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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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

한번 같이 자고 나자, 아이들은 그에 재미를 들인 모양이었다. 수시로 같이 자자고 쳐들어오는 통에 아델이 루카스를 보고 두근거릴 틈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사냥 대회 날이 되었다.

“론슈카, 불편해도 옷은 다 입어야지. 안 그러면 데려가지 못해.”

아델이 어린이용 사냥복을 불편해하는 론슈카를 달래며 레온을 챙겼다. 이번 사냥 대회는 아이들도 데려가도 되는 자리라 하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아델까지 새로 맞춘 사냥 대회용 드레스를 입고 나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

“준비가 끝났나?”

따로 옷을 갈아입은 루카스는 어두운 갈색 계통의 사냥복을 입었는데, 그 또한 잘 어울렸다.

‘하긴 본판이 좋으니 뭔들 안 어울릴까.’

아델은 짧게 감탄하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 * *

사냥 대회가 열리는 곳은 황궁에 속한 수도 변두리의 넓은 숲.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바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냥 대회면 사냥만 하지, 결투는 무슨 말이야?”

몰이꾼 중 하나가 투덜거리자 다른 이가 그의 입을 찰싹 때렸다.

“말조심해, 말조심! 목숨이 두 개야?”

“그건 아니다만.”

머쓱하게 머리를 긁던 몰이꾼은 이내 얌전해졌다.

“준비는 다 끝났나?”

몰이꾼의 대장이 크게 소리치자 몰이꾼들이 답했다.

“네!”

“동물은 몰아넣었나?”

“네!”

“안전 대비는 철저하게 했겠지?”

“물론입니다!”

몰이꾼들은 사냥 대회 때마다 귀족들을 위해 고용되는 사람들이었다.

멀리 있는 동물들을 몰아서 사냥 대회가 이뤄지는 공간에 풀어놓고, 위험 요소는 미리 처리한다.

그렇기에 몰이꾼의 대부분은 평소엔 사냥꾼이나 추적꾼 일을 하는 이들이었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이번에는 많은 분들이 오신단 말이다.”

“한두 번 하는 일입니까?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귀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귀족들. 황족은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다.

몇몇 몰이꾼들의 입가에 불길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아델과 루카스는 적당히 중간쯤에 사냥터에 도착했다. 숲지기와 몰이꾼의 손이 닿은 사냥터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보기 좋았다.

평지에는 귀부인들을 위한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고, 넓은 테이블 위에는 가벼운 핑거 푸드도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델은 그 모든 것을 즐길 수가 없었다. 사람이 전부 모이면 루카스와 헤이른의 결투가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초조해하는 아델에게 루카스가 잔을 하나 건넸다.

“술이라면 괜찮아요.”

멀쩡한 정신으로 결투를 지켜보고 싶었다.

“주스다. 이 근방의 마을이 사과로 유명하거든.”

그제야 아델은 잔을 받아 들었다.

“론슈카, 레온. 너희들도 마실래?”

“전 괜찮습니다.”

“난 조금만.”

“그래, 그럼 론슈카만 조금 마시자.”

아델은 자신이 쥔 잔을 론슈카에게 건네주었다. 론슈카는 한 모금 마시고는 아델에게 잔을 돌려주었다.

“맛없어?”

“아니, 괜찮아.”

남은 주스는 아델이 모조리 마셨다. 그사이 사람의 수는 훨씬 더 많이 늘어나 있었다. 천막 바로 앞에 설치된 결투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정말 괜찮은 건가요?”

그 말에 가죽 장갑을 끼고 있던 루카스가 아델을 바라보았다.

“나를 믿지 못하는 건가?”

“그런 건 아니고요. 혹시 정령사랑 싸워 본 적 있으세요?”

“어릴 적에 몇 번 정도.”

“몇 번이요? 그래서 이기셨나요?”

“무승부였다.”

“누구랑 싸웠는데요?”

“헤이른.”

더 불안해져 버렸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데, 저 멀리 붉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헤이른이 도착했다.

‘으아아!’

마음이 가라앉질 않는다. 체면만 아니었으면 손톱이라도 물어뜯었을지 모른다.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황족이 도착했다.

“날씨가 좋군!”

머리를 하나로 묶어 내린 셀렉시온이 쾌활하게 말문을 열었다. 그 옆에는 상대적으로 얌전한 디자인의 사냥복을 걸친 아만다가 서 있었다.

“그럼 사냥 대회를 시작하기 전에, 예정되어 있던 결투를 시작하지. 헤이른 경!”

셀렉시온의 말에 헤이른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평소의 길게 늘어진 옷이 아닌 좀 더 활동성을 중시한 옷을 입고 있었다.

“루카스 경! 둘의 결투를 허가하며, 시작한다. 공증인은 나. 심판은 내 호위 기사가 맡도록 하지!”

“폐하!”

