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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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

마리라는 여자가 합류한 뒤에는 조금 사정이 나아졌다. 조금이지만 그녀는 아델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식사를 챙겨 주기도 했고, 가끔 말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어떻게든 도망칠 기회를 노리기 위해 잠을 줄여 보려 했지만, 고생한 몸은 쉬이 지쳤다. 잠깐만 긴장을 풀면 잠이 찾아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마침내 마차가 멈춰 서고 아델은 거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데려왔습니다.”

지금까지 거들먹거리던 남자 둘이 처음 보는 이들에게 굽신거렸다. 온통 새카만 옷을 입은 그들은 복면을 쓰고 있었는데, 남자에게 주머니를 건네고 아델을 양도받았다.

필사적으로 몸부림쳐 보았지만, 그들을 벗어날 순 없었다. 그대로 덜렁 들린 아델은 배에 올라타게 되었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아델의 물음에도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배는 바람을 타고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 한가운데 이르자 목적을 드러냈다.

“그만해요. 돌려보내 주면 보답할게요. 제 약혼자가 누군지 아시잖아요.”

침착하게 설득해 보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이었다.

“이미 파혼한 걸로 알고 있는데. 넌 이제 끈 떨어진 존재라고.”

그들은 이제 복면조차 벗어 던졌다.

‘죽이려는 거구나.’

범인이 얼굴을 드러낸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그래도 아직 아델은 포기할 수 없었다.

‘론슈카!’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이가 있는데,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순 없었다.

아델은 기회를 엿보았다. 손에 묶인 밧줄을 풀어내고 다리마저 풀어내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들켜 버렸다.

“뭐야, 밧줄을 풀어낸 거야? 그래 봤자 소용없을 텐데.”

남자들은 비웃으며 아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러고는 난간 너머로 그녀의 몸을 밀었다.

몸이 바다로 떨어지면서 물보라가 튀었다.

‘숨이!’

이렇게 된 거 발목을 구속하는 밧줄부터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필사적으로 움직여 밧줄을 풀고 허우적거려 몸을 물 위로 끌어 올렸다.

그사이 아델을 바다에 빠트린 남자들이 탄 배는 저 멀리 멀어지고 있었다.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설사 보였어도 섬까지 가는 게 가능하긴 할까? 아델은 수영에 서툴렀고, 이 몸은 약했다. 뭐라도 잡을 게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도 없다.

‘이대로 죽는 건가.’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잠긴 몸은 빠르게 지쳐 가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기엔 좋은 방법이네.’

직접적으로 손을 쓰진 않았지만, 여기서 살아날 방법은 없었다. 아델은 몸을 편히 눕히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 아이, 론슈카. 많이 울겠지.’

성인이 될 때까지 같이 있어 줄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그 사실이 안타까웠지만 괜찮다. 루카스의 성격이라면 론슈카도 잘 돌봐 줄 테니까.

‘정말 그걸로 괜찮아?’

아냐, 괜찮지 않아!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다.

그런 아델의 귓가로 높은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나팔 소리라니! 아델은 머리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저 멀리 지나쳐 가는 배를 하나 발견했다.

“여기, 여기요!”

입 안에 짜디짠 바닷물이 들어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살려 주세요!”

손을 들어 흔들고 별수단을 다 썼다. 그러다 힘이 빠져 다시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갔다. 그게 아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몸이 무겁다. 마치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이마에 손을 대는 것 같았지만, 그게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눈을 뜰 기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ⵈ열이 높아서ⵈ 위험ⵈⵈ.”

“다시 의원을 불러야ⵈⵈ.”

간간이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겹쳐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아델.”

다정한 목소리에 손을 뻗어 보았으나 닿아 오는 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델은 눈을 떴다.

“헉!”

깊게 숨을 들이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낯선 방이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아델은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하지만 떠오르는 것 없이 머리만 아파졌다. 그 때문에 머리를 부여잡고 있자니,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 일어났네요? 몸은 좀 괜찮아요?”

까만색 원피스에 하얀색 앞치마를 걸친 여성이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물그릇과 수건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어쩌다 그런 험한 일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다행이지요. 저희 주인님께서 구해 주셨으니까요.”

“ⵈ주인님이요?”

