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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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

내내 장로들에게 잡혀 있던 루카스였다. 절대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커다란 새는 그 공격에 스러졌다.

“루카스!”

뒤로 물러난 헤이른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

그를 보며 루카스는 재차 검을 겨눴다.

“헤이른, 이게 무슨 짓이지?”

“장로들이 너무 빠르게 놓아준 모양이군. 쓸모없긴.”

“말 돌리지 마라.”

그 말에 헤이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그저 내 아이와 아내를 찾으러 왔을 뿐이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말을 잘못 알아듣는군. 여기엔 네 아이도 아내도 없어.”

루카스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바로 뒤에 있는데, 그쪽이야말로 현실 도피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나와 아델은 오늘 약혼했다. 그러니 론슈카도 이제 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가 된 거지. 현실 도피는 그쪽에서 하는 것 같은데?”

“루카스, 이만 인정하지. 이 약혼은 성사될 리가 없는 것이야. 아무리 외국이라고 해도 프레데릭에서 손을 못 쓸 것 같은가?”

“그건 자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루카스는 들어 올린 검을 재차 휘둘러 헤이른의 옷자락을 베어 냈다.

그를 바라본 헤이른이 무서운 표정으로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정령을 더 불러 보든가.”

도발을 했지만, 헤이른은 다시 덤벼 오지 않았다.

“오늘은 물러가지.”

“저번에도 같은 말을 하지 않았나?”

헤이른은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2층이지만 내려앉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정령을 이용한 것일 터였다.

론슈카는 늑대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는 엄마를 마주 안았다.

“엄마, 괜찮아?”

“괜찮아.”

“정말로?”

“정말로.”

아델은 웃는 얼굴로 론슈카를 바라보았다.

“다 론슈카 덕분이야.”

그 말에 론슈카의 입가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응.”

그런 둘을 바라보고 있던 루카스가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몸은 괜찮나?”

“네, 딱히 다친 곳은 없어요.”

“론슈카는?”

“나도.”

“론슈카, 존댓말 써야지.”

아델이 말하고 나서야 론슈카는 루카스에게 존댓말을 썼다.

“저도 없어요.”

“다행이군.”

루카스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힘들었을 테니, 이후 약혼식 마무리에는 참여하지 않아도 돼.”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아델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잘 버티다가 헤이른이 사라지자 뒤늦게 여파가 몰려오는 모양이었다.

“괜찮긴. 자신의 상태를 알고 대처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야. 좀 쉬도록 해. 론슈카?”

“네?”

“엄마가 쉬도록 도와줄 수 있지?”

“응!”

론슈카는 얼른 대답했다.

“그럼 방으로 가서 둘 다 쉬어. 혹시 모르니 경비를 불러서 붙여 주지.”

“정말 괜찮은데…….”

“괜찮다는 말도 그만하고.”

“네.”

그렇게 루카스는 뒷일을 수습하러 나갔다. 이제 남은 사람은 론슈카와 아델뿐이었다.

“마지막 드레스는 못 입겠네.”

“입고 싶었어?”

“그건 아닌데 아깝잖아.”

“그럼 입으면 되지 않아?”

“지금?”

“응!”

론슈카의 말에 아델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중에 입자.”

“나중에?”

“지금은 그보다 조금 쉬고 싶네. 그럼 방으로 갈까?”

아델은 론슈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론슈카는 기꺼이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렇게 둘은 본래 그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밖에서는 아직 파티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방문을 닫자 그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내가 잘못 선택한 걸까.”

아델이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는 잘못한 거 없어!”

론슈카가 아델에게 폭 안겨 들었다.

“그래, 고마워. 내 귀여운 아들.”

아델은 양손으로 론슈카의 뺨을 감싸고 이마에 입 맞췄다.

“아직 더 움직일 수 있어.”

그리고 다짐하듯이 중얼거렸다.

* * *

아델이 떠난 자리에서 루카스는 홀로 뒷수습을 시작했다.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무사히 짧은 파티를 마쳤다. 이후, 대부분의 손님과 함께 프레데릭가의 장로들도 돌려보냈다.

센카와 기이가 돌아가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루카스는 인정사정없었다.

그렇게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간신히 쉴 시간이 생겼다.

‘모두 상정하고 있던 일이다.’

아델과의 약혼을 각오했을 때부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알았다.

그의 어머니 케일라는 집착이 심한 사람이었고, 그 때문에 끔찍한 일을 저지른 적도 있었다. 신관을 매수하여 신전에 약혼이 등록되지 못하게 하는 정도는 약과에 불과했다.

‘나도 많이 변했군.’

