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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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

만약에 루카스가 잡지 못했으면 더 크게 다쳤을 수도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은 했나?”

“대충은요.”

마들렌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라이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론슈카 님이 이유도 없이 그러셨을 리 없어요.”

그러면서 마들렌은 그동안 있었던 시녀들의 텃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미리 말했어야지.”

“하지만 루카스 님, 아델 님은 이제 이 저택의 안주인이 되실 거예요. 시녀들을 다루는 법도 익히셔야 한답니다.”

당연히 정석대로 약혼한 거라면 그걸 배워야 하겠지만, 아델은 아니었다.

이 약혼은 거짓된 일이었다. 그래서 아델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해 왔는데.

“저택 내 사용인을 전부 모아.”

“네, 루카스 님.”

마들렌은 허리를 숙여 보이고 방에서 나갔다. 그러자 방에 남은 이는 루카스와 아델뿐이었다.

론슈카는 의원이 아델의 상태를 보는 동안, 잠시 레온에게 맡겨 두었다. 엄마의 상태가 나쁘면 아이가 폭주할지도 모르니까.

어려서부터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종종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러기도 했다. 특히 정령술을 다루는 이들이 그에 대해 더 예민하다 들었다.

그때 닫혀 있던 문이 다시 열렸다. 그리고 그 틈새로 작은 머리 두 개가 보였다.

“엄마는 괜찮아요?”

빨간 건 론슈카의 것, 노란 건 레온의 것이었다. 그중 빨간 머리통은 잔뜩 심통이 난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들어가도 되나요?”

레온의 말에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가장 먼저 뛰쳐 들어온 사람은 론슈카였다.

“엄마!”

“쉿, 아직 자고 있다.”

그제야 론슈카는 소리를 낮췄다.

“엄마.”

침대 옆의 의자에 앉은 론슈카는 아델의 파리한 얼굴을 보며 속삭였다.

“아프지 마.”

언제나 건방지게 굴던 론슈카의 모습이 처음으로 여리게 보였다.

그런 론슈카를 어떻게 달래 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레온이 뛰어난 것 같았다.

레온은 축 처진 론슈카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옆에 섰다.

“아델 님은 금방 일어나실 거야.”

“응.”

“그리고 다시 널 안아 주며 웃으실 테지.”

“응.”

“괜찮으실 거야.”

론슈카는 이번에도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가장 넓은 1층 홀에 모여든 사용인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갑자기 부르셨을까?”

“잘 모르겠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도 있었다. 그런 이들의 태도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라이아가 다쳤대.”

“어쩌다가?”

“치마에 불이 붙어서 화상을 입었다는 거야. 일린이 의원을 돕다가 들었대.”

“불이라면 그 아이 아냐?”

대화를 나누던 시녀들은 한 아이를 떠올렸다.

론슈카. 빨간 머리를 지닌 아이. 얼굴의 화상 흉터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외모라서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물론 전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일부는 외모와는 다르게 무뚝뚝한 아이를 못마땅해하기도 했다. 저택 주인인 루카스의 제자라서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 아이, 언젠가 그럴 것 같았어.”

중간에 끼어든 시종 하나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무슨 말이 그래?”

“하지만 봐, 라이아가 다쳤잖아?”

“그건 그렇지만. 라이아는 평소에 좀 그랬잖아.”

“뭐가?”

사용인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라이아는 같은 동료 사이에서는 평이 좋지 않았다.

귀족가의 사람이라 그런지 콧대가 높았고, 높은 사람이 아니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런 라이아가 좋다고 달라붙은 무리도 있었지만, 아닌 무리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이유로 홀은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모르겠어.”

슬슬 다리가 아파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장소를 이탈할 수는 없었다.

사용인은 엄연히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로운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저택의 주인은 고위 귀족이었다. 그런 사람의 눈 밖에 나면 여러모로 힘들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얌전히 루카스를 기다렸다.

루카스가 모습을 드러낸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웅성거리던 사용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딱 다물었다.

