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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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

저번에 주점에서 이야기꾼이 들려준 것 중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귀족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 자신이 몰락 귀족이라 거짓말을 하며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어쩌면 아델도 그랬는지 모른다.

‘그렇다 쳐도 괴물은 설명 안 되는데.’

아델은 속아서 그렇다 쳐도 괴물이나 다름없는 아이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단 존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입을 놀렸다.

‘일단은 아델이 귀족을 속였을 게 뻔하니.’

존은 입에 침을 바르고 혀를 내둘렀다.

“아이고, 오해입니다. 오해예요.”

“뭐가 오해라는 거지?”

“저기 저 여자의 정체를 아십니까?”

“아델의 정체?”

“모르신다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존이 말의 길어질수록 아델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입술을 깨무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아.’

존은 잽싸게 말을 늘어놓았다.

“아델은 말입니다. 저기 깊은 숲속 화전민 마을에서도 빌어먹고 살던 여자입니다. 가진 것도 없고, 부모도 없고, 있는 거라곤 자식 하나뿐인데요.”

어디 보자. 뭘 더 말해야 귀족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존은 과거에 밑으로 보던 아델의 처지가 자신보다 나아졌다는 게 못마땅했다.

“게다가 자식새끼는 이리저리 불을 질러 대는 괴물입니다. 그 아비가 누군지도 모른다 하니 이 얼마나 천박합니까!”

할 말은 얼마든지 많았다. 그렇기에 존은 끊임없이 떠들어 댔다.

* * *

불쾌하다.

눈앞에 있는 남자의 말이 길어질수록 가슴이 들끓었다. 당장이라도 그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아델이 힘들게 살아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성정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힘껏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델을 비웃다니.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어?”

빠르게 뻗어 나간 손은 남자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켁켁!”

남자가 괴로운 듯 몸부림쳤지만, 루카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순 없었다. 명색이 기사였으니 말이다.

갈수록 움직임이 줄어든다. 이리도 무력한 주제에 아델을 모욕한 것이다.

죽어 마땅하다. 그리고 루카스는 그를 그렇게 만들 능력이 있었다.

“루카스 님!”

손아귀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목 졸리는 소리를 내던 남자는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다.

“루카스 님!”

그때, 아델이 루카스의 팔에 매달렸다.

루카스는 아델을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 새하얗게 질려 있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어 있었다.

“더 하면 죽어요.”

아델은 침착하게 말했다.

‘죽여도 상관없지 않은가.’

이런 쓰레기 같은 녀석 따위, 세상에 살아 있을 가치가 없었다.

그러나 루카스는 손에서 힘을 뺐다. 아델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모욕한 남자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는 걸까.

“이 남자가 죽는 게 싫은가?”

루카스의 물음에 아델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런 남자,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어요.”

“그럼 왜?”

“루카스 님에게 피해가 갈까 봐요.”

그 말에 루카스는 나지막이 웃었다.

여긴 제국 곁에 붙은 작은 왕국이고, 루카스는 귀족이었다. 귀족이 평민을 해치는 것 정도로는 큰 벌을 받지 않는다. 고작해야 벌금 정도일까.

그렇지만 아델에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었기에, 루카스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남자를 내팽개치며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말을 조심해야 할 거야. 아델은 너에게 그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론슈카도 물론이고.”

“조, 조, 조심하겠습니다.”

남자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다짐하듯 말하고는 비틀거리며 도망갔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남자를 응징하긴 했으나, 그가 이미 한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 약혼 등록은 끝났나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억지웃음을 지은 아델이 물었다.

“그래, 끝났다.”

“이제 정식 약혼자네요.”

“그렇지.”

그 말에 당연히 불만을 토해야 할 론슈카는 정신이 다른 데 팔린 듯 평소와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겪은 일이 있으니 그럴 터였다.

루카스는 잠시 근처에서 쉬어 가자고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괜찮다. 아델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괜찮긴 뭐가 괜찮은가.’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기분이 이상해졌다. 불쾌했던 것 같기도 하다.

저택으로 돌아갈 때는 대여 마차를 이용했다. 아델도 아이들도 지친 것 같았다.

“일단 쉬도록 하지.”

루카스는 아델을 소파에 앉히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차라도 끓일 셈이었다.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화덕 앞에 서서 끓기만을 기다렸다.

천천히 달궈지는 주전자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난 대체 왜 그리 화를 냈던 거지?’

기사로서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렇기에 틀린 행동을 한 건 아니었지만, 이번엔 다소 과했다.

평소라면 모욕을 당했다 해서 상대를 죽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팔다리를 부러트려 놓는 정도라면 하겠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이번엔 그 남자를 죽일 뻔했다. 분노가 치밀어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감정 제어가 되지 않는 건가.’

