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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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

루카스는 눈앞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어린 티가 나던 소년이 지금은 건장한 청년이 되어 앞에 서 있었다.

“오랜만이군, 매튜.”

먼저 인사를 건네자 청년, 매튜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루카스 님.”

맑던 목소리는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동경을 담아 올려다보던 시선은 이제 원망을 담고 있었다.

“마침 목적지가 같기에 함께 왔지요. 프레데릭가 철갑 기사단의 일원이라니. 오는 내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둘 사이에 록텐이 끼어들었다. 알고 끼어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덕분에 분위기는 좀 더 나아졌다.

“그건 그렇고, 루카스 님의 사랑스러운 피앙세는 어디 계신지요? 인사드리고 싶습니다만.”

“아델은 지금 쉬는 중입니다. 약혼식 전에는 뵙기 어려우실 듯합니다.”

“아, 제가 눈치가 없었군요. 약혼식 절차가 있는데 말이죠. 그나저나 저택이 소박한 게 보기 좋습니다. 저도 이런 별장을 하나 가지고 싶군요.”

록텐은 연신 싱글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그에 반해 같이 온 매튜는 지독하리만치 말이 없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매튜가 조용히 루카스에게 독대를 요청했다.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명색이 프레데릭가의 기사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찾아오진 않았을 터였다.

“그러지.”

루카스는 일단 사용인들을 불러 록텐의 짐을 별채로 나르게 하였다. 이번에 오는 손님 중 머물 곳이 없는 사람은 별채에 머무르게 할 예정이었다.

록텐은 매튜와 루카스의 대화가 궁금한 모양이었지만, 눈치 없이 끼지는 않았다. 애초에 끼워 줄 리도 없었고.

* * *

둘은 일단 장소를 옮겼다. 홀에서 이야기할 만한 이야기는 아닐 테니 말이다.

집무실에 도착하자 시녀가 차를 내놓았다. 그러나 매튜는 자리에 앉지도, 차를 마시지도 않았다. 그는 선 채로 품에서 종이를 꺼내 들었다.

“케일라 님께서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읽고 싶지 않다만.”

“가문의 직인이 찍혀 있습니다. 보시는 게 좋습니다.”

“난 가문을 나왔다. 그러니 그런 이유로 날 움직일 수는 없어.”

“그렇다면 전달하겠습니다.”

매튜는 그대로 편지의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미사여구가 첨언된 내용은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프레데릭가의 가주 대리로서 이번 약혼은 불허한다. 이상입니다.”

약혼을 반대한다. 그게 내용의 전부였다.

‘여전하군.’

아들을 몇 년이나 보지 못했는데, 걱정하는 말 하나 없다. 편지에 담긴 건 가문의 체면을 생각하는 말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랬지.’

어머니인 케일라는 루카스를 아들로서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도구로 여기며 움직이려 했을 뿐이다.

어릴 때는 그저 어머니가 좋아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된 뒤에도 언젠가는 변할 거라 믿고 곁에 있었다.

‘만약에 그 일을 알지 못했더라면 계속 곁에 있었겠지.’

안다. 그때의 자신의 선택이 완벽하지 않았음을. 어리석었음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못 들은 걸로 하지.”

“루카스 님, 루카스 님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못 들은 거로 하겠다. 나는 성을 버렸어.”

“성은 버린다고 해서 쉽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못 버릴 것도 아니지.”

꼿꼿하게 선 매튜가 이를 악물었다.

“루카스 님.”

시선이 매섭다. 하지만 루카스는 그를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봐 주었다.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겁니까! 저는, 철갑 기사단의 모두는 루카스 님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루카스가 성인이 되자마자 철갑 기사단은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리고 그를 주군으로 모셔 왔다.

루카스는 완벽한 주인이었고, 다들 그와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랬는데, 루카스가 그들을 배신했다.

어렸던 매튜는 처음엔 모든 게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주군이 자신들을 버릴 리 없다고 현실을 부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우리들은 버림받았다.’

현실을 직시한 기사단은 무너져 내렸다. 그 상황에서 기사단을 수습한 부단장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반은 와해되었을 것이다.

‘믿자. 언젠가는 돌아와 주실 거라고.’

부단장은 그렇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좋습니다. 루카스 님, 돌아오십시오.”

