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아델과 론슈카, 레온의 상태를 확인한 루카스는 새까맣게 불타오른 흑마법사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어두운 숲속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전하군.”
“더러운 흑마법사니까. 깔끔하게 태워 버리는 게 좋지.”
숲속에서 남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마법사처럼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붉은 머리를 하나로 묶어 내린 남자였다.
헤이른. 제국의 수석 정령사.
그는 뛰어난 정령사를 배출해 내기로 유명한 웨더필드의 가문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다섯 살이 되던 해, 최연소로 정령을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성인이 되기도 전에 황궁에 들어간 그는 모든 기록을 경신하며 탄탄대로를 걸어갔다.
헤이른이 다루는 정령은 그 어떤 정령보다 크고 아름다웠으며, 강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루카스는 그런 그를 꺼렸다.
나이가 비슷해서 어울린 적도 있지만 친구가 되는 건 실패했다. 성격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자리를 옮기지.”
루카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델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론슈카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작고 초라한 남자아이. 그런데 이상도 하지. 헤이른은 그 남자아이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겉보기엔 나이가 로잘린보다 많아 보이진 않아. 그런데 저런 정령을 불러냈다고?’
또래 아이들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나이 대의 헤이른도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헤이른의 목울대가 꿀꺽 움직였다.
‘탐난다.’
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가 탐났다.
로잘린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재능. 그 재능만 있다면 가문은 지금처럼 부귀영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헤이른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였다. 앞장선 루카스의 뒤를 따라간 것이다.
루카스는 아델의 걱정에 조심스럽게 걷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하나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헤이른, 너는 왜 따라오는 거지?”
헤이른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내 목적이 루카스, 너니까.”
“목적이라고?”
“그래.”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군.”
“아직 수작은 부리지도 않았다만?”
헤이른은 태연하게 웃으며 답했는데 그 와중에도 시선은 론슈카에게 향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론슈카의 앞을 가로막았다.
“왜?”
헤이른이 혀로 입술을 축이며 물었다.
왜냐고? 이유는 루카스도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불길한 느낌이 들어 론슈카를 그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둘이 그렇게 대치하고 있는데, 갑자기 수풀이 들썩이더니 작은 아이가 뛰쳐나왔다.
분홍색 머리를 늘어트린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였다. 불쑥 뛰쳐나온 아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헤이른에게 걸어갔다.
“아버지.”
여자아이는 헤이른을 보며 아버지라 불렀다.
“아버지라고?”
루카스는 놀란 표정으로 헤이른을 바라보았다. 그가 결혼한 것은 알고 있었는데, 아이까지 낳았다니.
저 냉혈한이 잘도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구나.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아이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숲속을 다니면서 제법 고생을 했는지 옷 밖으로 드러난 살결에 생채기가 나 있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많이 지쳤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헤이른은 아이에게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루카스는 이래서 헤이른이 싫었다.
“그래, 일단 목적지가 나라니까 내 저택으로 가도록 하지.”
헤이른을 저택에 들이는 건 찝찝했지만, 그렇다고 다친 아이를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다소 이상한 일행이 숲길을 헤쳐 나갔다. 루카스와 아델, 론슈카, 레온. 그리고 기이한 분위기의 부녀까지.
숲을 벗어나니 금방 경비대원을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사정을 설명한 루카스는 곧바로 마차를 잡아타고 저택으로 향했다.
마차가 저택 앞에 서자마자 루카스가 아델을 안아 들고 외쳤다.
“의원!”
“네? 네!”
마침 문가를 청소하고 있던 시녀가 기겁하여 의원에게 달려갔다.
루카스는 아델을 침대 위에 눕히고 마들렌이 했던 것처럼 숨쉬기 편하게 상의를 느슨하게 해 주었다. 그다음은 달려온 마들렌과 의원에게 맡기고 방을 나섰다.
아델이 쓰러진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 때문인지 론슈카는 좀 더 차분해 보였다. 하지만 그 속이 어떨지는 루카스도 짐작할 수 없었다.
“괜찮을 거다.”
그런데도 루카스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보잘것없는 위로밖에 없었다.
“괜찮아야 해요.”
론슈카가 단호하게 말했다. 작은 아이에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묵직한 느낌이 났다.