“네, 기디언 남작님이랍니다. 해군에서 일하고 계시지요. 덕분에 손님을 구할 수 있었어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기디언 님께 해 주세요. 곧 오실 거예요. 쓰러진 날부터 매일 하루 한 번 들르신답니다.”

아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 머리를 가진 청년 한 명이 반쯤 열린 문을 노크했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미 문은 열려 있는걸요? 새삼 노크하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래도 손님과 처음 마주하는 자린데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어, 사나.”

“하긴 그도 그렇겠네요.”

“들어가도 괜찮습니까?”

청년, 기디언이 재차 물어 오자 아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세요.”

기디언은 편해 보이는 셔츠에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귀족답지 않은 복장이었지만, 무척이나 자유로워 보였다. 그렇기에 거부감이 없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이 저택의 주인인 기디언이라고 합니다. 레이디의 이름을 들을 수 있을까요?”

“아델, 아델입니다.”

“아델 양이시군요. 혹시 옆에 앉아도 될까요?”

“네.”

아델이 허락하자마자 기디언은 의자를 끌어당겨 침대 옆에 놓았다.

“며칠간 무척 위험했습니다. 어쩌다 그런 곳에 계셨던 겁니까?”

“그런 곳이요?”

“바다요. 아델 양은 깊은 바다에서 죽어 가고 계셨습니다.”

“바다.”

보글보글. 입에서 새어 나간 숨이 퍼져 나감에 따라 점점 숨이 부족해져 갔다. 몸은 돌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고, 차가운 죽음이 손을 뻗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끔찍한 순간이었다. 순간 밀려오는 소름에 양팔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사정이 있으시다면 제가 돕겠습니다. 그러니 기억나는 걸 말씀해 주십시오.”

“아델.”

떠오르는 건 이름 하나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고요.”

“그 외에는 생각나지 않아요.”

“어디부터 생각나지 않는 겁니까?”

“사나 씨가 시녀인 건 알겠어요. 귀족이 어떤 사람인지도요. 하지만 가족이라거나, 왜 바다에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너무 오래 숨을 쉬지 못했다. 거기다 한동안 심각하게 앓았다. 그 때문에 기억의 일부가 사라진 것 같았다.

아델은 답답함에 주먹 쥔 손으로 이마를 두드렸다.

“왜, 왜 기억이 안 나지?”

잊어버려선 안 되는 걸 잊은 느낌이었다.

“잠깐, 아델 양! 멈추십시오. 일단 의원을 불러오겠습니다. 사나!”

“네, 빨리 불러올게요!”

기디언이 아델의 손을 붙잡고, 사나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기억해 내야 하는데.’

기억하기 위한 행위를 말리는 기디언이 원망스러워졌다. 발긋하게 달아오른 눈가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만 우십시오. 눈이 짓물러 있습니다.”

기디언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아델을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아델은 의원이 다급히 달려와 진료를 시작할 때까지 계속 울었다.

의원이 방에 들어간 뒤 기디언은 잠시 방 밖에서 기다렸다. 초조하게 복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의원이 도로 나왔다.

“어떻습니까?”

“상태는 매우 괜찮아졌습니다.”

“하지만 울었습니다만.”

“그냥 운 게 다입니다. 그 정도는 차가운 물로 식혀 주면 낫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그나저나 기억이 다 날아갔으니 그게 더 문제입니다.”

“다시 되살릴 수는 없습니까?”

기디언의 말에 의원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일단은 평온한 환경에서 요양하면서 건강을 되찾다 보면 해결될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억을 잃은 사람을 몇 번 보았는데 대부분 몇 개월 내로 되찾더군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바다 한가운데서 발견된 아가씨라니.”

“여러 가지로 복잡한 사정이 있어 보입니다.”

겉에 입고 있는 옷은 평민이 흔히 입는 옷이었으나, 속에 입은 옷이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손으로 짜낸 레이스로 장식된 드로어즈는 제법 비싼 물건이었다. 다른 데서 귀부인을 모시다 온 사나도 몇 번 보지 못한 고급품이라 하였다.

“어쩌면 살해될 뻔한 귀족 영애일지도 모르겠군요.”

“그건 더 알아봐야 알 일이지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네,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기디언은 의원을 배웅하고는 방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체 그녀에게는 어떤 사정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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