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패트릭가가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예전의 저택을 수많은 목수를 고용하여 수리하고 있더라, 안으로 가구가 들어가는 걸 봤다.
사교계에선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프랑크 후작은 불쾌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될 수 있으면 좋게 좋게 해결되길 원했는데 그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의자 손잡이를 손톱으로 긁었다.
알고 있다. 레이나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패트릭가를 다시 세워도 자신들에게는 큰 피해가 오지 않는다. 프레데릭가의 루카스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해 봤자 자신들이 저지른 비리가 아니겠는가.
‘그걸로 뭘 어쩌겠다고.’
뒤에 그분이 계시는 이상, 해 봤자 벌금이나 연금형이 전부일 것이다. 그들은 선택받은 귀족이었으니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에 빠지는 건 그들일 것이다. 프랑크 후작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 * *
귀족 회의의 날은 생각보다 빠르게, 성큼 다가왔다. 아델은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레이긴 경을 이겨 내고 루카스처럼 회의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원래 귀족 회의에는 각 귀족가의 가주 외에도 후계자가 한 명 같이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자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그냥 다음부터 참여하면 안 되는지.”
레이긴이 한숨을 쉬었지만, 아델은 못 본 척했다.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언제까지 보호만 받고 지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기에 아델은 조금 뻔뻔해지기로 했다.
황궁 내부에 존재하는 회의장에는 기다란 테이블이 있었고, 작위와 권력에 따라 자리가 배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패트릭가는 없었다.
‘아직은 부활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이번까지다. 다음번에는 패트릭가도 엄연한 귀족가로서 여기 참여하게 될 것이다. 아델은 먼저 착석한 레이긴의 뒤에 섰다. 그게 후계자의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힘들지 않아?”
물론 그 대가로 레이긴에게서 괜찮냐는 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지만 말이다. 다들 똑같이 서 있는데, 그만 물었으면 좋겠다. 아델은 괜찮다는 의미로 레이긴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편히 앉아 계세요.”
“마음 같아서는 너를 앉히고 싶구나.”
나이 든 아버지를 세우고 앉는 것도 불효 아닐까? 아델은 웃는 낯으로 거절했다.
회의는 제시간에 시작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황제가 느긋하게 나오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자리에 앉고 나서부터 회의가 시작된다.
“황제 폐하께서 오십니다.”
기사의 외침과 함께 황제, 셀렉시온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았다. 회의에 건의하거나 보고할 내용은 가장 상석에 앉은 가문부터 시작한다. 그 말은 프레데릭가가 시작을 연단 소리였다.
“먼저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최근 나라에 낼 세금을 뒤로 빼돌린 자들이 있다 하여, 그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호오, 세금을 빼돌리는 자들이 있다?”
“그렇습니다.”
“좋다, 발언해 보아라.”
루카스는 미리 준비한 자료를 이용하여 그들의 악행과 비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라에 낼 세금을 빼돌리고, 부당하게 이득을 취했다. 사사롭게 평민을 데려다 놀이를 즐겼는데, 그 놀이는 지나치게 잔혹했다. 그 외에도 악행은 끊임없이 나왔다.
로드린, 브뤼노, 프랑크. 그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미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버티기 힘든 모양이었다.
셀릭시온은 흥미로운 얼굴로 루카스가 말하는 것을 모두 들었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제국의 창고를 갉아먹는 이가 셋이나 있었구나.”
그 말에 로드린 백작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폐하, 오해이십니다.”
“오해라면 황궁에서 재조사하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소리냐?”
그건 아니었다. 로드린 백작은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호의적인 시선은 없었다. 그는 지나치게 선을 넘었다.
“폐하, 잘못은 인정하겠습니다. 벌도 기꺼이 받겠습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프랑크 후작은 로드린 백작과 달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벌을 달라 요청했다. 저지른 잘못은 많으나 그는 제국의 후작이었다. 받는 벌에 한계가 있단 소리였다. 그나마도 뒤에서 슬쩍 재물을 찔러주면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로드린 백작, 브뤼노 백작, 프랑크 후작에게는 저지른 죄에 합당한 벌을 내리도록 하겠다. 내지 않은 세금의 세 배를 지불하라.”
그를 시작으로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결국은 벌금형과 연금형이 끝이었다. 레이나도 레온도 이런 결과는 원치 않을 것이다.
“폐하.”
“그래, 루카스 경.”
“폐하께 한 가지 더, 허락받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지?”
그래서 준비했다. 아델은 한결 표정이 나아진 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영지전을 신청하고자 합니다.”
황제의 허락 아래 이루어지는 영지전은 정당하게 상대의 모든 것을 뺏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애초에 저들도 그걸 이용하여 패트릭가를 무너트리고, 모든 걸 뺏었다.
“누구에게?”
황제의 되물음에 루카스는 천천히 그 이름을 말했다.
