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아델이 사라진 지 여러 날이 지났다.
루카스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기억을 더듬었다.
아델이 납치됐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델을 납치한 이들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간신히 찾아냈으나, 둘 다 살해당한 뒤였다. 상흔을 보아하니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 저지른 일 같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두 사람의 시체는 찾았으나 거기에 아델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 흔적은 작은 항구 도시에서 끊겨 있었다. 그걸 알게 되자마자 그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 아델을 데리고 배를 탔을 것이라 짐작되는데, 정식으로 등록된 배가 아니었는지 도저히 그 이상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아델.”
아델이 사라진 이후, 루카스는 잠들 수 없었다. 가끔 눈을 붙이기는 했으나, 그 잠깐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눈만 감으면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으니까.
‘나의 실수다.’
그날 잠시 주변을 둘러보겠다고 하던 아델을 말렸더라면. 혼자 내보내지 않았더라면. 파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가정이 루카스를 괴롭혔다.
흐르는 시간이 끔찍했다.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아델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스승님.”
“레온?”
레온은 작은 트레이를 들고 있었다. 그 위에는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그릇이 하나 올려져 있었다.
“그게 뭐지?”
“수프예요. 온종일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잖아요.”
“조금은 먹었다.”
“조금이잖아요.”
레온의 얼굴에는 걱정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래, 그러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가거라. 시간이 나면 먹겠다.”
“꼭 드시는 거예요? 몸이 건강해야 아델 님을 찾는 것도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
레온은 몇 차례나 당부하곤 방에서 나갔다.
“스승님은 바보.”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애초에 아델 님을 그렇게 좋아하셨으면서.’
다시 시간이 돌아가면 좋겠다.
‘스승님과 아델 님이 파혼하기 전으로.’
그렇다면 이런 일은 안 벌어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레온은 잠시 문에 등을 대고 서 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스승님은 원래 튼튼한 편이니 당분간 괜찮을 것이다.
그보다 걱정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똑똑.
론슈카의 방 앞에 선 레온은 노크를 하고 나서 곧바로 방문을 열었다. 손에는 새로 받아 온 수프 접시가 들려 있었다.
“론슈카.”
“아, 아냐. 이, 이게 아냐. 조, 좀 더.”
론슈카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중얼거렸다. 옆에는 종이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고, 카펫이 들춰진 바닥 또한 멀쩡하진 않았다. 어린아이의 서툰 글씨가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론슈카!”
레온은 재차 론슈카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론슈카가 레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간신히 찌워 놓은 살이 도로 빠져 볼이 움푹 들어가 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 왔다.
“수프라도 먹고 해.”
“배, 배, 배고프지 않아.”
론슈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럴 리가. 너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어제 레온이 간신히 입에 넣어 준 수프가 먹은 것의 전부인 것이다.
“배, 배고프지 않다니까.”
“론슈카, 이러면 안 돼. 나중에 아델 님이 돌아오시면 슬퍼하실 거야.”
“어, 엄마가?”
“그래.”
“아, 아냐. 어, 엄마는 지금 여기 없는걸.”
아델이 사라진 지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론슈카는 다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마음이 불안해져 그런 모양이었다.
거기다 자꾸 무언가를 하려고 드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엄마를 들먹여도 밥에 입도 대지 않으려고 한다. 레온은 그게 걱정되었다.
“이러다 굶어 죽어.”
“아, 안 죽어.”
론슈카는 이보다 더 못 먹고서 버틴 적도 있었다.
“시, 시간이 없어.”
“무슨 시간?”
론슈카는 다시 묵묵히 바닥에 글씨를 갈기기 시작했다. 그저 한 사람이 사라졌을 뿐인데 모든 게 망가져 갔다.
레온은 론슈카의 옆에 수프 접시를 두고 방을 나섰다.
“레온 님.”
“키슈.”
“다른 분을 챙기시는 것도 좋지만, 레온 님 본인도 챙기셔야지요.”
그 말에 레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스승님과 론슈카에게는 제법 그럴싸하게 말했지만, 실상 본인도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초조해서 잘 수가 없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아델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되는 걸 알기에 저택에 틀어박혀 둘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미안해요.”
“저한테 사과할 일은 아닙니다. 그보다 마들렌이 이쪽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마들렌은 요리 솜씨도 좋고, 키슈보다 끈덕진 성격이니 셋을 좀 더 제대로 돌볼 것이다. 키슈는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키슈, 여긴 어쩐 일인가요?”
“루카스 님께 전할 이야기가 있어 올라왔습니다.”
“스승님께 전할 이야기요?”
일순간 레온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혹시나 아델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네, 웨더필드가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레온이 그토록 원하던 소식은 아니었다. 외려 나쁜 소식이었다. 그들이 이 상황에서 왜 저택에 찾아왔겠는가.
‘론슈카를 데려가려고.’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레온은 황급히 루카스의 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레온 님!”
키슈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달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스승님!”
론슈카가 웨더필드가에 가게 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 * *
“생각보다 저택이 작군요.”
“프레데릭가의 본가는 아니니까요.”
웨더필드가에서 온 장로 둘은 접대실에서 느긋하게 차를 즐기며, 저택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평온하군요.”
“실상은 그렇지 않겠지만요.”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며 저택의 주인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저택의 주인인 루카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키슈가 나타나 말을 전달했을 뿐이었다.
“죄송하지만, 약속되지 않은 방문은 거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럴 리가요. 며칠 전에 미리 연락을 넣었습니다만.”
“저희는 그런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키슈의 단호한 말에 장로 중 키가 작은 쪽이 혀를 찼다. 받지 못한 게 아니라 받고서 폐기한 것이겠지.
웨더필드의 장로, 온은 그리 생각하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헤이른 님께서 반드시 데려오라 하셨는데.’
데려오긴커녕 당사자의 코끝도 못 보게 생겼다. 그렇다면 다른 수단을 쓰는 수밖에 없다. 온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물러갈 수 없습니다. 만나 주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맞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요!”
다른 장로 또한 온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런 그들에게서는 은은한 진상의 기운이 풍겼다.
키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끌어내기에는 둘의 위치가 제법 높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온건히 돌려보내는 수밖에.’
키슈는 한숨을 삼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 * *
‘아냐, 아냐, 이것도 아냐.’
론슈카는 연신 휘두르던 펜을 집어 던졌다. 예전에 아델이 정령사에 대한 책을 읽어 준 적이 있었다.
최하급 정령은 사람을 망가트릴 수 있다. 하급 정령은 집 하나를, 중급 정령은 저택을, 상급 정령은 마을을, 최상급 정령은 도시를. 정령왕은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모든 게 전설에 불과하지만.”
아델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직 정령왕을 소환한 사람은 없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