예전 일 이후로 소중한 사람은 만들지 않으려 했는데, 그런 사람이 서서히 늘어 가고 있었다.

마들렌과 키슈, 레온, 아델과 론슈카.

케일라의 말대로라면 약점이 잔뜩 늘어난 꼴이다.

‘그래도 싫지 않아.’

신기한 일이었다.

잠시 예의를 접어 두고 창가에 걸터앉아 여유를 즐기던 루카스는, 이윽고 결심했다.

“슬슬 방을 옮겨야겠군.”

아직 아델은 손님방 중 하나에서 지내고 있었다.

딱히 나쁜 방은 아니었지만, 집주인의 약혼녀가 지낼 만한 방은 아니다. 손님방이라서 루카스의 방과 멀기도 했고 말이다.

좀 더 가까운 방으로 옮기게 해야 했다. 그게 더 안전하기도 하니까.

루카스는 날이 밝자마자 아델에게 그 사실을 통보했다.

“네? 방을 옮겨야 한다고요?”

“저택 주인의 약혼녀가 언제까지 손님방에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루카스의 말에 아델이 머뭇거리다 답했다.

“그야 그렇지요.”

“그러니 오늘 내로 방을 옮기기로 하지.”

“그럼 어느 방을 쓰게 되는 걸까요?”

“내 옆방.”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지금 루카스의 옆방이 비어 있었기에, 아델과 론슈카가 지내기엔 적절했다. 하지만 아델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정말 제가 지내도 괜찮아요?”

“상관없다.”

“…….”

“그리고 이왕 옮기는 김에 옷도 더 사도록 하지.”

“옷도요?”

루카스는 아델의 옷장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여기 왔을 때 아델은 입고 있는 옷이 전부였다.

이후 마들렌이 더 구해다 줬고, 일을 시작한 뒤엔 본인이 직접 사기도 했지만 그 양이 턱없이 적었다. 자연히 옷장의 반의반도 차지 않았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이다.”

그날 재단사를 다시 불러온 루카스는 아델에게 많은 옷을 맞춰 주었다. 나중에는 아델이 기겁하며 말릴 정도였다.

“이렇게 많이는 못 받아요!”

“왜?”

“그야!”

아델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이었다.

“가짜 약혼녀니까?”

그런 아델에게 루카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제야 아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주시면 나중에 갚을 수가 없어요.”

“갚으라고 주는 게 아니다만.”

“그래도요. 받을 수 없어요.”

아델은 단호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내 약혼녀가 언제나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건 곤란해.”

귀족 영애라면 계절별로 계속 새 옷을 지을 터였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옷을 가지고 있었으면 했다.

평소 칙칙한 색상의 옷감으로 만들어진 옷만 입고 다니던 아델이었지만, 재단사를 불러 보니 밝은색도 무척 잘 어울렸다.

그래서 약혼식 드레스처럼 밝은색 옷도 필요하다 여겼다.

루카스는 아델이 그러한 태도를 보이자, 대신 론슈카를 공략하기로 했다.

“론슈카, 엄마가 새 옷을 가지는 걸 어떻게 생각해?”

“좋아요!”

론슈카는 냅다 대답했다.

“노란색도 예쁘고, 연두색도 멋졌어요. 하늘색도 너무 잘 어울렸고.”

눈을 반짝이며 하는 대답에 루카스가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론슈카도 이렇게 원한다는데?”

맙소사!

아델은 딱 그리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럼 딱 한 벌만.”

결국 그녀가 한발 물러섰다. 그렇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열 벌.”

“너무 많아요!”

“그 정도는 필요해.”

“그럼 두 벌.”

“외출복도 다 짓지 못하겠군.”

루카스는 가볍게 혀를 찼다.

“외출하는 데 옷이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해요?”

“외부에 보이는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보이는 모습에 더 신경 쓸 필요가 있어.”

“그도 그렇지만요.”

루카스는 꿋꿋하게 아델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새 옷 여덟 벌을 짓는 것으로 협상을 끝마쳤다.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되나 모르겠어요.”

“된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론슈카와 레온의 새 옷도 더 사도록 하지.”

“그건 저도 찬성이에요.”

아델은 자신에게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고 한숨지었지만, 루카스의 전 재산을 알면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옷에 대해 타협하고 나서는 곧바로 방을 옮겼다.

루카스의 옆방은 비어 있었지만, 청소만은 꼬박꼬박하고 있었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짐이야 시녀와 시종이 날라 줄 테니, 아델은 론슈카와 함께 몸만 오면 되었다.

그렇게 방 배정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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