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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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8

‘그렇지만!’

레온과 론슈카의 의견이 다르다. 평소라면 론슈카의 의견을 선택했겠지만, 그랬다가는 레온이 섭섭해 할 것이다.

‘이게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일까?’

아델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일단 론슈카를 설득해 보자.’

그러나 론슈카를 설득하기도 전에 레온이 먼저 의견을 바꿨다.

“별장도 괜찮을 것 같아요.”

“레온, 눈치를 볼 필요는 없어. 가고 싶은 곳을 말하렴.”

“두 분의 약혼을 기념하기 위한 여행인걸요. 두 분이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승님도 아델 님도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서 온천을 선택한 거였거든요.”

다시 선택권이 아델에게로 돌아왔다.

‘온천 마을.’

가 보고 싶긴 하지만 안 된다. 안 그래도 아직 루카스의 헐벗은 몸이 생각나는데, 온천이라니!

‘물론 남녀 따로 들어가겠지만! 그렇지만!’

그날 밤의 기억만 선명해 질 것 같았다.

“별장. 별장에 가자.”

아델은 결국 별장을 선택했다.

* * *

여행 준비는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여행지가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넷은 사두마차에 올라탔다. 단순하게 생긴 외양과는 다르게 내부가 무척 잘 꾸며져 있었다.

별장까지의 거리는 사흘.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였다.

가는 도중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중간중간 위치한 마을에는 여관이 있었고, 언제나 제일 좋은 방에서 잤다. 거기다 루카스가 있으니 접근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귀족인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장발, 그리고 말 네 마리가 끄는 마차. 그것만으로도 평민은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조용한 마을 외진 곳에 위치한 별장은 저택보다는 조금 더 작았다. 관리하는 사람도 몇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간만에 다른 곳에 오니 기분이 남달랐다.

“그대 방은 내 방 옆으로 하지.”

이번에도 루카스의 옆방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레온도 소망을 이루었다. 반대편 방을 받은 것이다.

론슈카는 자연스럽게 아델과 같이 지내려고 했지만, 레온이 론슈카를 끌어당겼다.

“안 돼. 이번엔 나랑 지내자.”

“왜?”

“그런 게 있어.”

레온은 의젓한 표정으로 론슈카를 아델에게서 떼어 놓았다.

‘그런 거 아닌데.’

레온이 배려해 주니 더 쑥스러운 느낌이었다.

관리인의 도움을 받아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저택에서는 요리사가 요리를 해 주었지만, 이곳엔 상주하는 요리사가 없다.

“여긴 검술 연습을 위해 가끔 들르는 곳이라.”

루카스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 정도는 문제없었다. 식재료는 풍부했으니 말이다.

원래 힘들게 살았던 터라 할 수 있는 요리는 야채 스튜에 납작한 빵, 버섯구이 정도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전생의 기억이 있으니까!’

빵은 관리인이 사 놓고 갔으니까, 그 외의 것만 준비하면 된다.

루카스가 도와주겠다고 나섰지만, 아델이 거절했다. 한 번쯤은 자신의 요리로 그에게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요리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아델을 만나기 전에 루카스는 종종 여행을 다녔다.

이곳저곳을 헤매듯 다니다가 레온이 생각날 때면 저택으로 돌아왔다. 레온이 아니었다면 그가 돌아오는 횟수가 더 적어졌을 것이다.

하여간 그런 이유로 루카스는 기본적인 요리는 할 줄 알았다. 빵죽이라거나, 말린 야채 가루를 넣은 걸쭉한 스튜라거나. 고기도 구울 줄 알았다.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자 아델도 더는 거절하기 힘들어졌다.

“그럼 재료 손질만 도와주세요.”

“기꺼이.”

루카스가 부엌으로 들어서자 아이들도 같이 들어왔다.

“저도 껍질을 깔 줄 알아요!”

레온과 루카스는 감자와 양파의 손질을 맡았다. 둘 다 손질에 능숙한 모양을 보니 금방 다 할 것 같았다.

“엄마, 나는?”

마지막으로 론슈카. 그 앞에서 아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론슈카는 이런 일을 제대로 거들어 본 적이 없어.’

어릴 때는 엄마인 아델이 접근을 싫어해서, 그리고 이후는 저택의 요리사가 다 해 주었던지라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이 기회에 뭔가 가르쳐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이야 저택에 머물고 있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러고 보니 떠나기 전에 할 일이 많네.’

