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아델은 한쪽으로 물러나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나오지 않는 눈물을 찍어 냈다.
“아델.”
당황한 건 매튜뿐만이 아니었다. 루카스는 그런 아델의 곁에 서서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너무 과했나?’
뒤늦게 후회가 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록텐에게 초대장을 날릴 때부터 이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는 입이 가벼운 남자였고, 그로 인해 사교계에는 자신의 약혼 소식이 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가 프레데릭가에도 들어갈 것은 당연했다. 이 역시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많은 사람 중에서 매튜가 온 건 의외였지만, 그라고 이런 상황을 반길 리 없었다.
그러니 아델에게 압박을 가하는 상황도 충분히 생각해 두었다. 아델과 그 부분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랬는데.’
막상 그런 상황이 오고, 아델이 우는 모습을 보자 속이 들끓었다. 아델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자연 화가 매튜에게로 향했다.
“매튜, 기사로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내 약혼녀를 울리면 뭔가 상황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나?”
“오해입니다.”
매튜는 그렇게 말했지만, 루카스는 그를 믿지 않았다.
“변명하지 마라.”
“변명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내 약혼녀를 따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군.”
루카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매튜는 억울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얌전히 물러났다.
“의원을 데려오겠습니다.”
거기에 시녀까지 자리를 비우니, 복도에는 아델과 루카스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그는 가장 가까운 방으로 아델을 안내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델의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제야 눈물을 그친 모양이었다.
“괜찮은가?”
걱정되어 물어보니 어깨를 움찔 떤다. 이제 매튜는 물러났건만, 아직 무서운 모양이었다.
루카스는 목소리를 좀 더 부드럽게 내었다.
“아델.”
이름을 부르자 아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물기에 젖은 신록의 눈동자가 루카스를 올곧게 바라보았다.
쿵.
가슴 한편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당장 거기에 집중할 여유는 없었다.
루카스는 손을 뻗어 아델의 불그스름한 눈가를 쓸었다. 놀란 듯 커진 눈동자 또한 보기 좋았다.
“전 괜찮아요.”
그걸 어떻게 해석했는지 아델이 그런 말을 내뱉었다.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해도 된다.”
“힘들지 않아요. 모두 론슈카를 위한 일인걸요!”
아델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울었잖아.”
그렇게 말하자 아델의 얼굴이 서서히 빨개졌다.
“그, 그건요.”
더듬듯 말을 꺼낸 아델이 사실을 고백했다.
“연기였어요.”
“연기?”
“우는 척한 거란 소리죠.”
“우는 척한 거라고?”
“네.”
그 말을 끝으로 아델은 고개를 툭 떨궜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너무 짜증이 나서요. 조금 골려 주려고 한 거예요.”
그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연기를 하는 귀족 영애야 많이 봐 왔지만, 그걸 솔직히 고백하는 건 처음 들어 봤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재밌군.”
“웃지 마세요.”
“웃지 말라고 해도 말이지.”
웃음이 자꾸 나오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가 계속 키득거리자 아델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평소 보던 아델의 모습과는 달랐다. 한 달간 약혼을 준비한다고 바짝 붙어 다니다 보니 마음을 많이 연 것 같았다.
“그래요. 웃으려면 웃으세요.”
루카스가 계속 웃자 결국 먼저 포기한 건 아델이었다. 잠시 뒤에 시녀가 부른 의원이 도착했다.
“환자가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헐레벌떡 뛰어온 의원에게는 미안했지만, 지금 여기 환자는 없었다.
“아까는 잠시 어지러웠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아델은 새침을 떨며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의원의 진료는 피할 수 없었다.
의원은 아델을 섬세하게 진료하고,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아무래도 무리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쉬시라 하고 싶지만, 약혼식이 곧이니까요. 약이라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그 약은 시녀에게 맡겼다.
아델은 의원이 돌아가고 나서 울상을 지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손님은 바로 전날까지도 계속 들이닥쳤다. 사람 몇 부르고 소소하게 한다더니.
‘이게 소소한 건가?’
아무래도 귀족의 기준은 남다른 데가 있는 모양이었다.
‘뭐, 많이 부르는 이유도 이해는 가니까.’
지금 루카스는 약혼식을 무효로 만들지 못하게, 증인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잘못하다간 헤이른이 무효라고 외칠 수도 있었으니까.
‘망할 인간.’
