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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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

‘이렇게까지 받는 게 맞나?’

소설 속에서 레온을 구한 뒤 레온이 제대로 된 검사가 되기까지 보살핀 사람이 루카스였다.

그걸 봐서 인성이 나쁘진 않을 거라 예측했지만, 요즘 하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루카스는 사실 호구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해 줄 리가 없었다. 가짜 약혼녀에게 쏟아붓는 돈을 보니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제부터 자신이라도 야무지게 대처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정말 어디서 뭔가 뜯기고 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델이 방 한복판에 서서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자, 론슈카가 대뜸 달려와 아델의 허리에 매달렸다.

“엄마!”

“론슈카!”

“무슨 생각 해?”

“그냥 방이 크다고 생각 중이었어. 론슈카는 새 방이 마음에 들어?”

“응! 방이 커서 좋아.”

론슈카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론슈카도 일곱 살, 이쪽 세계 기준대로라면 방을 따로 쓸 나이였다.

“론슈카의 방은 레온 옆방으로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그 때문인지 루카스도 그렇게 권유했지만, 론슈카가 싫다고 발을 굴렀다.

“엄마랑 같이 있을래!”

다소 과보호 같긴 해도 아델 또한 론슈카의 말에 동의했다. 어차피 침대도 넓은데 당분간은 같이 지내도 되겠지.

* * *

새로운 방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더 깔끔하고 넓은 방에 가구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어 생활이 편해졌다.

그저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 방이 저택 주인 배우자의 방이라는 것이었다.

그 문제는 첫날부터 불거졌다.

“이런 데 문이 있네?”

침실 안쪽에 문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혹시 매립식 옷장인가 싶어 살펴봤지만,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럼 열어 보면 되지.’

아델은 손을 뻗어 문고리를 돌렸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는지 달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그 너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처음 보는 방이었다.

생활감이 흐르는 방은 아델의 방과는 달리 좀 더 간단한 모양새였다. 벽에는 검이 걸려 있고, 묵직한 색의 가구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제야 아델은 방의 주인을 깨닫고 기겁하며 도로 문을 닫았다.

‘왜, 왜!’

루카스의 침실과 자신의 침실이 연결되어 있단 말인가!

놀라서 팔딱거리던 아델은 뒤늦게야 저택의 구조에 대해 깨달았다.

배우자의 방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것도, 문이 있는 것도 전부 이유가 있었다. 부부간에 관계를 가질 때마다 복도를 지날 수 없으니, 만들어 놓은 모양이었다.

“기겁했네.”

아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그 사실을 루카스가 방에 없을 때 알아차려서 다행이었다.

‘이 문은 봉인이다.’

잘 기억해 둬야겠다. 아델은 그리 생각하며 다시 일상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잊게 되는 게 생기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한창 졸릴 새벽 무렵이라면.

“우으.”

아델은 밤중에 칭얼거리는 론슈카의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왜 그러니, 론슈카?”

아이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눈을 찡그리고 작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어린 시절이 힘들어서 그런가. 론슈카는 가끔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그런 론슈카를 토닥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졸리긴 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 나가서 우유라도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으음.”

아델은 부유하는 유령처럼 비틀거리며 방을 가로질렀다. 등과 초를 모두 꺼 둬서 그런지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다.

커튼이라도 열어 둘 걸 그랬다.

그래도 어떻게 문을 찾긴 했다. 아델은 작게 하품을 하며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희미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거실에 불을 켜 뒀던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서 다가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델은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델?”

그런 아델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카스의 목소리였다.

살짝 낮게 잠긴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저도 모르게 간지러운 귀를 긁고 있는 사이, 인영이 바로 앞에 섰다. 그리고 그를 본 아델은 멍하니 눈만 깜박였다.

‘왜 이 밤에 벗고 계세요?’

루카스는 상의를 벗은 상태였다. 초의 희미한 불빛 아래로 벗은 몸이 고스란히 보였다.

굵은 목선과 탄탄한 어깨, 단단해 보이는 가슴 아래로 잘 만들어진 복근이 드러났다.

‘만져 보고 싶다.’

아직 아델은 잠이 덜 깬 채 꿈결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 탓에 절로 손이 나갔다.

“아델?”

