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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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

파티가 끝나고 아델은 며칠간 푹 쉬었다. 이제는 건강도 돌아왔고, 사교계에 어느 정도 이름도 알렸다. 이제 슬슬 때가 된 것이다.

“좋다. 이제 후계자 수업을 시작하자.”

레이긴이 말했다. 데릴사위를 맞이할 예정이라 하여도 그에게 가문의 모든 것을 맡길 생각은 없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모든 것을 아델이 주도하길 바랐다.

그랬기에 각 분야에 유명한 사람들을 모아 왔다. 문학에 예법, 사교계 언어, 영지의 관리, 춤과 악기를 비롯해 승마와 활쏘기를 가르칠 스승까지.

아낌없이 돈을 퍼부은 결과, 각 분야의 최고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검술까지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까?”

카이의 물음에 레이긴이 답했다.

“나는 위기 상황에서 내 딸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적어도 자신의 목숨을 지킬 한 수는 품고 있길 원해.”

카이는 그 마음을 이해했다.

“그렇다면 검술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할 수 있겠나?”

“철저히 가르치겠습니다.”

“좋아. 그럼 부탁하지.”

레이긴의 말에 카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시 고3이 된 것 같아.’

아델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수업을 받으며 생각했다. 해가 중앙에서 기울 때까지는 학문적인 소양을 익히는 데 애쓴다. 이후엔 번갈아 가며 몸으로 하는 일을 배운다.

악기는 가장 만만해 보이는 피아노를 택했다. 전생에 6년 정도 배웠던 걸 믿고 덤벼들었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다 까먹은 탓이었다.

춤은 원래 알고 있던 것에서 몇 가지를 더 추가로 배웠다. 자신이 보기엔 완벽한데 스승은 만족하지 못했다.

“좀 더 부드럽게 도세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빙글빙글 도니 어지러워졌다. 차라리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게 나을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할 만했다. 어디까지나 다른 레이디들도 배우는 기본적인 소양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단 체력부터 키웁시다.”

카이와의 수업.

처음에는 그와 수업을 해야 한다고 하길래 아버지가 무언가를 노리는 건가, 했다. 카이와 자신이 눈이 맞기를 바라거나, 하는 일 말이다. 하지만 하루 수업해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렇게 몰아세우는데 어떤 여자가 반하겠어!’

연무장을 몇 바퀴 도는 걸로 시작해 호신용 검술과 활쏘기, 승마까지 배우고 나면 온몸이 후들후들 떨려 왔다.

“조금, 조금만 살살하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부탁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카이가 시키는 건 전부 해내야 한단 소리였다.

“으으.”

아델은 저녁에 방으로 돌아오면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 때문에 불만이 무럭무럭 커지는 건 론슈카였다.

엄마랑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들어오기만 하면 잠들어 버리니 이야기할 시간도 없다.

자연 카이를 바라보는 론슈카의 눈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엄마를 내버려 둬.”

론슈카는 카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모든 것은 아델 님을 위한 것입니다.”

“거짓말. 저렇게 힘들어하는걸!”

“익숙해지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거짓말! 벌써 이 주가 지났는데 그대로인데!”

그야 익숙해지면 강도를 높여 버리니 당연한 일이었다.

“매일매일 쓰러져서 잠드는 바람에 이야기할 시간도 없단 말이야!”

론슈카는 씩씩거리며 항의했다. 그제야 카이는 자신이 너무 과했음을 인정했다.

“그렇군요. 생각해 보니 쉬는 날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을 드리겠습니다.”

“세 번.”

“한 번. 이건 양보하지 못합니다.”

“그럼 두 번.”

이를 으득 갈며 말하는 론슈카의 뒤쪽으로 거대한 불꽃이 일렁였다. 이제는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건만 혼자서도 계속 발전하는 느낌이다.

“좋습니다. 그럼 일주일에 두 번 오후는 쉬도록 하죠.”

“흥!”

원하던 답을 들은 론슈카는 그대로 몸을 돌려 아델에게로 향했다.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해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아델은 론슈카의 바람대로 무척이나 기뻐했다.

“내가 말했어, 내가!”

“그래, 그래. 기특한 내 아들!”

간만에 엄마의 품속에 안겨 있으니 무척이나 행복했다.

* * *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케일라는 그 순서를 지키기 위해 남몰래 황궁을 찾았다.

“황제 폐하를 만나고 싶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자리를 뜬 시종장은 한참 뒤에야 돌아와 말했다.

“폐하께서는 볼일이 없으시다고 합니다.”

그래도 케일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중요한 일이라고 전하셨습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뭐든 알아서 하시라고 하셨습니다.”

그쯤 되니 케일라의 마음도 초조해졌다.

아무리 황제가 건성으로 나온다고 해도 그냥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됐다. 잘못하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었다. 황제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케일라는 꾸준히 황제를 찾아왔다. 하지만 매번 결과는 똑같았다.