“로드린, 브뤼노, 프랑크. 세 가문에 신청하고 싶습니다.”
루카스의 파격적인 말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아무리 프레데릭가라도 세 가문이나 상대하는 게 가능한가? 기사단이 강한 건 인정하지만, 저쪽은 가문이 셋인데?”
“게다가 하나같이 약한 가문이 아니지.”
패트릭 백작가의 일 이후로 그들은 권력과 함께 힘을 쌓았다. 그 셋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터였다. 그 상황에서 레이긴이 손을 들었다.
“저희 도미니크가도 프레데릭가와 함께 영지전에 참여하겠습니다.”
도미니크가도 참전하기로 했지만, 어디까지나 뒤처리 인원이 필요해서 끼어드는 것이었다.
‘내가 읽은 대로가 맞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영지전은 루카스만 있어도 해결이 된다. 소드마스터란 그런 존재였다.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 영지 여럿을 없앨 수 있는 존재.
책의 내용이 절반만 맞아도 큰 피해 없이 영지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군.”
셀렉시온은 그리 말하며 손으로 수염 하나 없는 말끔한 턱을 문질렀다.
“폐하!”
프랑크 후작이 불길함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불렀으나, 이미 늦었다.
“프레데릭가의 요청에 의한 영지전을 허락하도록 하지. 참여하는 가문은 프레데릭, 도미니크, 로드린, 브뤼노, 프랑크의 다섯 가문. 승리의 조건은 익히 아는 바대로이다.”
상대 영지로부터 항복을 받아 낼 것. 그 뒤에는 얼마든지 승자로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말도, 말도 안 됩니다!”
프랑크 후작이 다급하게 항의하려 했지만, 셀렉시온의 싸늘한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수는 그쪽이 많지 않은가.”
“그렇지만 폐하,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오.”
“들어 주고 싶지 않아. 영지전 이야기는 이후 그만하도록 하지.”
그다음엔 다른 귀족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 어떤 소리도 프랑크 후작의 귓가에 닿지 않았다.
‘폐하가 변덕스러운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여기서 자신들을 놀잇감처럼 던져 버릴 줄은 몰랐다. 루카스의 보고를 듣고 그들에게 실망한 탓일까?
‘제길.’
이미 정해진 것, 황제가 마음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으로를 대비해야 했다.
‘그런데 설마 도미니크가까지 끼어들 줄이야.’
레이긴은 뛰어난 기사였으며, 다른 이들을 가르치는 걸 좋아했다. 그 때문에 인망이 좋아 몰려드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도미니크가 기사단의 강함은 다른 어느 가문에도 뒤지지 않았다.
‘프레데릭가만으로도 힘든데.’
끔찍한 현실에 식은땀이 났다.
* * *
얼마 전, 아델이 루카스의 서류 정리를 한 번 더 도와주러 왔던 날이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패트릭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적어도 일어날 구실은 얻을 수 있겠지.”
“그렇게 쉽게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사실 내 생각도 그렇다.”
루카스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생각을 조금 바꿔 보면 어떨까요?”
“어떻게?”
“과거에 패트릭가는 어떻게 멸문됐죠?”
“원래도 세가 줄어 가던 와중에 세 가문이 동시에 영지전을 걸어서 무너졌지.”
“그러면 저희도 영지전을 걸면 어떨까요?”
아델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불가능한가요?”
“가능하다.”
“그럼 저희 도미니크가랑 같이 영지전을 걸죠. 아버지는 제가 설득할게요.”
루카스가 강한 건 책으로 읽어 알고 있었지만, 혹시 모르니까. 결국 성인이 된 론슈카에게 죽지 않았던가.
“제가 조사한 바로는 로드린 백작가에는 제대로 된 기사단이 없어요. 돈으로 기사를 모아 두긴 했지만, 실력이 형편없죠. 브뤼노 가문이 제대로 기사단을 운영 중이긴 하지만 프레데릭가나 도미니크가만은 못해요.”
아델은 잠시 쉬고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프랑크가도 평이해요. 영지전을 걸어도 저희가 질 일은 없어요.”
“아델, 그대는 때론 과감하군.”
“그래서 싫으세요?”
“아니, 그건 아니다.”
“그럼 이대로 갈까요?”
“좋지. 머리는 지금까지 많이 썼어. 때로는 몸을 쓸 필요도 있겠지.”
그렇게 둘은 영지전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황제가 과연 그걸 허락하느냐였지만.
“아마 허락해 주실 거야.”
“외람된 말이지만 폐하께서는 그쪽 편이 아니신가요?”
“폐하는 기분파라서 말이지. 아무리 같은 편이라도 자신을 이 정도 속여 먹은 걸 알면 분노하실 거야.”
“하긴, 어지간히 해 먹었어야죠.”
아델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오늘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