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영지전이 결정되자마자 프랑크 후작은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들에게 동조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예전에 교류하던 이들도 등을 돌렸다.
“루카스 경이 소드마스터로 인정받은 건 몇 년 전 아닙니까? 그사이 실력이 쇠퇴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 했지만, 기사 출신인 자들은 대부분 고개를 내저었다.
“검술 실력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몇 년 전에 소드마스터를 받으셨으니, 지금은 더 강해지셨겠지요. 저희는 이번 일에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기사들이 그러니 아닌 자들은 어떻겠는가. 세 가문은 고립되었다. 황제가 시간은 넉넉히 주었으나, 할 수 있는 거라곤 용병을 고용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
“영지전? 이번에는 참여하긴 좀 그렇지.”
용병들도 눈치가 있다. 질 것 같은 싸움에는 쉽게 참여하려 들지 않았다. 돈을 높게 걸어 봐도 참여하는 이는 어딘지 수상쩍은 녀석들뿐이었다.
프랑크 후작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로드린도 브뤼노도 크게 도움이 되질 않았다. 당시엔 휘두르기 좋은 녀석들이라 끌어들였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쓸모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암살이라도 의뢰하고 싶었지만, 제국 내에서 제대로 된 암살 단체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루카스가 이미 모조리 뒤집어엎은 뒤였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무너져야 하나.’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어.’
여기까지 어떻게 기어 올라왔는데, 모든 걸 잃는단 말인가. 어떤 비열한 수를 쓰더라도 버텨 내야만 했다. 그러자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아델 드 도미니크.’
도미니크가의 후계자이자, 루카스의 전 약혼자. 그녀에게는 아직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다. 웨더필드가의 헤이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말이다.
‘어른보다는 아이의 납치가 쉽겠지.’
프랑크는 독한 마음을 품었다. 뛰어난 정령사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였지만, 아직 아이일 뿐. 실제 활동 중인 정령사들만큼의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아직 기한이 상당히 남은 만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 * *
“에취!”
론슈카의 기침 소리에 아델이 손을 들어 이마의 열을 쟀다. 다행히 열은 없었다. 기침도 한 번으로 끝인 걸 보니 어쩌다 나온 재채기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론슈카의 옷을 꼭꼭 여며 주었다.
“도착했습니다!”
옷을 전부 여미자마자 밖에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카이가 아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내리자, 번듯한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패트릭가의 복원된 저택이었다.
프레데릭가보다 화려함은 덜했지만, 그래도 공작가다운 기품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제 막 가꾸기 시작한 정원은 아직 휑했으나 이도 곧 채워질 것이다.
“아델 님! 어서 오세요!”
얼굴이 훨씬 밝아진 레이나가 둘을 맞이하러 달려나왔다. 그 뒤에는 레온이 따르고 있었는데, 그 또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레이긴 경도 오셨나요?”
“아버지는 뒤에서 오고 계세요.”
“그렇군요. 그럼 조금 기다렸다가 다 같이 들어가요.”
레이나는 아델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런데 흥분한 것인지 연신 몸이 들썩인다. 그 옆에 선 레온이 작게 헛기침을 했으나, 레이나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하지.’
오래전에 잃었던 집을 되찾았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 아델은 저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뒤이어 도미니크가의 마차가 전부 도착했다. 그중 두 번째 마차에는 레이긴과 함께 레이나에게 전달해 줄 선물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이미 대부분의 가구나 물품은 프레데릭가에서 채워 주었기에, 그들은 다른 걸 가져왔다.
“저희 저택에서 키워 낸 어린나무를 몇 그루 가지고 와 봤어요. 정원사가 키운 건데 다 자라면 매년 한 번 화려하고 풍성한 꽃을 피운답니다.”
“와, 감사해요! 안 그래도 정원이 휑해서 걱정하던 차였어요.”
레이나는 선물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이후 넷을 회의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레데릭가에서도 도착을 알려 왔다.
“스승님!”
레온은 루카스가 오자마자 그에게 덥석 안겼다. 친누나인 레이나도 소중했지만, 지금까지 보살펴 주고 가르쳐 준 루카스 또한 레온에겐 소중했다.
“얼굴이 좋아졌구나, 레온.”
“네!”
“내가 가르쳐 준 건 꾸준히 연습하고 있지?”
