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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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그 이야기 들었어요?”

귀부인 하나가 속삭이듯 말했다.

“무슨 이야기요?”

“루카스 님의 약혼녀 이야기.”

“아, 아델이라는 여자 말이군요.”

“네, 그 여자가 지금 실종된 건 아세요?”

“실종이라고요? 파혼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갑자기 실종이라니.”

이야기를 듣던 귀부인이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어디서 사라진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실종되었단 것만은 확실한 정보랍니다.”

“안됐네요. 파혼했으니 루카스 님도 더는 찾지 않을 테고, 이대로 묻혀 버리는 건가요?”

“아니, 그건 또 아니더라고요?”

“아니라고요?”

귀부인의 귀가 솔깃해졌다.

“그날부터 루카스 님이 미친 사람처럼 그 여자를 찾고 있어요. 그뿐이겠어요? 헤이른 님마저도 사람을 풀었다 하더라고요.”

“헤이른 님은 이제 그 여자에게 접근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지 않으셨나요?”

“저도 그런 걸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이제 그 여자가 사라졌으니 모든 게 헤이른 님 뜻대로 풀릴 텐데 왜 찾는 걸까요?”

“그거야 그거밖에 더 있나요?”

귀부인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사랑! 사랑이죠!”

“가장 사랑을 믿지 않을 것 같은 두 분이 그러는 게 아이러니네요.”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 * *

아델이 사라졌다.

파혼을 마친 뒤, 잠시 산책을 하겠노라고 나서선 되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기에 루카스가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심각성을 인식한 루카스는 돈과 사람을 풀었다. 그러나 어디서도 아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어 루카스는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을 찾아갔다. 그의 어머니인 케일라였다.

“루카스, 오랜만이구나.”

“아델에게 손을 댔습니까?”

“간만에 집에 찾아와서 하는 말이 그것뿐이니?”

“제 물음에 아직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케일라는 마시던 찻잔을 우아하게 내려놓았다.

“그렇게 답을 원한다면 주마. 나는 그 여자에게 손대지 않았어. 이제 파혼했다면서? 그런데 내가 굳이 손댈 필요가 있니?”

“정말입니까?”

“가끔은 어머니 말도 믿어 주는 게 어떻니?”

루카스는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그대로 뒤돌아섰다. 그런 그의 뒤에 대고 케일라가 말했다.

“파혼하고 무서워져서 도망친 거겠지. 굳이 찾을 필요 있나? 그보다 새로운 약혼녀를 찾는 건 어때? 아만다 황녀님이 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걸 알고 있잖아.”

“필요 없습니다.”

루카스는 그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매몰차긴.”

케일라는 다시 느긋하게 찻잔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 * *

“찾아.”

싸늘한 목소리가 알버트에게 명령했다.

“필요한 자금은 얼마든지 대주지. 살아 있는 상태로 찾아내.”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알버트는 어떠한 반문도 없이 곧바로 아델을 찾는 일에 착수했다. 하지만 웨더필드가의 장로들은 달랐다.

“아델이라는 여자가 사라졌다면 이제 후계자, 그러니까 론슈카 님을 데려오는 일이 더 수월해지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애초에 필요한 건 후계자뿐이었으니까요.”

저들끼리 신나서 떠들어 대는 모습에 신물이 올라왔다.

“이렇게 된 거 당장이라도 데리러 가지요. 조금이라도 빨리 데려와 가문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알고 있었다. 원래 장로들은 저런 이들이라는 걸. 휘두르기 쉽게 저런 사람만 골라 뽑은 건 헤이른 본인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로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속이 뒤집혀 견딜 수가 없었다. 헤이른은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말했다.

“아이에겐 어머니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 아델이 죽어선 곤란해.”

모순된 말이었다. 장로 중 하나가 그 말을 찔렀다.

“하지만 아델이라는 여자를 찾으면 후계자에게 접근이 더 어려워지는 셈 아닙니까? 로잘린 님도 어머니 없이 훌륭하게 자라셨습니다.”

훌륭하게 자랐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로잘린은 어머니 없이도 아무런 잡음 없이 똑바로 자랐다. 헤이른도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로잘린은 그걸로 만족하고 있을까?’

헤이른으로선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장로들의 동의를 받았다고.’

피식 웃은 헤이른이 손짓하자 회의실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초가 녹아내리고, 땀이 흘러내렸다.

“명령이다.”

내내 떠들어 대던 장로들이 입을 다물었다.

