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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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6

새가 승낙하자마자 론슈카는 창문을 열고 그대로 밖으로 뛰어내렸다. 위험한 짓이었지만,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만큼 받아 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무언가가 몸을 감싸는 느낌이 들더니 떨어지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론슈카는 안전하게 정원에 내려섰다.

헤이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론슈카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론슈카!”

뒤에서 론슈카를 부르는 레온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가지 마!”

멈출 수가 없었다. 론슈카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그대로 정원을 가로질러 문을 넘어 밖으로 나가자 비바람 속에 서 있는 헤이른이 보였다.

깊은 후드를 눌러쓴 그는 쏟아지는 비바람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서 있었다.

“난 더 강해지고 싶어.”

론슈카의 말에 헤이른이 답했다.

“그렇게 만들어 주마. 대신 너도 그동안은 나를 아버지로 대하거라.”

“좋아.”

“그럼 계약은 성립한 셈이군. 따라오너라. 배울 것이 많다.”

고개를 끄덕인 론슈카는 헤이른의 뒤를 따랐다.

* * *

레온은 멀어지는 론슈카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스승님! 론슈카가 떠나요!”

다급히 외쳤지만, 루카스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스승님! 말려야 해요!”

“내가 무슨 낯으로 말릴까.”

루카스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론슈카 스스로 한 선택이다.”

“그래도요! 지금 론슈카는 정상이 아니에요! 아델 님이 론슈카가 웨더필드가에 간 걸 알면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레온은 고개를 떨구며 외쳤다.

“미안하다, 레온.”

“저한테 사과하지 말고 론슈카를 쫓아가세요!”

“그럴 수 없다.”

“스승님!”

레온은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렀지만, 결국 론슈카가 떠나는 걸 잡을 수 없었다.

* * *

“아델. 나의 사랑스러운 딸.”

레이긴은 뛰어난 화가를 수소문해 기억을 토대로 아델의 초상화를 여럿 그려 냈다. 하지만 아무리 닮게 그려도 진짜 살아 있는 사람과 같을 수는 없었다.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에 잠겨 들었다.

“스승님.”

“카이.”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론슈카 님이 웨더필드가로 들어갔습니다.”

“론슈카가? 어째서!”

헤이른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팡이에 불과했다. 그런 그에게 손주가 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걱정이 되었다.

“만남을 주선해 볼까요?”

“아니, 내가 무슨 낯짝으로 그 아이를 만날 수 있겠나.”

레이긴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영리한 아이라 했으니 그 아이도 생각이 있을 터. 아니면 제 발로 거기에 갔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아델을 찾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이 또한 루카스와 비슷한 부분에서 막혔다. 그게 문제였다.

* * *

웨더필드가의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론슈카는 곧바로 교육에 들어갔다. 교양, 문학, 역사 등등 다른 것들은 전부 치워 두고 정령학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스승은 대부분이 장로였고, 가끔은 헤이른이 교육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알게 된 게 있었다.

“웨더필드가에는 유독 불을 다루는 정령사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정령사가 없는 건 아니다. 대지나 물, 바람의 정령사도 있지.”

“로잘린처럼?”

“그래.”

“속성이 다른 정령을 다루면 뭐가 달라?”

“물을 다루는 아이카라는 정령사가 있다. 방계의 장로 중 하나로 현재 다른 곳에 파견 나가 있지.”

“그런데?”

“그녀는 그 근처에 정령이 있다면 그 기억을 읽어 들일 수 있어.”

그 말에 론슈카는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항구에서 끊긴 네 엄마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단 소리다. 돌아오란 명령을 내린 지 꽤 됐으니 슬슬 항구에 도착해 갈 것이다.”

“엄마를ⵈ 찾을 수 있어?”

“찾아야지.”

헤이른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항구로 갈 거다.”

“나도!”

“아니, 아직 너는 도움이 되질 않아. 정령술을 더 키우는 게 낫다.”