고민하는 사이, 물이 다 끓었다. 그걸로 차를 우려내 거실로 나가니, 아델이 론슈카를 꼭 끌어안고 있는 게 보였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사과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남자에게 행했던 일이 당연하다 여겨졌다. 오히려 그대로 가만히 놓아준 게 아까울 정도였다.

‘그만큼 정이 들었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제 진짜 둘이 레온만큼 소중해졌구나.

루카스는 레온이 그러하듯 잠시 아델을 기다려 주기로 했다.

“엄마가 왜 미안해.”

“엄마 때문에 론슈카가 나쁜 말을 들었잖아.”

“아냐, 그건 그 사람이 나쁜 거야.”

론슈카는 야무지게 대답했다.

“맞아요. 그 남자가 지나치게 무례했습니다.”

그 말을 레온도 거들었다.

그제야 아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루카스는 그 틈을 타서 아델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차를 끓여 왔다. 마시면 마음이 안정될 거야.”

“감사합니다.”

“레온과 론슈카도 마실래?”

“네, 스승님.”

“나는 안 마셔.”

레온은 예의 바르게 찻잔을 받아 들고, 론슈카는 거절했다.

“네 건 우유와 꿀을 탔는데.”

그제야 론슈카는 손을 내밀어 찻잔을 받아 갔다.

론슈카는 아직 차의 씁쓸한 맛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달달하게 만들어 줘야 마시곤 했다.

이후엔 다들 조용히 차를 마셨다.

“정말 마음이 안정되네요.”

아델의 표정이 한결 안정되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차를 끓이길 잘했다. 루카스는 그리 생각하며 자신의 몫을 마셨다.

하루 동안 힘들었던 일이 있었던 터라, 저녁에도 나가지 않았다. 대신 실내에서 넷이 모여 가벼운 게임을 했다.

가장 많이 1등을 한 사람은 론슈카였고, 다음은 레온이었다.

사실 해당하는 게임에는 대단한 실력을 지닌 루카스였지만, 아델이 아이들에게 승리를 양보하는 걸 보고 그를 흉내 내었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저녁이었다. 그들은 론슈카가 지쳐서 잠들 때까지 계속 게임을 즐겼다.

다들 잠이 든 늦은 밤, 레온 곁의 침대에서 자던 론슈카는 눈을 반짝 떴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는 슬그머니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저 멀리 마을이 있을 위치를 바라보았다.

거리가 멀어 이런다고 뭔가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낮에 루카스가 남자를 놓아주던 순간, 론슈카는 그에게 불꽃을 붙였다. 그 때문에 느껴지는 탈력감에 내내 축 처져 있었던 것이다.

먼 거리라 붙일 수 있는 건 작은 불꽃이 한계였고, 그나마도 다시 회수하지 못했다. 그런 불꽃이 그가 원하는 걸 해냈을까.

론슈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 * *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오전에 식사를 마치고 나선 다시 마차를 타고 길을 떠날 것이다.

주인이 떠난다니 내내 모습을 보이지 않던 사용인들도 인사를 하러 나왔다.

“편히 쉬셨는지요?”

“잘 쉬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관리를 부탁한다.”

“물론입니다.”

온화한 인상의 노부부를 포함한 몇몇 사용인이 웃어 보였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간 자리, 사용인들은 다시 평소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였다.

“참, 그 이야기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

“제가 마을에서 살잖아요.”

저택에는 작은 사용인 숙소가 붙어 있었지만, 마을에서 왕복하며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랬지?”

“어제 마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지 뭐예요?”

“어떤 일?”

“외부에서 들어온 사냥꾼 출신의 남자가 하나 있었는데요.”

“아, 네가 보기 짜증 난다고 한 사람?”

그 말에 말문을 연 사용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례하지, 무식하지, 하여간 못마땅한 남자였는데요. 이번에 집이 불탔다나 봐요.”

“저런, 어쩌다가?”

“뭐, 본인은 악마의 불꽃이니 뭐니 떠들어 대던데. 뻔하죠. 평소처럼 술 마시고 화덕 관리를 제대로 안 했겠죠.”

집이 크면 부엌에 화덕이 따로 있어 불씨를 관리했지만, 작으면 그게 방 안에 있기도 했다. 난로 겸 음식을 하는 용도인 것이다.

“하여간 신전 앞에서 울고불고하던데, 신관들도 상대를 안 하더라고요.”

“쯧쯧. 그러게 평소에 제대로 굴었어야지.”

“그러게 말이에요.”

마을에서 있었던 화재는 그렇게 잠시의 대화 주제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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