“아델을 산 채로 찾아내. 이 일에는 모든 장로들이 협력한다.”

반발은 용납하지 않았다.

* * *

카이가 전서구를 받고 미친 듯이 달려 수도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아델이 사라진 지 여러 날이 흐른 뒤였다.

“안된 일이야. 결국은 이렇게 정치에 희생되는 거로군.”

레이긴은 창밖을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스승님을 보며 카이는 망설임을 멈췄다.

이미 너무 늦었다. 여기서 더 늦었다간 나중에라도 사실을 알게 된 뒤 상처를 받을 사람은 스승님뿐이다. 그렇기에 말하기로 했다.

“스승님, 따님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ⵈ정말인가?”

레이긴이 놀란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그는 비척비척 다가와 카이의 양팔을 움켜쥐었다.

“내 딸, 내 딸은 무사한가?”

“상황을 보아하니 돌아가시진 않으신 것 같습니다.”

“아, 아아아!”

그대로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린 레이긴은 눈물을 흘렸다.

“살아있다니, 살아있었어!!”

“그러니 스승님 고정하십시오. 슬픔에 잠겨선 따님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 그렇지.”

레이긴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딸, 그래. 딸이 있었어.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 이름도 채 지어 주지 못한 그 아이가 말이야. 그래.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는가.”

카이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을 이었다.

“스승님의 따님 이름은 아델이라고 합니다.”

“아델, 아델! 예쁜 이름이구나.”

그런데 어딘가 낯이 익은 이름이었다. 루카스의 평민 출신 약혼녀의 이름이 아델 아니었던가!

“설마!”

“맞습니다, 스승님. 루카스 경의 약혼녀인 아델이 엘렌 님의 딸입니다.”

“안 돼. 안 된다.”

레이긴은 허우적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아델이 처한 상황을 알고 있기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정말 그녀가 내 딸인가?”

“네. 살던 곳을 자주 옮기는 통에 찾기 힘들었지만, 맞습니다.”

“아델은 편히 살았는가?”

“그건 아닙니다.”

카이는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아델의 지난 일들에 대해 늘어놓았다. 정령사의 아이를 가지고 그로 인해 마을로부터 배척받았던 일, 그 때문에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던 일.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야기에 레이긴은 한 번 더 뜨거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왜, 왜 하필 그 아이에게만 그런 힘든 일들이!”

게다가 지금은 실종 중 아닌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카이, 기사단과 정보단을 동원하겠다. 아델을 찾아야겠다.”

계속 이렇게 절망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레이긴은 몸을 일으켰다.

* * *

덜컹덜컹. 낡은 마차가 굴러가는 소리에 귓가가 시끄럽다. 그뿐인가. 연신 덜컹거리는 통에 바닥에 닿은 엉덩이가 아프다.

‘방심했어.’

혼자서 움직이는 게 아니었는데. 신전 근처인 데다가 마음이 심란하여 잠시 돌아본다는 게 이렇게 되고 말았다.

아델을 납치한 이들은 그녀의 눈을 가리고 낡은 마차에 태워 계속 이동만 했다. 가끔 들여다볼 뿐,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마차가 워낙 낡은 통에 얇은 판때기 너머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저 여자 귀족 아냐? 이렇게 납치해도 되나?”

“아니래. 평민이라던데. 그리고 받은 돈이 그렇게 큰데 귀족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우리는 그냥 돈 받고 여자를 처리한 뒤 새 인생을 즐기면 되는 거야.”

전형적인 쓰레기의 발언이었다.

“그 김에 옷도 바꾸자고. 저 옷 탐나. 마리에게 주면 좋아할 것 같은데.”

“곧 마을에 도착하잖아? 마리에게 갈아입히고 가져가라 해.”

“그래야겠다. 그리고 그다음부턴 마리도 꼬셔 봐야지. 어차피 다신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한참을 달리던 마차는 어느 순간 멈춰 섰다. 그리고 거기서 여자 하나가 합류했다. 이름이 마리라는 것 같았다.

“옷 갈아입어.”

그녀는 잠시 아델의 손을 풀어 주고는 옷을 갈아입혔다. 그사이에 도망칠까, 싶었지만, 경계가 심해서 그러지 못했다. 무엇보다 발이 묶여 있기도 했고 말이다.

낡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자 원래의 외출복은 마리라는 여자가 들고 나갔다.

“정말 귀족님의 옷이잖아? 너희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야?”

“에이, 너도 알면서도 따라온 거 아냐?”

그들은 그리 말하면서 낄낄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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