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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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

돌아오는 길은 평온했다.

론슈카가 자꾸 늘어지긴 했지만 첫 여행이니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라고 아델은 생각했다.

저 멀리 익숙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저택은 떠나기 전과 달라진 점이 없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녀의 마음이었다.

‘어쩐지 여기가 집처럼 느껴져.’

지낸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집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이러면 나중에 떠날 때 힘들어지는데.’

아델은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뒤따라 내리는 아이들과 루카스를 보고 표정을 지웠다.

“일단 짐을 정리할게요. 그다음엔 밀린 일을 해야겠죠?”

애써 발랄하게 물어보니 루카스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잠깐의 휴가였네요.”

아델은 투덜거리며 가방을 붙잡았다. 마차에서 내리기 위함이었으나, 루카스가 거기에 끼어들었다.

“내가 하지.”

루카스는 무거운 짐을 쉽게 내렸다.

그사이, 그들의 도착을 알아챈 사용인들이 밖으로 나와 짐을 내리는 걸 마저 도왔다.

“루카스 님, 여행은 즐거우셨습니까?”

키슈가 점잖은 태도로 물어 왔다.

“즐거웠지.”

그 말에 키슈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은 여행을 다녀온 소감을 물어도 대충 넘어가시던 분이 무슨 일이람?

“루카스 님이 여행에서 즐거움을 느꼈다니 다행입니다.”

“그래, 그동안 저택엔 아무 일 없었나?”

“한 가지 있긴 합니다.”

“뭐지?”

키슈는 난처해하며 대답했다.

“황궁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어떤 손님?”

“폐하께서 보내신 듯합니다.”

그 말에 루카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황제는 수많은 기사를 가지고 있다. 그 기사들은 황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목숨을 던져 버릴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굳이 그 길을 내팽개친 루카스를 찾지 않아도 될 텐데, 황제는 유독 루카스에게 집착했다.

그는 루카스가 수도를 떠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집요하게 그의 흔적을 찾아내 편지를 보내왔다.

돌아오라는 명령도 여러 번이었지만, 루카스는 그걸 전부 무시하고 지내 왔다. 그래도 황제가 자신을 해치지 않으리란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카스가 보기에 황제는 이를 일종의 놀이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놀이에 진지하게 화를 내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지금 만나도록 하지.”

“하지만 피곤하시지 않으십니까? 잠시 쉬다 만나시는 건 어떨지요?”

“아니, 이런 일은 먼저 해 두는 게 나아.”

루카스는 아델과 아이들을 방으로 보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 * *

“오랜만입니다.”

황제의 사신으로 온 자는 파이퍼 자작이었다. 작위는 높지 않지만, 유능하기로 소문난 자였다.

“파이퍼 자작님.”

“편히 한슨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제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프레데릭가의 가주라면 그래도 되지요.”

“지금은 아닙니다.”

루카스가 부정하자 한슨이 그를 고요하게 바라보았다. 어딘지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드리고 싶은 말이 많지만, 루카스 님은 그걸 원치 않으시겠지요.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한슨은 수염을 손가락으로 비비 꼬더니, 품 안에서 얇고 기다란 원통을 꺼냈다.

“폐하의 명입니다. 받드십시오.”

루카스는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앉았다.

“루카스 드 프레데릭은 들으라. 짐에게 최근 고민이 생겼다. 그는 짐의 충실한 기사가 멀리 떠나 돌아오지 않는 것 때문이다.”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결론을 내리자면 간단했다. 황궁으로 돌아오라. 그게 전부였다.

“폐하께는 죄송스럽지만, 저는 가지 못합니다.”

“이번에도 명령을 거부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되는군요.”

“폐하의 말씀이 맞군요.”

한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에는 편지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건 이 자리에서 읽은 뒤 바로 돌려주십시오.”

의아해하면서도 편지를 펼쳐든 루카스의 표정이 점점 서늘해졌다.

이 또한 내용은 간단했다. 이번에도 황명을 거부할 경우, 루카스의 약점을 건드리겠다는 소리였다.

예전에는 레온만이 약점이었다면, 이제는 더 늘어났다. 게다가 이 약점은 레온보다 건드리기 쉽다.

아델과 론슈카.

헤이른과 프레데릭가가 물고 늘어지리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황제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고작해야 놀이일 뿐이었을 텐데.’

아니, 놀이라 생각하기에 쉽게 이럴 수 있는 건가.

