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20 (20/132)

#020

론슈카의 생일!

아델은 론슈카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아이는 눈을 꼭 감은 채였다. 그리고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제 눈 떠도 돼.”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 론슈카!”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와르르 들려왔다. 론슈카는 잠시 놀라긴 했지만, 이내 웃었다. 아델이 미리 생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채 놀라게 해 줄 생각이었으나, 중간에 마음을 바꿨다.

론슈카가 제대로 맞이하는 첫 생일이었으니까. 좀 더 확실하게 알고 즐기길 원했다. 그래서 아델은 생일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론슈카, 생일은 말이야.”

처음으로 네가 세상에 나온 날이라고. 처음 론슈카가 울음을 터트렸을 때.

아델은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론슈카를 낳았을 때 아델은 어떤 감정을 느꼈던가.

‘행복했지.’

단 며칠뿐이었을지라도 마음을 준 사람의 아이였으니까. 많이 부족하더라도 너만은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울었다.

그 마음이 변해 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이던가. 론슈카가 특별한 능력을 쓰기 시작하고, 아이가 꺼려지기 시작했을 때. 불행은 시작되었다.

“엄마?”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날은 축복받은 날이란다. 누구나 태어남은 축복받아야 하거든. 그래서 그날에는 맛있는 걸 먹고 신나게 노는 거야.”

아델은 그것으로 설명을 마쳤다. 론슈카는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지만, 뭔가 더 질문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이해가 안 될 만도 했다. 론슈카가 기억을 하는 순간부터 생일을 챙겨 준 적이 없었으니까. 아마 자기 생일도 언제인지 몰랐으리라.

그래서 더욱더 이번 생일을 잘 치르고 싶었다.

“론슈카, 생일 케이크야!”

어디선가 튀어나온 레온이 론슈카의 손을 잡고 케이크 앞으로 데려갔다. 동그랗고 하얀 케이크 위에는 작은 촛불 몇 개가 흔들리고 있었다.

“불어서 끄면 돼! 그럼 소원이 이루어진대!”

레온의 말을 들은 론슈카가 긴장한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한 번에 전부 꺼 버릴 속셈인 듯했다.

‘귀여워!’

아델은 론슈카의 귀여움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내내 느껴지던 불안감도 지금만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푸우!”

론슈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케이크 위의 촛불을 한 번에 꺼 버렸다. 이어 우레와 같은 박수가 이어졌다.

많은 사람을 초대했기에, 식당은 금방 떠들썩해졌다.

아들의 첫 생일 파티를 크게 열어 주고 싶었던 아델이 루카스에게 부탁한 결과였다. 대부분 사용인이긴 했지만, 루카스는 흔쾌히 허락했다.

사람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음식을 나누고, 중간중간 론슈카에게 다가와 선물을 건넸다.

가장 먼저 주어진 레온의 선물은 꽃병이었다. 나름 고심해서 고른 모양인지 목소리에서 긴장이 묻어났다.

“매일 꽃다발 만들잖아.”

마들렌의 선물은 새 옷이었다.

“이번에 좋은 옷감이 들어왔어요.”

키슈의 선물은 노트였다.

“공부 열심히 하십시오.”

그 외에도 소소한 선물이나 축하의 말이 쏟아졌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크게 여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비싼 건 아니었지만, 그게 쌓이니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델이 론슈카에게 선물을 내밀었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론슈카.”

론슈카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아델을 바라보며 선물 꾸러미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덥석 안겼다.

허리를 끌어안는 손길이 유독 세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에 아델은 조용히 론슈카를 도닥였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면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분홍색 머리를 곱게 늘어트리고 리본을 단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워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어머!”

당연히 루카스가 올 줄 알았는데,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나타나다니. 론슈카가 자신도 모르게 사귄 친구인 걸까? 아니면 사용인 중 한 명의 아이인 걸까?

아델은 웃으면서 아이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혔다. 시선을 맞추니 선명하고 예쁜 붉은색 눈동자가 보였다.

“안녕?”

아델이 인사를 하니 아이도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쩜, 인사하는 것도 너무 사랑스럽다.

“이름이 뭐니?”

