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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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패트릭가의 저택에 다녀온 후, 며칠이 지났다. 그러나 론슈카가 내보낸 정령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소멸되거나 상처를 입고 정령계로 돌아간 건 아니었다.

그 말은 정령을 붙여 놓은 사람이 도미니크가의 저택 근처에 있다는 소리였다. 패트릭가에서 여기까지 따라온 사람이라니, 수상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까?”

론슈카는 방 안에서 살며시 눈을 감으며 정령의 속삭임을 들었다.

[그는 지금 저택 밖에 있어.]

[하지만 여길 계속 바라보고 있어.]

[왜 그러는 걸까?]

왜 그러는 걸까? 마지막 정령이 핵심을 짚어 냈다. 론슈카는 최근에 알게 된 여러 가지 정보를 조합해 남자의 목적을 추측해 보았다.

막다른 골목길에 몰린 프랑크 후작가. 그리고 그를 그 골목에 몰아넣은 사람은 엄마와 루카스다. 하지만 루카스는 강하다. 론슈카도 아직 그를 이기려면 멀었다.

‘그럼 엄마는?’

엄마는 강하지 않지만 언제나 카이와 기사를 대동했다. 그들을 뚫고 해를 끼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 나인가?’

론슈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도 이제는 제법 강한데, 목표로 삼다니. 의아함이 생겼지만, 그도 금방 해결되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모든 힘을 보여 준 적이 없어.’

그럼 진짜 목표가 자신일 수도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제일 좋은 건 어머니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약속을 어겼는걸.’

회의 중에는 정령을 불러내지 않겠단 약속을 어겼다. 외부로 보냈기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걸 이야기하려면 그 사실도 고백해야 한다.

론슈카는 당장의 안전보다 엄마의 미움을 받는 게 더 싫었다.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자.’

그래서 결정을 보류했다.

* * *

“안녕!”

언제부터인가 로잘린은 도미니크가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헤이른의 수작이라고 못마땅해하던 레이긴도 로잘린의 사랑스러움에 마음을 열게 되었다.

“왜 또 왔어?”

물론 예외적인 존재도 있었다. 론슈카였다.

“놀러 왔어.”

로잘린은 새침하게 말하고는 론슈카와 정원을 거닐었다. 귀여운 아이 둘이 붙어 다니는 건 제법 귀여웠다.

“그만 오라니까.”

“왜, 내가 싫어?”

론슈카의 말에 로잘린이 시무룩해져 물었다.

“싫지는 않은데.”

“그러면 왜?”

“그 사람을 엄마랑 만나게 하려는 거잖아.”

헤이른, 그 빌어먹을 작자 말이다.

“으음. 들켰어?”

“다들 알고 있을걸.”

그런데도 로잘린의 출입을 용납하는 건 그녀가 아직 작은 아이이기 때문이었다.

“그랬구나.”

로잘린은 어색한 얼굴로 로브 끝자락을 쭉쭉 늘였다. 기품 있는 행위는 아니었지만, 너무 어색해서 그런 행동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다 이야기 주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정령들은 왜 이리 많이 불러 둔 거야?”

이 정도 정령을 불러 놓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부러웠다. 로잘린은 절대 이렇게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녀가 론슈카를 똑같이 따라 했다가는 당장 코피부터 흘리게 될 것이다.

“수상한 사람이 있어서.”

“수상한 사람?”

론슈카는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로잘린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럼 어른들에게 말해야지!”

로잘린은 기겁하여 외쳤다.

“혼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안 돼! 아델 님이 걱정할 거야. 당장 말하러 가자!”

걱정이라는 말에 론슈카는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이제는 예전과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론슈카는 아직도 엄마의 걱정이 기껍다.

“많이 걱정할까?”

“당연하지!”

그리고 론슈카는 로잘린에게 끌려가 아델에게 모든 걸 고백했다.

“세상에!”

아델은 놀란 표정으로 론슈카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왔다. 그러더니 그와 눈을 맞추고 천천히 말했다.

“론슈카, 그런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먼저 말했어야지.”

“네.”

론슈카는 느릿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서 아델은 론슈카가 뜻대로 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최대한 있는 힘껏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도 불안을 품고 있었다.

‘언제쯤이 되어야 론슈카가 온전히 사랑을 믿어 줄까.’

아델은 론슈카를 끌어안고 부드럽게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런 후 따뜻한 차와 간식을 먹게 해 주었다. 물론 아델의 곁에서였다.

그런 아델과 론슈카를 바라보던 로잘린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추적이라면 아빠가 잘해요! 예전에 나쁜 사람도 쉽게 찾아낸 적이 있어요.”

그야 정령사니까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쉽게 추적했겠지.

“아빠한테 도와 달라고 할게요.”

로잘린은 씩씩하게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아직 아델을 자신의 엄마로 맞이하는 걸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나도 정령 잘 다루는데.”