이미 스토리가 비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미래를 아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마저도 자세히 생각나진 않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단 낫겠지.’

그러니 떠나기 전에 루카스는 미래의 일부를 털어놓도록 하자. 그가 허무하게 죽는 건 원치 않으니까.

“엄마?”

아델이 시키는 대로 물을 받아 온 론슈카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를 불렀다.

“응?”

“무슨 생각 해?”

“어떻게 하면 맛있는 저녁을 만들까, 하는 생각?”

“정말?”

론슈카는 깊은 눈으로 아델을 바라보았다. 뜨끔하긴 했지만, 이곳이 소설의 내용대로 흘러가는 세계라는 건 론슈카에게도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

아델은 요리를 하기 위해 다시 손을 놀렸다. 신선한 샐러드와 소고기 스튜를 만들고, 거기에 빵과 레모네이드를 곁들였다.

‘탄산이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게 없으니 그냥 물에 레몬즙과 꿀을 탔다.

‘그래도 그럭저럭 먹을 만하네.’

식탁에 네 명이 모여 앉아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자기 전 1층의 홀 난로 앞에 모여 잠시 티타임을 가졌다.

역시나 관리인이 준비해 놓은 과자를 먹으며 차를 즐기는 시간은 제법 즐거웠다.

“이제 잘 시간이군.”

“네! 안녕히 주무세요.”

레온은 씩씩하게 인사하며,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는 론슈카를 끌고 맞은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배려에 루카스와 아델은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짐을 푼 뒤로 다시 들어온 방에는 저택에서와 마찬가지로 문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옆방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여기도 이런 게 있네.”

그래도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아델은 다짐했다.

평화로운 며칠이 지나갔다.

식사는 힘을 합쳐 준비하고, 남는 시간에는 근처에 산책을 나갔다. 저택의 바로 뒤에는 자그마한 밭이 있었는데 사용인이 가꾼 것이라 했다.

대가를 지불하고 그중 일부를 따서 요리했다. 신선한 재료는 그 자체로 훌륭한 맛을 지녔기에, 입이 즐거워졌다.

오랫동안 해 왔던 일을 손에서 놓으니 근질근질하긴 했지만, 나쁘지 않은 나날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저택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루카스가 말했다.

“오늘은 마을에 가 보기로 하지.”

그 말에 아델은 루카스의 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렇다. 오늘은 신전에 가서 약혼 사실을 등록하는 날이었다.

모든 일이 빠르게 지나갈 때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여유가 생기니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정말 이래도 되나?’

자신에게야 고마운 일이지만, 어느 모로 보나 루카스에게는 손해만 되는 일 아닌가.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루카스는 대단한 호인이었다.

* * *

이 작은 저택에서 마을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었다. 그래도 마차를 타는 대신 걸어 보기로 했다.

길은 제대로 정돈되어 있었고, 길가에는 나무가 무성하여 제법 볼 맛이 났다. 바람 또한 선선하여 기분이 좋았다.

숲이 가까워 야생 동물이 갑자기 나타날 위험도 있었지만, 바로 옆에는 루카스가 있어서 걱정되지 않았다.

“론슈카, 나 잡아 봐라!”

레온이 신났는지 펄쩍펄쩍 뛰어서 저만큼 멀어졌다.

그러나 론슈카는 그를 따라 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아델의 옆에 바짝 붙어 서서는 혀를 작게 내밀어 보일 뿐이었다.

론슈카가 그렇게 나오니 레온이 심통 맞은 얼굴로 되돌아왔다.

“왜 안 뛰는 거야?”

“귀찮아.”

“하지만 체력이 늘어나잖아. 뛰어서 나쁠 건 없다고.”

“안 뛰어도 나쁠 건 없지.”

론슈카는 작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어, 웃었다!”

그를 본 레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쳤다. 아무래도 아델 외의 사람들에겐 제대로 웃어 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웃었잖아?’

늦게라도 웃기 시작했으니 되었다.

론슈카는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걸 자각하고 있었다. 아델은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마을은 약 30분을 걸은 뒤에야 나타났다.

그동안 루카스가 훈련시킨 보람이 있는지, 론슈카도 레온도 불평 없이 자기 발로 걸어왔다.

“론슈카, 힘들진 않아?”

“힘들지 않아.”

론슈카는 부러 씩씩하게 걸어 보였다. 그 모습이 성장의 증거 같아 뿌듯했다.

아델은 그런 두 아이를 대단하다 추켜세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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