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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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

로잘린은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닥쳐올 고통을 기다렸으나,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아, 아악!”

외려 비명은 로잘린이 아닌 몰이꾼에게서 터져 나왔다.

그는 로잘린을 던지듯 내려놓고는 손을 붙잡고 펄펄 뛰었다. 그의 몸은 파란 불꽃으로 휩싸여 있었다.

“누가.”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돌아보니, 론슈카가 보였다.

그러나 로잘린은 그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불꽃처럼 새파랗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무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누가 우리 엄마를 건드렸어?”

“거, 겁먹지 마라! 상대는 고작해야 아이 하나야!”

“하나가 아니야!”

로잘린은 다시 바람의 정령을 움직였다. 불꽃에 바람이 더해지니 금방 크기가 부풀었다. 정령 둘을 부르고 지친 로잘린과 다르게, 론슈카는 몇을 더 불러냈다.

불꽃은 쏜살같이 움직여 거기 있는 몰이꾼들의 몸에 달라붙었다.

“으아악!”

“호수, 호수로 뛰어들어!”

몇몇이 호수로 뛰어들려고 했지만, 로잘린이 그를 막았다. 발을 걸어 넘어트리면 되니 큰 힘이 필요하진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기어서 호수로 들어갔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왜, 왜 꺼지지 않아아!”

정령의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불과 물은 상성이 좋지 않았지만, 론슈카의 재능이 그 모든 걸 뛰어넘게 만들고 있었다.

찬란히 타오르는 재능에 눈이 멀 것 같았다.

‘부러워.’

로잘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론슈카, 그만! 이제 그만해도 돼!”

그사이 론슈카에게 달려온 아델이 그를 껴안았다. 그렇게 무서워 보였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껴안고 달래 준다.

“이제 저 사람들은 무력해. 그만 됐으니까 힘을 거둬.”

“하지만 엄마, 저들은 엄마를 해치려고 했어.”

론슈카는 또박또박 말했다. 아직도 눈은 새파랗게 타오르고 있었다.

“엄마는 무사해.”

아델은 론슈카를 끌어안고 몇 번이나 등을 토닥였다. 그제야 타오르던 정령의 불꽃이 잦아들었다. 새파랗게 변했던 눈동자도 원래의 붉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론슈카를 안정시킨 아델은 이어 로잘린을 살폈다.

“세상에!”

코피가 잘 멈추지 않는다. 얼른 의원에게 보여야 할 것 같았다. 아델은 뒤를 돌아보며 망설이다가 로잘린을 그대로 안아 들었다.

이번 일의 배후를 캐는 것도 중요했지만, 지금 여기엔 아델과 아이들뿐이었다. 아이들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다.

그렇기에 아델은 로잘린을 단단히 끌어안고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잘 따라와야 해. 알았지?”

“응.”

“네!”

레온과 론슈카는 아델의 말을 착실히 따랐다. 아델은 바삐 걸음을 옮겼다.

“저 무겁지 않아요?”

로잘린이 눈을 끔벅거리며 물었다.

“무겁지 않아. 오히려 너무 가벼워. 대체 왜 이리 가벼운 거야?”

가벼운가? 로잘린은 아델의 어깨를 잡은 자기 팔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론슈카와 레온에 비해서는 많이 말랐다. 요즘 공부를 하느라 바빠서 음식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그런 모양이었다.

“어릴 땐 많이 먹어야 잘 크는 거야.”

“네.”

로잘린은 아델의 품으로 몸을 기울였다.

* * *

불꽃이 튀고 검명이 인다. 결투는 격렬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루카스는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언제부터인가 아델과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루카스는 불꽃을 튕겨 내며 뒤로 훌쩍 물러섰다.

그런 루카스를 따라잡으며 헤이른이 불꽃을 퍼부었지만, 그마저 갈라 버리고 천막만을 살폈다. 그러다 보니 자연 헤이른의 시선도 그리로 향했다.

“없어.”

“없군. 하지만 그게 뭐?”

루카스는 이를 꽉 물었다. 얼마 전에도 아델은 목숨을 위협받았다. 그와 침실을 같이 쓰기 시작한 이후로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위험하다.

“결투는 잠시 중지다.”

그 말과 함께 루카스는 결투장을 벗어나려 했다.

“지금 벗어나면 네가 지는 거다.”

헤이른은 이죽거리며 말했다.

“넌,”

루카스가 헤이른에게 뭐라 말하려는 순간, 숲속에서 아델과 아이들이 튀어나왔다.

“루카스!”

어찌나 급한지 존칭조차 쓰지 않는다. 이번에야말로 루카스는 결투장을 벗어나 아델에게로 달려갔다.

가까이 다가서는 루카스를 보자 아델은 땀투성이의 얼굴로 웃어 보였다.

“살았다.”

