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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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 

아이카와 카이는 계속 실랑이를 벌였다. 정확히는 아이카가 부탁하고 카이가 거절하는 형태긴 했지만,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지긴 했다.

헤이른이 새벽에 쫓겨 나가듯이 저택을 떠나고 아델은 레이긴, 카이와 함께 남게 되었다.

“정말 제 아버지라면 그동안 저에게 있었던 일도 알고 계시겠네요?”

아델의 물음에 레이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말하고 싶지 않구나.”

“어째서요?”

레이긴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델이 그동안 겪어 온 일을 알기에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으면 했다. 그랬기에 론슈카에 대한 이야기도 아직 꺼내지 않았다.

론슈카에겐 미안하지만, 레이긴은 아델이 더 소중했다.

“네가 불행해질까 봐.”

레이긴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어지간히도 힘들게 살았나 보네.’

아델은 그런 레이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식이 괴로운데 어느 부모가 편할까.

‘그래도.’

아델은 레이긴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저는 알고 싶어요.”

“그 결과가 괴로움뿐이라고 하더라도?”

“네, 그러니 알려 주세요.”

레이긴은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스승님, 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카이가 나섰지만, 레이긴은 거절했다.

“아니, 아니다. 이건 전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원한다면 알려 주마, 아델.”

레이긴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나간 과거가 흘러나왔다. 아버지의 협박에 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내와 딸. 그리고 아내의 비참했던 죽음, 딸의 행방불명.

“그래서 찾고 또 찾았다. 사람을 풀어 온갖 곳을 다 뒤졌지.”

그 과정에서 웨더필드가에도 사람을 붙였다. 카이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레이긴은 헤이른 다음으로 아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럼 헤이른 님은.”

“파렴치한 인간이지. 그는 너와 네 아이를 버렸다. 그래 놓고선 아이의 재능이 탐나 너를 노렸다. 그는 타인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야.”

레이긴의 눈은 확신을 담고 있었다. 아델은 이번에는 카이를 바라보았다.

“스승님의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그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헤이른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라, 아델을 이용해 먹으려고 그러는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정말 그렇기만 한 걸까?’

별장에서 지내는 동안, 헤이른은 가끔 아델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거기에 가끔 흘러나오는 서툰 호의는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헤이른을 의심하면서도 바로 도망치지 않았다.

‘생각해도 어쩔 수 없나.’

이미 헤이른은 아델에게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지금에 와서 생각이 어떻게 바뀐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네, 주의할게요. 그런데 긴 이야기 속에서 제일 중요한 게 빠졌네요. 제 아이요.”

“아이는 안전한 곳에 잘 있다.”

“제 아이의 이름을 알고 싶어요.”

그 말에 레이긴은 작게 한숨을 쉬며 이름 하나를 읊었다.

“론슈카.”

“론슈카.”

아델은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불러 보았다. 어딘지 낯익은 이름이다.

“론슈카는 어디 있나요?”

“현재 웨더필드가에 있다.”

“웨더필드가라면?”

“망할 헤이른이라는 작자의 가문이지.”

“ⵈ제가 아이를 빼앗겼나요?”

“듣기론 론슈카가 스스로 찾아갔다고 하더구나.”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헤이른 님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서요. 그런데 왜 제 아이가 거기 가 있어요?”

“어째서 스스로 찾아갔는지 이유는 우리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론슈카는 엄마인 아델을 찾기 위해 웨더필드가에 갔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웨더필드가에 가는 대가로 아델을 찾아 달라고 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레이긴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헤이른의 자식이라는 편견 때문에, 착한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말았다.

“내가 또 실수를 했구나.”

“아닙니다, 스승님.”

카이 또한 그걸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찾으러 가면 되지 않습니까.”

“그 작자가 아이를 쉽게 놓아줄 것 같으냐.”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 내야지요. 스승님, 스승님은 언제나 포기를 모르시는 분 아니셨습니까.”

카이의 말에 레이긴은 조금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아델을 바라보며 말했다.

“론슈카는, 네 아이는 내가 어떻게든 도로 데려와 주마.”

“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헤이른 님을 설득한다거나.”

