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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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마, 만세… 드디어 끝났다.”

일주일 후, 아델은 초췌한 얼굴로 책상 위에 쓰러졌다. 불가능한 일 같았는데, 잠을 줄이고 하니 어찌 되긴 하는구나 싶었다.

“수고했다.”

이 와중에 루카스의 얼굴은 일주일 전과 똑같이 반짝거린다.

‘이게 소드마스터의 저력.’

평소에 운동 좀 해 둘 걸 그랬다. 운동을 했어도 루카스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원래 아델은 건강한 편이 아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곰에게 큰 상처를 입은 적도 있으니, 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보약, 보약이 필요해.’

홍삼이라도 쭉쭉 빨아 마시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오늘은 마들렌이 특별히 영양식을 준비해 둔다더군.”

“영양식이요?”

“좋은 곰 발바닥이 들어왔다는데.”

싫어!

아델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곰 발바닥은 먹고 싶지 않았다.

“그거 말고 다른 건 없나요?”

“더 있긴 하더군.”

하지만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 루카스의 입에서 줄줄 나오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기괴한 것뿐이었으니.

“먹지 않으면 안 되겠죠?”

“마들렌의 성의가 있으니까.”

루카스의 태도는 담담했다.

울고 싶었다. 차라리 요리 재료를 모르고 먹는 편이 나을 뻔했다.

저녁 식사는 제법 맛있었지만, 들어간 식재료를 생각하니 쉽게 포크가 가지 않았다. 그나마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니 다행이다.

* * *

아델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좀 오래 가 있을 예정이라 하여 짐도 몇 배가 되었다. 여행 기간도 짧지 않았다.

이 시대에는 지하철이나 기차가 없었기에 대부분의 이동 수단이 마차였다. 게다가 땅도 넓었기에 말을 아무리 재촉해도 하루 만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했다.

루카스와 아델, 론슈카와 레온. 그리고 그들의 짐과 몇몇 사용인까지 태우니 마차 세 대가 꽉 찼다.

“혹시 불편하신 게 있으면 꼭 알려 주십시오.”

따라나선 이는 시녀 몇과 키슈였다. 마들렌은 저택에 남아서 관리를 맡기로 하였다.

마차도 고급인 데다가 시중드는 사람까지 따라나서니, 아델은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기껏해야 마차 중간에 있는 작은 테이블을 이용해서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거나, 게임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마을에 도착하면 내려서 둘러보기도 했다. 일단은 판타지 배경이니만큼 도적 같은 존재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평탄하게 지나가고, 마침내 그들은 제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미리 사람을 보내 저택을 사 두었습니다.”

키슈가 안내한 저택은 상당히 컸다.

“사용인은 아직 부족합니다만. 최대한 불편함이 없으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용인은 이곳에서 더 고용하실 건가요?”

“말을 낮추십시오.”

그건 어렵다니까. 아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며칠 내로 면접을 볼 생각입니다. 아델 님도 시간을 내서 참여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당연히 해야죠.”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는데, 이번 사용인들은 평범하지 않을 겁니다.”

“평범하지 않다면?”

“수도는 화려하지만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면 추악합니다. 아마 사용인 중 몇몇은 다른 가문에서 보낸 첩자일 겁니다.”

놀랄 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면 고용을 피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부분은 어느 정도는 감수하고 들입니다. 저희도 이번엔 일손이 많이 부족하여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골라내 볼게요!”

씩씩하게 대답하는 아델을 키슈는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델은 모든 첩자를 구분해 내지 못했다.

키슈가 기본 요령을 가르쳐 줬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총체적 난국이었을 것이다.

일단, 가장 기본적으로 첩자를 구분하는 법은 이러했다.

일자리를 구하러 오는 시녀들은 대부분 추천서를 들고 온다. 추천서에는 가문의 이름이 적힐 수밖에 없었고, 그를 보고 의심스러운 시녀는 돌려보낸다.

하지만 이도 완벽한 방법은 아니었다. 추천서를 위조하기도 했으니까.

‘인생 복잡하게 산다.’

하루치의 면접을 끝마친 아델은 기지개를 쭉 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키슈의 도움을 받아 마무리를 한 아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 나갔다. 수도의 저택은 파티를 종종 열기도 하는 만큼 홀이 컸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어.’

이제는 집 같이 느껴지는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리 화려하고 좋아도 이 저택은 정들지가 않는다.