“아델.”

로잘린을 내려놓은 아델이 루카스를 덥석 끌어안았다.

“살았, 살았어요.”

그러고는 스르륵 쓰러져 가는 몸을 루카스가 재빠르게 잡아챘다. 그리고 아델을 품에 안은 채 아이들의 상태를 살폈다.

론슈카는 멀쩡했지만 레온은 옷 일부가 뜯어져 있었고, 로잘린은 창백한 안색으로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의원, 의원을 불러와!”

사낭터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휴식용 천막에 준비된 간이침대에 로잘린을 눕히고, 의원이 그녀를 살폈다. 거기에 아델의 증언을 들은 기사들이 숲속으로 몰이꾼을 잡으러 들어갔다.

더는 결투를 이어 할 분위기가 아니게 되었다. 헤이른은 혀를 차며 결투장을 벗어났다.

그는 아직 루카스의 품에 기대 있는 아델을 보며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왜 그런지 알게 되었다.

루카스와 아델, 그리고 두 아이는 이미 완성된 가족같이 보였다. 그게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 * *

의원이 아이의 작은 손을 잡아 맥을 짚었다.

“잠시 무리했을 뿐입니다. 잠시 쉬고,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겁니다.”

“다행이에요.”

아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로잘린, 많이 아픈 게 아니래.”

그러면서 무릎을 굽혀 의원이 놓은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마워.”

아델은 진심을 담아 로잘린에게 감사를 표했다.

“제가 도움이 되었나요?”

로잘린의 물음에 아델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큰 도움이 됐지. 우리는 로잘린 덕분에 살아난 거야.”

그 와중에 론슈카가 뭐라 이야기하려 했지만, 레온이 그 입을 막아 버렸다.

“너는 나중에 이야기해. 나중에.”

대충 뭐라 할지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로잘린은 작게 웃었다. 힘내서 돕기를 잘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착한 아이구나.”

부드럽게 이마를 쓸어 넘겨주는 손이 다정하다.

‘아아, 어쩌면.’

이 사람이 엄마가 되어 주면 좋지 않을까?

저 또한 론슈카처럼 절대적인 애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온도 원래는 아델의 아이가 아니지만, 같이 애정을 받고 있지 않은가.

‘내 엄마가 되어 줬으면 좋겠어.’

로잘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 * *

기사들이 숲에 들어가 몰이꾼을 찾았지만, 그들은 전부 죽은 상태였다. 시체를 회수하긴 했지만, 이렇다 할 증거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루카스는 이번 일을 저지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미 예전에 비슷한 일을 겪어 보았기에.

‘어머니.’

범인은 케일라, 그녀가 분명했다. 하지만 물증이 없는 터라 여기서 그녀를 잡아낼 수는 없었다.

“저런, 위험한 일이 있었네.”

어느새 나타난 케일라가 루카스의 옆에 서서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폐하의 사냥터에서 무슨 짓이람. 그렇지 않니, 루카스?”

“모두 어머니가 저지른 짓 아닙니까?”

“증거가 있니?”

케일라는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어머니, 아니, 케일라 가주 대리.”

“오오, 가주님.”

케일라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더는 이런 짓 저지르지 마십시오. 이제 더는 용납 못 합니다.”

“용납 못 하면 어쩌시려고요? 가주님께서는 너무 오래 가문을 떠나 계셨어요.”

가문을 움켜쥐고 휘두르는 건 이제 케일라 자신이라는 소리였다.

“그러게 제가 말했지요. 떠나면 후회할 거라고요. 가주님은 프레데릭가에 있을 때 가장 빛난답니다. 저런 평민 여자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걸 결정하는 건 당신이 아닙니다.”

“그게 싫으시면 가문으로 돌아와서 저를 경질해 보세요.”

케일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당신은 끝까지.”

“전부 하나뿐인 가주를 위해서입니다. 아시잖아요?”

“그건 절 위하는 게 아닙니다!”

“아니요. 장담컨대 여기서 진심으로 당신을 위하는 건 저뿐일 겁니다.”

루카스는 그런 케일라에게 살기를 내뿜었다. 오싹한 살기에 가녀린 어깨가 떨리는 게 보였지만,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좋네요. 이런 거.”

케일라는 손으로 양어깨를 감싸 안았다.

“더, 더 강해지도록 해요.”

그녀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셀렉시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선언했다.

“이번 결투는 중간에 무산된 결과, 무승부로 처리한다.”

“황제 폐하, 한 말씀 올려도 될까요?”

거기에 케일라가 나섰다.

“말하도록.”

“아무리 소란이 있었다고 하나 먼저 결투장을 벗어난 이는 루카스 경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결투에 패배한 셈이 아닐까요.”

케일라의 말에 셀렉시온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는데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셀렉시온은 먼저 헤이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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