“폐하께서는 만날 생각이 없다고 하십니다.”

본궁에서 술을 마시며 여인들과 즐기고 있는 걸 알고 있거늘!

케일라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러는 사이에도 아델은 사교계에서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었다.

도미니크가의 레이긴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탓에 대부분의 이들이 아델과 친밀하게 지내길 원했다. 아직 평민의 핏줄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긴 했지만, 소수일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루카스는 아델에게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키워 온 아들인데 그 심정을 모를까. 그러니 더더욱 아델을 치워 버려야 했다.

‘어쩔 수 없나.’

저지르고 알리는 수밖에. 어차피 황제도 케일라도 세 귀족가도 전부 공범이다. 이제 와서 케일라와 다른 이들이 가문 하나를 더 망가트린다고 해도 쉽게 쳐 낼 수 없을 것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황제의 약점을 문서화해 가지고 있었으니까.

‘움직인다.’

하지만 어떻게? 케일라는 생각에 잠겼다. 일단은 로드린 백작을 만나 봐야 할 것 같았다.

“도미니크가를 건드리자는 겁니까?”

로드린 백작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건 좀 무리 아니겠습니까?”

“어째서 무리라고 생각하시나요. 저희는 더한 일도 해냈잖아요.”

“그야 그렇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폐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까?”

“물론입니다.”

케일라는 뻔뻔하게 거짓을 입에 올렸다.

“그렇다면 당연히 움직여야겠습니다만.”

로드린 백작은 어쩐지 교활해 보이는 시선으로 케일라를 바라보았다.

“그 전에 저도 한 가지 해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패트릭가의 레온. 그 꼬맹이가 살아 있는 건 아시지요?”

“압니다.”

“그 꼬맹이를 처리하고 싶습니다. 남겨 놓으면 뒤가 찝찝하지 않습니까? 폐하도 완전히 없애는 걸 원하실 겁니다.”

레온은 루카스의 제자이기도 했다. 건드리려면 자연 루카스의 움직임도 걱정해야 한다. 안 그래도 요즘 의심의 눈으로 케일라를 지켜보고 있는데.

“설마 루카스 님의 제자니 넘어가자는 소린 하지 않으시겠지요? 그 아이에겐 케일라 님 또한 원수입니다. 원수!”

로드린 백작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아무리 자신이 어머니라고 해도 루카스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만 처리하는 걸 도와주신다면 저도 도미니크가의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겠습니다. 물론 브뤼노와 프랑크도 나설 것입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좋습니다. 뭘 도와드리면 되죠?”

케일라의 물음에 로드린 백작이 입을 찢으며 웃었다. 그 모습이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

* * *

레온은 요즘만큼 무기력을 느낀 적이 없었다. 스승님이 가문의 원수를 쫓는데 자신은 도와줄 일이 없었다. 너무나도 나약하고 어리기 때문이었다.

“누나를 되찾겠다고 맹세했는데.”

멍하니 중얼거리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을 잡느라 물집이 박힌 손은 아직 너무나도 작았다. 론슈카는 벌써 상급 정령까지 불러냈다는데. 마치 혼자서 제자리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아냐, 초조해하지 마.’

스승님도 그랬잖은가. 언젠가는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 생길 거라고. 그때 도움을 요청하겠노라고 말이다.

‘일단은 할 수 있는 걸 하자.’

레온은 연무장으로 가서 지치도록 검을 휘둘렀다. 그러다 막히는 부분이 생겨 스승님의 집무실에 들렀다. 물어보고 다시 검을 휘두를 셈이었다.

똑똑.

노크를 해 보아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혹시 잠드신 걸까?’

원래 무척 예민하셔서 졸더라도 금방 깨어나곤 하셨는데, 요즘은 조금 달랐다. 너무 일이 몰려서 그런지 가끔은 작은 노크 소리로는 깨어나지 않기도 했다.

레온은 잠시 망설이다 집무실 문을 열어 보았다. 스승님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데 계신 모양이었다.

‘돌아가자.’

다시 뒤돌아서려는데 바닥에 떨어진 편지 봉투 하나가 보였다. 종이의 재질을 보아 귀족가에서 보낸 초대장인 듯했다.

‘책상에 올려놔야지.’

레온은 별생각 없이 초대장을 주워 들고 책상 위에 두려고 했다. 그때, 초대장에 멋들어지게 적힌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로드린」

원수의 이름이었다. 가슴이 쿵쿵쿵 뛰기 시작했다.

‘안 돼.’

스승님에게 온 초대장이다. 자신이 함부로 열어 볼 권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초대장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마음속에서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조금만 보자. 왜 보냈는지는 알아야지.’

레온은 한참을 망설이다 마음의 소리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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