“괜찮아. 이 정도는 떨어져 있어도.”

호위 기사가 항의하는 듯했지만, 셀렉시온은 물러나지 않았다. 결국 호위 기사는 결투장의 가에 섰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셀렉시온이 히죽 웃었다.

“응원하고 싶은 귀부인들의 차례로군.”

아델은 심호흡을 하고 앞으로 나섰다. 이제 여기서 루카스에게 손수건을 내밀고 손등에 키스를 받으면 된다.

미리 연습도 해 봤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나서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앞으로 나선 이는 아델 혼자만이 아니었다. 황제의 곁에 서 있던 아만다가 루카스의 앞에 섰다.

‘어?’

이대로 되는 건가? 아델은 주변을 슬그머니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동요한 표정을 보니 아만다가 한 건 돌발 행동인 모양이었다.

“루카스 경.”

아만다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루카스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제가 직접 수놓은 손수건이에요. 오늘 루카스 경의 승리를 기원하며 수놓았어요.”

루카스는 아만다를 한 번 바라보고는 뒤쪽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아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죄송하지만, 황녀 전하.”

“알아요. 아는데.”

아만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는 안 되는 건가요? 그냥 승리를 기원하는 손수건 한 장일 뿐이에요.”

“제게는 이미 승리를 기원해 주는 여신이 있습니다.”

루카스의 말에 아만다는 입술을 꼭 깨물며 손수건을 도로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느릿한 발걸음으로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그러든 말든 루카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제 여신을 호명했다.

“아델.”

“네? 네!”

“이리로.”

망설이던 아델이 루카스의 앞으로 다가왔다. 직접 수놓은 아만다의 손수건과 아델의 손수건은 다르다.

처음엔 아델도 수를 놓아 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아 결국엔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손수건을 샀다.

루카스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만다의 손수건보다는 아델의 것을 가지고 싶었다.

아마 그녀의 초조한 마음을 알기 때문이겠지. 루카스는 아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아델은 손에 꼭 쥐고 있던 손수건을 내밀었다. 어찌나 세게 쥐고 있었는지 쭈글쭈글하다.

“레이디를 위해.”

루카스는 손수건을 포켓에 넣고 아델의 손등 위에 입 맞추었다.

헤이른에게도 여성 몇이 붙었지만, 그는 어느 것도 받지 않았다.

“그럼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루카스는 검을, 헤이른은 오래된 고목으로 만들어진 완드를 들어 올렸다.

이어 가벼운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둘은 결투를 시작했다. 헤이른은 시작소리와 함께 뒤로 몸을 물렸고, 루카스는 앞으로 나섰다.

그와 동시에 결투 장소를 불꽃의 정령이 뒤덮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온도가 올라가고, 가까이 붙어 구경하려던 사람들은 뒤로 물러났다.

‘제발!’

아델은 기도하듯 양손을 모았다,

‘부디 루카스 님이 이기게 해 주세요!’

평소 믿지도 않던 신에게 기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꽃 사이로 루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 범위의 불꽃이 잦아들었다.

“불꽃도 베어 내시는군요!”

누군가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말대로 루카스는 불꽃을 베어 내며 헤이른에게 접근하려 하고 있었다. 반면 헤이른은 불꽃의 정령을 이용해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뭔가 큰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그걸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이 생각나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론슈카는 제자리에 있었지만, 레온이 보이질 않았다.

“론슈카? 레온은?”

“잠시 볼일을 보고 온대요.”

“볼일?”

그러나 따로 마련된 화장실 쪽을 계속 바라보아도 레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알아?”

“저쪽.”

“저쪽?”

무심결에 론슈카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아델이 익숙한 금발을 보았다.

“레온!”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아델은 결투장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아니야, 믿자.’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루카스는 잘 싸울 것이다. 아델은 론슈카의 어깨를 잡고 신신당부했다.

“론슈카, 엄마는 레온을 찾아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야 해?”

“같이 가면 안 돼?”

“안 돼. 누군가는 루카스 님을 응원해 줘야지.”

도움이라면 다른 이에게 받아도 된다. 어린 론슈카를 혹시 모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아델은 론슈카에게 약속까지 받아 내고 천막을 나섰다.

“혹시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요?”

아델이 도움을 청한 이는 몰이꾼의 대장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이가 숲으로 사라졌어요.”

“당장 추적꾼을 보내겠습니다.”

몰이꾼의 대장은 빠르게 움직였다. 상대는 귀족으로 보이는 여성, 그렇다면 아이도 귀족이란 소리였다.

오락을 위한 사냥 대회에서 그런 아이가 다치는 일은 일어나선 안 됐다. 그러면 벌을 받는 이들은 자신들이 될 테니 말이다.

“자제분은 어떻게 생기셨습니까?”

몰이꾼의 대장은 아델에게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러고는 당장 숲으로 사람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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