이어 이름을 묻는데, 아이의 뒤에 그림자가 지더니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잘린이다.”

로잘린? 이름을 되뇌며 고개를 들어 올린 아델은 순간 굳어 버렸다. 로잘린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을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붉은 머리에 붉은 눈동자. 론슈카를 닮은 그 사람은 아델로서는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론슈카의 친아빠였으니까!

아델은 터져 나오려는 절망의 비명을 억지로 삼켰다. 손끝이 벌벌 떨려 왔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

모든 것이 끔찍한 악몽 같았다.

“엄마.”

하지만 론슈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깨달았다. 이건 악몽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지금 바로 앞에 론슈카의 친아빠가 있는 건 꿈이 아니었다.

아델은 몇 번이나 입을 벙긋거리다 다물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었다.

오랜만이에요? 절 기억하나요? 여기 당신의 아이가 있어요?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결국, 아델은 한 마디의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때,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이는 몇 번 봤지만, 그대와는 오늘 처음 보는군.”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지금, 뭐라고?’

분명 듣긴 들었는데 도무지 그 말이 해석되지 않았다.

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처음? 처음이라고?

그럼 우리가 같이 보냈던 며칠은 뭔데? 아무리 몇 년이 지났다고 해도 이렇게 까맣게 잊을 수 있나?

어떻게!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가 있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토록 기다리고, 사랑을 갈구하던 존재는 자신을 잊었다. 애초에 그에게 자신은 기억할 만한 존재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슬프고 분하고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신 차려!’

아델은 이를 악물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에 먹혀 버릴 것만 같았다.

다시 어리석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잖아. 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하려 했다.

“로잘린의 아빠, 헤이른이다. 반갑군.”

몸을 일으키며 그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떨지 않기 위해 두 손을 맞잡고, 손톱으로 손등을 찍었다. 가벼운 통증이 아델을 버티게 해 주었다.

이름. 이름이 그녀가 알던 것과 달랐다. 자신과 만났을 때는 저 이름을 대지 않았다. 애초에 모든 것이 거짓이었던 것이다.

이대로 감정에 매몰되어 버릴 것 같았다. 서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울면 안 돼.’

여기서 울면 헤이른이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잘못하다가는 과거의 인연도, 론슈카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도 들킬 수 있었다.

그가 론슈카를 탐낸다고 했던가. 핏줄이라는 걸 알면 금방 빼앗기겠지.

론슈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상대라면 보내겠지만, 아델은 알고 있었다. 그는 론슈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그저 죽을 때까지 론슈카를 이용하고 버릴 것이다.

아델은 아픔을 참으며 눈을 반달 모양으로 둥글게 접었다.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떨림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반갑습니다. 처음 뵙네요.”

그런 아델의 옆에 다가온 키슈가 딱딱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헤이른 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오늘이 론슈카의 생일이라고 들어서 축하해 주러 왔다. 그렇지, 로잘린?”

“네.”

로잘린은 품 안에 안고 있던 선물을 내보였다. 헤이른이 미리 준비해서 안겨 준 정령석이 든 상자였다.

그를 본 키슈는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루카스가 헤이른 부녀와 아델을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헤이른의 정보를 취합하는 걸 도와 아델에게 넘긴 것도 키슈였다.

“소소한 생일 파티일 뿐입니다. 헤이른 님께서 참여할 자리는 아닙니다.”

“그래?”

헤이른이 씩 웃으면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루카스도 참여할 정도면 나도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는 뒤쪽에는 막 도착한 루카스가 표정을 굳히고 서 있었다.

“그렇지 않나?”

“헤이른.”

“왜 그러지?”

헤이른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로잘린과 론슈카를 바라보았다. 자신만 오면 거절할 걸 아니까 딸까지 끌어들인 건가.

루카스는 불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앞에서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잘못 말했다가는 로잘린만 상처받을 것 같아서였다.

“우리는 빠지도록 하지. 로잘린만 있어도 축하의 의미는 충분히 전해질 거야.”

“저런. 나도 그러고 싶은데 로잘린은 내가 없으면 안 돼. 아직 미숙하거든.”

“생일 파티에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루카스는 로잘린만 식당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