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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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

“다들 프레데릭가의 루카스 경 기억하시죠?”

“당연히 기억하지요. 기사로서는 최고의 재능을 가진 분이었죠. 지금은 외국에 계신다지요?”

“네, 맞아요. 그분이 약혼을 한 대요.”

“어머나? 그게 정말이에요?”

눈을 크게 뜬 귀부인이 되물었다.

“어느 집안 영애가 행운을 거머쥐었을까요?”

손에 들린 부채가 바쁘게 펄럭인다.

“그건 말이죠.”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어 갔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시시한 것이었다.

“모르겠어요.”

“네?”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수가. 약혼식이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나요?”

“이제 일주일 남았다던데요.”

그런데도 약혼녀에 대해 밝혀진 게 없다고?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약혼식을 치르긴 하는 건가요?”

“그럼요. 몽펠 백작가의 록텐 경이 그렇게 말했는걸요. 그분은 약혼식에 초대받았대요.”

“그래요? 그분은 루카스 경과 친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같은 기사단에 있었다는 것 정도가 접점의 전부였다. 게다가 몽펠 백작가의 록텐은 입이 가볍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를 초대했다니. 이야기가 재밌게 돌아간다. 귀부인들은 부채를 흔들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루카스의 약혼 소식은 순식간에 사교계에 번져 나갔다. 자연히 그 소식은 프레데릭가에도 흘러들어갔다.

“약혼식이라고.”

프레데릭가의 가주 대행이자 전대 가주의 부인인 케일라는 작게 중얼거렸다.

“약혼이란 말이지.”

베일 아래로 드러난 얼굴이 싸늘하다.

“안나.”

“네, 마님.”

“최근에 루카스에게서 온 초대장이나 편지가 있었던가?”

“아니요, 없습니다.”

안나는 충실한 시녀장이다. 그녀가 없다고 한다면 그게 사실일 것이다.

케일라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루카스는 어느 날, 모든 것을 버리고 훌쩍 저택을 나섰다. 그리고 타국에 자리 잡은 채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케일라는 루카스를 기다렸다. 지금 저러는 건 잠시의 방황일 뿐이라고 믿고 그의 자리를 지켰는데,

‘난데없이 약혼이라니.’

더군다나 케일라는 아들의 약혼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다. 마음에 차지 않는 상황에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누구더라도 그녀의 마음에는 차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후작가의 여식 정도는 된다면 모를까.

“소식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그리고 사람을 준비하도록 하지. 어디 보자… 매튜, 매튜가 좋겠어. 루카스를 제일 잘 따르던 아이니까.”

마음 같아서는 직접 찾아가 루카스를 데려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프레데릭가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 케일라는 이 자리에 있어야 했다.

“덜떨어진 천한 것들이.”

그저 핏줄을 조금 나눠 받았다고 해서 프레데릭가의 가주가 될 수 있을 줄 아는가. 어림도 없다.

이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건 케일라, 그녀의 아들 루카스뿐이었다.

* * *

약혼식, 3일 전.

“자, 이제 당분간은 업무에서 손을 떼셔야 해요.”

마들렌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네? 어째서요?”

“이제부턴 관리에 들어가셔야죠.”

그러고는 열심히 일하는 중이던 아델에게서 펜과 서류를 빼앗았다.

“약혼식 날 가장 아름다워 보이셔야 하니까요. 원래는 일주일 정도 기간을 잡는데, 이번엔 촉박했으니까요. 남은 시간은 3일뿐이랍니다.”

마들렌이 한 번 더 손뼉을 치자 어느새 방 안으로 들어온 시녀들이 그녀의 뒤에 가지런히 섰다.

“마님을 모셔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델은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욕실로 끌려갔다.

향유를 푼 물로 목욕을 하고 나오자마자 보슬보슬한 가루를 묻힌 광목에 전신이 문질러졌다. 이후 가루를 헹궈 내고, 마사지를 하고, 몸에 좋다는 차를 마시고…….

한참 뒤에 간신히 욕실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전신이 보들보들해져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주무세요. 식사 시간에 깨워 드릴게요.”

마들렌은 커튼을 친 어두운 방에 아델을 밀어 넣었다. 엉겁결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슬슬 졸음이 밀려온다.

‘이런 여유가 얼마 만이지?’

