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아델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론슈카 또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사고가 벌어진 건 그때였다.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고, 그와 동시에 아델은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다급하게 손을 뻗어 계단 난간을 잡고 버텼지만, 순간의 실수로 놓아 버리고 말았다.
계단 턱에 긁힌 몸이 아팠다. 어떻게든 살겠다고 손을 허우적거려 무언가를 잡으려 했으나 잡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아델은 포기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손을 휘두른 결과, 다시 계단 난간을 붙잡았다. 덕분에 맨 아래까지 굴러떨어지는 건 막았다.
‘뭐지?’
놀란 가슴이 쿵쿵 뛰고 있었다. 그걸 다스리며 위를 올려다보려는데, 론슈카가 좀 더 빠르게 반응했다.
“꺄아아악!”
위쪽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뜨거워, 뜨거워!”
그와 동시에 불타는 불꽃의 빛이 느껴졌다.
“엄마!”
론슈카가 여자의 비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아델에게 달려왔다.
“엄마!”
앞에 선 론슈카가 울먹이는 얼굴로 아델을 바라보았다. 들어 올린 작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괜찮아?”
떨리는 작은 손이 아델의 뺨에 닿아 왔다. 그제야 멍한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아델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계단 위에서 울부짖는 여성이 보였다. 흐릿한 시야로도 그녀가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라이아.’
그녀였다.
“불, 불을 꺼 줘요!”
불꽃은 시녀복의 기다란 치맛자락을 타고 번져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사람 하나가 타 죽을 판이다.
“론슈카!”
아델은 론슈카의 이름을 불렀다.
“불을 꺼!”
“엄마?”
론슈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델은 저 얼굴을 알고 있었다. 지금 론슈카는 정령의 불꽃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리도 아니지.’
어린아이가 이런 모습을 봤는데, 담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아델은 이를 악물었다.
라이아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태워 죽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아니, 그래서는 곤란하다. 그녀는 살아남아 제대로 벌을 받아야 했다.
“론슈카, 이리 오렴.”
아델은 목숨 줄처럼 잡고 있던 난간을 놓고, 론슈카에게 양팔을 벌렸다. 그러나 아이는 평소와 달리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 나는.”
“괜찮아. 괜찮아, 론슈카.”
아델은 론슈카를 재촉하지 않았다. 뒤에서 풍겨 오는 타는 냄새가 거슬리긴 했지만, 지금은 재촉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머뭇거리던 론슈카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아델의 품에 안겨 들었다.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리는 아이의 등을 살살 쓸어내렸다.
소란 통에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지만, 아델은 오로지 론슈카에게만 집중했다.
“론슈카, 불꽃들에게 돌아오라고 하자.”
“자, 잘 안 되는데?”
“아냐, 론슈카는 할 수 있어.”
론슈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랑스러운 붉은 눈동자는 평소보다 진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고 싶지 않아.”
“론슈카?”
“저 사람이 엄마를 계단에서 밀었어.”
“엄마는 무사해.”
“운이 좋았을 뿐이야.”
론슈카는 단호하게 말하며 아델을 끌어안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나에겐 엄마뿐인데.”
론슈카는 아직 어리다. 아이의 세계를 넓혀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의 중심엔 여전히 엄마인 아델이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아델은 론슈카를 설득해야 했다.
“알아, 그래도 불은 꺼야 해.”
“왜?”
“론슈카를 위해서야.”
저택의 사람들은 론슈카를 귀여워했다. 최근 라이아를 비롯한 몇몇 시녀들이 어긋난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다.
아델은 다른 이들이 론슈카를 계속 귀여워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면 그건 불가능해.’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론슈카는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얼굴이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불꽃을 거둬들였다.
그제야 위에서 소란을 피우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불이 꺼졌어.”
누군가의 목소리 뒤로 라이아의 울음이 들려왔다.
“으허어엉. 아파, 아파요.”
죽진 않았으나, 꽤 심하게 화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기도 했다.
“잘했어, 론슈카.”
아델은 론슈카를 꼭 끌어안으며 칭찬해 주었다. 비록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려 하긴 했지만, 자의로 멈춰 섰다. 그게 너무나도 기특했다.
그렇기에 아델은 아픔도 잊고 론슈카를 꼭 안아 주었다.
“아델 님!”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리고 나타난 마들렌이 아델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사람들은 아래쪽 계단에 주저앉아 있는 아델을 바라보았다.
“괜찮으세요?”
아델이 대답하려는데 론슈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엄마가 다쳤어요!”
“네? 어쩌다가요?”
“계단에서 떨어졌어요.”
그리 말하며 론슈카는 울고 있는 라이아를 노려보았다. 복잡한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론슈카의 일을 해결한 아델은 뒤늦게야 계단에서 떨어진 통증이 밀려옴을 느꼈다. 다급히 달려오는 루카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아델의 시야는 까맣게 물들었다.
* * *
힘을 잃고 스르르 무너지는 아델을 붙잡은 건 루카스였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늦게 움직였으면, 아델은 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졌을 것이다.
“엄마!”
그런 아델을 보며 론슈카가 울먹거렸다.
“괜찮아, 괜찮을 거다.”
루카스는 아델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리고 뒤따라오던 키슈에게 의원을 불러오라 일렀다.
“금방 불러오겠습니다!”
그가 아델을 방으로 옮기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데 울고 있는 라이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치맛자락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 있었다.
“으흐흑.”
대충 봐도 누가 그랬는지 알 수 있는 흔적이었다.
루카스가 론슈카를 가르칠 때 가장 유의한 것 중 하나가 사람에게 능력을 사용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어려서부터 배척받아 온 론슈카는 사람에게 능력을 쓰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지금이야 엄마인 아델이 제어를 해 주고 있었지만, 만약에 그녀가 없다면?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루카스는 그에 대해서는 철저히 가르쳤다.
“왜 그러면 안 돼요?”
“사람의 목숨은 소중하니까.”
“그러면 날 괴롭히는 사람도 그냥 놔둬야 해요?”
“그 경우에는 일단 한 번,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보고 쓰자.”
저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상냥하게는 굴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루카스는 단호했다.
“어째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론슈카, 마들렌을 생각해 봐라.”
루카스는 예시를 들었다.
“마들렌은 왜요?”
“그녀를 불꽃으로 태울 수 있겠어?”
“필요하다면.”
“하지만 이유 없이 그러긴 싫지?”
론슈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럴까?”
“저번에 나한테 과자를 줬어요.”
“그래, 그런 거야. 론슈카, 세상에는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야. 마들렌같이 호의를 가진 사람도 있어. 그런 사람을 공격할 수는 없잖니?”
“네.”
론슈카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