“넌 안 돼.”

아델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론슈카의 도움을 받는단 말인가. 아직 론슈카는 어렸고, 나쁜 건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럼 아버지한테 말할게요!”

로잘린은 로브 자락을 나풀거리며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로잘린!”

그렇다고 해서 헤이른의 도움을 받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뒤늦게나마 로잘린을 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제법 빨랐다.

어느새 집 밖으로 뛰쳐나가 마차에 도로 오르더니, 그대로 달려가 버렸다. 아델이 미처 잡기도 전의 일이었다.

“맙소사.”

설마 진짜로 헤이른이 오는 건 아니겠지? 아델은 그렇게 생각하며 카이를 찾았다. 일단 그와 이 상황을 의논해 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아델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아버지랑 왔어요!”

로잘린은 당당한 표정으로 헤이른의 곁에 서 있었다. 원래라면 입구에서 막혀야 했으나, 요즘은 로잘린만 드나들었기에 경비하는 기사가 막지 않은 모양이었다.

“으음.”

아델은 난처한 표정으로 헤이른을 바라보았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쪽 도움이 필요한 이야기는 아닌데요.”

“하지만 아버지는 추적을 잘해요!”

로잘린이 옆에서 헤이른을 변호했다. 아델은 일단 그녀와 헤이른을 떼어 놓을 필요성을 느꼈다.

“로잘린은 잠시 론슈카와 같이 있을래?”

“네, 그런데 진짜로 아버지는 추적을 잘해요.”

로잘린은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더니 론슈카에게로 갔다. 이제 남은 이는 아델과 헤이른뿐이었다. 한때는 헤이른을 원망하고 기다렸지만,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없다.

가끔 헤이른을 볼 때면 깊은 곳에 남은 앙금이 불쑥불쑥 치솟았지만, 예전만 못하다. 아델은 천천히 헤이른을 속에서 지워 나가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돌아가 주세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될 텐데.”

“그 도움 필요 없어요.”

“그래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을 거다. 최근에 다른 가문에 영지전을 걸지 않았던가. 이번 일도 그에 관련된 일인 것 같은데.”

눈치는 귀신같다.

“대가는 받지 않을 테니.”

“무보수로 도와주겠단 소린가요?”

“그런 소리지.”

“대체 무슨 이득이 있어서요?”

“알 텐데.”

헤이른은 아델의 호의를 조금이라도 사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더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기도 했고.

“그러니까.”

다시 입을 열려는 아델의 말을 헤이른이 막았다.

“표면상으로는 세 가문을 상대하는 일이지만, 그들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지 않나.”

알고 있지. 망할 놈의 황제.

영지전이 끝나고 나면 그도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했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 버리는 그의 성정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델은 루카스가 언제나 무사하길 바랐다.

“웨더필드가의 이름은 도움이 될 거야. 아무리 그분이라도 프레데릭가와 웨더필드가 둘 다 적으로 돌리긴 싫으실 테니까. 뭘 하든 좀 더 수월할 테지.”

하나같이 맞는 말이라 더 짜증 난다. 아델이 뭐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카이가 난입했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카이는 은근히 아델과 헤이른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누구죠?”

“루카스 님입니다.”

그 말에 헤이른이 혀를 찼다.

“쓸데없이 빠르긴.”

헤이른이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루카스도 도착했다는 말은 그가 웨더필드가나 도미니크가에 눈을 붙여 두었단 소리였다.

‘될 수 있으면 웨더필드가였으면 좋겠는데.’

아델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모셔 오세요.”

헤이른을 혼자 상대하는 것보단 루카스가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판단해서 불러들인 것이었으나.

‘판단 미스네.’

아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루카스와 헤이른 사이에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어찌나 싸늘한지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내가 왔으니 헤이른 경은 그만 돌아가도록 하지.”

“먼저 온 건 내 쪽인 것 같다만.”

“순서보다는 집주인의 의사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옳은 말이었다. 아델로부터 미움받고 있는 헤이른은 잠시 입을 다물고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긍정적인 표정은 아니었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을까?”

헤이른은 계획을 조금 변경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 돕고 싶었지만, 루카스가 빠질 리 없었다.

“안 돼.”

루카스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걸 왜 네가 결정하는 거지?”

“그야 아델과 나는 미래를 약속…….”

거기까지 말했을 때 아델은 루카스의 입을 막았다. 루카스가 왜 입을 막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더 말하게 둘 생각은 없었다.

지금 그걸 밝혀서 어쩌겠다는 건지. 그건 모든 일이 해결되고 난 뒤에 말해야 하는 일이었다.

“미래를 뭐?”

헤이른이 차가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건 헤이른 경이 알 필요 없는 일이에요.”

“아델.”

“이름 부르지 마세요.”

이제 와서 무슨 자격으로. 아델은 코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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