“오늘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그리 말하는 루카스의 표정에는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

“사용인으로서의 임무를 망각하고, 내 약혼녀를 해치려 한 사람이 있었지.”

그 말에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난 사용인들에게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돌아온 게 이런 사고라면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것 같군.”

확실히 저택에서의 일은 편한 축에 속했다. 루카스는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고, 그 아래에 있는 마들렌은 배려심이 깊었기에 일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월급도 높았고, 쉬는 시간도 길게 주었다. 때로는 휴가를 보내 주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다. 사용인이 그에 대해 불만을 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었지. 키슈.”

“지금부터 한 명씩 개별 면담을 하겠습니다. 이 결과로 해고가 결정되니, 될 수 있으면 진실만을 말하십시오.”

키슈는 엄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마들렌과 사람을 나눠 맡아 정보를 캐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런 말로 회피하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미 마들렌이나 키슈나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소용이 없었다.

상당히 많은 수가 걸려들었다.

“당장 내쫓지는 않겠다.”

루카스는 아델이 일어나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리겠노라 했다.

“모든 선택은 그녀가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저택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선별 작업이 끝났을 때, 마들렌과 키슈는 루카스를 찾았다.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어서 찾아왔습니다. 루카스 님, 저희에게도 벌을 주십시오.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저도 키슈와 같은 의견입니다. 좀 더 주의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둘은 고개를 깊숙이 숙여 보였다. 알고 있었다. 둘 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델이 다쳤다.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은 6개월간 월급을 감봉하도록 하지. 그리고 이후의 벌은 아델에게 맡기겠다.”

루카스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 * *

손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따뜻한 무언가가 손바닥에 맞닿아 있었다.

뭘까, 싶어 고개를 들어 올리려는데 통증이 밀려왔다.

‘맞아. 계단에서 굴렀지.’

그래도 살아남아서 다행이다. 여기서 죽었다가는 론슈카의 행복한 미래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아델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방이 어둡긴 했으나, 등이 켜져 있어 사물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불 밖으로 나온 손에 붙어 있는 건 론슈카의 이마였다. 아이는 아델의 손을 잡고 거기에 이마를 댄 채 잠들어 있었다.

‘좀 더 편하게 자면 좋을 텐데.’

적어도 침대 위에서 재워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론슈카에게 손을 댔다.

끌어안아서 침대 위에 올릴 생각이었으나 욱신욱신하고 몰려오는 통증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윽!”

작은 소리였지만, 론슈카를 깨우기엔 충분했던 모양이다.

“엄마?”

론슈카는 아델을 부르며 눈을 떴다. 선명한 붉은 눈동자가 등의 빛을 받아 일렁였다.

“론슈카, 편하게 자지 않고.”

“엄마!”

론슈카는 차마 달려들지도 못한 채 손만 더 꽉 잡았다.

“많이 아파?”

“아니, 많이 아프지 않아. 그보다 론슈카, 의자보단 여기에서 자렴.”

아델은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침대가 컸기에 론슈카까지 올라와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응.”

론슈카는 신발과 겉옷을 벗고 꾸물거리며 침대 위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슬슬 론슈카도 자신의 방을 가져야 할 텐데.’

지금까지는 같이 지내 왔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괜찮을까?’

지금도 이렇게 엄마를 찾는데, 방을 따로 쓸 수 있을까. 걱정되기만 했다.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조금 더 자기로 했다. 아델은 어린 아들을 끌어안은 채 다시 눈을 감았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론슈카는 여전히 아델을 끌어안은 채 자고 있었다.

‘슬슬 배가 고프네.’

아이를 바라보던 아델은 침대 옆의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들어온 사람은 마들렌이었다.

“아델 님, 몸은 좀 어떠신가요?”

그 말에 아델은 쓴웃음을 지었다.

“전신이 아파요. 제대로 구른 모양이네요.”

“저런. 의원을 불러올까요?”

“의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지금은 배가 고프네요.”

“바로 아침을 가져다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에는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죠?”

마들렌은 호들갑을 떨며 방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훌륭한 아침을 가지고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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