매튜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매튜.”

루카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하다. 나는 돌아가지 않아. 나약한 나를 원망해도 좋다.”

“루카스 님.”

매튜가 울 것 같은 눈으로 루카스를 올려다보았다.

황제도, 그의 어머니도, 기사단원인 자신도 루카스를 붙잡지 못했다. 그럼 대체 누가 그를 움직일 수 있을까.

매튜는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시녀를 불러 방을 안내하도록 하지. 이만 쉬어라.”

루카스는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 뒤에 모습을 나타낸 이는 방을 안내하기 위한 시녀였다.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시녀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매튜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시녀의 뒤를 따랐다.

루카스의 저택은 프레데릭가와 비교하면 소박하고 작다. 복도의 장식 또한 벽에 걸린 가벼운 액자와 등불이 전부였다.

‘이런 곳에 있으실 분이 아닌데.’

어떻게 하면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렇게 걸어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녹색의 가벼운 드레스를 걸친 여성은 제법 예쁘장하게 생기긴 했으나, 미인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했다.

그녀는 매튜를 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오는 길이 피곤하셨죠. 푹 쉬세요.”

그러고는 스쳐 지나간다. 상심에 빠져 있던 터라 미처 답도 하지 못했다.

‘무례하게도.’

뒤늦게 후회하며 시녀에게 그녀에 대해 물었다.

“방금 지나쳐 간 분은 누구십니까?”

“아델 님이십니다.”

“아델 님.”

이름을 듣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번에 루카스와 약혼하기로 한 여자 이름이 아델이었다.

매튜는 그 자리에서 뒤돌아 뛰었다. 다행히 아델은 아직 멀리 가지 않았다.

그는 아델을 멈춰 세웠다.

“잠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네? 저 말인가요?”

아델은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이름이 아델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루카스 님의 약혼녀이신 겁니까?”

그렇게 묻자 아델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잠시 옆을 바라보다가 뺨에 손을 얹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한참 뒤에야 머뭇거리며 답을 내놓았다.

“네.”

매튜는 아델을 만나기 전에 많은 상상을 하였다. 다른 모든 이들을 뿌리치고 선택한 사람이니만큼 완벽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직접 보니 작고 말랐다. 게다가 너무 수수해 보였다.

제도에는 이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미인이 수두룩했다. 그중에는 교양이 깊은 사람도 많았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왜 이런 여자를 고른 걸까.

“당신은 루카스 님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였을까? 매튜는 무례한 소리를 입에 올리고 말았다.

* * *

‘아니, 뭘 새삼?’

아델은 태연한 시선으로 매튜를 바라보았다. 루카스와 약혼이 결정된 시점에서 이런 일이 한 번쯤은 일어날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여러 번.’

일단 신분 차도 있고, 루카스는 아델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대단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걸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이야.’

아델은 눈을 깜박이며 매튜를 바라보았다.

덩치가 크긴 했지만, 얼굴에는 앳된 티가 남아 있다.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거겠지.

‘그대로 일단 대응은 해야겠지?’

아델은 침착하게 말했다.

“굉장히 무례하시군요.”

그제야 상대방은 흥분이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무례했던 건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했던 말을 철회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는 몸을 바로 세우며 말을 이었다.

“프레데릭가는 이 약혼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있는 분이시라면 그 이유는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프레데릭가와 약혼하는 게 아닙니다. 루카스 님과 약혼하는 거죠.”

“궤변입니다!”

저렇게 바락바락 따져 오는 걸 보니 조금 골려 주고 싶어졌다.

환경이 변해 가고, 살기 편해지면서 점점 전생의 성격이 나왔다.

아델은 일단 살짝 비틀거리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슬픈 생각을 쥐어짜 내려 애썼다.

“지금 소리를 높이신 건가요?”

바들바들 떠는 시늉을 하며 그리 묻자, 그가 멈칫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리고 그때쯤, 잠시 사라졌던 시녀가 루카스를 데리고 나타났다.

“매튜.”

저 앳된 청년의 이름이 매튜인 모양이었다.

“지금 무슨 짓이지?”

“…루카스 님.”

“지금 내 약혼녀를 겁박하는 건가?”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매튜는 당황했는지 손을 내저으며 아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뭐라고 말해 주길 바라는 모양이었지만, 알 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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