까.”

“자기 마음 편하려고?”

“그럴 수도 있겠지.”

헤이른은 순순히 수긍했다. 그나마 아델은 말을 가렸는데, 론슈카는 어려서 그런지 가리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를 미워하는 건 알고 있다. 그러니 나에겐 그렇게 대해도 괜찮아.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주의해야 한다.”

헤이른은 처음으로 아빠로서 론슈카에게 충고해 주었다.

“속내를 감춰라. 웃으면서 송곳을 숨겨. 그리고 찌를 기회를 노려라.”

그제야 내내 시선을 마주치지 않던 론슈카가 고개를 들어 헤이른을 바라보았다.

“사교계는 어린애라고 봐주지 않으니까.”

“알았어요. 기억해 둘게요.”

그게 대화의 끝이었다. 사과는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이 기회를 이렇게 날려 보내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황을 이렇게까지 악화시킨 건 전적으로 헤이른, 그의 잘못이었으니까.

* * *

카페에서 차와 가벼운 디저트를 주문한 아델과 루카스는 창을 통해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델, 론슈카가 과연 헤이른의 사과를 받아들일까?”

“글쎄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만나게 해 주었지?”

“론슈카가 자랐을 때, 그래도 사과 받은 적이 있다는 기억을 남겨 주고 싶었어요. 없는 것보단 훨씬 나을 테니까요.”

“그렇군.”

“그런 거죠.”

둘은 잠시 흐르는 강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그대도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맞아요. 할 말이 있어요.”

아델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둘이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선 이건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속 감추고 있을 수만도 없지 않은가.

“저번에 저를 믿겠다고 했죠?”

“그랬지.”

“그럼 어떤 말을 해도 믿어 줄 건가요?”

“당연한 소리를.”

“루카스.”

아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전생을 기억한다면 어떡할래요?”

“전생?”

“네, 전생. 원래의 저는 나쁜 여자였어요. 혼자만의 슬픔에 허덕이며 론슈카를 방치했죠.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그런 상황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요, 그래도 전 론슈카의 하나뿐인 가족이었어요. 그렇게 해선 안 됐어요.”

“지금은 달라졌잖아. 너무 자책하지 마.”

“맞아요. 달라졌죠.”

고개를 든 아델은 말을 이었다.

“왜 달라졌을까요?”

“전생을 기억해서?”

루카스의 말에 아델이 희미하게 웃었다.

“맞아요. 제가 남들이 알 수 없는 정보를 알고 있는 것도 전생을 기억해서예요.”

“그게 가능한가?”

전생이란 지금 태어나기 전의 자신이다. 그때 어떤 존재였기에 환생 후의 정보를 알 수 있단 말인가. 루카스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건 지금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들어 줄래요?”

“물론이지.”

전생의 아델은 평범한 직장인 여성이었다. 주말에는 좋아하는 소설이나 만화를 보며 뒹굴뒹굴하는 소박한 취미를 가진 여성.

그중에는 특별히 좋아하는 소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소설 속에서 그녀는 론슈카란 캐릭터에 특별히 애정을 가졌다.

“그럼 여기가 소설 속 세상이란 말인가?”

“음, 저는 그걸 조금 다르게 생각해 봤어요.”

“어떻게?”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때로는 다른 세계를 엿보는 사람이 있고, 그 엿본 기억으로 소설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요. 저는 이곳이 단순히 소설 속의 세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신기한 이야기로군.”

“그렇죠. 신기한 이야기죠. 믿기지 않을 만큼.”

아델은 슬쩍 루카스의 눈치를 봤다. 과연 그는 자신의 말을 믿어 주는 걸까.

“나는 믿어.”

그런 아델에게 루카스가 말했다.

“아델은 지금까지 거짓말을 하진 않았으니까. 그 말은 사실이겠지. 그러면 이 소설의 끝은 어떻지?”

“행복한 끝은 아니었어요.”

주인공인 레온 기준으로는 해피엔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론슈카와 루카스 기준으론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루카스는 론슈카에게 살해당하고, 론슈카의 인생은 내내 불행했으니까.

“그럼 지금은?”

“행복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죠.”

레온은 가문을 되찾았고, 복수를 거의 다 했다. 론슈카는 더 이상 불행한 아이가 아니다. 그리고 루카스는 이제 죽을 염려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루카스의 말에 아델은 안심했다. 자신의 말을 믿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든든한 일이었다.

“믿어 줘서 고마워요.”

“천만에.”

루카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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