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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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7

레이나가 돌아가든, 돌아가지 않든 그들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어느 쪽이든 이득이 되게끔 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에드는 좀 더 느긋해졌다.

‘이제 어떻게 해 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델을 똑바로 바라보는데, 갑자기 노크 소리와 함께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카스 경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접대실로 모셔 오세요.”

이 때문에 시간을 끌었는가. 루카스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에드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후작가의 후계자인 아델과, 이미 프레데릭가의 가주인 루카스는 많은 차이가 났다. 후자 쪽이 훨씬 대하기 어렵단 소리였다.

‘혼자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에드는 슬그머니 눈치를 보면서 몸을 뺄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그 전에 루카스가 먼저 도착해 버렸다.

접대실의 문이 열리며 들어선 루카스는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원래도 접근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더하다.

“갑작스러운 방문 죄송합니다, 아델 양.”

그 상황에서도 루카스는 아델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어서 오세요, 루카스 경.”

아델은 그걸 태연히 받았다. 하지만 에드는 당장 해야 하는 인사를 잊어 버렸다. 예상외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루카스는 그걸 가만 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대는 인사를 할 줄 모르나?”

작정하고 시비를 걸려는 듯한 말투였다.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에드는 허둥지둥 변명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로드린 백작가의 가신이 프레데릭가의 가주를 뵙습니다.”

당황한 와중에도 인사는 잘한 것 같았다. 에드는 그 사실에 뿌듯해했으나 그도 잠시일 뿐이었다.

“그래, 로드린 백작가의 가신이 여기엔 무슨 일이지?”

“레이나 님을 모셔 가려고 들렀습니다.”

에드의 말에 루카스의 시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있는 레이나에게 닿았다.

“제 누나예요.”

그런 루카스에게 레온이 작게 속삭였다.

“확신하느냐?”

“네.”

“그럼 됐다.”

레온에게 답을 해 준 루카스는 다시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레이나 양은 로드린 백작가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아니에요.”

레이나는 아델에게 그러했듯이 부정했다.

“싫다고 하시는데.”

여기서 어떻게든 데려가겠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위협을 당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에드는 한발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 더 높은 이름값 앞에서는 로드린 백작가의 이름도 통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일말의 여지는 남겨 두어야 했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긴 동생분과 만나셨으니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레이나 님의 집은 이곳이 아닙니다. 그것만은 기억해 주십시오.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에드는 그 말만을 남기고 접대실을 떠났다.

* * *

대충 해결은 된 것 같았다. 이후로도 끈질기게 꼬투리를 잡아 올 테지만, 당장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아델은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처음 인사를 할 때를 제외하곤 이쪽을 바라보지 않는다. 어째서인지 그게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여기엔 레이나도 있기에 입을 다물었다.

“레이나 양, 괜찮다면 프레데릭가로 오지 않겠습니까?”

루카스의 말을 들은 레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생과 비슷한 어여쁜 푸른색 눈이 몽롱하게 빛났다. 그 순간 아델은 깨달았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구나.’

레이나는 첫 만남부터 루카스에게 빠져든 것 같았다.

“맞아요, 누나! 저도 지금 거기서 지내고 있어요. 같이 가요!”

레온이 루카스의 말을 거들었다.

“아, 그래도 괜찮을까요?”

레이나는 아델을 바라보며 물었다. 두 뺨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아델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곳에는 루카스가 있을 테니까 훨씬 안전하겠지.’

그런데 기분은 왜 이런 걸까? 아까 전부터 뭔가가 얹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아델 양,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야 루카스는 아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가슴의 답답함도 좀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네.”

아마도 지금까지 일의 경과를 물을 생각이겠지.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정식으로 방문해서인가, 아니면 아델의 위치가 명확해져서인가. 루카스는 아델에게도 존댓말을 썼다. 지금까지는 편하게 말을 해 왔기에 조금은 어색하다.

‘그래도 익숙해져야 하니까.’

아델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레온이 신세를 졌습니다.”

“아니에요,론슈카는 그저 친구를 도운 것뿐이랍니다.”

그런 식으로 몇 차례 말이 오가고 나니 할 말이 없어졌다.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뒤늦게야 루카스가 다시 말을 꺼냈다.

“네.”

