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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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8

“재밌는 일이야.”

셀렉시온은 아만다가 오래전부터 루카스에게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분명 속이 상할 터였지만, 셀렉시온은 그를 위로해 줄 생각이 없었다. 본인이 쟁취하지 못해 놓고 투정 부리는 것만큼 추한 일은 없다.

그보단 이 상황에 더 관심이 생겼다. 루카스도 헤이른도 특출난 사람이었다. 그만큼 사교계의 많은 영애가 두 사람에게 마음을 주었는데, 막상 그 둘은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니.

‘흥미롭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을 수 있을까?”

그 말에 엉망이 된 상태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데페르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폐하!”

제법 큰 소리에 셀렉시온이 데페르를 바라보았다.

“흠? 그대가… 누구였더라.”

그러자 앞선 셀렉시온을 따라온 호위 기사가 그에게 속삭였다.

“황궁 제1기사단 소속 데페르 경입니다.”

“아아, 그 말석인.”

호위 기사와는 다르게 셀렉시온은 자신이 말하는 걸 딱히 감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폐하.”

호위 기사가 앓는 소리를 냈지만, 셀렉시온은 개의치 않았다.

“그래, 기억하고 있다. 기사단에 그런 기사가 있었지. 그래, 데베르 경.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이름도 틀렸다. 저건 틀림없이 고의 같은데.

‘고약한 사람이네.’

아델은 셀렉시온이 소설 속에서 보곤 하는 황제들과는 다름을 인지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나. 소설 속에서 황제는 암막의 악역처럼 나온다. 레온의 가문을 멸문시킨 건 다른 가문들이었지만, 거기에 황제의 의사가 없었다곤 할 수 없었다.

아니라면 공작가가 그리 쉽게 사라질 리가 없었으니까.

그런 황제다 보니 데페르도 무언가 느끼긴 한 모양이었다.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재차 묻지. 하고 싶은 말이 뭐라고?”

데페르는 이제 안색이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기사라고 결국엔 입을 열긴 했다.

“루카스 경에게 결투 신청을 받았습니다.”

“루카스 경이 이유 없이 결투 신청을 하진 않았을 텐데. 게다가 옷이 탔군.”

“그건 제가 그랬습니다.”

헤이른이 태연하게 나서며 말했다.

“헤이른 경 또한 이유없이 다른 사람을 해칠 사람은 아니지.”

아니다, 해치고도 남을 사람이다.

아델은 론슈카와 이야기를 하면서 헤이른의 성정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되었다.

그는 아델이 알던 마을 사람을 불태우려고 한 적이 있었다. 만약에 중간에 말리는 이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 그렇다면 말해 보도록. 그 이유가 무엇인지.”

데페르가 이를 악물며 짓씹듯 말했다.

“모든 게 저 여자가 때문입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는 아델이 서 있었다.

‘저 인간 좀 보게?’

먼저 시비 건 게 누군데. 여기가 이런 세계만 아니었어도 이미 정당방위로 후려쳤다. 그다음엔 경찰을 불렀겠지.

“아하, 저 여자?”

셀렉시온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히죽 웃었다. 좋은 의미로 웃는 것 같진 않았다.

“네, 폐하. 저 여자 때문에 이런 소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루카스가 멀쩡한 다른 한쪽의 장갑을 손으로 잡는 게 보였다. 거기다 헤이른 또한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헤이른은 왜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데페르라는 기사, 인성도 나쁜데 눈치마저 없다.

그때, 옆에 가만히 서 있던 레이긴이 나섰다.

“사정은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폐하.”

“아, 레이긴 경. 경의 말이라면 믿을 만하지.”

데페르란 기사를 대할 때와는 셀렉시온의 태도가 다르다. 레이긴은 차분히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ⵈ그렇게 된 것입니다.”

깔끔한 마무리에 박수를 쳐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군. 데페르 경은 루카스 경의 약혼자에게 무례를 저질렀다. 그 때문에 루카스 경은 결투를 신청했고 보다 못한 헤이른 경도 끼어들었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이야기 속에 아델의 아이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레이긴 나름의 배려인 듯했다.

