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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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가 호시탐탐 아델을 노리는 동안, 항구 도시에는 한 명의 여성이 도착했다.

“으아아아!”

“아이카 님, 품위 없으십니다.”

“안나도 참, 봐줘. 마차를 너무 오래 탔다고. 엉덩이가 찌릿찌릿해.”

“품위 없으십니다.”

“참, 이렇게 보면 안나는 기계 장치 같을 때가 있다니까.”

아이카는 투덜거리며 당당하게 항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그 성격 파탄자에게 이런 순정이 있을 줄이야. 사실 후계자만 날름하면 그 뒤는 상관없는 이야기잖아?”

“아이카 님.”

“알아, 알아. 품위가 없다는 거지?”

“아시면 자제해 주십시오.”

아이카는 혀를 날름 내밀어 보이고는 단단하게 다져진 항구 위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안나는 한숨을 쉬기는 했지만, 말을 더하진 않았다. 이제부터는 그녀가 집중해야 할 시간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자아, 나의 귀여운 친구들아. 내 말을 들어 주렴.”

아이카의 말을 들은 물의 정령들이 슬금슬금 그녀의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보통 정령사는 정령을 소환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드물게 현실에 존재하는 정령도 있었다.

자연계 정령이었다. 지금 아이카가 부르는 건 그런 존재들이었다. 소환해 낸 자신의 정령보다 부르기 까다롭고 말도 잘 듣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들이 필요했다.

[뭐야, 인간이네?]

[정령사야!]

[어쩐지. 그래서 말이 통했구나.]

몇몇 정령들이 아이카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혹시 이런 사람 본 적 있니?”

아이카는 미리 전달받은 초상화를 자신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가 우글우글 젖어 들기 시작했다.

[으음, 어디서 본 적 있는데.]

[맞아. 저~번 밤에 봤어.]

[까만 남자 몇이 배를 태웠어.]

“그 남자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까?”

[그건 좀 힘든데. 너무 멀어.]

“방향이라도 알려 줘.”

그제야 정령이 방향을 가리켰다. 남쪽이었다.

“어디 보자. 남쪽으로 쭉 가면 작은 왕국이 하나 있었는데.”

“카멜리아 왕국입니다.”

제국과 바짝 붙어 있기에 제국 친화적인 왕국이었다.

“그러면 거기서 조사를 이어 가면 되겠네.”

아이카는 망가진 초상화를 내버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근처 여관으로 들어가 종이와 펜을 빌린 뒤, 들은 내용을 슥슥 적어 냈다.

“전서구는?”

“그럴 필요 없으실 것 같습니다. 가주님께서 곧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아이카의 시녀인 안나는 최하급 바람의 정령을 다룰 수 있었다. 그렇기에 소식을 전달하는 데 있어선 제법 빨랐다.

“가주님께서? 정말? 어머나!”

아이카는 두 손으로 양 뺨을 감싸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직접 나서서까지 찾으려고 하신다니. 이번엔 진짜 새로운 안주인이 생기는 거 아냐?”

“너무 앞서가지 마십시오.”

“앞서갈 만하잖아. 그나저나 가주님을 만나고 싶진 않은데. 그분은 사람을 너무 부려 먹어.”

자신의 정령도 아닌 자연계 정령을 다루면 기운이 쭉 빠진다.

이미 지쳤지만, 헤이른을 만나면 알차게 부려 먹힐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보만 남기고 튀려 했는데, 글러 먹었다.

“일단 가주님이 도착하실 때까지 조금이라도 쉬자.”

“그건 괜찮습니다.”

“정말 안나는 누구 편인지 모르겠다니까.”

아이카는 방을 빌려 위로 올라갔다. 헤이른이 오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잘 셈이었다.

그러나 그 원대한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헤이른이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타고 온 말은 아이카가 있는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쓰러졌다. 정령의 힘을 받아 무리하게 달린 결과였다.

헤이른은 쓰러진 말을 여관 주인에게 맡기고 아이카에게 다가왔다.

“어, 직접 말을 타고 오셨어요?”

아이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알아본 건 어떻게 되었지?”

“복면의 남자들이 배에 태워 남쪽으로 향했어요. 정확히는 카멜리아 왕국 쪽이긴 헌데.”

“그럼 가면서 방향을 잡도록 하지.”

이럴 줄 알았다. 아이카는 표정을 구겼지만, 헤이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배와 선장, 선원들을 구했다. 액수를 제법 크게 부르자 여럿이 나섰다.

헤이른은 그중에서도 가장 평판이 좋은 선장의 배에 올라탔다. 아이카도 같이 올라탔음은 물론이다.

“쉬고 싶은데.”