‘황제만 빨리 만나고 내려가고 싶은데.’

문제가 있었다. 황제가 만남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이다.

“아델.”

마침 위층에서 내려오던 루카스가 아델의 이름을 불렀다.

“네.”

“마침 잘 만났군.”

“네?”

“같이 갈 데가 있다.”

“그게 어딘데요?”

아델이 묻자 루카스가 답했다.

“가 보면 안다.”

“론슈카와 레온은 안 데리고 가나요?”

“둘은 다음에.”

아델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의상실이었다.

“어서 오세요!”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아델과 루카스를 맞이했다.

“마담 일리아입니다. 오늘 저희 의상실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모양의 드레스를 원하시나요? 원단부터 장신구까지, 여긴 없는 게 없답니다.”

그 말에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은 일상복부터 시작하지.”

“네.”

일리아가 손뼉을 치자마자 단정한 옷차림을 한 여성들이 반쯤 가봉된 드레스를 꺼내 오기 시작했다.

“원하시는 색이 있으신가요?”

“필요한 옷이 많으니 일단은 전부 보도록 하지. 원단은 최대한 좋은 걸로.”

어리벙벙한 아델과 달리 루카스는 무척 능숙해 보였다.

“새 옷은 필요 없어요.”

아델은 루카스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저번에도 잔뜩 샀잖아요!”

아델의 말에 루카스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있어 의상 몇 벌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것과 이건 다르다. 수도에 온 이상 이곳의 유행을 따라야 해.”

대충 이해는 갔다. 예전에 보았던 왕실 드라마에서도 드레스로 상대를 판단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다.

아델의 소시민적인 마음은 지금 이 상황을 덤덤히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하지만 비싸잖아요.”

“비싸지 않아.”

비싸지 않다니. 그냥 봐도 상당히 값이 나가 보이는 옷들인데!

“루카스 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숙녀분은 뭐라고 불러 드리면 될까요?”

“아델. 내 약혼자다.”

“어머나!”

일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그 철벽인 루카스에게 약혼자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네?’

몽펠 백작가의 록텐이 떠들어 댄 말이 전부 사실이었나 보다.

‘그럼 이쪽이 평민이란 것도 사실일까?’

일리아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를 내색하지 않았다.

사 가는 사람의 신분을 따지는 상인도 있었지만, 일리아는 그러지 않은 쪽에 속했다. 귀족을 상대하는 건 어디까지나 돈이 돼서 하는 거였으니, 돈만 된다면 평민을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최신 유행부터 보여 드리겠습니다”

일리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후 아델은 수많은 옷을 입어 봐야 했다. 너무 많은 탓에 나중에는 어떤 옷이 예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옷이 기억나질 않아요.”

아델이 골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누르며 말했다. 눈을 부릅뜨고 봤지만, 중간부터 기억이 안 난다.

“전부 괜찮았는데.”

“그렇게 봐 주셔서 감사해요. 그래도 저 많은 옷을 다 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 말에 일리아에게 눈짓을 하던 루카스가 멈칫했다.

“다 사도 된다만.”

“어떻게 그래요? 저도 염치가 있답니다.”

“필요한 것이라서 사 주는 것뿐이니 염치는 따지지 않아도 좋다.”

“설마?”

루카스는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봤던 옷을 전부 사겠다.”

아니요, 지금 우리 옷만 열 벌 이상 봤잖아요. 그런데 그걸 전부 산다고?

“너무 많아요!”

아델이 작게 항의했지만, 루카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빙그레 웃는 일리아와 옷에 대해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다음은 외출복입니다.”

일상복과 외출복을 구분한다고? 일상복도 충분히 예뻐서 입고 밖에 나가도 될 것 같았는데.

심장이 격렬하게 뛰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얼마나 사려고!’

그건 안 된다. 루카스의 재산이 많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펑펑 쓰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아델은 침착하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외출복은 한 벌이면 될 것 같아요.”

아델의 말에 루카스가 태연하게 되물었다.

“외출을 한 번만 할 건가?”

옷을 한 벌만 산다는 게 왜 그런 이야기가 되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은근슬쩍 일리아가 끼어들었다.

“수도의 귀부인이라면 외출복을 기본으로 열 벌 이상 가지고 계시답니다. 그것도 계절별로 유행에 따라 교체하시곤 하죠.”

아델은 저도 모르게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저 말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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