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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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

“어때요? 아름답죠?”

아델은 더욱더 부끄러워졌다. 루카스는 대단한 미남자였다.

반듯하고 아름답게 생긴 얼굴에 신비로운 보라색 눈동자, 기다란 은발이 어우러져 보고 있자면 눈이 호강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사람 앞에서 마들렌의 칭찬을 듣고 있자니 이대로 파티션 뒤로 숨어 버리고 싶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바닥을 보고 있자니,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보고 있어.’

아델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차피 약혼식을 하면 이걸 입고 손님들 앞에 선을 보여야 했다.

여기서부터 부끄러워하면 어쩌자는 건가. 그녀는 당당히 고개를 들었다.

시선의 주인공은 예상대로 루카스였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아델을 바라보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아름답군. 무척 잘 어울려.”

가슴이 간질간질해졌다.

‘아냐, 그런 거 아니니까 들어가.’

이건 애정을 나누는 게 아닌 비즈니스다. 자신은 아들인 론슈카를 지키기 위해, 루카스는 제자를 지키기 위해 나섰을 뿐이다.

‘착각하지 말자.’

아델은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그럼 다음 드레스로 갈아입겠습니다.”

재봉사의 제자와 시녀가 새로운 드레스로 갈아입는 걸 도왔다.

‘그러고 보니 이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데.’

아델의 약혼 소식이 알려지던 날이었다. 일부는 축복해 주었지만, 일부는 불쾌함을 내비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작가 사람인 루카스와 달리 아델은 평민이다. 그것도 아이가 있는 보잘것없는 여자.

루카스의 자비가 없었더라면 저택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여자가 안주인 자리를 꿰차게 생겼으니 반발하는 것도 당연했다.

더욱이 시녀 중에는 귀족가의 여식도 있었다. 갑자기 평민인 여자를 시중들라 하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걸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는데, 약혼 준비가 너무 바빠 신경 쓰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좋지 않은 여파가 돌아오고 있었다.

재봉사 제자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시녀의 손길은 다소 거칠었다. 제 몫은 해내고 있었지만, 어딘가 불쾌하다.

‘이걸 어찌해야 한담?’

소설 속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이야 사이다를 터트리며 금방 해결하겠지만, 아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난 평범한 사람이란 말이다!’

괜히 머리만 더 아파 왔다.

“두 번째 드레스입니다.”

두 번째는 식 중에 입는 드레스인 만큼 새하얀색이었다. 고급스럽게 반짝이는 실크 위에 망사와 레이스를 덧대 청순미를 강조된 디자인이 왠지 모르게 계속 시선을 끌었다.

“와, 이번 드레스도 좋네요!”

마들렌이 들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루카스로 말하자면, 여전히 표정을 읽어 내기 어려웠다.

“그래, 잘 어울리는군.”

세 번째 드레스는 싱그러운 나뭇잎이 생각나는 연두색 드레스였다. 이 또한 재봉사가 혼신의 힘을 다한 듯했다.

“드레스는 결정되었으니 이제 액세서리만 맞추면 되겠군요.”

“돈은 아끼지 말도록.”

“물론이죠. 어떻게 아끼겠어요? 최고의 보석상을 부를 예정이에요.”

마들렌은 당당하게 말했다.

이 정도 되니 조금은 부담스럽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조심스럽게 말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마들렌의 놀란 표정이었다.

“이렇게라니요?”

“너무 돈을 많이 들이는 것 같아서요.”

“세상에, 아니에요! 루카스 님은 가난하지 않아요. 저택이 작은 건 한적하게 지내고 싶다 하셔서 그런 거지, 원래 재산은 많답니다!”

마들렌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 정도는 돈을 쓴 축에도 속하지 않으니 걱정 마세요. 아니, 루카스 님도 미리 괜찮다고 하셨어야지요. 약혼자가 돈 걱정을 하게 만드시다니!”

“내 잘못이군. 미안하다, 아델.”

‘왜 거기서 사과하세요?’

아델은 갑작스러운 사과에 쩔쩔매야 했다. 하긴 상대는 무려 공작가의 사람이다. 비록 가문을 나왔다고 해도 돈이 없을 리 없었다.

이후 아델은 마들렌으로부터 루카스의 재산에 대해 한참 설명을 들어야 했다.

“그러니까 안심하세요. 아델 님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루카스의 재산은 진짜 억 소리 나게 많았다.

‘가문을 나왔다면서 왜 이리 돈이 많은 건데?’

“외할머니 되시는 분께서 선황제의 누님이셨거든요. 돌아가시기 전에 가진 재산을 전부 루카스 님께 물려주셨답니다. 그래서 남쪽 퍼리 지방의 광대한 토지가 전부 루카스 님 거예요.”

