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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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

“앞으로는 레온과 론슈카도 모임에 나가게 될 거다.”

식사 시간에 루카스가 폭탄을 터트렸다.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아델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포크도 떨어트렸다.

“이제 둘 다 사교계를 접할 나이가 되었으니까.”

어린아이들만의 사교계가 따로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왜? 단순히 말하는 대로 사교계를 접할 나이라서 그런 건 아닐 것 같았다.

“이유가 있는 건가요?”

“그래.”

아델은 곰곰이 생각을 더듬어 보았다. 그녀가 끼어들면서 이미 미래는 틀어진 지 오래였다. 그러니까 생각해 보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결과, 아델은 주목적이 론슈카가 아닌 레온의 사교계 데뷔임을 알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레온은 루카스의 밑에서 성장하고 십 대 후반이 되어 자신의 가문을 되찾기 위해 나선다.

그리고 그 길에는 피가 동반된다. 복수를 위해 날카롭게 검을 갈아 왔던 레온이기에 용서란 없었다.

“사교계에 나설 때 레온은 본래 쓰던 성을 사용할 것이다.”

좀 더 온건한 방향으로 미래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레온 드 패트릭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공작가의 이름이다. 직계가 전부 사라지고 나서 그 이름을 잇는 자는 없었다.

방계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들은 그 이름을 쓸 용기가 없었다. 아직 가문을 멸문시킨 자들이 살아 있으니까.

“괜찮은 건가요?”

아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알고 있었나?”

“자세한 일은 모르지만, 과거 멸문한 공작가가 있다는 건 알아요. 그게 패트릭 공작가인 거죠?”

“그래.”

“지금 와서 그 성을 다시 써도 될까요?”

“되도록 만들어야지.”

루카스는 패트릭 공작가의 저택을 다시 세우고, 황제를 만나 패트릭 가문의 사람이 돌아왔음을 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델이 알기에 그건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공작가가 멸문되었다. 아무리 세 군데의 귀족가가 힘을 합쳤다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패트릭 공작가는 황족의 피를 품고 있는 가문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답은 금방 나온다.

황제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패트릭가의 멸문에 동의한 것이다.

아델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 사실을 어떻게 하면 루카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어찌나 걱정이 되는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도 몰랐다. 결국 아델은 더 먹기를 포기했다.

“식사가 끝나면 잠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그러지.”

둘은 식사를 마치고 언제나처럼 집무실로 이동했다.

“정말 괜찮겠어요?”

“뭐가 말이지?”

“멸문한 가문을 다시 세우는 거요.”

“괜찮지 않을 이유라도 있나?”

“그야.”

쾌락주의자인 황제가 끼어 있으니까!

아델은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그래, 조금 천재인 셈 치자.

“아시잖아요. 배후 없이는 아무리 귀족가 셋이 모였다 하더라도 공작가를 무너트릴 수 없다는 걸요.”

“알고 있군.”

“그 정도는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어요!”

“그런 셈 치지.”

“그래도 레온을 내세울 건가요? 위험할지도 몰라요.”

“레온은 모든 걸 각오하고 있어. 그리고 나도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이다.”

그거야 알지. 루카스는 하나뿐인 제자를 사랑하니까. 아델은 답답함에 가슴을 문질렀다.

“아델.”

“네?”

“간밤에 나도 깊이 생각해 봤는데. 조만간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원하는 대로요?”

“그래, 이곳에서 멀리 떠나 조용한 곳에서 론슈카와 둘이 살아가는 걸 원했지?”

그걸 원하기는 했다.

‘하지만 왜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건데?’

아델도 얼마든지 레온을 도울 수 있었다. 그런데도 배제하려고 하는 건 평민이라서? 아니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겨서?

가슴이 턱 막혀 왔다. 안전을 생각하면 떠나는 게 맞았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너무 정이 들어 버렸어.’

아델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델?”

“늦었어요.”

“뭐가 늦었단 소리지?”

“이제 도망치기엔 너무 늦었다고요.”

레온이 소중하다. 루카스 또한 죽지 않았으면 했다.

“아니, 아직 늦지 않았어.”

“그래서 이대로 도망치라고요?”

“원하던 것 아닌가.”

“그래도 갈 수 없어요.”

아델은 울먹이며 말했다. 진짜로 도망치고 싶었는데 이미 발목이 잡힌 상태였다.

“어리석긴.”

루카스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그건 루카스 님도 만만치 않거든요?”

아델은 얼굴에서 손을 떼며 대답했다.

“그런데 레온은 원래 성을 쓰면 된다지만, 론슈카는 어쩌죠?”