루카스가 아델을 재차 불렀다. 상태가 묘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가끔 깜박일 때마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시선이 향하고 있는 건 루카스의 얼굴이 아닌 좀 더 아래쪽이었다. 집요한 시선이 복부에 닿았다.

그제야 루카스는 자신이 상의를 벗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밤 훈련을 마치고 씻고 나서 겉옷을 걸치는 걸 잊은 것이다.

그걸 깨닫자마자 몸에 힘이 들어갔다. 더불어 아델의 옷차림도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가벼운 리넨 잠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 탓에 몸의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일단은 뭐라도 걸쳐 줘야겠다.

그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다 담요를 발견했다. 루카스는 황급히 그를 들어 아델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제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아델, 무슨 일이지?”

미루고 있던 질문도 다시 던질 수 있었다.

“물.”

“응?”

“물을 찾으러 가던 길이었어요.”

그 말과 동시에 아델이 고개를 푹 숙였다.

“물이라면 이쪽엔 없는데.”

“문을 착각한 모양이에요.”

드러난 얼굴이 새빨갛다. 이제 완전히 잠이 깬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델은 다소곳하게 인사를 하고는 삐걱거리며 뒤돌아섰다.

중간에 위치하고 있던 문이 닫히고, 다시 방은 고요해졌다.

“이런.”

루카스는 아직 물기가 남은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충분히 있을 만한 실수였다.

그렇기에 루카스도 이 일은 잊기로 했다. 아델도 그걸 바라고 있을 것이다.

* * *

아델은 뒤돌아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대로 문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마터면 만질 뻔했어.’

현실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탓에 손을 내밀어 버렸다. 만약에 중간에 루카스가 담요를 덮어 주지 않았더라면 진짜로 만졌을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추태람!’

물론 근육은 멋졌지만, 루카스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아델은 거북이처럼 바닥에 엎드려 끙끙거렸다.

“엄마?”

그 모습을 본 론슈카가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론슈카.”

“엄마, 왜 거기 있어?”

그게 말이지. 엄마가 물을 가지러 가려고 했는데, 실수로 옆방 문을 열었단다. 그리고 멋진 근육을 보는 바람에 잠시 이성이 날아갈 뻔했어.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아델은 상냥하게 웃으며 다가온 론슈카를 끌어안았다.

“엄마가 조금 실수를 해서. 목마르지? 침대에 누워 있으면 물 가져올게.”

“같이 가.”

“그럴까?”

아델은 론슈카의 손을 잡고 침대 옆에 놓아둔 촛불에 불을 붙였다.

어른거리는 주홍빛의 불빛에 아까 보았던 모습이 다시 생각나려 했지만, 필사적으로 생각을 돌렸다.

‘그건 사고야, 사고.’

더불어 흑역사이기도 했다. 그러니 잊자. 잊어.

아델은 몇 번이나 다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날 아침, 아델은 협탁을 끌어다 문 앞에 놓았다.

‘이러면 열고 싶어도 열 수가 없겠지!’

나름 좋은 생각인 듯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하지만 아침 식사 시간, 루카스의 말에 협탁을 회수해야 했다.

“일부러 옆방을 쓰는 건 안전을 위함이니 문을 막아 두면 안 된다.”

아무래도 그녀가 협탁을 질질 끌며 옮기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네.”

아델은 얌전히 대답하고 아침 식사로 나온 샐러드에 포크를 찍었다.

약혼이 결정된 이후로 식사는 언제나 넷이서 했다. 루카스와 레온, 그리고 아델과 론슈카.

론슈카는 언제나처럼 아델이 건네주는 음식을 열심히 먹었다.

루카스 또한 우아한 태도로 어마어마한 양을 먹어 치우곤 했다. 그건 레온도 마찬가지였는데, 움직일 일이 많기에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그나마 적게 먹는 건 아델뿐이었다.

‘난 운동을 안 하니까.’

그랬는데, 오늘은 조금 이상하다. 레온이 먹는 둥 마는 둥 음식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레온, 무슨 일이 있니?”

아델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아도 고개를 내젓는다.

“아무런 일도 없습니다.”

대답하는 모습이 의젓하다. 그래서 더 묻지는 못했다.

하지만 움직이는 포크의 끝에 싱숭생숭한 심정이 묻어났다. 아무래도 따로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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