이 아이는 대체 어떻게 자랄까? 루카스는 그런 론슈카를 보며 의문을 가졌다.
분위기가 지나치게 무거운 탓일까? 뒤늦게 합류한 레온은 섣불리 말을 걸지 못하고, 그저 론슈카의 옆을 지켰다.
그리고 거기 섞인 불청객, 헤이른은 여전히 론슈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 봐라. 네 목적은 나라면서.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지.”
루카스가 또다시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헤이른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천천히 해도 돼. 기한이 없거든.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도 하고 말이야.”
“헤이른!”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내 이름이 헤이른인 건 알고 있지.”
“론슈카는 안 돼.”
“아, 아이 이름이 론슈카인가?”
“그래, 하여간 론슈카는 안 돼. 지금은 내가 가르치고 있다.”
“하, 기사가 정령사의 스승이라고?”
헤이른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비웃었다.
“왜? 여우가 늑대에게 사냥 방법을 가르친다고 하지 그러나.”
“비꼬지 말고.”
“정령사는 정령사에게 배워야 해. 이 아이에게는 넘치는 재능이 있어! 그걸 기사인 네가 망치고 있다고!”
그런 소리를 들으니 루카스도 순간 말이 막혔다.
루카스도 나름 아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가르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진짜 정령사의 가르침만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쉬이 긍정할 수 없었다.
헤이른, 저 작자에게 론슈카를 맡기면 아이가 얼마나 힘들어질까. 지금 의식을 잃고 있는 아델을 생각해서라도 순순히 넘길 수는 없었다.
그런 루카스의 생각을 읽어 내기라도 한 듯 헤이른이 말했다.
“그럼 론슈카에게 물어볼까?”
헤이른이 론슈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곁에 있던 레온이 그를 경계했지만, 간단하게 무시했다. 헤이른의 눈에 들어오는 아이는 론슈카뿐이었다.
“론슈카.”
헤이른이 론슈카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대답 없이 닫힌 문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지금 론슈카에게 있어 엄마 외의 다른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렇기에 헤이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론슈카.”
헤이른은 짐짓 상냥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론슈카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론슈카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둬. 지금 아이 엄마가 다쳤다. 네 소리가 귀에 들어갈 리 없지.”
“아, 아까 네가 안고 있던 여자?”
“그래, 손님방을 안내해 줄 테니 일단 쉬고 있어라.”
“난 괜찮은데.”
“네 딸은 아닌 것 같은데?”
루카스가 헤이른 뒤에 서 있는 로잘린을 가리켰다. 그 말에 헤이른이 제법 부드러운 목소리로 로잘린에게 물었다.
“로잘린, 힘드니?”
로잘린은 그 말을 듣고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 괜찮아요.”
“괜찮다는데?”
“괜찮을 리가 있나! 강제로 내보내기 전에 아이 상태부터 살펴.”
“좋아. 그러지.”
헤이른은 론슈카에게 집착하던 것치고는 산뜻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전 친우가 이리도 강조하니, 일단 로잘린부터 보살펴야겠군.”
누가 친우냐. 루카스는 한숨이 나오려는 걸 억눌렀다.
그렇게 헤이른이 시녀의 안내를 받아 사라지고, 그제야 상처 입은 등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심한 상처는 아냐.’
문제는 아델이었다. 몸이 회복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이런 일이라니.
곰에 이어 흑마법사. 정말 불행의 별 밑에서 태어났나 싶은 사람이었다.
닫힌 방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끔 마들렌이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별다른 말도 없이 도로 들어갔다.
론슈카는 그 자리에 말뚝 박기라도 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건 레온도 마찬가지였다.
“너희도 쉬어야 한다.”
루카스가 말해 보았지만, 아이들은 그를 거부했다.
루카스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권유를 그만두었다. 아이들의 간절함이 그의 가슴을 두드렸기 때문이었다.
“잠깐이라면 괜찮겠지.”
아이들을 씻고 먹이고 재우는 건 의원을 보고 나서 해도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아이들도 의원의 치료를 받아야 했으니까. 루카스 본인도 포함해서 말이다.
루카스는 아이들의 옆에 앉아 같이 방문이 열리길 기다렸다.