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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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5

다행히 마차는 추격을 받지 않았다. 내부에서는 난리를 쳐도, 외부에서까지 그럴 용기가 없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마차는 무사히 도미니크가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침 정원을 산책 중이던 아델은 미친 듯이 달려 들어오는 마차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멍하니 중얼거리는데 마차에서 레온이 내려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인사를 하려 했더니, 이번에는 몸집이 작은 여성 하나가 따라 내렸다.

‘누구지?’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자니 마지막으로 론슈카가 태연한 태도로 내려왔다.

“론슈카?”

“응, 엄마!”

활짝 웃은 론슈카가 다가와 아델의 손을 잡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니?”

아델이 묻자 론슈카가 레온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레온이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잠깐,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피곤해 보이네.”

아델은 일단 접객실에 자리를 마련했다. 따뜻한 차와 디저트를 내오자 레온은 곧바로 그걸 여성 앞으로 밀어 주었다. 어느새 벗겨진 후드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마르긴 했지만, 레온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싶었지만 레온과 닮은 여성이라면 현재 딱 한 명 존재한다.

레이나, 로드린에게 잡혀 있다가 차후 레온의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소모되는 여성.

레이나로 추측되는 여성은 떨리는 손으로 차를 마셨다. 그걸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레온은 뒤늦게야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루카스 몰래 초대장을 보게 된 일, 그걸 보고 로드린 백작가로 향한 일, 거기서 누나인 레이나를 데리고 도망친 일. 하나라도 빼먹을까 봐 천천히 상세히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틀어졌네.’

이미 진작에 달라지고 있단 건 깨달았지만, 여기서 레이나를 구해 올 줄은 몰랐다.

“일단은 조금 쉬는 게 좋겠구나.”

아직 추격이 붙지 않았다는 말로 미루어 보아, 로드린 백작은 다른 방식으로 그들에게 접근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일단은 아이들과 레이나를 쉬게 해 주기로 했다.

“손님방 두 개를 준비하도록 해요.”

아델이 시녀장에게 말하자 레온이 고개를 내저었다.

“방은 하나면 됩니다. 누나랑 같이 있고 싶어요.”

“레온, 그래도 누나가 옷을 갈아입고 씻을 시간은 줘야지.”

그제야 레온은 그 사실을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현재 레이나의 복장은 형편없었다. 후드가 달린 망토는 지나치게 더러웠으며, 안에 입고 있는 옷도 낡아 보였다.

“혹시 모르니 의원도 불러 줄게. 그러니 안심하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냐. 그럼 레온, 레이나 양, 좀 쉬세요.”

“ⵈ감사합니다.”

레이나는 작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둘을 올려 보내고 나니 남은 이는 아델과 론슈카뿐이었다. 레온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번 일에 가장 큰 사고를 친 건 론슈카 같았지만.

“내가 잘못한 거야?”

슬그머니 눈치를 보는 론슈카를 보니 나무랄 수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자신이 말해 둔 것도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야,론슈카는 잘못한 거 없어. 레온과 누나를 구해 줬잖아?”

“그럼 잘한 거지?”

아델의 옆에 앉아 있던 론슈카가 그녀에게 머리를 기댔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길 원하는 것이다. 손을 뻗어 엉망이 된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자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론슈카가 더 자라면 이것도 못 해 줄 텐데.”

별생각 없이 뱉은 말에 론슈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왜 못 해?”

“그야 나중에 론슈카가 루카스 님처럼 크면 손이 닿지 않잖아? 남들 보기도 그럴 테고.”

“괜찮아. 내가 고개를 숙여 주면 돼. 그리고 남들이야 무슨 상관이람.”

그러면서 론슈카가 아델에게 더 가까이 달라붙었다. 아이고, 이 기특한 아들내미. 하지만 과연 더 자라고 여자 친구가 생긴 뒤에도 이럴지는 모르겠다.

왜 그런 이야기 있잖은가. 어머니의 액세서리를 훔쳐서 여자 친구에게 가져다준다거나, 직장에서 준 선물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야기 같은 거.

‘그러면 재밌겠네.’

지금이야 엄마한테 이렇게 매달리고 있지만, 론슈카도 변화해 가고 있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타인에게도 그 애정을 나누어 줄 것이다.

앞으로 론슈카의 미래가 기대되었다.

* * *

시녀의 도움을 받아 씻고 나온 레이나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옷은 조금 크긴 했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단장을 마치고 거울을 보니 삶에 지친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많이 변했구나.’

몇 년 전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던 눈동자는 반쯤 죽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로드린 백작은 레이나를 끌고 가 저택의 구석진 곳에 박아 놓고 최소한의 옷과 먹을 것만 주었다. 그러고서 그녀가 성인이 되자마자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했다. 상대는 로드린 백작의 둘째 아들이었다.