론슈카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그는 엄마인 아델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로들에게 일러두었으니 배워라. 그리고 더 강해져.”

헤이른의 말에 론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헤이른은 할 말을 마치자마자 외출 준비를 하였다. 항구로 향할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론슈카는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거기에서 정령술을 더 연습할 셈이었다.

“론슈카.”

그런 론슈카를 로잘린이 가로막았다.

“왜.”

“너 괜찮아?”

잠시 망설이던 로잘린이 론슈카에게 물었다. 너 원래는 여기 오기 싫어했잖아. 정말 괜찮은 거야?

묻고 싶은 건 많았다. 그러나 물을 수 있는 건 괜찮냐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괜찮아.”

론슈카는 그리 대답하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델이 사라진 날부터 모든 것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더 무서워졌고, 론슈카 또한 다르지 않았다.

로잘린은 그게 싫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지켜보며 기도하는 수밖에.

“아델 님, 빨리 돌아와요.”

모은 작은 손에 소망을 담아서.

* * *

기디언은 아델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녀는 요양이 더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일을 요구했다.

“더 쉬셔도 됩니다만.”

“너무 쉬어도 좋지 않아요. 무엇보다 움직여야 뭔가 생각이 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뭐든 시켜만 주세요!”

아델은 당당하게 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하녀들이 하는 일은 다소 맞지 않는 것 같았다. 하루 열심히 일하고 나면 다음 날을 앓았다. 그래도 끈기 있게 일에 덤벼드는 것 같았지만, 걱정이 되었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하다 보면 익숙해져요! 계속 대가 없이 머무를 수도 없잖아요.”

그러면서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델이 서재 담당을 하던 날이었다. 그녀는 흩어져 있는 서적을 들어 순서대로 정리했다.

평소 서재 정리는 기디언이 직접 하곤 했다. 대단한 귀족가가 아니라 일하는 하녀들은 대부분 평민이었고, 아닌 자도 글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하녀가 하는 일은 서재의 먼지를 터는 일 정도였다.

“글을 아십니까?”

“어, 그러게요? 아는 것 같은데요?”

“그럼 뭐를 더 아는지 더 볼까요?”

기디언은 그 뒤로도 아델을 더 시험했다. 글을 안다. 어려운 책도 수월하게 읽어 내고 그에 대해 요점을 정리할 수 있다. 숫자 놀음을 제법 잘한다.

아니, 사실 제법이 아니다. 기디언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았다. 글씨를 처음 썼을 때는 엉망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능숙해졌다.

언제나 해맑게 웃고 있지만, 가끔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다. 가끔은 울기도 했다. 가슴이 먹먹하고 아픈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그렇다고 하였다.

결국 기디언은 아델에게 하녀 일을 그만두라 하였다. 대신 간단한 서류를 정리하는 일을 맡겼다.

“이건 너무 편하게 일하는 거 아닐까요?”

“애초에 손님이 하녀 일을 하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기디언은 웃으며 말했다. 그 뒤부터 아델의 몸은 좀 더 편해졌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가끔 저택에 소속된 하녀가 아이를 데리고 올 때가 있었다. 그 아이를 볼 때면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 왔다.

‘나에게도 아이가 있는 걸까?’

자연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아델의 고민을 들은 사나가 대답했다.

“그래도 의원님께서 서서히 기억이 떠오를 거라 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많은 시일이 지난 것도 아니잖아요?”

사나는 그리 말하며 아델의 시중을 들었다.

‘역시 귀족이야.’

시중을 받는 모양새가 능숙하다.

‘어디 사람일까?’

사나는 아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내내 바쁘게 일하느라 연인 한번 가져 보지 못한 기디언에게 제법 어울리는 짝 같았다.

‘딱히 망상은 아냐.’

기디언도 아델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다. 아직은 신분이 불분명하단 단점이 있지만, 어떠랴.

사실 기디언 남작가는 그 정도로 대단한 가문은 아니었으니까. 정체 모를 귀족 아가씨가 부인으로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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