“명쾌하군. 그러면 간단한 해결책이 있지. 결투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오나 폐하, 오늘은 아만다 님을 위한 파티입니다.”

“그럼 아만다에게 허락받도록 하지. 괜찮지?”

“네, 폐하.”

아만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결투를 승낙했다. 졸지에 황족의 주관 아래 결투를 하게 된 데페르는 얼굴을 일그러트렸으나, 그도 잠시였다.

이내 자신만만한 표정이 된 데페르는 종자를 불러 자신의 검을 가져오라 일렀다.

“검 있나요?”

슬그머니 루카스의 곁에 다가간 아델이 물었다.

“없다.”

황궁 내에는 황궁 기사단 외에는 무기를 가지고 들어올 수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파티가 열리는 날, 무기를 들고 올 필요가 없었다.

“그럼 내 검을 빌려주지. 평소 사용하는 것과 다를지 모르지만, 제법 쓰기 괜찮을 걸세.”

“그럼 잠시 빌리겠습니다.”

레이긴이 한 청년을 불러 검을 가져오게 하더니, 그것을 루카스에게 건네주었다.

순식간에 자리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결투장을 바라 보았다.

“아델.”

“네?”

“어느 정도 혼내 주기를 원하나?”

“조절도 되나요?”

“물론이지.”

루카스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델은 저도 모르게 엄지를 치켜들고 그걸 그대로 뒤집었다.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마구 혼내 주세요.”

“좋아, 그러도록 하지.”

곧 루카스가 결투에 나서게 되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기사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을 들고 나서는 모습이 당당하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공증인은 황제와 황녀. 결투의 중재자는 레이긴이 맡았다. 데페르는 그게 불만인 모양이었지만, 더는 뭐라 하지 못했다. 레이긴이라는 사람의 인망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그럼 결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청명한 종소리와 함께 데페르가 황소처럼 앞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으나 루카스는 그 자리에서 선 채로 쉽게 튕겨 냈다.

“이익!”

데페르는 연신 공격을 퍼부었지만, 루카스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역시 대단하네요.”

“데페르 경도 실력이 대단하지만, 역시나 루카스 경을 넘어서진 못하네요.”

“슬슬 포기할 때도 되었을 텐데 매번 루카스 경에게 투지를 불태우곤 하셨죠.”

“아마 아만다 님을 사모하기 때문일 거예요.”

“어머, 기사 중에 아만다 님을 사모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요?”

소곤거리는 대화가 이상하리만치 귓가에 잘 들려왔다.

아만다. 제국의 유일한 황녀.

아델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남자였어도 혹했을 거야.’

그러니 다른 이들은 어떠할까. 당연히 빠져들지 않겠는가.

‘루카스도 그랬을까?’

그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적어도 아만다는 루카스에게 마음이 있는 게 분명했다.

결투하는 내내 아만다의 시선은 루카스를 향해 있었으며, 마주 잡은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정말 루카스의 곁에 있어도 되는 걸까.’

사실 알고 있다. 루카스는 아델을 위해 많은 배려를 해 주었지만, 그게 순수한 호의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도 뭔가 이득이 있으니 아델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일 터였다.

‘이런 관계보단 좀 더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새삼 루카스가 걱정되었다.

“제대로, 제대로 싸워라!”

데페르는 조롱하듯 막아내기만 하는 루카스에게 분노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제대로 하란 말이다!”

루카스가 그제야 그 자리에서 발을 뗐다.

“좋아,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제대로 해 주지.”

아까와 똑같이 웃고 있었으나, 눈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루카스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데페르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결투장을 벗어나기라도 할라 치면 그 자리에 검이 꽂혔다. 데페르는 결투장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농락당했다.

옷이 조각나고, 몸의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모양새였다.

그는 몇 번인가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루카스의 공격이 매섭게 몰아쳤기 때문이었다.

“그만, 그만하게!”

결투는 한참 뒤에 끝났다. 데페르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루카스만이 고고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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