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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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

루카스는 아델이 자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중간에 있는 베개를 빼 보았다. 그러자 데굴데굴 굴러온 아델이 그의 곁에 머물렀다.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웃음이 입가에 머물렀다. 슬며시 베개를 다시 원위치로 놓은 루카스는 잠자리에 누웠다. 닿아 오는 몸이 따뜻했다.

* * *

아침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난 아델은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이번에야말로 자기 자리에서 얌전히 자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무래도 중앙에 둔 베개를 넘어간 모양이었다.

“으으.”

루카스가 이런 자신을 뭐라고 생각할까. 아델은 어떻게 하면 얌전히 잘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역시 아이들과 같이 자야겠어.’

그게 제일 안전한 방법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식사를 마치고, 일을 위해 집무실로 향하는데 키슈가 아델을 찾아왔다.

“아델 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이요?”

여기까지 찾아올 손님이 있었던가? 아델은 의아함을 품고 접대실로 발길을 틀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에 분홍색 머리를 가진 작은 아이 하나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로잘린이었다.

“로잘린.”

안 그래도 저번에는 제대로 감사의 인사를 하지 못해서 한번 만나려고 했었다. 아델이 반갑게 이름을 부르자, 로잘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사냥 대회 이후로는 처음이네. 몸은 괜찮아?”

“네, 지금은 튼튼해요.”

로잘린은 생긋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델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키슈에게 달콤한 디저트와 차를 부탁했다.

“차 괜찮을까?”

“네, 저는 차도 잘 마셔요.”

로잘린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대답했다.

“저번에는 정말 고마웠어. 로잘린이 아니었으면 큰일 났을 거야. 뒤늦게 감사 인사를 하는 걸 용서해 주렴.”

“아니요, 괜찮아요. 그때는 다들 정신이 없었잖아요.”

어린데도 어른스럽다.

“아,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니?”

헤이른이 루카스의 저택에 가는 걸 쉽게 허락했을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로잘린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아델의 눈치를 보았다.

“부탁?”

“네, 어려운 건 아니고요. 아델 님만 할 수 있는 거예요.”

“로잘린의 부탁이라면 들어줘야지. 그렇게 큰 도움을 받았는데. 내가 뭘 하면 될까?”

“저랑 같이 외출을 해 주세요!”

로잘린이 힘차게 외쳤다.

“외출?”

“네,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 혼자 가긴 그래서요.”

그런 곳을 굳이 자신과? 후작가의 영애이니 같이 갈 만한 사람은 많을 텐데?

의아함이 들었지만, 로잘린을 믿어 보기로 했다. 헤이른의 딸이란 이유로 멀리하는 건 아이에게 너무한 일인 것 같았으니까.

“좋아. 그럼 언제 갈까?”

“오늘, 오늘요!”

로잘린이 신나서 대답했다.

“좋아. 그럼 외출 준비를 할게.”

아델은 자리에서 일어나 접대실을 나섰다. 그리고 바로 앞 복도에서 론슈카와 마주쳤다.

“엄마.”

론슈카는 언제나처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델을 불렀다.

“론슈카, 왜 그러니?”

“어디 가?”

“응, 로잘린이 찾아와서 같이 가 달라는구나.”

“나는?”

아델이 막 대답하려는 순간, 접대실에서 튀어나온 로잘린이 외쳤다.

“론슈카는 안 돼!”

“왜?”

“안 되니까 안 돼. 오늘은 나와 아델 님만 갈 거라고.”

“나도 가고 싶은데.”

“그래도 안 돼.”

로잘린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를 본 론슈카는 욱하는 모양이었지만, 아델이 달랬다.

“대신 내일은 론슈카와 엄마 둘이 외출하자. 론슈카가 좋아하는 걸 먹고 과자 가게에도 들르는 거야.”

“오늘 할 수도 있잖아.”

“미안, 론슈카. 론슈카도 알잖아. 저번에 로잘린이 아니었으면 엄마와 레온이 위험했을 거야. 그러니까 이번만 양보해 주자.”

그제야 론슈카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로잘린은 그런 론슈카를 보며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 * *

외출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옷만 갈아입고 적당히 어울리는 모자를 쓰는 걸로 끝났다.

“마차는 필요 없니?”

“제 마차가 있으니 괜찮아요!”

“먼 곳이야?”

“멀지 않아요.”

아델은 로잘린의 마차에 올라탔다. 로잘린은 아델의 맞은편에 앉아서 연신 그녀를 힐끔거렸다. 조금 들떠 보였다. 자신과 외출을 하게 된 게 정말 좋은 모양이었다.