피곤하니 전생의 성격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이건 나쁜 징조인가, 좋은 징조인가. 알 수 없었다.
* * *
그렇게 약혼식 당일이 되었다. 하늘은 높고 맑았으며,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식을 치르기에 딱 알맞은 날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관리받기 바빴던 아델은 하늘을 바라볼 여유도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시녀들과 마들렌은 최선을 다해 아델을 꾸몄다.
“정말 아름다우세요!”
“그러게요. 마치 요정 같은걸요.”
아니, 그건 좀 아니지 않을까. 아델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직접적으로 부정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그녀들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어설픈 미소를 흘렸다.
“손님들은 전부 도착한 거죠?”
“네, 이번에 시간이 촉박해서 몇 분이나 오실지 걱정했는데, 오지 못한다고 회신하신 분을 제외하곤 전부 도착하셨답니다.”
마들렌은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곧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아델에게 물었다.
“아델 님은 한 분도 초대하지 않으셨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찾아보면 과거에 아델이 알던 사람들이 있겠지만, 부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들이 아델을 얼마나 괴롭게 했는지 알고 있으니까.
마침내 시간이 되었다.
아델은 먼젓번 준비했던 첫 번째 드레스를 입고 가벼운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문 앞에는 마찬가지로 예복을 차려입은 루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에 대충 셔츠를 걸치고 다니던 그가 제대로 차려입으니, 차마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 정도였다.
‘원래도 잘생긴 사람이!’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아델은 루카스의 옆에 서려다 조금 거리를 띄웠다.
‘옆에 서면 비교될 것 같아.’
하지만 그도 쓸데없는 행동이었다.
“에스코트를 하려면 더 붙어야 하는데.”
루카스가 아델의 손을 잡으며 자연스럽게 몸을 붙여 왔다. 어쩔 수 없었다. 이건 피할 수 없다.
아델은 심호흡을 하고 루카스의 팔에 자신의 팔을 감았다. 저번에도 했던 행동인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냐. 이거 아냐, 심장아.’
아델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기 위해 애썼다.
‘다른 생각을 해 보자.’
그녀는 론슈카를 떠올렸다. 그러자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 이 모든 건 론슈카를 위해서야.’
자신의 욕심이나 욕망을 챙겨서는 안 된다. 자신은 론슈카의 엄마였으니까.
아델은 그제야 평소처럼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가시죠.”
“그러도록 하지.”
둘은 발걸음을 맞춰 앞으로 나아갔다.
마들렌이 말하길 저택이 작아 홀에서 파티를 하기엔 좁다 하였다. 그 때문에 파티는 정원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고용된 정원사가 두 명뿐이었던지라, 임시로 사람을 더 고용하여 돕게 하였다. 덕분에 그럴싸한 파티 장소가 만들어졌다.
이제 몇 걸음만 더 내디디면 문을 나서게 된다. 아델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
“시간이 필요한가?”
“아뇨, 괜찮습니다.”
그리고 둘은 정원으로 나갔다.
그동안 아델이 마들렌과 키슈의 도움을 받아 정성껏 준비한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걸 인식하기도 전에 주변의 시선이 아델과 루카스에게로 몰렸다. 그래도 아델은 꿋꿋하게 서서 그 모든 시선을 받아 냈다.
“소개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이신 루카스 드 프레데릭 님과 아델 님입니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시작은 푸른 머리칼을 지닌 청년이었다. 그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던 이들도 똑같이 따라 했다.
덕분에 분위기가 제법 달구어졌다.
“오오, 루카스 님!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심지어 그 장소가 루카스 님의 약혼식이라니,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법 나이 들어 보이는 귀족이 칵테일이 담긴 잔을 들어 올리며 아는 척을 했다. 그의 이름은 세턴. 제법 넓은 영지를 가진 남부의 귀족이었다.
특이하게도 귀족이면서 상인 일도 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과거에 루카스와 얽히게 되었다.
아델은 미리 외워 두었던 인물 정보를 되뇌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먼저 숙녀분께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늦었군요.”
세턴은 호쾌하게 웃으며 아델에게도 인사를 했다.
그는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기에 타 귀족에 비해 신분을 덜 신경 쓴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첫 번째 아델의 인사 상대로 낙점이 된 것이었다.
이어 만난 사람은 처음에 박수를 친 푸른 머리의 청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