나이만 많고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욕심쟁이. 그런 사람과 결혼이라니.

“사인해라.”

레이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결혼 서약서에 사인을 한다면 당장은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저택에서 머무르면서 남는 시간 동안 열심히 생각해 보았다.

로드린 백작이 자신을 왜 살려 뒀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로드린 백작은 자신의 둘째 아들과 레이나를 결혼시키고, 살아 있음을 공표할 것이다. 그런 후에 흩어진 패트릭가의 재물을 모으고 다시 공작가를 되살릴 터였다.

이후 레이나만 처리하면 공작가는 그의 둘째 아들의 손아귀에 넘어간다. 그를 조종하는 건 로드린 백작일 테고.

로드린 백작은 레이나 자신을 이용해 음모를 꾸밀 셈이다.

‘그건 안 돼.’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다. 동생인 레온에게도 못 할 짓이다.

그렇기에 레이나는 어떻게든 그곳을 벗어나고자 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허술한 경비를 뚫고 도망쳤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잡혀 들어갔다.

“건방진 것. 먹여 살려 줬더니 엉뚱한 생각을 하는구나.”

로드린 백작은 레이나를 며칠 동안 굶겼다.

‘이런다고 포기할 것 같아?’

그래도 레이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도망칠 기회를 노렸다.

그 결과로 금식을 한 몸은 점점 허약해져 갔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쩌면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적어도 마지막에 레온이 살아서 도망가는 것을 목격했다. 아직 어린 아이 하나가 세상에 나가서 제대로 살아남을까 싶긴 했지만.

레이나는 동생을 믿기로 했다. 레온이라면 살아남아서 패트릭가를 다시 세울 것이다. 그러니 방해만 되는 자신은 없는 게 낫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으로 도망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레온이 나타났다.

오래전에 헤어진 소중한 동생. 레이나는 이 모든 게 아직 꿈만 같았다.

“꿈.”

레이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도 거울에 비치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마른 얼굴 뒤로 낯선 방이 보였다. 여기는 로드린 백작가가 아니다.

뒤늦게야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흑, 으흐흑.”

레아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살았다. 살아남았다. 그뿐이랴. 레온도 멀쩡히 살아남아서 잘 자랐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울고 또 울었다. 그러고 있자니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레온이었다.

“레온, 훌쩍.”

레이나는 코를 들이마시며 말했다.

“신사라면 레이디의 방에 들어갈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노크를 해야 한다고 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누나 왜 울어?”

레온이 안절부절못하며 레이나의 주변을 맴돌았다.

“로드린 백작이 누나를 많이 괴롭혔어? 응?”

쩔쩔매며 조심스럽게 묻는 모습이 귀엽다. 레이나는 저도 모르게 레온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냐, 기뻐서. 기뻐서 우는 거야.”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할 줄 알았으니까. 끌어안은 몸이 따뜻했다. 여기는 언제나 꾸던 꿈속이 아닌 현실이다.

레이나가 레온을 끌어안자, 레온도 레이나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남매는 잠시 재회를 즐겼다.

그들이 다시 아델을 만난 건 식사 시간이 다 되어 가서였다.

식사는 레이나를 고려해서인지 먹기 쉽고, 소화가 잘되는 것 위주로 차려졌다.

“감사합니다.”

레이나는 빨개진 눈으로 재차 감사 인사를 했다.

“아니에요, 그보다 오늘 요리사가 실력을 발휘했어요. 그러니 마음껏 들어요.”

확실히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은 무척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레이나는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아 가며 식사를 마쳤다.

“정말 맛있었어요.”

“요리사가 들으면 기뻐하겠네요.”

이후엔 아델의 집무실로 장소를 옮겼다.

“여기가 이야기하기엔 제일 좋거든요. 소리가 잘 새어 나가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아델의 곁에는 이제 거의 보좌관이 된 카이가 서 있었다.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듣지 그래요?”

“저는 이게 편합니다.”

매번 이러니 조금 부담되기는 한다. 하지만 사람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아델은 일단 레이나의 이야기부터 들어 보기로 했다.

레이나는 자신이 겪어 온 일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레온은 분노하기도 했고, 슬퍼하기도 했다.

“내가, 좀 더 빨리 누나를 찾으러 갔어야 했는데.”

“아냐, 내가 거기 있는 걸 네가 어찌 알았겠니. 그리고 난 네가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 준 것만으로도 기쁘단다.”

“모든 건 스승님 덕분이야!”

레온은 루카스에 대한 이야기를 재잘재잘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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