로잘린의 장담대로 마차는 많은 거리를 이동하지 않았다.

“여기는?”

“고서적 거리예요!”

잘 정돈된 길을 중간에 두고 길가에 서점이 쭉 늘어서 있었다. 중간중간 다른 가게가 있긴 하지만, 로잘린의 말대로 대부분은 서적을 팔고 있었다.

“잘 보면 중간에 고서적을 파는 가게가 몇 있어요. 그래서 책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종종 들르는 곳이에요.”

그 말에 아델도 호기심이 생겼다.

“그중에서도 벨룬의 서점이 제일 책이 많아요. 그리로 가 봐요.”

“그럴까?”

그나저나 같이 서점에 오고 싶었다니. 소박하면서도 귀엽다.

아델은 로잘린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은 따스했고, 불어오는 바람은 선선했다. 그렇기에 제법 기분이 좋았다.

벨룬의 서점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서점에는 입구부터 수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일부는 새 책이었고, 일부는 오래된 책이었다.

“가끔 보물도 찾을 수 있어요.”

로잘린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까와는 달리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웃는 것도 억지로 웃는 것이었다.

‘설마.’

아델은 서서히 몸을 긴장시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서 서적을 보고 있는 헤이른을 만났다.

“로잘린.”

로잘린의 이름을 부르자 안 그래도 작은 몸을 더 작게 움츠린다.

“헤이른 님.”

아델은 이번엔 헤이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책에 몰두하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붉은 눈동자가 놀란 듯 커졌다.

“여긴 어쩐 일이지?”

“그건 제가 해야 할 말이 아닐까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이제는 로잘린까지 이용하시나요?”

그 말에 헤이른은 로잘린을 바라보았다. 로잘린은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으며 아델의 치맛자락을 살며시 잡았다.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긴. 염려하지 마, 로잘린.”

이 기회에 헤이른에게 따끔하게 말해 둘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군.”

헤이른은 책을 덮으며 옆에 서 있는 노인에게 말했다.

“아까 봤던 것과 이것을 웨더필드가로.”

“네. 언제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헤이른 님.”

“일단 나가서 이야기하지.”

헤이른은 먼저 앞서서 서점을 나갔다. 그리고 로잘린은 작은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냥 제가 전부 한 거예요.”

아델은 천천히 눈을 깜박이며 로잘린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왜 그랬는지 알려 줄 수 있겠니?”

아델의 말에 로잘린이 머뭇거리다 답했다.

“아델 님이 아버지랑 사이가 좋았으면 좋겠어요.”

아니, 그건 절대 무리. 아델은 간신히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구나.”

아델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서점 밖으로 나가자 헤이른이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긴 것만 봐서는 루카스 못지않은 미남이었지만, 그러면 뭘 하나. 심성이 쓰레기인데.

아델은 속으로 혀를 찼다.

“여전히 어리석군.”

신랄한 목소리가 아델을 후벼 팠다.

“나라면 로잘린이 부탁하더라도 따라 나오지 않았을 거다. 넌 무서운 것도 없나?”

“그럴 리가요.”

원래는 루카스가 붙여 준 경호 인력을 데리고 나오려 했으나, 로잘린이 괜찮다 했다. 아직 어린 탓에 웨더필드가의 기사가 둘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몸만 나온 것이었다.

“그보다 저희가 이렇게 이야기할 사이였던가요?”

아델은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지.”

헤이른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둘 사이에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델은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 마차 한 대가 거리를 미친 듯이 질주했다. 마침 아델은 마차가 지나가는 위치에 있었다.

‘피해야 하는데.’

몸이 굳어서 움직이질 않았다. 당황하여 눈을 질끈 감는데, 커다란 손이 아델을 잡아당겼다.

“악!”

이어 단단한 가슴팍에 이마를 부딪혔다. 마차는 그대로 달려 나갔고, 로잘린과 아델도 무사했다. 애초에 로잘린은 안전한 위치에 있었고, 헤이른이 아델을 잡아당겼기 때문이었다.

“쯧.”

혀를 찬 헤이른이 자유로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거기서 생겨난 불꽃이 마차의 바퀴를 전부 불태워 버렸다. 자연 마차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악!”

미친 듯이 마차를 몰던 마부가 비명을 질렀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다 헤이른을 보게 된 마부는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수도에서 헤이른은 제법 유명했으므로,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저래도 돼요?”

아델이 묻자 헤이른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여기선 달리면 안 된다. 먼저 선을 넘은 건 저쪽이야.”

마차 안에서 사람이 나왔으나, 그 또한 헤이른을 알아본 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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