그는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도로 삼켰다. 편지를 고이 접어 다시 한슨에게 건네주자 그가 추가로 말을 덧붙였다.

“이번에 치른 약혼식도 축하드리고 싶으니 이번엔 반드시 수도에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론 축하가 목적도 아니면서 잘도 지껄인다.

“가겠습니다.”

루카스는 태연한 척 대답했다.

“약혼자와 제자도 보고 싶다 하셨으니, 여행 겸 같이 오시면 되겠군요.”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됩니다만.”

“왕국의 변두리 마을을 여행하는 것보단 제국의 수도가 훨씬 낫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요.”

대화는 그걸로 끝났다. 파이퍼 자작은 바쁘다면서 이후 곧바로 저택을 떠나갔다.

“괜찮으십니까?”

자작이 떠나고 난 자리, 루카스는 소파에 앉아 이마를 짚고 있었다.

키슈는 그런 루카스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괜찮지 않아.”

“뭐라고 하던가요?”

“약혼자와 제자를 데리고 수도로 오라는군.”

“이번에도 거절하시면 안 됩니까?”

“이번엔 안 돼.”

대놓고 약점을 건드리겠다고 적어 놨는데,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프레데릭가의 음모라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지만, 황제는 급이 다르니까.

“그럼 가실 겁니까?”

“가야지. 가서 이번에야말로 모든 사슬을 끊어 버려야지.”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아델과 아이들은 뭐 하고 있지?”

“짐을 풀고 쉬는 모양입니다.”

“그래, 그럼 아델에게 전해. 오늘까진 그냥 쉬라고. 내일부터 당분간은 바빠질 테니까.”

수도로 가기 전에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처리하고 가야 했다.

“네, 전달하겠습니다. 여행에 대해서도 말씀드릴까요?”

“…아니, 그건 내일 내가 직접 하지.”

공범인 이상, 아델도 현재 상황을 알아야 한다.

* * *

하루 쉰 다음, 아델은 다시 집무실로 출근했다. 그리고 거기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수도요? 저도 같이요?”

“그래, 폐하의 명이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대체 뭘 하려고 자신까지 부르는 거지?

황제라니. 황제라니!

아델은 패닉에 빠졌다.

‘황제가 어떤 인물이었더라?’

과거 책에서 보았던 황제를 떠올려 보았다.

전대 황제가 일찍 죽은 탓에 20대의 나이로 황위에 오른 인물.

전대 황제의 죽음에는 다소 미스터리한 부분이 있었지만, 현 황제가 즉위하면서 모든 것이 묻혔다.

그 외엔 아직 젊다는 것, 소드마스터인 루카스에게 집착한다는 것, 그 때문에 추후 레온의 앞길을 가로막을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

아델이 아는 건 그게 전부였다.

‘황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만나고 싶진 않아!’

지금의 아델은 평민이었다. 루카스와 약혼했다고 해도 그게 변하는 건 아니었다. 결혼한다면 또 모를까.

‘아니, 황제라면 결혼해도 건들지도 몰라.’

여러모로 난감하다.

“걱정되나?”

루카스가 물어 왔다.

“아무래도 그렇지요?”

“그 부분은 염려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줄 테니.”

그러면서 바라보는 시선이 진지하다.

미인이 자신을 바라보며 저런 말을 하다니. 심장이 두근거린다.

요즘 들어 가끔 루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처음에는 혹시 자신이 루카스에게 빠진 게 아닐까, 걱정했으나 지금은 대충 결론을 내렸다.

모든 건 루카스가 잘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두근거리는 것이다.

아델은 그에게 더는 짐을 지울 생각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저 때문에 더 힘든 상황이 된 건 아닐지 걱정되네요.”

“어차피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어. 이번에 수도로 올라가 전부 끊어 버리고 올 생각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러니 일단은 일을 해야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루카스가 아델의 책상 위에 두툼한 서류를 올려 주었다.

“수도에 가 있는 동안 손대기 힘든 일들이다.”

“ⵈ이게 그동안 할 분량인가요?”

“정확히는 오늘 치.”

아델의 표정이 끔찍한 것을 보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이건 좀 많은데?’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어도 다 못 할 것 같았다.

“할 수 있다.”

“네?”

“난 아델, 그대를 믿고 있다.”

이런 건 믿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아델은 한숨을 쉬며 서류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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