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아델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어차피 헤어질 사람이라고, 운명이 정해진 사람이라고 가까이 지내지 않으려 했다.
그랬는데. 이렇게 또다시 도움을 받아버렸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어떻게 남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아델은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웃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루카스는 아델의 미소가 들판의 소박한 들꽃 같다 여겼다.
분명 루카스가 좋아하는 건 화사한 장미이건만, 지금은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
루카스가 아델에게 선물 꾸러미를 건네주었다.
“다행히 가게 주인이 주워서 보관하고 있었다더군. 포장이 구겨져서 새로 했다고 하더군.”
루카스는 선량한 가게 주인에게 소정의 사례를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행이지. 론슈카의 생일이 며칠 뒤라면서?”
아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그래도 선물을 어디서 다시 구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언젠가 다시 그 가게에 들르게 되면 저 또한 주인에게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다.
아델은 선물 꾸러미를 소중하게 갈무리하였다. 이제 이 선물은 론슈카의 생일이 되기 전까지 잘 감추어 둘 것이다.
* * *
헤이른은 저택에 머물면서 론슈카를 만나기 위해서 애썼다. 루카스가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중간에서 방해하는 모양이었지만, 기사가 어찌 정령사를 막으랴.
“안녕, 론슈카.”
정원에서 꽃다발을 꺾는 데 열중하는 론슈카의 앞에 작고 빨간 새가 나타났다. 그 새는 특이하게도 사람의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론슈카는 알 수 있었다. 이 말은 새가 직접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정령을 이용하여 말을 전하고 있었다.
“내가 누군지 아니?”
“그, 그때 만났던 정령사.”
“맞아! 똑똑하구나.”
작은 새가 귀여운 부리를 움직이며 말했다.
“어, 어떻게 하는 거야?”
“뭘 말하는 걸까?”
“저, 정령이 말하는 거.”
“아아, 이거?”
방 안에서 정령을 움직이던 헤이른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정령사는 자연의 기운을 타고 태어난다. 그 때문에 자연, 그 자체인 정령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족속이었다.
‘그러니 관심을 끌려면 정령이 제격이지.’
“알고 싶니?”
“아, 알고 싶어.”
론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을 알게 되면 언제나 엄마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는 그 누구도 둘을 완벽하게 갈라놓지 못한다.
“가르쳐 주고 싶지만 그러려면 내 제자가 되어야 하는데?”
“제, 제자?”
“그래, 제자.”
헤이른은 당장 자신의 양자로 들어오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일단은 거부감이 적은 것부터 접근에 이용하기로 했다.
“내, 내 스승님은 루카스인데.”
이것 봐라? 루카스에게 제대로 존칭도 쓰지 않는다. 서로 간에 신뢰가 없는 스승과 제자라는 소리였다.
그러면 손쓰기엔 더 편하지. 헤이른은 론슈카를 살살 건드렸다.
“루카스는 기사잖아.”
“그렇지.”
“기사는 정령사를 키워 낼 수 없어.”
‘하지만 벌써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처음에는 감정이 격해진 상태가 아니면 불꽃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런데 루카스의 말대로 운동과 명상을 병행하자 달라졌다.
이제는 화를 내지 않아도, 울지 않아도 불꽃을 다룰 수 있었다. 엄마인 아델에게 불꽃을 보여 주기도 했다.
“정말인데. 그래,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능력 하나를 가르쳐 줄게.”
“왜?”
“네가 재능이 뛰어난 정령사니까.”
헤이른이 그렇게 말했지만, 론슈카는 의심을 버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대가 없이 무언가를 준 이는 루카스와 엄마뿐이었다. 그런데 고작 한 번 본 사람이 그런 걸 대가 없이 가르쳐 준다고?
론슈카는 헤이른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능력을 가르쳐 준다는 건 무척 매력적인 일이었다.
“뭘 가르쳐 줄 건데?”
“원하는 게 있나?”
“정령이 말하는 거.”
“좋아!”
헤이른은 흔쾌하게 승낙했다. 정령을 통해 자신의 말을 전달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능력이었다. 지금 가르쳐 준다고 해서 론슈카가 금방 습득할 수는 없단 소리였다.
‘이해라도 하면 다행이지.’
헤이른은 새까만 마음을 감춘 채 친절한 척 능력 다루는 법을 설명해 주었다.
“정령을 통해 말을 전달하는 건 말이다.”
론슈카는 작은 새가 전해 주는 말을 들으며 간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 봐서는 이해했는지, 아닌지 헤이른도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설명이 끝났을 때, 론슈카는 입꼬리를 올려 희미하게 웃었다.
예전에 웃을 때는 기이해 보이기만 했으나, 최근에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서서히 고쳐 나가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웃는 모습은 제법 아이다웠다.