답을 하긴 했으나, 루카스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델은 자신의 생각에 흠칫 놀랐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모르겠다. 아델은 뒤돌아서는 루카스에게 손을 뻗었으나, 금방 그를 거두어들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루카스가 움직임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뒤돌아보았지만 아델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델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루카스는 레이나와 레온을 데리고 저택을 떠나갔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아델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미 미래는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기에.

* * *

후계자 수업을 받으면서도 아델은 이곳저곳에 눈도장을 찍으러 다녀야 했다. 로드린 백작이 뭔가 일을 더 일으키려나 싶어 걱정했지만, 그는 당장 움직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항의하는 서신을 보내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렇기에 개소리하지 말라는 소리를 적절하게 돌려 적어서 보내 주었다.

“아델 님, 아델 님. 그 소식은 들으셨나요?”

그때 옆에 앉아 있던 귀족 영애가 재잘거리며 물어 왔다. 그녀의 이름은 산드라. 최근 들어 모임에서 친해진 영애였다. 성격이 명랑하며 편견이 없는 편이었기에, 같이 있으면 제법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눈치가 좀 없긴 했지만, 그 정도야 일부러 눈치 없는 척하는 귀족 부인들에 비하면 낫다.

“무슨 소식인가요?”

“참, 아델 님은 은근히 사교계 소식에 느리다니까요.”

“그래도 나에겐 산드라가 있잖아요? 알려 줄 것 아닌가요?”

“맞아요. 제가 알려 드릴게요!”

산드라가 가슴을 내밀며 웃었다.

“최근에 프레데릭가에 여성 한 분이 들어간 것 아시나요?”

“그랬나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 여성을 구해 준 사람은 론슈카였다.

“네, 그런데 말이죠. 아무래도 루카스 님께서 그 여성을 사모하시는 것 같아요.”

“네?”

“사실 그것 때문에 아델 님한테 말할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요. 이미 파혼하셨으니까 괜찮을 것 같았어요.”

맞나요? 산드라는 그런 표정으로 아델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파혼한 사이니 이제 아무것도 아니죠. 마저 이야기해 봐요.”

“그러니까요. 그 냉정한 분께서 그 여성분을 위해 같이 옷도 사러 가시고, 근처 카페에서 차도 마셨다고 해요.”

혹시 거기에 아이 하나가 같이 있진 않았나요? 이름이 레온이라고 하는데. 아델은 그리 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아무래도 새 사랑을 만나신 거겠죠?”

둘의 이야기가 다른 데까지 들렸는지, 이제는 다른 귀족 영애들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설마요. 파혼한 지 얼마나 되셨다고 새 사랑이라니요!”

“하지만 그 여성분이 루카스 님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고 해요.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요?”

어느새 귀족 영애들은 아델을 빼고 격렬하게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루카스가 인기가 많다는 증거였다.

‘레이나와 루카스인가.’

원래라면 이어지지 않았을 인연이었는데. 아델은 손으로 찻잔의 테두리를 가볍게 쓸었다.

또다시 가슴이 답답하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

아델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떴다. 처음에는 의심도 하고, 그럴 리 없다 말해 보기도 했지만 이제 안다. 자신은 루카스를 좋아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옆에서 다정하게 대해 주는데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가 있어.’

괜히 루카스를 원망해 보았지만, 사실은 안다. 그에게는 어떠한 잘못도 없었다. 그저 아델에게 넘치는 호의를 베푼 것, 그거 하나가 다였다.

‘이대로라면 둘이 이어지려나.’

아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나. 그게 레이나와 레온을 지키기 위해선 최선의 방법이긴 했으나,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아닐 거야.’

아델은 몇 번이나 속으로 중얼거렸다. 루카스와 레이나의 소식으로 사교계가 들썩거리는 걸 보면서도 아닐 거라고 믿었다.

* * *

야심한 밤, 루카스는 고민에 잠겨 있었다. 구출된 레이나를 맡은 건 잘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도미니크가에 그대로 두었다간 아델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후의 일이 문제였다.

로드린 백작가에서는 집요하게 레이나를 요구했고, 그를 위해 재판도 불사할 기세였다. 백작가가 공작가를 두드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자신만만한 태도가 불안했다.

그는 예전에 받은 쪽지에 대해 많은 조사를 해 왔다. 그리고 케일라와 황제에게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것까진 알아냈다. 그리고 로드린 백작가는 그걸 믿고 있을 터였다.

어떻게 하면 레이나와 레온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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