“내 성을 써야겠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렇군. 그러면 결혼할까?”

“청혼인가요?”

“일단은 그렇겠지.”

이런 분위기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 뺨을 맞아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둘은 계약 관계. 못 할 말은 아니었다.

“그건 사양하겠어요. 루카스 님께는 저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나타날 거예요.”

그 말에 루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희는 계약 관계니까, 그걸 잊지 마세요.”

아델은 재차 말하곤 자신의 책상에 앉았다. 일도 일이었지만, 앞으로 레온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았다.

* * *

론슈카는 볼을 부풀리고 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가기 싫어.”

마침 열리는 아이들만의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10대 중반 이전의 아이들만 모이는 모임이라 하였다.

그렇기에 론슈카와 레온을 준비시켰지만, 한쪽이 지나치게 비협조적이다.

“엄마랑 있는 게 더 좋은데.”

“그래도 론슈카, 친구를 더 사귀면 즐거울 거야.”

“친구는 이거면 되는데.”

론슈카는 레온을 가리켰다. 그래도 아델이 끄떡도 안 하자 로잘린의 이름까지 꺼냈다.

“그래도 안 돼.”

사실 아델도 론슈카의 참여는 몇 차례나 고민했다. 하지만 루카스가 말하길 론슈카처럼 뛰어난 정령사의 자질을 지닌 아이는 어딜 가건 주목받을 거라 하였다.

‘그러니 수도에 있을 때 인맥을 쌓아 두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론슈카의 등을 떠밀었다.

“자, 옷도 잘 어울리고 멋지네. 론슈카, 오늘 모임 잘하고 올 수 있지?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지?”

“될 수 있으면 존댓말을 쓸 것. 정령을 부르는 건 자제할 것.”

“그래, 그 두 가지만 지키면 아무런 문제 없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아이들을 모임에 보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뒤, 아델은 심통 맞은 표정을 한 론슈카를 다시 만나야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레온은 난처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대답한 사람은 같이 보냈던 시종이었다.

“론슈카 님이 다른 분의 옷에 불을 붙이셨습니다.”

큰 사고를 쳤다.

“아이는 괜찮대요?”

“네, 옷만 조금 탔을 뿐입니다.”

“론슈카!”

아델이 허리에 손을 얹고 론슈카를 내려다보았다.

“론슈카는 잘못 없어요!”

거기에 레온이 끼어들었다.

“그 아이들이 제 험담을 했어요. 그걸 들은 론슈카가 화나서 정령을 부른 것뿐이에요.”

친구를 위해 화를 냈던 거구나. 장하다, 훌륭하다.

하지만 뒷수습이 만만치 않게 되었다. 아무래도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아델은 론슈카와 레온을 데리고 일을 겪었던 아이의 저택에 방문했다.

롤링 남작 부인. 그녀는 생각보다 화가 나지 않은 듯했다. 외려 친절하게 아델을 맞이했다.

“세상에, 이렇게 병문안을 와 주시다니. 정말 감사해요.”

생글생글 웃는 표정이 가식적이었으나, 화내는 것보단 나았다.

‘왜 이러는 거지.’

아델은 남작 부인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남작 부인은 당장의 피해보다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이 시대에 정령사는 드물고, 그렇기에 일단 정령을 부를 수만 있으면 평민이라도 단승 작위를 받는다.

요컨대 론슈카는 미래가 보장된 아이라는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몇몇 귀족들이 아델에게로 돌아섰다. 그러면서 친근함을 표시하는 귀부인도 늘어났다.

“루카스 님은 어떠세요?”

아델이 질문에 고개를 기울이자, 남작 부인이 웃으며 목소리를 낮춘다.

“밤에 어떠시냐는 거예요.”

아무래도 너무 친근해진 모양이었다. 밤일까지 묻다니. 하지만 알고 보니 친한 귀부인들 사이에선 흔히 오가는 이야기인 듯했다.

어느 가문의 누구는 밤일을 못한다, 몸이 너무 말랐다, 근육이 너무 많아서 보기 싫다 등등. 별별 이야기가 다 튀어나왔다.

“말해 주세요, 네?”

말해 달라면 말해 줘야지. 아델은 미래의 루카스를 위해 잠시의 부끄러움은 접어 두기로 했다.

“루카스 님은 대단하세요! 정말 대단하시죠.”

부끄러움을 접어 두어도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다.

“어머나?”

“뭘 생각하시든 그 이상일 겁니다.”

아델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차후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와전되어 퍼져 나갈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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