모르겠다. 최근에는 바쁘게 뛰어다닌 기억만 남아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잠이나 푹 잘까, 싶어 눈을 감는데 무언가가 슬며시 침대 위로 기어오른다.

무언가 싶어 한쪽 눈을 슬며시 떠서 바라보니 곱슬거리는 붉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론슈카였다.

“론슈카?”

이름을 부르니 침대에 기어오르던 걸 멈추고 아델을 바라본다.

“엄마.”

어디서 뭘 하다 왔는지 눈가가 붉다.

“울었어?”

당황하여 물어보니 론슈카가 고개를 내젓는다.

“안 울었어.”

“운 것 같은데?”

“아냐.”

론슈카는 그렇게 대답하곤 고집스럽게 입술을 다물었다.

‘벌써 비밀이 생길 나이인가.’

아델이 작게 웃으며 론슈카를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옆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엄마랑 같이 자고 싶었어?”

“응.”

이번에는 제대로 대답을 하며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이의 몸을 끌어안자 저 또한 노곤해졌다.

“요즘 엄마가 너무 바빴지?”

일이 저녁 늦게 끝나는 바람에, 론슈카가 깨어 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나마 최근에 봤을 때는 화동 의상을 입을 때였다.

자는 모습의 론슈카도 귀여웠지만, 역시 깨어 있을 때 함께 있고 싶다.

아델은 론슈카의 동그란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응, 그래서 외로웠어.”

“미안해. 그래도 전부 론슈카랑 함께 있기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줬어야 했는데. 아이에게는 미안한 짓을 해 버렸다.

“그럼 괜찮아.”

론슈카는 그렇게 대답하며 아델의 턱에 입을 맞췄다. 닿아 오는 보드라운 입술이 간지러웠다.

‘론슈카 냄새.’

아직 어린아이 특유의 체 향이 기분 좋다. 아델은 론슈카를 꼭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자신의 아이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절대 뺏기지 않을 거야.’

그렇기에 다시 다짐한다. 헤이른에게 절대로 론슈카를 뺏기지 않을 거라고.

* * *

약혼 이틀 전.

슬슬 손님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트리먼트 후작가의 아스펜이었다.

“오랜만이군.”

“그걸 말이라고!”

아스펜은 마중 나온 루카스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쳤다.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나 했더니 갑자기 약혼이라고?”

“그렇게 됐다.”

“됐으니 자세히 설명이나 해 봐.”

“일단은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루카스는 아스펜을 저택으로 안내했다.

“생각보다 소박하군. 그래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정원도 잘 꾸며져 있고.”

“정원사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

루카스는 그리 말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수도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여유로워 보였다.

‘결국 모든 걸 버리고서야 여유를 찾았는가.’

그런 모습에 안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심술이 돋아났다.

루카스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건 그가 수도를 떠나기 전 밤이었다. 그는 떠난다는 이야기만 남기고, 자취를 감췄다.

그동안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말리지도 못했다.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루카스를 만나지 못했다. 편지라도 보낼 수 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 사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심술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네한테 묻고 싶은 게 참 많지만…….”

아스펜은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평생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말해 놓고, 이제 와서 약혼이라니. 어머니와 얽힌 일에 대해 어느 정도 결론을 본 걸까?

아스펜은 그리 생각하며 질문을 이어 나갔다.

“우선 이것부터 묻도록 하지. 루카스, 자네를 잡은 운이 좋은 여성분은 누구인가?”

초대장에 이름이 적혀 있긴 했지만, 단 두 글자였을 뿐이다.

「아델」

그것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가문에 대한 소개도, 성도 없으니 누구인지 추측도 불가능했다.

“아델 말이군.”

“그래, 바로 그분!”

수도에 있을 적에 루카스는 여성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곁에 접근하는 여성들은 전부 쳐 내니 나중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때 아스펜도 루카스와 엮여 피해를 보았다.

결국은 좋게 좋게 해결되긴 했지만, 아직도 그 일은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 루카스가 이제 와서 약혼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상대 여성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어느 가문의 사람이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알 수 없더군.”

아스펜의 질문에 루카스가 대답했다.

“가문은 없어.”

“가문이 없다고?”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기울이는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스펜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설마 평민이란 건가?”

“그래.”

세상에, 맙소사. 아스펜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뒤늦게야 사랑을 찾았나 싶더니 사고를 쳐도 단단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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