“그자는 설득이 먹힐 성격이 아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아델은 물러나지 않았다. 아직 기억이 완전하지 않아도 이거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론슈카는 자신의 소중한 아이였다.

* * *

“어디 보자.”

손아귀에 쥐고 있던 것들이 술술 빠져나갔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아델을 묶어 둘 가장 커다란 족쇄가 남아 있었다.

“론슈카는 어떻게 지내고 있다더냐.”

“여전히 정령학 수업을 들으면서 성실하게 배움에 몰두하고 계신 듯합니다.”

헤이른의 가장 가까운 수하, 알버트가 그리 고해바쳤다.

친아버지라는 레이긴이 아델에게 붙었으니, 이제 그녀도 과거의 모든 일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사교계에서 제법 알려져 있었으니까.

문제는 루카스에 대한 것도 말했을까, 인데.

헤이른은 여관방 창문을 통해 멀리 보이는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꼬리가 붙은 줄은 몰랐나?”

“죄송합니다!”

알버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아니, 탓하려는 건 아니다. 나도 그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못했으니까.”

아델의 생사를 알아내느라 섬세한 부분을 신경 쓰지 못했다.

“지금부터라도 신경 쓰면 되지.”

레이긴이 생각해 낸 방법이니 루카스도 생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게다가 지금은 프레데릭가로 돌아가 다시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케일라가 어느 정도는 억누르려 들겠지만, 그게 될 리 없단 건 헤이른도 알았다.

가주 대리라는 이름으로 가문 사람을 포섭하기 위해 애써 왔지만, 결국 그 사람들은 루카스를 따르던 사람들이었다.

몇 년간 떠나 있는 동안은 원망을 품었을지 몰라도, 다시 돌아왔으니 그 원망도 녹아내릴 것이다.

루카스를 싫어하긴 했지만, 그의 능력마저 폄하하는 건 아니었다.

“앞으로는 달라붙는 꼬리는 전부 잘라.”

아델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전에 아델이 루카스를 만나면 될 일도 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자르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돼.”

헤이른은 시선을 거둬들이고 눈을 감았다.

헤이른의 추측은 대부분 맞아떨어졌다. 루카스가 가주 자리를 포기하고 떠난 몇 년 동안 케일라는 자신의 세력에 다른 이들을 끌어들였다. 루카스를 통제할 권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갑자기 떠난 가주의 빈자리에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을 회유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아닌 척하면서 흔들리고 있었고, 일부는 케일라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도 했다.

‘그랬는데.’

루카스가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것이 변해 갔다. 가장 먼저 기사단이 다시 개편되고, 케일라의 사람들이 밀려났다.

루카스는 케일라의 손발을 자르고 있었다. 더는 자신에게 참견할 수 없도록, 교묘하게 구석으로 몰아갔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모아 온 힘이 한 번에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기분이 불쾌했다.

‘더 불쾌한 건.’

그렇게 되찾은 힘을 이용해 아델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다들 미친 거 아냐?’

루카스뿐만이 아니었다. 헤이른도 사람을 풀어 아델을 찾아다녔다. 그런 여자가 뭐가 좋다고. 보잘것없는 평민 여자 하나일 뿐인데. 케일라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불쾌해.’

살아서도 자신을 괴롭히더니, 죽어서도 귀찮게 만든다. 증거는 이미 전부 처리해서 물증은 없을 테지만, 거슬렸다.

‘어디 얼마든지 찾아보라지.’

아무리 찾아도 아델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바다 한가운데 빠트렸으니 말이다. 이제는 루카스에게 적합한 배우자를 붙여 주기만 하면 된다.

케일라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 * *

“연락이 끊겼습니다.”

“헤이른을 뒤쫓던 꼬리 말인가.”

“네.”

“갑자기 꼬리를 끊는 걸 보니 뭔가 있긴 한 모양이군. 다시 사람을 붙여. 이번엔 더 은밀하고 능숙한 사람으로.”

“그러겠습니다.”

키슈는 공손히 허리를 숙여 보였다.

본가에도 집사는 있었지만, 루카스에게 가장 편한 사람은 키슈였다. 그에게 목숨을 구원받았기에 그만을 따르는 집사. 그렇기에 많은 것을 그에게 맡겨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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