“이해했나?”
헤이른은 심술을 담아 물었다.
‘이해했을 리 없지.’
이제 론슈카가 잘 모르겠다고 자신에게 매달릴 차례였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 주면서 론슈카에게 호감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론슈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자존심이 센가?’
그래서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걸지도 모른다.
론슈카는 이제 헤이른이 보낸 새는 쳐다보지도 않고 작은 불꽃을 불러내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불러냈다가 멀리 보내 보기도 하고, 갑자기 뿅 나타나게도 하면서 뭔가 해 보려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아이라도 그게 그리 쉽게 될 리는 없었다.
‘그래도 꾸준히 뭔가 해 보려는 건 괜찮군.’
헤이른은 미래에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올 론슈카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
한참을 그러던 론슈카가 깜박했다는 듯이 바닥에 내려 두었던 꽃다발을 조심스럽게 주워 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저택으로 달려 들어갔다.
“제 엄마한테 주려고 매일 정원에 들려 꽃다발을 만들어 간다더니.”
엄마를 어지간히 소중히 여기는 모양이었다.
헤이른은 저택을 향해 달려가는 론슈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정령을 거둬들였다. 알아낸 정보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곧 생일이라 했나?”
생일 선물은 뭐가 좋을까? 헤이른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떠올려 보았다.
* * *
“으음.”
아델은 동그랗게 구워진 시트를 보며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시트의 한쪽을 조심스럽게 뜯어 먹어 보았다.
이어 마들렌이 똑같은 행동을 하고는 활짝 웃었다.
“완벽한데요?”
“정말요?”
“네! 이제 크림만 잘 바르면 될 것 같아요!”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리라.
‘전생에는 케이크를 다 사 먹었는데.’
이번엔 직접 만들자니 제법 힘들었다. 그렇지만 론슈카가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니 힘들어도 보람찼다.
‘케이크 외에는 또 뭘 준비할까?’
흥에 겨워 준비할 요리를 꼽아 보고 있는데, 그런 아델 앞으로 작은 불꽃이 포르르 날아왔다.
잠시 눈을 깜박이며 그를 보다가 곧 기겁했다. 불꽃을 다룰 수 있는 게 자신의 아들인 론슈카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델은 즉각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론슈카는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더욱 불안해졌다.
본인이 없는데 불꽃이 흩어질 때는 폭주할 때뿐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델이 당황하는 사이 불꽃이 소리를 내뱉었다.
“아!”
“어?”
불꽃이 말을 했다. 아델은 멍한 표정으로 불꽃을 바라보았다.
“엄마!”
심지어 엄마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론슈카니?”
“응.”
불꽃은 마치 휴대폰처럼 론슈카의 말을 전해 주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머, 불꽃이 말을 하네?”
뒤이어 그를 발견한 마들렌도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이어지는 론슈카의 말을 듣고 그 이유를 추측해 내는 데 성공했다.
“저택에 머무르는 정령사분께서 가르쳐 주셨다고?”
“응.”
왜? 아델도 의문을 떠올렸다. 론슈카를 제자로 삼고 싶어 한다더니 그 때문인가?
그런데 루카스가 정령사와 론슈카를 만나게 하고 싶어 하질 않는데? 어떻게 만난 거지?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다 깨달았다.
론슈카에게 가르쳐 준 것과 똑같이 했겠구나.
‘뱀 같은 작자야.’
문득 루카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때문일까. 아직 보지도 않은 사람인데 덜컥 나쁜 생각부터 들었다.
그 사람을 직접 보기 전까지 멋대로 판단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루카스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컸다.
“론슈카는 그분이 어떤 것 같아?”
물어보고서도 아차 했다. 론슈카에게 능력을 가르쳐 준 사람이니 좋게 보이겠지. 별 걸 다 물었다.
그리 생각하던 순간, 론슈카의 답이 들려왔다.
“싫은 사람.”
그 말을 끝으로 불꽃이 훅 사라졌다. 아델은 불꽃이 사라지자마자 론슈카가 걱정되어 그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자신의 방에서 꽃다발을 정리하는 론슈카를 찾아냈다.
“론슈카!”
다행히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 능력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뿐이었다.
“막 배웠거든.”
론슈카는 조금 분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잘한 거잖아.”
“더, 더 잘하고 싶어.”
“지금도 잘하는걸.”
아델은 론슈카를 토닥여 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싫어?”
“몰라.”
사람을 이유 없이 싫어하면 안 된다. 그리 말해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론슈카도 뭔가 느끼는 게 있어서 그런 거겠지.
어쩐지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리고 그 불안함은 줄어들지 않고 착실하게 커져 나갔다. 론슈카의 생일이 가까워지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