“물론이에요! 매일매일 꾸준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레온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스승님을 직접 회의실로 안내했다. 이후 레이나는 시녀를 불러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레온과 론슈카가 끼어 있기엔 다소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갈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론슈카는 나가기 싫어했지만, 결국엔 레온에게 질질 끌려 나갔다. 그렇게 아이들이 나가고 나자, 레이나는 가장 상석에 서서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외람되오나 패트릭가의 유일한 어른으로서 제가 앞에서 회의를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미리 전달드린 사항을 듣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오늘 주제는 어떻게 하면 패트릭가의 부활을 효율적으로 알릴 것인가, 입니다.”
“그거라면 영지전에 패트릭가도 참여하는 것일 테죠.”
가장 먼저 의견을 낸 이는 레이긴이었다.
“하지만 패트릭가에는 남은 기사가 없어요. 대부분은 그날 죽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소수의 분은 행방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도 그렇긴 합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해 수소문하고 있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레이나는 앞에 있는 칠판에 분필로 글씨를 썼다.
“일단 화려하게 파티를 연다.”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예요.”
아델이 대답했다.
“이후 기사를 모집하기 위한 대회를 연다.”
“그건 자금이 만만치 않게 들 텐데요.”
카이가 숫자를 계산해 보며 말했다. 현재 프레데릭가가 자금을 전부 대주고 있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대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패트릭가가 부활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은 레이나가 감당해 내야 할 일이 되는 것이다.
“제 생각에는.”
아델이 슬며시 손을 들며 말했다.
“역시 영지전 참여가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기사가 없는걸요.”
“기사는 일단 저희 쪽에서 몇만 뽑아서 쓰고, 나머지는 용병으로 채우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레이나 님에게 달려 있어요.”
“전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레이나가 의지가 담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서기로 하죠.”
“네?”
“작전명은 그래요. 승리의 여신.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승리의 여신?”
루카스가 아델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네, 사람은 의외로 보이는 것에 많이 휘둘려요. 그러니 레이나 님이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서서 승리의 여신이 되는 거예요. 직접 싸우지 않아도 좋아요. 하는 건 깃발을 들고 우렁차게 외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음유 시인 몇을 고용해서 노래로 만들죠.”
아델은 차근차근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그게 통할까? 싶어 하던 이들도 점점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건 분명 통할 거예요. 승리의 여신에 소드마스터, 그리고 충실한 기사인 레이긴 경의 이야기라면요.”
“하, 하지만 그래도 되나요?”
어느새 레이나의 말투는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그야.”
레이나는 슬쩍 루카스와 아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괜히 둘 사이에 자신이 끼어드는 형상이 될까 봐 걱정이 됐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가장 먼저 레이긴 경이 냉큼 대답했다. 그러자 그의 제자인 카이도 당연히 찬성했고, 아델은 이 이야기의 발언자였다.
이제 남은 사람인 루카스만 찬성하면 될 듯했다.
“저도 찬성합니다. 다만.”
루카스의 시선이 아델에게 닿았다. 뭔가를 원하는 시선이었다. 아델은 레이긴 경을 힐끔 보고는 알게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넘어가고 보자는 마음이었다.
“다만?”
레이긴 경의 물음에 루카스는 얌전히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이로써 전부 찬성한 셈이로군요. 좀 더 상세한 계획을 짜 보도록 하죠.”
이후 세 가문은 세부 사항에 대해 상세히 짰다. 회의는 아델의 주도하에 술술 흘러갔다.
한편, 론슈카는 볼이 잔뜩 부푼 채로 과자 그릇 앞에 앉아 있었다.
“레모네이드 줄까?”
“싫어.”
“그럼 과자는?”
“그거도 싫어.”
“론슈카.”
레온은 난처한 표정으로 론슈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굴어도 회의실에는 들어갈 수 없어.”
그러자 론슈카가 손가락을 들었다.
“회의를 엿듣는 것도 안 돼. 지금 안에는 스승님과 레이긴 경께서 계셔. 네가 정령을 부르면 금방 눈치채실 거야.”
론슈카는 그제야 손을 내리고는 과자 하나를 집어 들고 갉아먹기 시작했다. 정말 맛없게 먹는 모양새였다.
“조금만 참아 봐. 누나가 회의 끝나면 저택 뒤쪽 동산에서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을 거라고 했어. 즐거울 거야. 거기는 나무가 타지 않았거든.”
레이나와 레온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였다. 저택 내부에서 식사를 대접하는 게 맞는 방법일지는 모르나, 조금 특별한 걸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결정한 외부 식사였다.
“알았어.”
레온의 표정을 본 론슈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