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저도 갈 수는 없을까요?”
아델이 간절하게 부탁했지만, 몰이꾼의 대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숲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합니다.”
그 때문에 아델은 따라가지도 못하고 외부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려야 했다.
‘레온이 어째서 숲으로 들어간 걸까.’
아델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루카스도 걱정되고, 레온도 걱정된다. 그런 상황에서 시종에게 맡기고 온 론슈카마저 걱정되기 시작했다. 초조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때, 몰이꾼 하나가 아델에게 다가왔다. 뭘 하려는 건가 싶어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옆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저 그뿐이었는데.
‘기분이 이상해.’
아델은 슬그머니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뒤돌아서 보니 몰이꾼이 따라오고 있었다. 좋은 의도 같아 보이진 않았다.
‘일단은 사람이 많은 쪽으로!’
다급히 발걸음을 놀리는데, 따라오는 몰이꾼도 속도를 높여 갔다.
“도와,”
크게 소리를 치려다 입을 다물었다. 퍽! 소리와 함께 발밑에 도끼가 꽂히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몰이꾼은 재차 다른 손도끼를 집어 들고 있었다.
‘이쪽으로 계속 가선 안 된다.’
아델은 몸이 둔한 편이었다. 애초에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전생을 떠올린 뒤로는 몸이 약해서 힘쓰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몰이꾼의 의도를 알면서도 발걸음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몰이꾼은 아델을 일정한 장소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 벗어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 * *
스승님의 결투일. 레온은 옷을 갈아입은 상태에서도 참여를 망설였다.
사냥 대회는 많은 귀족들이 모이는 날이다. 수도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귀족이라면 대부분 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중 과거에 자신의 가문을 멸문까지 몰아간 이들도 있지 않을까? 그들이 자신을 알아보면?
반역을 저질렀던 건 아니었다. 그저 다른 가문에 밉보여 망한 것에 불과했기에, 그들은 정당한 방식으로는 살아남은 레온에게 손댈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 바르게만 굴겠는가.
레온은 주먹을 꽉 쥐었다. 스승인 루카스의 비호가 있을 것을 알지만, 두려웠다.
“레온, 준비 다 되었니?”
문밖에서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라면 도망칠 수 있었다. 몸이 아프다 하고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레온은 입을 몇 번 벙긋거리다 다물었다.
‘도망은 안 돼.’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누나를 찾기로 하지 않았던가. 거기에 나약한 마음가짐은 방해였다. 강해져야 했다.
“네, 준비 끝났어요.”
“그래, 그럼 얼른 나오렴.”
레온은 심호흡을 하며 방을 나섰다.
사냥터로 올 때까지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도 레온은 방심하지 않았다. 언제 누가 자신을 알아볼지 모르니까.
그리고 결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레온은 꿈에도 잊을 수 없던 증오스러운 얼굴을 보았다.
로드린 백작! 가문을 멸문시킨 장본인 중 하나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울부짖는 누나를 끌고 가던 그의 모습이 말이다.
레온은 저도 모르게 천막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는 로드린 백작을 따라 움직였다.
‘한창 결투 중인데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의심을 품고 뒤를 따라가는데,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백작의 모습이 사라졌다. 놀라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분명, 분명 봤는데!’
레온은 백작을 놓쳐 버린 자신을 탓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때,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설마!’
로드린 백작이 뭔가 일을 저지르고 있는 걸까?
레온은 비명이 들린 방향으로 달려갔다. 숲속이라 위치를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마침내 비명의 주인을 찾아냈다.
“아델 님!”
호숫가 근처에서 아델이 남자 몇에게 위협당하고 있었다. 레온은 습관적으로 허리춤을 더듬었으나, 검이 있을 리 없었다.
오늘은 참관객으로 왔기에 무기를 지참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레온은 그대로 몸을 던져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에게 몸통 박치기를 했다.
덩치 차이 때문에 잠깐 비틀거리는 게 다였지만, 목적한 걸 손에 넣기엔 충분했다. 레온은 남자가 허벅지에 차고 있던 짧은 단검을 얻었다.
“야, 꼬맹이한테 무기를 뺏기냐?”
다른 남자들이 무기를 빼앗긴 남자를 비웃었다.
“거참, 맹랑한 꼬맹이네. 옷을 보아하니 귀족이시고.”
“귀족이면 손대면 안 되지 않나?”
“그러게.”
“거기 귀족 나으리, 저희가 볼일이 있어 그러는데 한 발자국 물러나 주시는 건 어떨지요?”
그러면서 저들끼리 낄낄댄다.