마들렌은 말을 이었다.

“게다가 루카스 님은 돈을 불리는 데도 재능이 있으시답니다.”

세간에 드러난 재산은 일부에 불과하다며, 그녀는 재차 아델을 안심시켰다. 그래서 아델도 감사는 하되, 지나친 부담감은 지우기로 했다.

“그보다 요즘 별다른 일은 없죠?”

“무슨 일이요?”

“없으면 됐어요.”

마들렌은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모른 척하긴 했지만, 그녀가 무슨 의도로 물은 것인지 나름 짐작 가는 부분은 있었다.

아무래도 마들렌 또한 시녀들이 술렁이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시녀장이니까 모르는 것도 이상하다.

“제가 최대한 주의하고 있긴 하지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말해 줘요.”

“네. 고마워요, 마들렌.”

“아니에요, 저야말로 고맙죠.”

마들렌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사건이 벌어진 건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정말 유치하네.’

그동안 아델도 나름 조사를 해 보았다. 그 결과 라이아라는 이름의 남작가 삼녀가 주동자인 걸 알게 되었다.

뒤에서 그렇게 떠들어 대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조심하는 시늉이라도 하더니, 이제는 들으라는 식으로 대놓고 떠든다.

생각 같아서는 머리채를 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차피 나는 떠나갈 사람이니까.’

시녀들을 잡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아직은 귀여운 수준이기도 하고.’

조금만 더 참자. 그래도 이렇게 나오면 그때 한마디 해 주자. 그렇게 생각하며 시녀들의 사소한 심술을 넘어갔다.

그러던 중 라이아가 아델의 시녀로 붙게 되었다. 루카스로서는 나름 배려한 것이었다.

그 뒤부터 피곤한 나날이 이어졌다. 라이아는 사소한 실수를 남발했고, 그건 아델의 불편함으로 이어졌다. 그뿐이랴. 물건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중에는 론슈카가 아델에게 준 것도 있었다.

“여기 있던 돌멩이 못 봤어요?”

“못 봤는데요?”

“그럴 리가. 오늘 청소를 한 건 라이아 아닌가요?”

“청소를 한 건 맞지만, 쓸모없는 것만 버렸어요.”

라이아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쯤에서 아델은 더는 참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라이아.”

이번에는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아델을 똑바로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라이아가 일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네요. 그게 아니고서야 어째서 매일 실수하고, 잃어버리는 덜떨어진 행동을 보이는 건가요?”

아델 또한 생긋 웃으며 대놓고 잘못을 지적했다.

“저는 완벽하게 일하고 있어요. 아델 님이 아직 귀족의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서 모르시는 모양이네요.”

“언제부터 완벽이란 단어의 뜻이 변했나요? 그리고 라이아, 당신은 뭔가 착각하고 있어요.”

“뭘 말인가요?”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얄밉다.

“라이아가 이런다고 해서 현실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루카스 님의 약혼자는 저예요. 그 말은 나중에 이 저택을 관리하게 되는 것도 저란 소리죠.”

“그래서요?”

“아직도 이해를 못 했나요? 그때가 되면 저는 당신을 내쫓을 수 있어요. 추천서에 안 좋은 말도 잔뜩 적어서 말이지요.”

아무리 그래도 론슈카가 선물해 준 물건을 버린 건 선을 넘었다. 그 탓에 아델은 내내 다짐해 오던 걸 깨 버렸다.

이런 사람이라면 언젠가 나타나게 될 루카스의 연인에게도 해가 될 것이다. 그런 생각에 다소 과하게 말이 나갔다.

라이아는 고개를 들었다가 내리고는 옷자락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겁을 먹은 건가, 싶었다.

시녀들에게 추천서란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비록 남작가의 여식이긴 했으나, 그 남작가란 게 보잘것없었다. 거의 망해서 평민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지.

‘아직 어린데 말이 조금 심했나?’

아델은 한숨을 쉬며 손짓했다.

“이만 나가 봐요. 더는 허튼짓하지 말고.”

라이아는 답도 없이 휙 돌아서 밖으로 나갔다.

그 뒤로는 잠시 조용했다. 아델은 협박이 통하긴 했구나, 싶어 다시 약혼 준비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오후였다.

아델과 루카스는 언제부터인가 같이 식사하는 시간을 늘려 나갔다. 레온과 론슈카도 같이했기에 정확히 단둘은 아니었지만, 제법 즐거웠다.

그 시간을 위해 아델은 계단 앞에 섰다.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위함이었다. 마침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론슈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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