“흔적을 쫓아라.”

“네, 네. 가주님이 하라고 하시면 해야죠.”

아이카는 갑판의 끄트머리에 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하루만 해도 지칠 일을 며칠간 하니 나중에는 정신이 피폐해졌다.

“여기가 마지막이에요.”

아이카는 바닥에 늘어진 채 말했다. 무례한 태도였지만, 헤이른은 그를 지적하지 않았다. 평소 예의에 철저하던 안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아이카는 능력을 쥐어짤 대로 쥐어짰다.

“여기서 아델 님을 바다에 던진 것 같아요.”

헤이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였다.

“여기서?”

“네.”

재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다르지 않았다.

‘아마 죽었겠지.’

아이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는 뭔가 더 알아보려고 해도 그럴 기운도 없다. 코피는 아까 전에 터졌고, 더 했다가는 목숨도 위험하다.

그렇기에 죽은 사람처럼 버티고 있자니, 헤이른이 앞으로 나섰다.

“아니, 잠깐, 잠깐만요! 가주님은 물의 정령은 잘 못 다루시잖아요!”

정령에겐 속성이란 게 있다. 불은 물과, 물은 대지와, 대지는 바람과 맞지 않는다.

그 말은 최고급 불의 정령을 다루는 헤이른은 물의 정령과는 속성이 맞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하급 정령이라면 어느 정도 다루겠지만, 자연계 정령은 말이 다르다.

아이카는 펄떡이는 생선처럼 몸을 일으켰다.

“미쳤어요?”

입에서 절로 험한 말이 튀어 나갔다.

“가주님답지 않게 왜 그래요! 위험하단 걸 알잖아요!”

아이카는 어떻게든 말려 보려고 했지만, 헤이른은 아랑곳없이 물의 정령을 불러들였다.

아이카 때와는 다르게 정령이 쉽게 모이진 않았지만, 끈기 있게 시도했다. 그 결과, 일부 정령을 붙잡을 수 있었다.

[신기하네.]

[신기해. 불이 이렇게나 강한데 우리를 불렀어.]

“대답해.”

[싫~은데. 우리가 왜 답해야 해?]

물의 정령에 대한 속성력이 높지 않으니 태도 또한 적대적이다.

“부탁이다.”

그런 그들에게 헤이른은 서슴없이 부탁을 했다.

“이 사람을 꼭 찾고 싶다.”

[가족이야?]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야?]

“모르겠다.”

[그런데 왜 찾고 싶담?]

정령들이 꺄르륵 웃었다. 그래도 그중 하나는 헤이른의 말을 들어주었다. 헤이른 또한 코피를 흘리기 시작할 무렵, 답이 돌아왔다.

[커다란 배가 구해 갔어.]

답은 그게 끝이었다. 헤이른은 배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피를 내뱉었다.

“뭐래요? 아니, 가주님은 괜찮아요?”

“괜찮다. 아델은 누군가 구해 갔다는군.”

“이쯤이면 카멜리아 왕국이 더 가까우니까, 그쪽을 알아보면 되겠네요.”

“그렇겠지. 당장 그리로 향하지. 안나.”

“네, 미리 소식을 전해 두겠습니다.”

웨더필드가는 정령사가 많은 특성상 여러 왕국에 사람이 흩어져 있다. 그는 카멜리아 왕국에도 사람이 있다는 소리였다.

“전 이제 빠져도 되죠?”

아이카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헤이른을 바라보았다.

“아직.”

“으흑.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아이카는 다시 갑판 위에 벌렁 누웠다.

* * *

‘더 많은 권력과 힘이 필요하다.’

루카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델을 찾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루카스는 다시 프레데릭가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 그를 케일라가 반겼다.

“잘 생각했습니다, 가주님.”

레온은 그런 루카스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말리지 않았다. 그저 답답해할 뿐이었다.

스승님도 론슈카도 아델을 찾기 위해 희생을 하며 움직이고 있건만,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리 검을 휘둘러 보아도 급격하게 강해질 수는 없었다. 그리고 강해지더라도 누군가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힘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루카스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프레데릭가를 다시 손에 넣은 루카스는 좀 더 활발히 아델을 찾기 시작했다. 케일라도 그걸 말리진 않았다. 그저 옆에서 혀를 차며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쓸데없는 일이 아니야.’

스승님은 아델 님을 위해 위험한 일에 뛰어든 것뿐이었다. 현재 가장 의심 가는 사람이 그의 어머니인 케일라였으므로.

레온도 그걸 알았다. 그렇기에 어디서건 귀를 기울이고 다녔다. 우연히 뭐라도 얻어들을 수 있다면, 스승님에게 도움이 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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