그를 본 레온은 깨달았다. 저들은 아델도 자신도 살려 보낼 생각이 없는 것이다. 레온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동안 배운 걸 기억하자.’
그가 자세를 잡자 또다시 비웃음이 쏟아졌다.
“도련님이 뭔가 좀 배운 모양인데?”
“그래 봤자 어린애지. 빨리 처리하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래, 그러자고.”
그들 중 일부는 활을, 일부는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몰이꾼의 무장 중 하나였다.
“레온!”
아델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돌멩이를 여러 개 집어 들었다. 그거라도 던질 셈인 듯했다.
“기회가 생기면 뛰어.”
“싫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말을 듣는 거란다.”
“그래도 싫습니다.”
레온도 알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지금 여기서 죽으면 원하던 걸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미안해, 누나.’
소중한 사람이 생겨 버렸으니까.
이런 모습을 보면 누나는 잘했다고 할까, 잘못했다고 할까? 그는 알 수 없었다.
* * *
로잘린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며 옷자락을 틀어쥐었다. 아델과 레온이 위험에 처해 있었다.
‘놔둬도 괜찮지 않아?’
아델은 무척이나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로잘린의 엄마는 아니었다. 얄미운 론슈카의 엄마다.
‘그러니까 내버려 둬. 아버지도 기뻐할 거야.’
마음속 어둠이 로잘린에게 속삭였다.
그래, 아버지가 원하는 건 둔재인 로잘린이 아닌 천재인 론슈카였다.
만약에 여기서 아델이 사라지면, 더는 론슈카를 붙잡을 사람이 없어진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다.
“그래, 아버지가 기뻐하실 거야.”
이어 로잘린은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막았다. 속으로 생각했을 때는 몰랐는데,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무척이나 추악했다.
‘어째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니까.
로잘린이 이대로 조용히 사라지면 저 둘은 죽는다. 아무도 범인을 모를 것이다.
‘안 돼.’
여전히 론슈카는 밉다. 아버지가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기에 그를 따르고 있었지만, 좋은 감정이 들 리 없었다.
‘그래도!’
로잘린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바람의 정령 하나를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날려 보냈다.
“도와줘.”
그러고는 정령 하나를 더 불러냈다. 그것만으로도 전신에서 힘이 쑥 빠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에서 코피가 터졌다.
“날아가, 더 멀리! 론슈카에게로! 기억하고 있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정령은 고개를 끄덕이곤 빠르게 사라졌다.
그 뒤로는 시간 싸움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신을 잃어선 안 된다. 그녀가 정신을 잃는 순간, 정령들은 전부 사라질 것이다.
이미 한계는 넘었다. 그래도 로잘린은 힘을 내 보기로 했다.
“뭐야, 이거 뭐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화살과 손도끼의 방향을 틀었다.
‘힘들어.’
로잘린은 소매로 흘러나온 코피를 닦았다.
‘제발. 빨리 론슈카를 찾아 줘.’
론슈카라면 이 상황을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과 달리 천재였으니까.
“이게 무슨 일이지?”
몇 번이나 무기가 빗나가자 몰이꾼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들어 본 적 있어.”
그중에서 유독 야비하게 생긴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정령은 모습을 안 보이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더라고.”
“그럼 지금 정령이 우리를 방해하고 있단 말이야?”
“그래. 사냥 대회에는 정령사도 몇 참가한다고 했으니까. 그중 하나겠지.”
“그렇다면 모습을 드러내고 돕지 않을까?”
“그렇긴 해. 하지만,”
제대로 된 정령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모습을 숨기고 무기를 빗나가게 하는 게 다라고? 의문을 가지는 동료를 뒤로한 채, 야비한 인상의 남자가 구석진 수풀로 다가갔다.
손도끼로 대충 수풀을 쳐 내니 거기에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로잘린이 있었다.
“아직 어리니까 그게 안 됐던 거지.”
남자는 입술을 길게 찢으며 웃었다.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돌아와!”
로잘린은 정령을 회수하여 남자를 공격하려 했지만, 남자가 좀 더 빨랐다. 주인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정령은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자자, 귀여운 꼬마 아가씨, 정령에게 돌아가라고 해 주지 않을래? 그러지 않으면 좀 아플 거란다.”
“싫어!”
로잘린은 외쳤다. 여기서 이렇게 물러나긴 싫었다. 그런 그녀를 아델 또한 발견했다.
“아이들은 내버려 둬요. 목적은 나 하나잖아요!”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아이들도 목격자가 될 수 있어서 말이지.”
몰이꾼은 싱긋 웃으며 손도끼를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